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영풍그룹’ 사외이사 막전막후

빵빵한 사람들로 꽉꽉…방패막이?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영풍그룹의 관료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 평균이 43%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 ‘관피아’ 논란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높은 수치라 비난이 불가피하다. 논란의 사외이사를 <일요시사>서 정리했다.
 

관료출신 사외이사에게 붙는 꼬리표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 범죄조직 마피아와 관료의 합성어 ‘관피아’다. 관피아는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민관 유착과 전관예우 등의 문제점이 수차례 드러났기 때문이다.

민관 유착
전관예우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015년 3월31일부터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돼 시행되고 있다.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공무원이 퇴직일로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동안 소속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나 대학 병원 등 비영리법인에 재취업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른바 관피아 방지법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법망을 교묘히 피해 관료출신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관피아 논란은 여전하다.

국내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정부가 앞장서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금지법 등의 규제정책을 내놓다보니 소위 힘센 기관 출신들이 기업서 방패막이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CEO스코어데일리>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 187개 상장사의 사외이사 609명과 미국 포춘지가 선정한 상위 100대 기업 사외이사 815명의 출신 이력을 전수 조사한 결과 한국은 ‘관료’, 미국은 ‘재계’ 출신 사외이사를 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1분기 기준 국내 30대 그룹 사외이사 중 관료 출신은 235명으로 38.6%에 달했다. 다음은 186명을 배출한 학계로 30.5%를 차지했다. 
 

미국기업들이 사외이사로 가장 선호하는 재계 인사는 97명으로 15.9%에 불과했다. 그외 언론(25명, 4.1%), 공공기관(24명, 3.9%), 법조(17명, 2.8%), 세무회계(14명, 2.3%), 정계(4명, 0.7%) 출신 순이었다.

반면 포춘 100대 기업의 경우는 815명의 사외이사 중 재계 출신이 603명(74.0%)으로 4분의 3에 달했다. 반대로 관료 출신은 10%도 못되는 81명(9.9%)에 그쳤다. 그 다음은 학계 57명(7.0%), 세무회계 31명(3.8%), 언론 15명(1.8%), 법조 12명(1.5%), 정계 8명(1.0%) 순이었다.

미국의 경우는 경쟁사 CEO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정도로 재계 전문가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만 국내 대기업은 권력기관 출신을 더 선호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방패용 사외이사가 더 선호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정관계 유력 인사들 포진
관료 출신 비중 70% 달해 

이 같은 상황서 영풍그룹의 사외이사에 눈길이 쏠렸다. 재계서열 30위인 영풍그룹은 사외이사 비중이 높은 기업으로 꼽힌다. 


<일요시사>가 영풍그룹 계열사 가운데 상장회사 사외이사를 전수조사한 결과 영풍, 고려아연, 시그네틱스, 코리아써키드, 영풍정밀, 인터플렉스 등 6개사의 사외이사 가운데 관료출신의 비중은 70%에 육박했다. 

영풍의 경우 최문선, 장성기, 신정수 등이 사외이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최문선 이사의 경우 영풍통산 대표이사와 영풍 상근감사를 겸하고 있다. 최 이사의 경우 올해 나이 77세로 대기업 사외이사 가운데 최고령(2015년 기준)으로 재계 출신이다. 

최 이사의 경우 사외이사 자격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최 이사는 1964년 영풍에 입사해 이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또, 1996년부터 2002년까지 계열사 영풍통상의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이하 CGCG)는 “계열회사 전현직 임원으로 근무했던 최 이사의 경우 사외이사로서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사외이사 선임 건에 대해 반대를 권고했다.
 

장성기, 신정수 이사 등은 모두 관료출신으로서 관피아 논란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장 이사는 전 환경부 경인지방청장 출신이다. 그의 선임이 논란이 된 것은 관료출신이라는 점 뿐아니라 장기 재임으로 인한 독립성 훼손 문제도 부각됐다.

지난 3월 재선임에 성공한 장 이사는 2009년 처음으로 사외이사직에 올랐다. 2005년부터 2015년 3월가지는 계열사 코리아써키트의 사외이사직을 맡았으며 코리아써키트가 최대주주인 인터플렉스 사외이사를 2005~2009년까지 지낸 바 있다.

