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보다 많은’ 성인 실종 미스터리

감쪽같이 사라지는 어른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반적으로 ‘실종 사건’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동을 떠올린다. 영구미제로 남은 ‘개구리 소년’ 사건이 도룡뇽을 잡으러 산에 올랐던 소년 5명의 실종에서 비롯된 것도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어린아이가 없어지는 것 이상으로 성인도 자의 혹은 타의로 종적을 감추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라지는 어른들’을 <일요시사>가 추적해 봤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으로 경찰의 실종수사 체계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붕괴된 체계는 여중생 김모양의 죽음으로 되돌아왔다. 피해자의 가족은 딸을 ‘살릴 수 있었다’는 후회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번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경찰은 실종수사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개선안 냈지만…
수사체계 붕괴

서울지방경찰청의 감찰 결과, 이번 사건을 접수하고 수사한 중랑경찰서의 초동 대응과 지휘·보고 체계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중랑서는 이영학에게 살해당한 여중생 김양의 실종신고 접수와 처리를 포함해 신고자인 김양의 어머니 조사, 현장 출동, 보고체계 가동 등 초동 조치가 전체적으로 미흡했다는 지적을 숱하게 받아왔다.

실제 감찰 결과, 신고를 받은 중랑서 망우지구대 경찰관은 신고자인 어머니를 상대로 김양의 행적 등을 조사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머니가 지구대서 이영학의 딸과 통화할 때도 내용을 귀담아듣지 않아 핵심 단서를 확인할 기회를 놓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정에는 실종신고 접수 후 범죄나 사고 관련성이 의심되면 현장에 출동해야 한다고 규정돼있지만 중랑서 여성청소년수사팀(여청팀) 경찰관은 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오후 11시20분경 김양의 어머니가 112신고를 해 출동 지시가 내려졌지만 무전으로 “알겠다”고만 답하고 사무실에 계속 앉아있었다. 이날 총 4건의 실종신고가 접수됐지만 여청팀은 단 한 번도 출동하지 않았다. 

이 과정서 실종신고가 접수된 또 다른 한 사람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지난 23일 이번 사건서 문제된 실종수사 체계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날 발표한 ‘실종수사 체계 개선방안’에는 보고 및 지휘체계 미흡 부분에 대한 대책으로 모든 실종사건 발생 시 경찰서 여청과장에게 보고하고, 경찰서장에게는 범죄 의심이 있는 경우 즉시 보고하도록 했다.

아동실종 줄고 있는데
성인실종 되레 늘어나

초동조치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18세 미만 아동과 여성에 대한 실종신고가 접수되면 여청·수사·형사·지역경찰이 현장에 공동 출동해 소재 발견을 위한 수색과 범죄 혐의점 확인을 위한 수사를 동시에 진행하도록 했다.

문제는 경찰이 내놓은 개선방안이 아동과 여성의 실종사건에 국한돼있다는 점이다.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모임(이하 전미찾모) 회장은 “어금니 아빠 사건으로 아동 실종수사에 대한 경찰의 무능이 대대적으로 드러났다”며 “법 체계가 갖춰진 아동실종도 이런 상황인데 사각지대에 놓인 성인 실종은 어떻겠느냐”라며 탄식했다.


경찰청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신고가 접수된 실종아동은 1만9428명이다. 정신지체장애인(8311명)과 치매질환자(9046명)를 합치면 3만6785명이다. 

이에 비해 가출인으로 분류된 18세 이상 성인 실종신고 접수자는 6만3471명에 달했다. 아동실종 접수 건수가 2012년 2만7295명서 2015년 8000여건 가까이 줄어든 데 반해 성인 실종은 2012년 5만건서 2015년 1만3000여건 이상 늘어났다.

경찰 입장에선 범죄 가능성이 드러나지 않는 한 성인 실종자를 ‘가출자’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실제 2015년 접수된 성인 실종자의 95% 이상이 단순 가출로 판명, 자진 귀가했다. 

실종신고가 접수된 후 당사자가 24시간 안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몇 년간 반복적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성인 실종=가출’이라는 사고가 생겼다는 것.

실제 지난해 9월 열흘 넘게 연락이 두절돼 가족을 애타게 했던 대전 여대생은 단순 가출로 확인됐다. 당시 대전 서부경찰서는 19세 박모양과 남자친구를 전남 여수의 한 공중전화 박스 인근서 찾아냈다. 

