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문재인정부는 ‘적폐청산’을 목표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정부 기조에 맞춰 세무조사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물론 재계도 예외일 수 없다. 적폐로 분류되면 시작되는 세무조사. 정부의 기조에 보조를 맞추는 세무조사를 분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청와대 여민관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서 “방산비리는 단순한 비리를 넘어 안보에 구멍을 뚫는 이적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방산비리 척결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닌 애국과 비애국 문제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적폐청산의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산비리
문 대통령의 일성에 방산업계에 시선이 쏠렸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있기 3일전인 지난달 14일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박찬호)는 원가 조작을 통해 개발비를 빼돌린 혐의(사기 등)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남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방산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자연스레 방산관련 업체에 눈길이 쏠리는 모양새가 됐다.
사정당국은 문 대통령의 발언을 동력 삼아 KAI를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관련 임직원들을 출국금지하고 협력사 등에 대해서도 강력한 조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하성용 KAI 대표가 20여개 협력업체들 중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줘 과대계상한 후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수사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큰 성과는 없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수사당국은 당초 분식회계 혐의를 규명하는 방향으로 수사의 틀을 짰지만 수사 착수 두 달이 흐른 현재 핵심 인물에 대한 소환 조사를 벌이고 있지 않다.
특히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 채용 관련 의혹이라 전체적인 수사 방향이 이미 틀어진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MB 4대강 관련 건설사 정조준
방산비리 일성에 대기업 벌벌
이 같은 상황서 지난달 25일, 국세청서 한화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간 사실이 알려지자 방산비리와 관련된 전선을 넓히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한화 측은 통상적인 세무조사라고 의미를 축소했지만 국세청 조사4국이 투입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같은 분석에 힘이 실렸다. 조사 4국은 일반적으로 탈세와 관련한 혐의점을 발견했을 경우 조사에 착수한다.
따라서 최근 방산비리와 관련해 정부의 의지가 높은 상황서 정부가 KAI 조사에 이어, 방산 관련 주요 계열사가 많은 한화까지 전선을 확대한 것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실제 조세당국은 방산비리 계열사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한화 방산부분, 한화테크원,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김승연 회장 비서실 등 4곳에 대해 회계와 재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한화테크원의 경우 KAI의 수리온 헬기와 고등훈력기 T-50, 경공격기 FA-50 엔진을 공급하고 있다. 또한 한화시스템은 전장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한화는 전 정부인 박근혜 정부와의 석연찮은 의혹이 제기된 기업이기도 하다. 감사원은 지난 7월 앞서 세 차례의 면세점 특허심사서 관세청이 점수 조작으로 결과가 바뀌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당락이 바뀐 업체 가운데 심사에 통과한 업체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특히 시기가 박근혜정부 시절이었기 때문에 최순실 국정 농단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면서 면세점 사업권 선정 과정에 대한 의혹은 고조됐다.
한화 역시 석연찮은 의혹이 제기된 업체 가운데 한 곳이었다. 2015년 11월 면세점 사업권을 땄지만 이 과정서 점수 조작 사실이 드러났다.
이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박근혜정부 시절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서 비리가 있었다고 발표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이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세무조사에 따라 수상한 자금의 흐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한화의 상황이 더욱 비관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화는 현재 표정관리를 하는 모습이다. 이태종 한화 대표이사는 최근 세무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배경을 잘 모른다. 정도경영을 해왔으니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에선 정부의 사정기관이 칼날을 겨누고 있는 한화의 상황을 ‘시계 제로’로 판단하고 있다.
한편 면세업계가 긴장하는 것은 한화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때문만은 아니다. 건설사로서 면세점을 새먹거리로 택한 현대사업개발이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모양새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조사요원들이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소재 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회계장부를 영치하는 등 세무조사에 나섰다. 현대산업개발 본사뿐만 아니라 HDC그룹 계열사 일부에도 조사요원이 파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HDC신라면세점 관련 의혹을 겨냥한 세무조사라는 해석이 나온다. HDC신라면세점은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과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이 손을 잡고 사업권을 따내 현재 서울 용산서 영업 중이다.
물론 현대산업개발이 건설사인 만큼 건설업계 역시 이번 세무조사를 주목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취임 후 이명박정부 시절 국책 사업인 4대강 관련 감사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당시 4대강 사업에 참여했던 건설사들의 눈길이 쏠리는 상황이었다.
현대산업개발과 함께 SK건설이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4대강 관련 감사를 위한 세무조사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세무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요원들이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SK건설 본사에 투입되어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세무조사는 2012년 4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특별조사를 받은 지 5년 만에 받는 정기 세무조사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정부가 4대강 관련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국정 농단
또 공정거래위원회서 적폐로 분류되는 불공정하도급 문제를 집중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기조에 발맞춘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6월 공정위원장직에 오르면서 불공정하도급 문제를 척결할 것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에 부는 긴장감은 상당했다. 현재 공정위의 행보는 불공정하도급을 개선하기 위해 실태 조사에 착수하고 있는 모습이다.
