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권오현시대> 왕년의 삼성 2인자들 ‘어디서 뭐하나’

야인으로 돌아가 안락한 노후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용퇴를 결심했다. 국내 대표기업 삼성의 2인자로 평가 받는 그의 결심에 삼성뿐만 아니라 재계의 눈길이 쏠렸다. 이제 야인으로 돌아간 권 부회장의 향후 거취에도 시선이 모아지는 가운데 역대 삼성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삼성전자는 지난 13일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용퇴 소식을 전했다. 사측에 따르면 권 부회장은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부품부문 사업책임자서 자진 사퇴함과 동시에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

이학수는 지금…
수천억 임대사업

권 부회장은 “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사실상 삼성의 2인자로 평가받는 그의 퇴진 소식에 역대 삼성을 1등 기업으로 이끌던 주역들의 근황에도 눈길이 쏠렸다.

그 가운데 이학수 전 삼성물산 고문은 단연 호사가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전문경영인이다. 이 전 고문은 이건희 회장 시대서 활약했다. 이 전 고문은 이 회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회사 2인자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인 그는 그룹내 재무 부문의 실력가였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최측근이었던 소병해 실장의 후임으로 1990년 초부터 20여년동안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이후 구조조정본부장과 전략기획실장을 거치면서 명실상부한 이 회장의 ‘복심’으로 통했다. 

이 전 고문의 인맥은 화려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부산상고 선후배 사이고, 이명박 대통령과는 고려대 동문이라는 인연이 있다. 

이 전 고문은 이 회장이 2008년 경영 일선서 물러났을 때 함께 물러났다가 2010년 삼성물산의 고문으로 복귀, 이듬해 12월 삼성을 완전히 떠났다.

현재 그는 뚜렷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이 전 고문은 부인 자녀 등과 ‘엘앤비인베스트먼트’라는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엘앤비인베스트먼트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엘앤비타워’를 소유하고 임대사업을 벌이고 있다. 

엘앤비타워의 가치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2006년 토지를 매입해 빌딩을 올려 안정적인 경제력을 확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최고 기업의 2인자라고까지 평가받는 그는 현재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권오현 부회장 퇴진…바통은 누가?
조용한 분위기 속 내부 실세들 꿈틀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이 회장의 신임 아래 이 전 고문과 쌍벽을 이루는 행보를 보였다. 윤 전 부회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그는 이병철 창업주 시절 1966년 삼성전자(당시 )에 입사한 공학도 출신이다. 그를 적극적으로 중용한 것은 이 회장의 안목이었다.


재계에선 삼성 이 회장 아래 삼성내 이학수 사단과 윤종용 사단이 나눠져 있다는 말이 나왔다. 윤 전 부회장은 지난 2006년 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료 산출을 위해 집계한 표준 보수를 기준으로 21억1000만원으로 이 회장(10억원)보다 많은 보수를 챙겨 그룹 내 그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윤 전 부회장 역시 이 회장이 물러났었던 2008년 삼성전자 부회장직서 물러나 삼성전자 고문으로 활동했다. 이후 2011년을 끝으로 삼성전자를 떠났다. 다만 이 전 부회장에 비해서는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2008년부터 맡고 있는 있는 수원삼성 블루윙즈 프로축구단 구단주로 삼성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또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 IEEE 명예회원이기도 하다. 2009년부터는 새만금개발사업 명예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외에도 활발한 활동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삼성그룹서의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현 KT 대표이사)도 삼성서 알아주는 전문경영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출신인 황 전 사장은 1992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이사로 삼성맨이 됐다. 2009년 회사를 떠날 때까지 황 전 사장의 행보는 반도체의 역사였다. 

