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총수들의 쓸쓸한 연말 스케치

실적에 웃고 사정에 울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다사다난했다. 재계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유쾌하지 못한 한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강도 높은 사정당국의 압박으로 총수들 역시 무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난히 쓸쓸한 연말이다.
 

삼성은 올해 사상 최대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위기로 읽히는 모습이다. 총수의 부재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몇 해째 와병 중이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10일 밤 심근경색을 일으킨 뒤 3년여간 계속 입원 치료를 받는 중이다.

아직도 빈자리
기약없는 복귀

현재 이 회장의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측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건강하다. 이따금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병실 복도를 오갈 만큼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다만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 회장도 연말을 편하게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룹 안팎의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주가로 반영됐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자료에 따르면 이달 12일 기준 현대차그룹주 11개 종목 시가총액 합계는 93조5388억원으로 2014년 말(114조4553억원)보다 16.08% 감소했다. 시총이 뒷걸음 친 것은 10대 그룹 가운데 현대차가 유일하다. 


시총감소 원인으로는 부진한 실적 전망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증권가는 올 한해 현대차의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에 따라 수출 환경 여건이 부정적으로 바뀐 것이 뼈아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마음 편히 한해를 마무리하기 어렵긴 매한가지다. SK그룹 역시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우선 그룹내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SK케미칼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고발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SK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인 ‘홈클리닉 가습기 메이트’의 주성분을 제조해 애경에 납품했다. 그동안 양사는 제품 라벨에 독성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공정위는 지난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지만 올해 재조사에 들어가 결국 고발에 이르게 됐다. 공정위는 최근 심사보고서를 해당 업체에 통보하고 이를 전원회의에 상정했다. 해당 사건을 재조사한 TF는 지난 19일 “(사업자가)안전 관련 정보를 표시하지 않은 건 부당한 광고”라고 지적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이 표시광고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SK건설은 이달 초 검찰로부터 본사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은 SK건설이 평택 주한미군기지 공사 입찰 과정서 수십억원의 돈을 미군기지 공사 관계자 등에게 건네 부당 이득을 챙겼다고 보고 있다. 

SK건설이 건넨 뇌물을 받고 일감을 준 미군 관계자는 본국으로 도주했다가 현지서 체포돼 미 연방 검찰에 기소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수사에
세무조사도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그룹이 사정 당국 칼날 위에 서면서 ‘좌불안석’인 모양새다. 타깃은 LG상사다.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 4대 그룹 가운데서는 처음이다. 

그동안 LG상사는 그룹내 승계 작업의 핵심 발판으로 평가됐는데 조사4국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국세청의 중수부라 불리는 조사4국은 통상 탈세 및 탈루 정황이 포착된 경우 투입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정기 세무조사의 경우 4년마다 실시하는 것이 맞지만 조사4국이 투입되는 일은 없다”며 “그동안 의혹이 있었던 부분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LG그룹 오너 일가가 24.7%의 지분을 쥐고 있는 LG상사는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로 논란이 된 바 있다. 또한 상사의 특성상 역외 거래가 많은데 부적절한 자금 흐름이 포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에서는 문재인정부 출범 후 LG그룹이 4대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사정당국의 칼날을 받은 점을 주목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각종 리스크에 따뜻한 연말을 기대하기 어렵다. 신 회장은 경영 비리 관련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해 올 한해 치열하게 법정 공방을 벌였다. 부진한 실적도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요인이다. 

롯데그룹은 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잘나가던 롯데백화점이 임금을 동결했다. 2009년 이후 8년만이다. 롯데백화점은 3분기 매출액 1조9020억원, 영업이익 570억원으로, 각각 작년 동기 대비 3.6%, 8.6% 줄었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유통과 면세점 사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다른 계열사도 큰 폭의 임금 인상은 어려울 전망이다.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롯데제과 등 식품 계열사의 경우 평년 수준인 3% 내외 수준 인상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계열사 중 실적이 양호한 롯데케미칼은 이보다 더 높은 폭으로 인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오너 일가가 검찰로부터 기소를 받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편치 않은 연말을 보낼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 따르면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이 홈쇼핑 채널 사업권 재승인을 청탁하면서 대가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검찰로부터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불구속 기소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허 부회장은 고(故) 허준구 전 LG건설 명예회장의 아들로 허 회장의 막냇동생이다. GS홈쇼핑은 2013년 전 전 수석이 회장·명예회장을 지낸 한국e스포츠협회에 1억5000만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각종 현안들에 피로감 극대
당국 칼날 위 아슬아슬 행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승계구도를 놓고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비교적 구체적으로 세 아들의 승계에 대한 윤곽을 잡아왔다. 