박양은 경찰이나 가족이 추적할까 두려워 집을 나간 다음날 대전 문창교 인근에 휴대전화를 초기화해 버렸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2012년에는 서울 공덕역 인근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5일간 행적이 묘연했던 20대 여대생 김모씨가 할머니 집에 머물렀던 것으로 드러난 사례도 있다. 당시 누리꾼들은 SNS에 ‘공덕역 실종사건’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려 김씨의 행방을 찾았다. 
 

해당 사건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릴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다. 김씨의 가족 역시 실종 당일 경찰에 신고하고 공덕역 주변에 전단을 배포하기도 했다.

이처럼 실종자가 범죄나 자살 등 사건에 연루되지 않고 단순 가출 등 해프닝으로 끝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나머지 5%에 있다. 실종자가 범죄 등에 얽혀 사망 상태로 발견되거나 ‘증발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미제사건으로 남는 경우다.

최근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20대 여성 실종사건이 그렇다. 지난달 24일 경북 안동 운흥동 안동탈춤축제장 옆 굴다리 부근서 20대 여성이 사라졌다. 이 여성은 실종 나흘 만에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줬다. 가족들은 실종 당일 신고를 하고 인터넷에 포상금까지 올렸지만 싸늘한 주검을 마주했다.

성인 실종 수사
법적 근거 약해

이 여성은 실종 전 남자친구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간 것이 확인됐다. 남자친구는 “잠에서 깨보니 여자친구가 없어졌다”고 진술했다. CCTV 확인 결과, 낙동강변의 탈춤 축제하는 공연장서 멀지 않은 굴다리 주변을 혼자 지나간 것이 발견됐지만 그 이후로는 종적이 묘연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서울 홍대 클럽 인근서 20대 여성이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이 여성은 실종 이후 일주일 이상 흔적을 찾지 못했다가 실종 8일째 서울 망원한강공원 선착장 인근서 물에 빠진 채 발견됐다. 

실종 당일 CCTV에는 망원한강공원 지하보도로 걸어가는 그녀의 마지막 행적이 담겼다. 경찰은 타살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이 여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던 것으로 파악, 실족사에 무게가 실렸다.

지난해 3월 예비군 훈련을 마친 뒤 실종된 30대 남자가 시신으로 발견된 일도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신모씨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주민센터서 예비군 훈련을 받은 뒤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던 중 행방불명됐다. 

신씨의 누나는 “동생이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연락이 전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실종 일주일 만에 분당의 한 건물 지하주차장 기계실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신씨는 군복을 입은 채 양손이 뒤로 결박된 상태여서 자살·타살 논란이 불거졌다. 시신이 발견된 기계실 공간은 성인 남성이 몸을 숙이고 땅을 짚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곳이다. 신씨가 강제로 끌려갔다면 외상이 남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씨의 몸에는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의 외상은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됐다 사망
아예 못 찾기도


이달 22일에는 강원도 철원서 운동하러 나갔던 60대 남성이 실종됐다가 9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철원경찰서에 따르면 이 남성은 13일 오후 2시께 집을 나갔으나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CCTV 영상에는 그가 공원서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확인됐다. 올해 초 뇌출혈 수술을 받고 집에서 요양 중이던 그는 실종 당시 “운동하러 가겠다”며 인근의 공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가출이나 실종 후 사망 사건은 생사 여부라도 알 수 있는 반면, 미해결 사건의 경우 실종자 가족들은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실종 사건의 경우,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와 좋지 않은 일에 휘말렸을 가능성에 대한 불안 등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나온 사례보다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이 훨씬 크다고 알려져 있다.

실종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실종자의 흔적이 점차 사라지기 때문에 초기 골든타임을 놓치면 장기 미해결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2015년 접수된 6만여건의 실종신고 사례 중 1712건이 미해결 사건이다.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3만3676건의 성인실종 신고가 접수됐는데 이 중 1691건이 미해결 사건으로 남았다.

지난 5월 부산서 사라진 30대 신혼부부의 사례도 보면 실종된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수사에 진척이 없다. 

부산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부부가 아파트로 귀가하는 모습은 엘리베이터 CCTV에 찍혔지만 집 밖으로 나가는 장면은 포착되지 않았다. 경찰이 남편 아버지의 신고를 받아 부부의 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의 휴대전화 조회 기록에 따르면 남편은 부산 기장군, 아내는 서울 강동구 천호동 부근서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다. 또 실종 이후 신용카드나 인터넷 등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부부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이나 사각지대 등을 통해 아파트를 빠져 나갔을 수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단서가 없어 수사는 난항에 빠진 상태다.