CEO 출신들
활발한 행보

반도체 메모리 용량을 1년에 2배씩 증가시킨다는 이른바 ‘황의 법칙’은 반도체 업계에 아직도 통용된다. 이는 18개월에 2배씩 증가시킨다는 인텔 공동창업주 고든 무어의 법칙보다도 빨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론은 황 전 사장이 실증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1999년에 256M 낸드플래시메모리를 개발하고, 2000년 512M, 2001년 1G, 2002년 2G, 2003년 4G, 2004년 8G, 2005년 16G, 2006년 32G, 2007년 64G 제품을 개발한 것. 이 같은 ‘황의 법칙’을 등에 업고 삼성은 반도체 부문 세계 1위에 안착했다.

황 전 사장은 8년전 삼성전자를 나온 뒤에 경영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공학한림원 이사, 지식경제부 최고기술경영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단장 등을 거친 뒤 2014년 KT대표이사 회장직을 맡아 현재까지 이끌고 있다. 

그는 공기업 성향이 강했던 KT에 삼성의 정신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경영효율화를 극대화하며 흑자경영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애니콜 신화’ 이기태 전 부회장도 삼성의 역사 굵직한 이름을 남겼다. 1973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 전 부회장은 불도저식 인재다. 그는 삼성 역대 부회장 가운데 가장 많은 사표를 낸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평사원 시절부터 부당한 지시에 사표로 맞섰던 것이다. 1985년 비디오사업부장 때 사표를 내고 강원도로 20여일간 잠적했던 일화는 업계서도 아주 유명하다.


그런 그가 삼성전자의 얼굴이 된 것은 실력이었다. 1991년 이사보가 된 이후 1994년 무선사업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 전 부회장 시대가 열렸다. 당시만 해도 삼성의 휴대폰 시장서의 인지도는 시장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무선사업부는 비디오나 팩스사업부에 비해 인기가 없었다.

역대 회장 그림자 근황 눈길
퇴임 후 생활 모습 각양각색

하지만 이 전 부회장 특유의 불도저 스타일에는 제격이었다. 1995년 무선전화기의 품질 이상 보고를 받고 모든 제품을 수거해 불태우고 휴대폰 브랜드 애니콜의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시절 품질을 의심하는 바이어 앞에서 휴대폰을 바닥에 던져 제품 내구성을 강조한 일화는 아직도 업계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그 결과 삼성의 휴대폰 사업은 수출 초기인 1998년 4억달러서 2011년 30억달러까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2위 자리까지 올랐다. 현재 삼성이 휴대폰 및 스마트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게 되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 그도 황 전 사장과 같은 해인 2008년 회사를 떠났다. 그는 경영서 물러난 뒤 2012년까지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이후 KJ프리텍 사내이사, 동양네트웍스 기타비상무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역 시절 언론의 노출을 꺼렸던 최도석 전 삼성카드 부회장 역시 삼성그룹 내 실세로 분류된다. 재무통인 최 전 부회장은 이학수 전 부회장과 보조를 맞추면서 회사내 입지를 다졌다. 


1975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그는 제일모직 경리과를 시작으로 삼성전자 경리 부장, 삼성전자 관리이사,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재경팀장 상무이사,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전무이사,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부사장,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담당 대표이사 부사장,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담당 사장 등 주요직을 거치면서 실세란 평가가 어색하지 않게 됐다. 

최 전 부회장은 2009년부터 삼성카드로 자리를 옮겨 2010년 12월 삼성카드 부회장을 끝으로 퇴진했다.

현재 그는 현역시절과 마찬가지로 조용한 행보를 보내고 있다. 이따금 대학 강연서 자신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며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김순택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도 삼성내 2인자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김 전 부회장은 1972년 입사해 78년부터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서 20년간 일했다. 이 회장을 지근거리서 보필했던 그는 이 회장의 경영철학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97년부터 삼성중공업 건설기계부분 대표이사 부사장, 삼성SDI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2011∼2012년 6월까지 미래전략실장 직을 끝으로 삼성을 떠났다. 삼성을 떠난 그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비서실 출신이다 보니 대내외 활동을 의도적으로 삼가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반면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은 현재 금융투자협회 회장으로 활발한 행보를 펼치고 있다. 황 전 사장은 과거 삼성그룹서 실력자로 통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방미 당시 이건희 코리아소사이어티 연설 통역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황 전 사장을 삼성그룹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할 것으로 꼽히고 있었다. 

