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구긴’ 재계 황태자들 막전막후

하루 멀다하고 스캔들…굿이라도 해야 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올 한해 재계에서는 차세대 리더들이 경영 시험대에 올랐다. 이들의 행보에 관심이 고조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녹록지 않은 여건에 쉽지 않은 한해를 보냈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차세대 리더들을 정리했다.
 

대표적인 차세대 리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15년 쓰러진 뒤 병마와 싸우면서 자연스럽게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터진 최순실 국정농단 여파는 이 부회장에도 미쳤다.

재계에 미친
국정 농단 여파

이 부회장은 현재 구속수감 상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1심서 실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7일 피고인 신문, 검찰 구형, 변호인 의견 진술, 피고인 최후 진술 등을 마쳤으며 내년 2월 중에 선고가 예정돼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의 부재로 삼성그룹은 그룹의 방향성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오현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0월, 미국 워싱턴 그랜드하얏트호텔서 열린 워싱턴 경제클럽서 “(이재용 부회장 구속은) 일종의 비극”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배경서 나왔다는 해석이다. 


현재 각종 현안에 대한 결정권자가 없어 그룹 전체의 방향성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역시 한진그룹의 차세대 리더로 꼽히지만 2014년 발생한 ‘땅콩회항’에 대한 법정 다툼으로 체면을 구겼다.

다만 집행유예로 법정구속은 피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1일 항공보안법 위반 및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부사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2년6개월간의 재판이 마무리됐다.

‘경영 전면’ 시험대 오른 차세대 리더
잣대 높아진 도덕성에 입길 오르내려 

대법원은 쟁점이 됐던 지상서 ‘17m’를 운항한 항공기를 되돌려 탑승 게이트로 돌아가게 한 것은 항로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항공보안법상 항로 변경죄를 원심과 같이 무죄로 판단했다. 

앞서 1심은 조 전 부사장이 지상서 항공기를 돌린 17m의 거리를 항로로 인정하고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항로는 항공기가 다니는 하늘 길로 지상의 계류장 내 이동은 항로로 볼 수 없다며 항로 변경죄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석방했다.

그러나 오너 일가의 도덕성 논란에 흠을 남겨 여론이 좋지 않다. 일각에서는 향후 조 전 부사장이 그룹 내 입지를 넓히는 데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최근 ‘주 35시간 근로제’ 도입을 선언했다. 제도가 시행되면 근무시간이 현행 주 40시간에 비해 5시간 줄어들면서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생활이 가능해진다.

내년부터 시행되면서 재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우호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일각서 이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역풍을 맞고 있는 모습이다. 노동계 및 경제시민단체의 강한 반발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반발은 내부서부터 나왔다. 

신세계그룹 내 핵심 계열사 이마트 노조는 제도 시행으로 업무 강도가 심화되고 최저시급 인상에 다른 효과가 작아진다고 주장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 실현될 경우 이마트 근로자들의 월급은 주 40시간 기준으로 209만원이지만, 근로시간이 5시간 단축되면 월급은 183만원으로 감소한다.

사측은 해명에 나섰다. 

신세계 측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7시간씩 근무해도 임금 감소분이 없기 때문에 시급을 기준으로 한 실질 임금은 늘어나는 셈”이라며 “연장근무가 발생하면 수당도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제도가 시행돼봐야 알지 않겠냐” “일단은 지켜보자” 등의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 부회장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 됐다. 근로시간의 혁명을 가져다 줄 제도를 제안한 혁신적인 경영자라는 이미지와 임금을 줄이려는 꼼수 경영자라는 이미지 사이에서 아슬아슬 한 줄타기를 하게 됐다.  

온갖 구설수
불편한 논쟁


지난 1월 강신호 명예회장으로부터 동아제약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은 강정석 동아쏘시오홀딩스(그룹 지주사격) 회장도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검찰은 강 회장이 2005년부터 최근까지 회삿돈 700억원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중 55억원은 병원에 리베이트 명목으로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또 허위 영수증을 통해 비용으로 꾸며 170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강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영업직원의 개인적인 일탈로 회사와는 무관하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도 그룹의 지휘봉을 잡자마자 잇따른 곤혹을 치르고 있다. 검찰이 효성그룹에 대한 비자금 조성 혐의를 포착하고 강제수사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는 마포구 효성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 관계자는 “특수4부서 재배당된 고발사건 관련 압수수색”이라며 “관계 회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부장검사 김양수)는 지난 17일 오전 9시부터 마포구 효성 본사 및 효성 관계사 4개소, 관련자 주거지 4개소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은 이들 장소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 및 관련 문건 등을 확보했다. 