단순 가출 대부분이지만
실종 후 사망·증발도↑

지난해 11월에는 제약회사 임원이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실종돼 행방이 오리무중 상태에 빠졌다. 연락이 두절되자 가족들은 실종신고를 했다. 실종신고 5일 후 실종자의 자택서 약 30분 거리인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변서 자동차만 발견됐다. 차량에선 실종자의 소재를 추측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보통 실종 직후 12시간 늦어도 48시간이 실종 사건의 골든타임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실종신고 후 12시간이 지나면 끝내 못 찾을 확률이 58%에 이른다. 24시간이 지나면 68%, 일주일 뒤에는 89%까지 올라간다. 
 

나주봉 전미찾모 회장은 “실종을 인지한 후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성인 실종은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종아동법(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보호받는 사람은 ▲실종 당시 18세 미만인 아동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 또는 정신장애인 ▲치매 환자 등이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성인 실종자의 경우 첫 단계인 휴대폰 위치추적부터 난관에 빠진다. 범죄 피해가 의심되거나 자살 징후가 발견될 때 정도만 예외다. 휴대폰 위치 추적이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높아 대상과 요건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 회장은 “내가 지금 없어진다 해도 경찰이 나를 찾아 나설 법적 근거가 없다”며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이후 여성 실종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그래도 아동과 치매환자, 지적장애인보다 후순위”라고 꼬집었다. 

이어 “총리실이나 대통령 직속기구로 ‘실종자 찾기 종합센터’(가칭) 신설 후 ▲18세 미만 실종 전담팀 ▲치매환자·지적장애인 실종 전담팀 ▲성인실종 전담팀 ▲입양 관련 전담팀 등을 운영하면 실종사건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등 15명의 의원들은 지난해 실종아동법 적용 대상자에 성인과 노인을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성인실종 사건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규율하는 법률이 없어 조속한 발견과 복귀에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관련법 개정 발의
경찰 “실익 없어”

보건복지부는 “실종자의 범주에 아동, 장애인, 치매환자 외에 일반 성인을 포함하는 것은 단순히 대상의 일부 확대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실종자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소관 부처 등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현행 실종아동법은 소관부처가 보건복지부다.

경찰청은 “성인실종자 중에서도 범죄 의심 또는 요구조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수색 및 수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법률 개정의 실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성인의 경우 자발적·비자발적 판단이 어렵고 프라이버시나 거주 이전의 자유 침해 논란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소영이를 찾습니다”

“제 속도 이렇게 타들어 가는데 부모는 오죽하겠습니까?”

지난달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낙산대교 인근서 실종된 김소영(29)씨의 외삼촌 A씨는 이렇게 말했다. A씨는 외조카인 소영씨의 행방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사건은 지난달 1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 부평에 살던 소영씨는 강원도 양양으로 갔다. 동반자살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건 당일 오전 8시 낙산대교 위에서는 남성과 여성용 슬리퍼 2켤레가 발견됐다. 함께 발견된 수첩은 소영씨의 것으로 확인됐다. 오전 8시51분께 남성의 시신은 낙산대교 아래서 발견됐지만 소영씨는 행방이 묘연했다.

A씨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하고 3시간이 안 돼서 주변에 그물을 쳤기 때문에 만약 죽었다면 거기에 걸렸을 것”이라며 “민간 수중 잠수사, 119대원, 군인까지 동원했는데 발견하지 못했다. 나도 그렇고 가족들 역시 99.9% 소영이가 살아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소영이는 어릴 때 함께 산 기억도 있고 해서 가장 예뻐하는 조카”라며 “지금 마음 같아서는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소영이를 찾고 싶은 심정”이라고 전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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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산’ 윤석열 한가위 플랜