재계에서는 태양광, 화학은 첫째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금융은 둘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건설은 셋째 김동선 한화건설 전 팀장에게 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맡길 것으로 예상해왔다.

문제는 셋째 김 전 팀장이었다. 김 전 팀장은 두 차례 폭행사건을 일으키면서 자질 논란이 불거지는 모양새다. 연초에 폭행사건으로 한화건설을 떠난 뒤 1년이 못가 또다시 술자리서 폭행 시비가 불거졌다. 

1년에 두 차례나 자제력을 잃은 모습을 보이면서 승계 후보자의 자격에 적절성이라는 물음표가 찍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는 분위기다.


노사 갈등
편법 승계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는 노사간 팽팽한 갈등을 올 한해 마무리하지 못할 것으로 관측됨에 따라 해결 방안 모색에 골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현재 2016년도와 2017년도 임금과 단체협약 통합교섭을 두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근 권명호 울산 동구청장은 지난 20일 동구청 광장서 지역 전통시장 상인과 소상공인 등 60여명과 함께 현대중공업 노사의 연내 임단협 타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만큼 임단협에 가지는 지역사회의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뚜렷한 해결방안이 나온 것은 아니다. 최근 실무교섭과 본교섭을 번갈아가며 진행하면서 연내 임단협 마무리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양측 간 입장차가 워낙 커 해를 넘길 것이란 전망이 중론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사정 당국의 칼날 위에 있다. 경찰은 호텔 공사비 30억원을 자택 공사비로 유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법위반 배임)로 조 회장과 배우자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따르면 조 회장과 이 이사장은 2013년 5월부터 2014년 1월까지 본인의 소유 평창동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용 총 70억원 가운데 30억원을 비슷한 시기에 영종도 H2호텔(전 그랜드하얏트인천) 공사비용으로 떠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두 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할 만큼 강력한 수사 의지를 표명했지만 검찰이 반려하면서 불구속 상태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조 회장이 현재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향후 치열한 법리 다툼이 있을 전망이다.

조 회장의 제수인 최은영 전 한진해운(현 유스홀딩스)은 법정구속 상태다. 이달 8일 열린 1심 재판서 재판부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 전 회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또 벌금 12억원과 추징금 5억300여만원을 선고했다.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이 자율협약 신청을 발표하기 전 미공개 정보를 알고 가지고 있던 주식을 매각해 약 10억원의 손실을 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 전 회장과 검찰은 법원이 선고한 양형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함에 따라 해를 넘겨 법정 다툼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사정 기관의 압박을 받고 있어 마음 편한 연말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회장은 현재 가족 명의의 회사를 통해 수십억원 대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국세청으로부터 고발당했다. 공정위도 친족회사 7곳을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 현황 신고 때 누락한 정황을 포착해 검찰에 고발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역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공정위가 미래에셋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관련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어서다. 문제가 확대될 경우 지배구조 개편에 큰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7월 금융당국에 신청한 발행어음 사업 인가 심사가 보류됐다고 지난 15일 공시했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7월 신청한 발행어음 사업 인가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서면 자료 요청 등 조사 진행으로 인가 심사가 보류될 것이라고 금융당국으로부터 지난 14일 통보받았다”고 설명했다.

악화된 건강관리부터
해결 못한 문제들까지

자본시장법상 대주주를 상대로 형사소송 절차가 진행되고 있거나 금융위, 공정위, 국세청, 검찰청, 또는 금감원 등의 조사, 검사 등의 절차가 진행되는 경우에는 인허가를 보류한다. 금감원은 자산 운용사를 대상으로 한 통상적 검사 도중 미래에셋대우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달 초 금융감독원서 미래에셋대우가 공정거래법 위반 징후가 있다며 통보해왔다”며 “관련 절차에 따라 해당 업체에 자료 요청을 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래에셋대우 지배구조 문제는 여러 차례 지적됐다. 특히 계열사들이 박현주 회장(48.63%)과 부인(10.24%) 등 박 회장 일가가 최대주주인 미래에셋컨설팅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있었다. 

미래에셋대우는 이번 공정위 조사와 관련해 “현재 내부거래 관련 자료 제출을 준비 중”이라며 “공정위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다.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도 올해 초, 조현준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겨줬지만 총수 시절 벌어진 일이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10월 탈세 혐의로 진행된 2심 재판이 재개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조 명예회장은 2003년부터 10여년간 8900억원대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 1237억원을 포탈하고 2007~2008년 효성 회계처리를 조작해 주주배당금 500억원을 불법으로 취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서 법원은 조 명예회장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다만 조 명예회장이 고령에 과거 담낭암 판정을 받는 등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점을 들어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2018년도…
강한 압박 예고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재계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가 이어지고 있다”며 “지배구조 상단에 있는 기업 총수들의 피로감이 상당히 누적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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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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