손이 문제
술이 문제

현대가의 사위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도 입길에 올랐다. 그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사위다. 현대카드서 사내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자 정 부회장은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러나 그가 지난 11월 남긴 SNS 게시글이 화근이었다.

정 부회장은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현대카드 본사의 화장실을 남녀공용으로 개조하기 위해 2년째 디자인을 연구해 완성단계”라고 밝혔다.

그는 “남녀공용으로 하면 수용 능력이 몇십% 올라가고 기다림이 대폭 준다”며 “다만 거부반응과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고려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차음, 환기, 온도, 여성전용 파우더룸의 확보 등”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년 전 처음 검토를 시작했을 때는 생소하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요즘 유럽과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회사들조차 앞다퉈 남녀공용으로 바꾸고 있다”며 “물론 LGBT 이슈가 강한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튼 트렌드가 그런 것만은 확실하다”고 적었다.

‘LGBT’란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지칭하는 약자로 성적소수자를 이르는 말이다. 

정 부회장은 댓글을 통해 “검토 중간에 합류한 어떤 미국 디자이너는 화장실이 남녀 구분이 된 것은 역사적으로 근대의 이야기이고 남녀차별·인종차별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며 “공간 합리화를 넘어서 사회적 대의가 있다며 열정을 보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카드서 성 관련 부정적인 논란이 불거지자 정 부회장이 ‘젠더의식’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과거 그가 올렸던 게시글까지 거론되면서 이슈가 확대 재생산되는 양상이었다. 2012년 그는 “식당이나 카페서 카드 사용통계를 보면 여성회원의 사용이 더 많은 장소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 여성취향의 장소도 마찬가지. 이는 남성들의 지불이 압도적으로 더 많기 때문. 불쌍한 남자들, 언제까지 이러고 사실 건가”고 말해 성평등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김동선 한화건설 전 팀장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술이 문제였다. 김 전 팀장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지난 9월 대형 로펌 소속 신입 변호사와 가진 술자리서 폭언과 폭행을 저질렀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김씨는 지난 9월28일 한 대형 로펌 소속 신입 변호사 10여명이 모인 자리에 참석했다가 만취한 채 난동을 부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향후 입지 영향 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다만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 6일 김씨에 대해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피해자로 알려진 변호사들이 김씨 사과를 받아들이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게 주요했다. 

폭행죄는 반의사 불벌죄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모욕죄 또한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 검찰은 조사를 진행한 결과 경찰이 올린 공소권 없음 의견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김 전 팀장이 집행유예 기간이라는 점이었다. 앞서 지난 3월 김 전 팀장은 술에 취해 술집 종업원 2명을 폭행하고, 경찰 차량 일부를 파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결과적으로 김 전 팀장은 술버릇 때문에 그룹 내 입지가 좁아졌다. 향후 후계자로서의 자질 문제가 따라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은 현재 태양광, 화학은 김 회장의 첫째 아들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금융은 둘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건설은 셋째 김 전 팀장에게 맡길 것으로 관측되고 있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남 박세창 금호아시아나 부사장 역시 그룹의 차세대리더로 지목됐지만 입길에 올라 체면을 구겼다.

지난 4월 서울 숭의초등학교서 학교 폭력 의혹이 불거졌는데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가운데 한명이 박 부사장의 자녀로 A군으로 지목되면서 의혹이 짙어졌다.

현재 숭의초 측은 A군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상황이지만 서울시와 시교육청이 반대 입장을 펴면서 진실공방이 이어졌다. 박 부회장으로서는 불편한 논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보는 눈이
많아진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 전면에 나서는 오너 일가의 후계자에게는 필연적으로 많은 눈이 따른다”며 “예전과는 다르게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집안 자체의 교육이 엄격하지만 보는 시선이 많은 만큼 더욱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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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