경험 살려 자문
대학서 후진 양성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국제금융팀 팀장,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인사팀 팀장, 삼성생명 전략기획실 실장 등 핵심 부서를 거친 그였기에 이 같은 평가가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 중론. 그는 2001년 6월 삼성증권 대표이사를 끝으로 홀연히 삼성을 떠났다. 

그는 퇴직 후 2004년 우리은행 은행장, 2007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초빙교수, 2008∼2009년 KB금융지주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부터는 제3대 금융투자협회 회장으로 대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윤우 삼성전자 고문 역시 삼성그룹을 성장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경영 일선에 물러나 있지만 고문으로 삼성그룹에 조언을 해주고 있다.

이 고문은 해외파가 즐비한 삼성전자서 토종파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고문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해 1968년 삼성전관에 입사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이 고문은 1974년 이 회장이 사재를 털어 인수한 한국반도체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고문은 1985년 기흥공장 건설 초기부터 관여했다. 인재를 영입하는 데도 이 고문의 역할이 컸다. 반도체 전문가를 구하기 어려운 당시 권오현 부회장, 조수인 사장, 전동수 사장 등을 직접 영입했다. 

그는 2008년 삼성특검 직후 삼성이 계열사 사장단 협의체를 구성 그룹 의사 결정을 내렸는데 당시 이 고문이 중심이 돼 주요 사안을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창업주 세대인 강진구 전 삼성전자·삼성전기 회장이 지난 8월 별세했다. 삼성의 역사이자 반도체의 대부로 평가받는 강 전 회장은 1927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대구사범학교와 서울대 공대 전자과를 졸업했다. 
 

강 전 회장이 사회생활 첫발무터 삼성그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었다. 육군 대위 복무를 마치고 KBS와 미8군 방송국, 중앙일보 동양방송 이사를 거쳐 1973년에 비로소 삼성맨이 됐다.

당시 강 전 회장의 삼성전자 합류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지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 전 회장의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이라는 회고록에 따르면 이병철 선대 회장은 동양방송 평이사였던 그와 점심식사도 함께 하고 위성 중계되는 권투경기를 시청하기도 했다.  

강 전 회장은 회고록에 “흔이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막연히 ‘회장님께서 나를 눈여겨 보시나보다’ 정도로 생각했지 삼성전자를 맡기실 줄은 몰랐다”고 기술했다.

그는 선대 회장이 1973년 삼성전자 대표이사로 임명하자 1969년 창립 이후 5년간 적자이던 회사를 단번에 흑자로 전환시켰을 정도로 경영자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선대 회장의 신뢰 속에 강 전 회장은 삼성전자 상무·전무·사장을 거쳐 삼성전자부품·삼성정밀 사장, 삼성반도체통신 사장, 삼성반도체통신·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기 대표이사,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관·삼성전기 회장, 삼성의료원 강북병원재단 이사장, 삼성전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구조조정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후 2000년 12월31일 건강문제와 후진양성을 이유로 삼성전기 회장직서 사임, 37년간 몸담았던 삼성을 떠났다. 

실제 강 전 회장은 후진양성에 힘썼다. 

강 전 회장은 발명특허협회 부회장, 한국전자통신 사장, 한국전기·전지시험검사소 이사장,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평통 자문위원, 전자공업진흥회 회장, 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한·벨기에경제협력위원장, 한·헝가리경제협력위원장,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고문,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 표준과학연구소 이사장, 중동학원 이사장, 한국전자산업진흥회 회장,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내며 대내외에서 두루 인정받기도 했다. 

2006년에는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포함돼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쏟아지는 러브콜
스카우트 1순위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성장한 삼성그룹내 실세들이 2008년을 기점으로 경영 일선서 물러난 경우가 많다”며 “현재도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인사가 있는 반면 언론서 자취를 감춘 실세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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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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