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국회의원들의 겸직은 엄격히 제한된다. 해당 직이 직무연관성이나 이해관계에 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의원들의 자체 심의를 거쳐 ‘겸직 불가’ ‘사직 권고’ 처분을 내린다. 하지만 사직 권고의 경우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법 제29조에 따르면 의원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 직 이외의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 다만 ‘공익 목적의 명예직’ ‘다른 법률서 의원이 임명·위촉되도록 정한 직’ ‘정당법에 따른 정당의 직’만 겸직을 허용한다.
사직 권고 받고도
만약 겸직에 해당되면 국회의장은 ‘겸직 불가’ 판정 혹은 ‘사직 권고’를 해당 의원에게 내린다. 지난 6월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정세균 국회의장 의뢰를 받아 의원들의 겸직 가능 여부를 심사했다. 그 결과 총 18명 중 14명에겐 ‘겸직 불가’ 판단을 내린 바 있다.
국회법상 겸직 불가 통보를 받은 의원은 3개월 내에 해당 업무서 물러나야 한다. 다만, 사직 권고를 받은 의원은 가능한 신속하게 사퇴하도록 돼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인지 사직 권고를 받은 현역의원들 대부분은 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국회의장의 사직권고 통보이후 겸직 현황’에 따르면 14명의 의원에 대해 사직 권고가 내려졌다.
민주당 정성호(양주YMCA 이사), 인재근(따뜻한 재단 이사, 김근태의 평화와상생을위한 한반도재단 이사), 유승희(민주평화연구소 상임이사), 설훈(행동하는 양심 상임이사), 박홍근(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의장), 김한정(행동하는 양심 상임이사) 의원 등이 사직 권고를 받았다.
<일요시사>는 각 의원실에 겸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와 향후 계획에 대해 문의했다.
인재근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사직 권고를 받고 정리하려고 한다. 이사회가 열려야 하는데 아직 일정이 미정이라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답했다.
인 의원은 국회의장의 사직 권고를 받고 실행 움직임을 보였다. ‘사랑의 자전거’ 이사를 맡고 있는 유은혜 의원에 대해 의원실 관계자는 “겸직 ‘불가’는 아니었다. 권고사항이었다. 당분간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직권고 받고도 “계속 유지할 생각”
모호한 기준…늘어나는 법 개정 요구
이어 “그렇게 되면 이사를 바꿔야 하는데 섭외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사랑의 자전거’는 2006년도에 개소해 방치된 자건거를 수거해 재활용자전거를 만드는 단체다. 재활용자전거는 국내·외 소외계층에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2013년 6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원내대표인 우원식 의원이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행동하는 양심’ 부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설훈 의원실 보좌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모임이고 실질적으로 업무에 관여하지 않는다”며 “정통성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의원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조항(국회법 제29)을 개정할 생각”이라며 “권고 자체가 입법 취지와 맞지 않다”며 법과 현실의 괴리를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의당에선 천정배 의원이 사직 권고를 받았다. 천 의원은 ‘비례대표제포럼’ 정치위원, ‘동북아전략연구원부설 호남의희망’ 이사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다.
천 의원실 보좌관은 3개 직에 대한 현황 및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우선 동북아전략연구원부설 호남의희망 이사장직에 대해 보좌관은 “당장 사퇴한다고 해서 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이사회를 열어 절차를 밟아야 하고 기재부에 신고도 해야 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비례대표제포럼에 대해서는 “사실 상당히 오랫동안 해왔던 것”이라며 “현재 천 의원은 다당제합의제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고 한편으론 민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흔히 독일식정당명부제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 전체를 위한 제도의 변화에 기여하는 공익적 측면이 있다”며 “사직 권고 사항에 대해서는 검토해봐야 한다”고 답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의 경우엔 “임시정부의 헌법정통성을 지키는 공익적 활동”이라며 “여러 가지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도 3명의 의원이 권고 사직을 받았다. 김성태 의원은 ‘손기정 기념재단’ 대표이사장을, 유재중 의원은 ‘남촌 장학회’ 이사, 최경환 의원은 ‘민생평화광장’ 지도위원, ‘녹색환경운동’ 이사, ‘행동하는양심’ 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손기정 기념재단 대표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 의원실에 사직 권고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의원실 관계자는 “(해당 직을 내려놓을) 계획이 없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손기정 기념재단 관계자에 문의하자 “사익을 추구하는 단체가 아니다”라며 “(김 의원이) 이사장을 맡은지는 4년 됐고 상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당 단체서 따로 급여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덧붙였다.
형평성 문제
사직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에 지나지 않아 의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실제로 최근 국회의장의 권고를 받아들인 의원은 송설장학회 이사를 맡은 자유한국당 이철우 의원, 세계태권도선교회 법인이사, 생활체육 세계태권도 연맹 법인이사를 맡았던 국민의당 이동선 의원 2명뿐이다.
의원들의 겸직에 대해 참여연대 한 관계자는 “사직 권고냐, 겸직 불가냐의 기준이 모호하다”며 “권고에 따르는 사람과 따르지 않는 사람이 각각 나오는 등 형평성의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