‘산 넘어 산’ 윤석열 한가위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반가운 얼굴과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예민하지만, 또 그만큼 흥미로운 정치 이야기도 한두 마디씩 오간다. 그래서인지 용산은 마냥 웃을 수 없다. 추석을 앞두고 연이어 리스크가 터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연휴 내내 야당이 추석 밥상을 독차지할지도 모른다. 물가는 오르는데 국정 지지율은 내림세다. 추석 연휴 동안 의료 대란은 예견된 문제였다. 야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역풍 맞을 위기에 처한 마당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묘한 거리감도 신경이 쓰인다. 꺼야 할 급한 불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지지율 추락 30% 뚫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20%대인 29.6%를 기록했다. 지난 2022년 8월 첫 번째 주 29.3%를 기록한 이후 약 2년 만에 다시 20%대 지지율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6∼3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이 같은 수치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는 66.7%, ‘잘 모름’은 3.6%다. 해당 조사는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2.7%였다. 신뢰수준은 95%에 표본오차 ±2.0%p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치권에서는 의료 대란을 비롯한 물가, 당정 갈등 등이 맞물린 결과라고 해석했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야당이 의료 공백 문제를 입 모아 지적하면서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의료개혁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를 겨냥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서 의료개혁과 관련해 “의대 증원이 마무리된 만큼, 개혁의 본질인 ‘지역, 필수 의료 살리기’에 정책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기존의 뜻을 확고히 했다. 의료진과 대통령의 인식 차이에 대한 질문에는 “의료 현장을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비상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 등의 말을 했다. 이에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혼자서만 달나라에 사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일 국회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중증·난치 환자를 떠나버린 전공의가 제일 먼저 잘못하는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응급실은 중증 환자만 이용할 수 있게 제도화할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정부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지난 4일 윤 대통령은 심야 응급실을 방문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료진이 ‘번아웃’되지 않도록 각종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지만 이미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길어지는 의료 대란, 사면초가 한동훈 영부인 공천 논란까지? 상다리 휘는 야 물가 문제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지난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물가상승률은 작년 동월 대비 2.0%로 집계됐다. 이는 1.9%이던 2021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정부는 이 점을 강조하며 물가 안정세를 강조했지만 당초 지난달 물가가 높았던 탓에 국민이 체감하긴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달 정부는 민주당이 발의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에 대해 거부권을 썼다. ‘현금 살포’ ‘표풀리즘’이란 지적이 나와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데 싫어할 국민은 없다”며 “추석을 앞두고 (25만원 지원법을)딱 잘라 거절했으니 이에 맞먹을 대응책을 가져와야 한다.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법안이든 지원금이든 국민이 피부로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윤 대통령은 “기초생활수급자 167만명에게 지급하는 생계급여를 추석 전 조기 지급하라”고 지시하면서 민생경제 분야서 승부수를 띄웠다. 같은 날 민주당은 당론으로 추진하던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법(역화폐법 개정안)을 국회서 의결하면서 마찬가지로 이슈 선점에 나섰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추진하던 25만원 지원법과 다를 바가 없다며 “내 세금 살포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대표적인 민생 법안을 정쟁 법안으로 활용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유감”이라며 맞불을 놨다. 용산을 향한 야당의 공세가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이에 맞서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야권 인사를 겨냥해 수사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공격 대상이 됐다. 김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권오수 전 회장 등의 2심 선고기일이 오는 12일 예정된 만큼 이를 덮기 위한 ‘급발진 수사’를 진행한 게 아니냐는 점에서다. 검찰은 오는 9일 신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공판기일 전 이뤄지는 증인신문에 “문 전 대통령도 참석하라”고 통보했다. 법적으로 따졌을 때 출석 의무는 없지만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보고 있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시 쥔 총자루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는 문 전 대통령과 딸 문다혜씨에 대한 수사를 두고 “추석 명절 밥상에 윤석열, 김건희 대신 다른 이름을 올리기 위한 국면 전환용 기획수사”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부부에 대한 혐의는 덮어주는 검찰이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 대해서는 도의를 무시하는 수사를 전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받는 김혜경 여사도 소환했다. 지난 5일 김 여사가 수원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 것을 두고 민주당은 “야당 대표로 모자라 배우자까지 추석 밥상머리에 제물로 올리려는 정치검찰의 막장 행태”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윤정부는 집권 후 추석 밥상마다 이 대표를 올리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며 “검찰은 이번에도 반성은커녕 야당 대표의 배우자마저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겠다고 한다.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 탄압 수사가 검찰의 추석 기념행사냐”고 직격했다. 야당의 사법 리스크가 추석 밥상에 올라오나 싶더니 김건희 여사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뒤집혔다. 