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정원 물귀신 작전

“혼자선 억울해…같이 죽자”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이 쏟아지고 있다. 국정원 핵심 관계자의 진술로 경찰에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정보를 얻은 사실이 밝혀졌고, ‘국정원 특활비 상납’이 청와대의 요구로 이뤄졌다는 사실도 전 국정원장들의 진술에 의해 밝혀졌다. 좁혀오는 수사망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일까. 국정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2012∼2013년 진행된 경찰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정보가 당시 수사를 받는 기관인 국정원으로 흘러갔다는 핵심 관계자의 진술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8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은 2012년∼2013년 서울지방경찰청 담당 정보관이던 안모씨 등 국정원 관계자들로부터 당시 서울청 관계자들로부터 수사 상황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이 정보 줬다”
버티다 바뀐 태도

국정원 관계자들은 2013년 검찰 수사와 이어진 재판에서는 경찰에서 정보를 얻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최근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진술 태도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제공자로 지목된 전 댓글수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수사2계장이었던 김병찬 용산경찰서장은 “수사상 기밀을 유출한 바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어 진실공방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검찰은 이날 피의자 신분으로 부른 김병찬 용산경찰서장을 상대로 2012∼2013년 수사 때 국정원 측에 수사 정보를 넘겼는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김 서장은 경찰의 댓글수사가 진행되던 때 서울지방경찰청 수사2계장으로 수사 상황을 총괄했다. 

당시 서울청은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노트북 컴퓨터를 분석하는 지원 업무를 맡았다. 김 서장은 당시 국정원 정보관 안씨와 40여 차례 전화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등 국정원과 서울청 수뇌부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한 의혹도 받는다. 

김 서장은 검찰 조사실서 사실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 서장이 상당히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출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저는 수사상 기밀을 유출한 사실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서장은 또 경찰 내부망에도 글을 올려 “언론에 언급된 것과 달리 당시 안 연락관에게 국정원 여직원 아이디, 닉네임 등이 기재된 메모장 파일의 발견 사실 등 수사 상황을 알려준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에서 수사 정보를 받았다는 국정원 관계자들의 구체적인 진술 등을 바탕으로 김 서장을 비롯한 당시 서울청 관계자들이 수사 기록을 유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강력 부인했지만…수사망 좁혀오자 실토 
김병찬 “통화했지만 정보 흘리지 않았다”


검찰은 국정원 관계자들의 진술 외에도 경찰의 수사 기록이 유출된 정황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핵심 물증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당시 서울경찰청 관계자들의 공무상 비밀누설 및 ‘김용판 재판’ 위증 혐의에 초점을 맞춰 집중적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김 서장을 조사하고 나서 이병하 당시 수사과장,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핵심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이에 앞서 검찰은 장병덕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 최현락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등을 참고인으로 조사했으나 이들은 당시 부분적으로 수사 지원 업무에 참여했거나 핵심 보고 선상에 있지 않았다면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2013년 검찰의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이 꾸려지기 한달 전부터 이미 내부 감찰을 통해 직원들의 조직적 댓글작업을 파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모든 사실을 파악하고도 ‘현안 TF’까지 꾸려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방해한 혐의로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등 6명을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은 지난달 26일, 2013년 4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검찰 수사·재판 방해한 혐의(위계공무집행 방해 등) 등으로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과 고일현 전 종합분석국장 등 국정원 간부 4명과 장 전 지검장과 이제영 부장검사 등 당시 파견검사 2명 등 모두 6명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댓글작업 알았지만
TF까지 꾸려 방해

이날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로, 국정원이 내부 감찰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3년 3월 진상 재확인 차원의 감찰을 통해 85명의 직원이 댓글활동에 관여된 사실을 파악했다. 

1인당 적게는 10개에서 많게는 60개의 아이디를 사용하며 1일 평균 댓글 23건과 트위터 글 62건을 작성한 사실은 확인한 것이다. 이는 2013년 4월18일 검찰이 국정원 특별수사팀을 꾸리기 한 달 전 일이다. 

국정원은 검찰의 수사와 재판을 방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현안 TF’가 회의를 통해 주요 사안을 결정하면 이제영 부장검사가 팀장이 된 ‘실무 TF’가 실행하는 방식이었다. 

