장자연과 묻힌 그때 그 사람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고 장자연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검토 중인 가운데 재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재수사가 거론되자 당시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사람들은 다시 긴장하고 있다.
 

지난 26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합니다’라는 청원에 1300명 넘게 서명했다. 장자연 사건은 지난 2009년, 당시 신인배우였던 그가 갑작스러운 사망과 함께 메가톤급 폭로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다.

신인 배우의 폭로
상납 강요에 자살

장자연 사건은 2009년 3월 드라마 <꽃보다 남자>서 이국적인 외모와 안정적인 연기로 주목받던 신인배우 장자연이 유력 인사들의 성 상납 강요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로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라는 문건을 남겨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남긴 문건에는, 끊임없는 술자리 강요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일, 방안에 갇힌 채 손과 페트병 등으로 머리를 수없이 맞았고, 협박과 함께 온갖 욕설과 구타를 받았다는 충격적인 내용과 함께 언론사 대표, 방송사 PD, 연예기획사 대표, 제작사 관계자, 금융인, 기업인 등의 실명이 명시돼있었다. 

장자연의 소속사 대표 김씨와 매니저 유씨는 장자연에 대한 폭행·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을 선고받았다. 유죄로 인정해 1년의 형을 선고하면서 2년간 집행을 미루고 사회봉사를 160시간 하라는 의미다. 

특정한 사고 없이 2년이 지나면 1년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 

하지만 장자연이 폭로했던 술 접대와 성 상납 상대들, 일명 ‘장자연 리스트’의 유명 인사들에 대한 판결은 ‘혐의없음’이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분당경찰서는 수사를 4개월 간 진행한 끝에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됐거나 유족에 의해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당한 기획사 대표부터 대기업 대표 및 금융업체 간부, IT 업종 신문사 대표 간부, 일간지 신문사 대표, 드라마 외주 제작사 PD, 영화감독 등 20여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송치했다. 

하지만 이 유명 인사들은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혐의없음’ 처리됐다. 고인이 직접 자필 편지로 폭로했던 유명 인사들을 제외한, 소속사 관계자들만 유죄 판결을 받고 사건이 마무리된 것이다. 

당시 유력 인사의 이름이 적힌 ‘장자연 리스트’를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잊혀지는 듯했던 장자연 사건은 편지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 편지는 모두 50여통. 

성상납 사건 재수사 청원 시끌시끌
과거사위원회 부인에도 가능성 고조

편지를 갖고 있던 전모씨는 이 편지가 장자연으로부터 받은 친필 편지라고 주장했다. 

편지는 장자연이 자살하기 3년 전부터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곱 장 분량으로 알려진 2년 전 문건에 비해 분량이 방대했다. 기본적인 골격은 같다. 소속사 대표 김모씨의 강요로 언론계와 기업계의 유력 인사들에게 성 상납을 포함한 접대를 해야 했고 그 과정서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는 내용이다. 

성 상납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해당 인사들의 실명은 편지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직업과 직장은 나온다. 편지에 담긴 감정의 강도는 격렬하고 표현은 적나라했다. 성 접대를 강요한 김씨와 성 접대를 받은 이들을 향한 분노가 선명하다. ‘악마’ ‘복수’ 등의 단어가 자주 사용됐다. 
 

편지에 따르면 접대는 두 가지였다. 술 접대와 성 접대다. 술자리만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소속사 대표 김씨로부터 정기적으로 술과 성을 제공받았다고 지목된 사람들은 감독, PD, 대기업·방송사·언론사·금융·증권·일간지 신문사 등의 대표·간부들이다.

여기에 다른 기획사 대표들도 포함돼있다. 이들의 수는 가장 적게 잡아도 31명이다. 

장소는 여럿이다. 특히 자주 언급되는 장소는 회사 3층 접견실이다. 접견실은 술자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밀실, 욕실 등을 갖추고 있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태국 여행과 관련된 언급도 눈에 띈다. 편지의 어느 대목서 “여행도 아닌, 태국 여행을 다녀와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를 거야. 여행도 아닌 그거…그거를 위한…”이라고 묘사돼있다. 

편지는 태국 여행과 관련해 특정인을 지목했다. 

“태국 여행 때 나를 데리고 갔던 감독은… 정말 얼마나 머리가 아픈지, 나 말고도 힘없는 연기자들 (상대로) 상습적이야. 내가 아는 애들도 태국 여행… 그 감독에게 노리개처럼… 10명도 넘어. 모두 다 출연 미끼. 스타 되는 거 시간 문제라는 둥 그런 말에….” 

편지와 유서
봐주기 수사

하지만 이 편지는 국과수 감정 결과 ‘가짜’로 판명이 났고 문건 자체가 조작으로 밝혀짐에 따라 당시 경찰은 재수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이 사건은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사건으로 남겨졌다.