김 여사가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 당시 5선이었던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야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김 여사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추석 밥상에 올리면서 명품가방 수수 의혹부터 공천 개입 논란까지 전 방향으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대통령실은 김 전 의원이 당초 컷오프된 점을 들며 반박했지만 논란이 쉽게 가라앉진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소문이 무성하던 김 여사의 당무 개입과 선거 개입, 국정 농단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며 “‘김건희 특검법’에 이를 포함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엄포를 놨다. 혁신당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당시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한 대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며 “두 사람 모두 대답하지 않을 경우 김건희씨의 국정 농단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야당의 발목을 잡나 싶었지만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이 등장하면서 한순간에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형국이다. 용산이 코너에 몰린 상황서 여당이 난관을 헤치고 새로운 의제로 판을 엎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끝까지 시끌벅적 하지만 ‘N번째 윤-한 갈등’이 불거진 시점서 당에 큰 기대를 하기엔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여당이 합심해 추석 밥상을 차리고 싶어도 자꾸만 손발이 엇나가니 오히려 민주당만 득을 본다는 설명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국민의힘과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 대표가 제3자 특검법을 입 밖으로 내뱉은 순간 야당에 꽃놀이패를 직접 쥐어준 것과 다름없다. 한 대표가 용산과 언제 또 충돌할까 지켜보는 당 입장에서는 조마조마하다”고 토로했다. 다음 달 재보궐선거가 치러질 부산 금정구서 만에 하나 국민의힘이 패배한다면 한 대표 사퇴 요구로 이어질 것이란 구설이 여의도 정가를 떠돈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서 국민의힘이 패배하자 김기현 전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처럼 한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아직은 친한(친 한동훈)계 보다 친윤(친 윤석열)계 비중이 큰 만큼 당이 갈라지진 않겠지만 60%가 넘는 당원이 선택한 당 대표를 쫓아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정 갈등마저도 야당의 반찬으로 내어줬다. 용산이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 카드를 제시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용산은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반기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국정 브리핑서도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니라 제가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며 국회 정상화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사실상 이 대표와의 만남을 거절한 셈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첫 영수회담은 지난 4월29일이었다. 윤정부 출범 이후 720일, 4·10 총선이 끝난 지 18일 만이었다. 당시 총선서 국민의힘이 참패하자 국정 전환용으로 ‘소통하는 정부’를 내세웠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온갖 리스크를 꺼내 들고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는 시점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영수회담에 응하지 않겠냐는 설명이 나오는 이유다. 꽉 막힌 국회 탄핵 거부권만 도돌이표 분위기 반전시킬 영수회담 카드 꺼낼까 이 대표는 지난 8·18 전당대회서 재임에 성공한 직후부터 줄곧 대화를 요청해 왔다. 윤 대통령 입장서도 제1야당 대표와의 만남을 무기한으로 미룰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첫 번째 영수회담처럼 ‘안 만나느니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올 경우, 오히려 용산의 실책으로 이어질 우려가 제시된다. 지난 1일 여야 대표 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만큼 대통령조차 야당 대표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면 민주당이 “불통” “꽉 막힌 소통” 등 공격적인 논평을 쏟아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수회담이 이뤄져도 꽁꽁 얼어붙은 정국이 풀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지난 5일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제22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여야정 민생협의체’를 제안했다. 하지만 연설 후반부에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조준하자 야당 측 의석서 반발이 터져 나왔고 민생협의체 논의는 뒷순위로 밀렸다. 야당 의원들 사이서 윤 대통령이 보내온 추석 선물을 거부하는 ‘선물 보이콧’도 일어났다.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자신의 SNS에 추석 선물 사진과 함께 “용산 대통령로부터 배달이 왔다”며 “받기 싫은데 왜 또다시 스토커처럼 일방적으로 (선물을)보내시나”라고 글을 게시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스토커 수사’나 중단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선물 보내지 마시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외교도, 장관 임명도 마음대로”라며 “(국회)개원식 불참까지 제멋대로 하더니 안 받겠다는 선물을 기어이 보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은 “당장 눈앞에 택배기사님 고충을 생각하시는 것부터 시작하시라. 참고로 대통령실 명절선물은 지역주민들의 피땀으로 만든 특산품”이라고 말하는 등 국회 곳곳서 잡음이 일기도 했다. 한 차례 고비를 넘겨도 용산의 앞날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눈앞에 놓인 국정감사와 예산 심사가 끝나면 수능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4대 개혁(연금·의료·교육·노동) 중 교육개혁이 다시 한번 주목받는 때이기도 하다. 이제 곧 수능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석에 의료개혁이 문제가 됐다면 그다음으로는 교육개혁이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교육개혁이든 의료개혁이든 취지는 좋은데 문제는 이 개혁안을 벌여놓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니 사방서 문제가 동시에 터지는 것”이라며 “의대 증원으로 인해 올해 수능은 ‘초긴장 모드’다. 지난해 ‘킬러 문항’으로 사교육계가 크게 반발한 만큼 정부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의협 당직 병원 반발 “추석에 아프면 대통령실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정부의 추석 연휴 당직병원 운영 방침에 크게 반발했다. 앞서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에 약 4000곳을 대상으로 당직 병·의원을 운영할 계획을 밝히자 “민간 의료기관에 부당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고 반박한 것이다. 아울러 의협은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대통령은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며 “추석 연휴 응급진료 이용은 정부 기관이나 대통령실로 연락하시기 바란다”는 공지를 전송했다. 공지 말미에는 ‘02-800-7070’라는 연락처를 덧붙였다. 이는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제기되던 당시 논란이 됐던 대통령실 번호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