가령 현안 TF가 불법 선거·정치 개입 활동을 ‘정당한 대북 심리전 활동 중에 발생한 일부 직원들의 개인적 일탈’로 단정하는 대응 기조를 수립하면, 실무 TF는 이를 그대로 실행했다. 실무진 TF에 소속된 국정원 변호사와 파견검사가 이 기조에 맞춰 변호인 의견서, 참고자료, 증인신문사항 등 총 130건의 문건을 작성했다. 
 


이는 고스란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선임한 사선 변호인에게 전달됐고 이들은 법정 증언을 앞둔 8명 국정원 직원에게 허위진술을 지시했다. 

주요 증인인 심리전단 직원 박모씨의 경우 업무와 무관하게 재판 기간에 러시아로 출장을 가도록 하고 박씨의 출장 사유와 댓글 활동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법원에는 해외출장이 예정돼있었고 불법 공작활동이 없었다는 허위 내용을 회신했다. 

다시 소환된 우병우
진술과 문건 확보

이 외에도 이들은 2013년 4월30일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가짜 사무실’ 등을 만들고, 전날 저녁 국정원 안보3팀 사무실에 모여 가짜 사무실을 점검하고, 구성원별로 임무를 세밀하게 나눠 리허설까지 한 사실도 검찰 수사 결과로 드러났다. 

수사팀 관계자는 “조직적인 사법방해 공작이 없었더라면 실체 진실이 일찍 드러났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그 실체를 왜곡시켜 국가 사법 자원 측면서 인적·물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초래하게 한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직원들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국정원을 동원해 공직자와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는 우 전 수석이 지난달 30일, 16시간에 걸친 검찰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수사팀은 전날 오전 10시께부터 이날 새벽 2시께까지 우 전 수석을 강도 높게 조사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우 전 수석은 앞서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직무유기 등의 혐의를 받았지만 두 차례 영장 기각 끝에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그런데 국정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다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당시 청와대를 출입하던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과 문건도 확보한 상태다. 국정원 직원들은 동향 파악 이후 작성한 문건이 우 전 수석에게 보고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국정원장들 “청와대가 요구했다”
특활비 수사 마무리…남은 건 박 뿐

우 전 수석은 검찰청서 기자들과 만나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구속영장 청구 소식을 들었느냐’는 물음에 “가슴이 아프다.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검사장을 지낸 검찰 고위간부 출신인 최 전 차장은 구속기소 된 추 전 국장의 직속상관으로, 우 전 수석과는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이며 개인적으로 절친한 사이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국정원에 지시해 이 전 특별감찰관, 박민권 1차관 등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간부들, 이광구 우리은행장,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등을 불법사찰한 혐의(직권남용 등)를 받는다. 

아울러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운영에도 깊숙이 개입한 혐의도 있다. 

앞서 국정원 적폐청산TF는 우 전 수석의 지시를 계기로 문체부가 지원사업 예정 대상자 명단을 국정원에 보내면 국정원이 허가 여부를 결정해 통보하는 방식의 유기적인 업무 협조 관계가 구축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우 전 수석은 검찰 조사에서 직권남용 등 혐의 전반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추 전 국장 등이 우 전 수석의 지시가 있었다고 검찰서 진술했지만 우 전 수석은 “업무상 (추 전 국장과) 통상적인 전화만을 주고받았고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만간 우 전 수석에게 직권남용 및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전날 검찰은 우 전 수석을 도와 불법사찰을 실행하고 블랙리스트 운영에 관여한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국정원장들의 진술도 잇따랐다. 지난달 10일 검찰에 소환된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조사 과정서 “청와대의 요구로 특활비를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도 지난달 8일 검찰 조사에서 특활비 상납은 사실상 청와대가 요구해 이뤄진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전 국정원장 실토
남은 건 한명 뿐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2차 검찰 조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해 조사를 기정사실화한 검찰은 구치소 방문조사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자신의 형사재판에서 변호인 총사퇴를 감행한 박 전 대통령이 변호인 조력 없이 이번 검찰 수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제 ‘국정원 특활비 상납 수사’서 남은 건 박 전 대통령 한 명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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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