공정위는 최근 대림산업의 최대주주 대림코퍼레이션과 부영에 대한 전방위 조사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이번 SK건설의 세무조사를 두고 불공정하도급 조사에 대한 전초전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 것이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SK건설이 하도급업체와 체결한 공사계약서와 달리 대금을 부풀려 계산서를 발행했는지 여부를 살펴볼 것으로 관측된다. 또 하청업체에 부당한 갑질 또는 분식회계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조세를 포탈한 흔적은 없는지, 그리고 정상적으로 법인세를 신고 및 납부했는지를 조사할 예정으로 보인다.
최순실 그림자 면세업계 긴장
프랜차이즈 갑질에도 ‘메스’
SK건설 관계자는 “이번 세무조사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국부유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기업에도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마무리돼 추후 상황에 주목되고 있다. 국세청은 다국적 기업에 대한 조세회피 행위를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방침을 세워 관심이 모이고 있다.
<조세일보>에 따르면 앞서 미국의 종합금융회사인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았다.
다국적기업
지난 4월 금융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 조사요원들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에 들어가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지방국세청 국세거래조사국은 통상 기업의 역외탈세와 해외거래 흐름을 조사한다. 일정 지분율 이상의 외국 투자법인 등을 주로 조사하며 국내법인 가운데서도 국제거래가 활발한 기업에 대해 조사하기도 한다.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 측은 올해 1월10일부터 현재까지 서울청 국제거래조사국 국제조사1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이번 세무조사의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국세청 조사 결과에 따라 세금 리스크가 같은 씨티그룹 기업집단에 속한 한국씨티은행까지 옮겨 붙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온다.
한국씨티은행은 앞선 2015년 2월부터 5월까지 해외용역비 과다 문제로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았다. 경영자문료라는 명목으로 미국 본사 등 해외에 자금을 송출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외국계 기업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커피브랜드 스타벅스, 명품브랜드 루이뷔통, 구찌 등과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서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수익은 본사인 외국으로 송금하는 경우가 많다.
통상 로열티나 배당, 용역비 등을 통해 본사에 수익을 보내는 데 그 규모가 비공개라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씨티그룹의 세무조사는 단순 세무조사로 그칠지 전선이 확대될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국세청이 박기영 프랜차이즈협회 회장을 세무조사 실시하면서 프랜차이즈 관련 업체를 사정 칼날 위에 올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관련 업계에선 미스터피자의 MP그룹이나 bbq의 제너시스와 같이 논란이 있었던 프랜차이즈를 주목하는 분위기다.
지난 25일 프랜차이즈협회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달 박기영 회장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했으며 일각에서는 국세청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 이득을 취하는 프랜차이즈 본부의 편법적 탈세를 엄정 조사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놨다.
프랜차이즈협회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갑질 사태 등과 무관하게 지난해 주식 변동이 있어 그와 관련된 문제로 세무조사를 받은 것”이라며 “2주 전에 무혐의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개별 납세자 세무조사 사항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한편 박기영 회장은 영유아 놀이 교육 프로그램 ‘짐보리’를 국내에 들여온 짐월드 대표다. 지난 1월 제6대 프랜차이즈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
편법 승계
대표적인 적폐 의혹 기업으로 분류돼 사정 칼날에 선 기업도 있다. 하림이 그 주인공이다. 하림은 얼마 전인 2015년 특별 세무조사가 있은 지 불과 2년 만에 다시 세무조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림은 공정위가 적폐라고 판단하고 있는 ‘경영권 편법 승계’와 ‘일감 몰아주기’ 두 가지 사항 모두 해당하는 의혹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림그룹은 최근 편법 경영권 승계와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김홍국 회장의 장남 김준영씨가 10조원에 달하는 그룹을 물려받는 과정서 증여세 100억원을 내는데 그쳤으며 이 또한 사실상 회사가 대납해줬다는 비난이 일었기 때문이다.
준영씨는 20살이던 2012년 김 회장으로부터 올품(당시 한국썸벧판매) 지분 100%를 물려받았고, '올품→한국썸벧→제일홀딩스→하림'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통해 하림그룹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지배력을 확보했다.
에코캐피탈은 올품의 100% 자회사로, 2015년 올품이 하림홀딩스와 제일홀딩스로부터 매수한 후 사실상 준영씨 개인회사가 됐다.
이에 따라 하림 역시 세무당국의 조사를 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후 상황이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논란의 세무조사 “다시 꺼낸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지난달 “과거에 대한 겸허한 반성 없이는 국민이 바라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며 “과거 정치적 논란이 있었던 일부 세무조사에 문제가 없었는지 점검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 청장은 지난달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국세청은 이날 발표한 ‘국세행정 운영방안’을 통해 과거 정치적 논란이 됐던 세무조사를 돌이켜보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한 청장은 “외부 전문가 중심으로 별도 TF를 구성해 객관적인 시각에서 세정집행의 공과를 평가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