과거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장자연 사건과 관련된 발언과 활동도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종걸 당시 민주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서 ‘장자연 사건’을 언급하며 “장자연 리스트에는 신문사 대표가 포함돼있다. 명단이 공개되지 않는 이유는 경찰이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신문사 대표의 실명을 거론했다. 이에 이달곤 당시 행정안전부장관은 “사건의 전체적인 내용은 보고 받았지만 구체적인 사안은 알지 못한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내용이 담긴 동영상은 현재 인터넷상에 널리 퍼져있는 상태다. 

실명이 언급된 신문사는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이종걸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이 의원에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판결 이후 이 의원은 “장자연씨의 가엾은 영혼을 위해 진실이 밝혀지고 암묵적으로 행해지던 연예계의 고질적 병폐가 근절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또 거대 언론사에 맞서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씨의 편지를 통해 당시 경찰, 검찰 수사는 진실이 은폐되고 축소됐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그것이 자필문건이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유력언론사주가 조사를 받지 않고 한 달 정도 수사가 지연되고 왜곡되는 것에 대해 대정부 질문 때 실명을 거론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왜 수사가 힘 있는 사람에 의해 흐려지냐를 질의하는 과정서 나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장씨의 편지는 당연히 재수사의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당시 경찰은 그때 나왔던 편지나 ‘장자연 문건’ 내용 자체가 의지와 다르게 조작됐고 해당 인사들은 장씨와 면식도 없었던 사람이 꽤 많다고 해서 의미 없이 됐지만 당시에도 이 편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 편지를 잘 살펴서 하나의 새로운 수사자료로 써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떠도는 명단
부인하기 급급

검찰이 재수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성 상납 리스트 명단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6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장자연 성 상납 리스트’라는 제목으로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고 장자연씨에게 성 상납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명단이 공개돼있어 네티즌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서 퍼지고 있는 글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며 명단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출처와 진위가 확실하지 않은 정체불명의 ‘장자연 리스트’도 떠돈 지 오래다. 여기에는 거대 드라마 제작사 대표와 PD들뿐 아니라 재계와 언론의 깜짝 놀랄 만한 인물들 이름까지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이들에 대한 마녀사냥식 실명 찾기가 벌어질 조짐이다. 자칫 엉뚱한 인사가 이런 식으로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잘못 알려질 경우, 엉뚱한 희생자가 벌어질 가능성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최근에 올라온 장자연 성 상납 리스트에 따르면 대기업 임직원과 방송사 PD, 언론사 고위간부 등 10여명의 실명과 직책이 등장한다. 

장씨의 소속사 대표인 김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력인사들이 대부분인데 드라마 제작사의 A 대표를 비롯해 유명 드라마 PD인 B와 C가 포함돼있으며 일간지 D사의 고위 관계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E, F, G사의 고위관계자도 들어있다. 

문건에 등장하는 몇몇 인사들은 “접대받은 게 아니라 행사자리에 불려 나가 합석했을 뿐”이라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상납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해당 기업들은 좌불안석이다. ‘도마’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경영상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자연 리스트’에 기업 오너들이 오르내렸을 당시 기업들은 자체 정보망을 확대하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느라 분주했다. 시치미를 뚝 떼면서도 한편으론 ‘혹시나’하는 마음에 속을 까맣게 태웠다. 

가라앉은 의문점은?
당사자들 좌불안석

당시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이 소속된 기업에서는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했다. 한 그룹 홍보실은 온종일 기자들의 확인 취재 전화를 받느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 그룹의 오너는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지목받는 인물이다. 

룸살롱 에이스 접대부만 골라 자신의 별장으로 불러 ‘뜨거운 밤’을 즐기는 것으로 소문이 난 그는 한 접대부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고 들락날락한 사연이 대중에 노출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다른 그룹 오너 역시 단골 스캔들 메이커로 유명하다. 그는 화류계에서 ‘밤의 황제’라 불린다. 매일같이 유흥가에서 새벽이슬을 맞는 이유에서다. 

그룹 측은 “리스트의 진위조차 확인되지 않은 데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서 섣불리 뭐라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건 진행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경찰 수사를 예의 주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스캔들을 보면 대부분 실체가 불분명한 소문으로 흐지부지 끝나거나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 이번 사건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겠냐”고 조심스러워했다. 

아예 구설에 오른 것조차 부인한 그룹도 있다. 이 그룹은 오너가 장씨와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혀 무관하다고 발뺌했고 기사화될 시 민·형사상 모든 법적 조치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지난 27일 과거사위원회가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통화서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리스트 사건 수사와 관련해서 논의한 적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의 업무를 지원하는 검찰개혁추진단의 한 관계자도 “장자연 리스트 사건 재수사 여부는 결정된 것이 없다”며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의 위원 몇 명이 개인적으로 의논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련 보도가 나온 이후 이날 하루 종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장자연 리스트’ ‘장자연 사건’ 등이 상위에 랭크됐고 재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은 빗발치고 있다. 

“논의한 적 없다”
재수사 요구 빗발

만약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을 선정한다면 8년 전 남았던 의문점들이 이번에야말로 해결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재조사 결과가 일부 스타들을 제외하고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된 연예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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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