다른 그룹보다 
2배나 많네∼

CGCG는 “회사 및 계열회사에 9년 이상 장기간 사외이사로 활동할 경우 지배주주 및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며 이미 10년 이상 사외이사로 재직한 장성기 사외이사의 재선임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신 이사 역시 관료 출신으로서 자격 논란이 있었다. 그는 전 국무총리실 정책분석평가실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2015년 사외이사로 선임되며 영풍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문제는 그의 선임이 상법위배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CGCG는 “상법에서는 ‘해당 상장회사의 정기주주총회일 현재 그 회사가 자본금의 100분의 5 이상을 출자한 법인의 이사·집행임원·감사 및 피용자는 회사의 사외이사가 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영풍이 36.13%을 보유하고 있는 코리아써키트의 사외이사는 영풍의 이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신 이사의 사외이사 활동이 상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같은 논란에도 이들 사외이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영풍의 사외이사가 처리한 안건은 ▲외부회계감사인 선임건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실태 평가보고 ▲제66기 감사보고서 확정의 건 ▲감사위원회 위원장 선임의 건 등 총 4건으로 이들은 모두 찬성에 표를 던졌다.

관료출신 사외이사는 영풍 외 계열사에도 다수 포진해 있다. 지난해 이들 이사는 1인당 평균 2010만원을 보수로 가져갔다.

고려아연은 사외이사로 김종순, 이진강, 한철수, 주봉현, 이채필 이사 등 전부 관료출신으로 채웠다. 김 이사의 경우 국세청에서 잔뼈가 굵다. 

중부지방국체청 조사3국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국세청 조사1국 과장을 거쳤으며 국세청의 중수부라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과장의 경험까지 있으며 역삼세무서장을 끝으로 35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현재는 세무법인 세율의 회장으로 법인을 이끌고 있는 가운데 고려아연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진강 사외이사는 검찰 출신이다. 1943년 생인 그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후 1965년 제5회 사법시험을 합격했다. 1988년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 1993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지청장 등을 거쳤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철수 이사는 ‘재계의 검찰’이라 불리우는 공정거래위원회서 공직 생활을 했다. 행정고시 25회 출신인 한 이사는 경제기획원 핵심부서 종합기획관과 총괄사무관을 역임했다. 공정위서는 제도개선기획단장과 카르텔조사단 등 요직을 거쳤다. 

사무처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친 한 이사는 올 3월 고려아연의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육사 출신인 주봉현 사외이사도 관료 출신이다. 미국 위스콘신대 행정대학원을 거친 그는 환경부 중앙환경분쟁 조정위원장(1급)을 역임했다.

이채필 사외이사는 1992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2002년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을 거쳤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제3대 고용노동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하이마트서도 사외이사 직을 맡고 있어 논란이 될 여지가 있다. 상법상 상장법인의 사외이사는 해당 상장법인을 제외한 2개 이상의 다른 회사(비상장기업 포함)의 이사·집행임원·감사를 겸직할 수 없다.

고려아연의 사외이사들은 모든 안건에 찬성 표를 던졌다. 올해 이사회의 주요 의결사항은 ▲징크옥사이드코퍼레이션 잔여지분 인수의 건 ▲대표이사 선임 및 직위 선정의 건 ▲이사 경업 승인 건 등이다. 

지난해 고려아연은 사외이사에게 1인당 평균 6600원의 보수를 챙겨줬다. 올해도 비슷한 수준서 책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100% 찬성
두둑한 보수

시그네틱스는 심일선, Neil Yoohoon Kim 등 2명이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다. 심 이사는 정치인 출신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주요 기관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그는 한국은행 노동조합 위원장, 전국민주금융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 한국노동교육원 객원교수,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자문위원, 산재의료관리원 감사 등을 역임했다. 

제6대 산재의료관리원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내 이사장으로 활동한 심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의 사퇴압력을 받고 물러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Neil Yoohoon Kim은  버클리공대를 졸업하고 (전)브로드컴 캘리포니아 기술 생산 부사장, 엔지니어링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시그네틱스 사외이사 역시 올해 처리된 중요 의결사항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심 이사는 100% 참석률을 보였으나 Neil Yoohoon Kim 이사는 올해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 

의안 내용은 ▲한국산업은행 산업시설자금대출 기한 연장의 건 ▲ KEB하나은행 운전자금 약정내용 변경의 건 ▲ 한국산업은행 외화 및 산업시설자금대출 기한 연장의 건 등이다. 주로 은행 관련 의안내용이 처리된 점이 눈길을 끈다. 

시그네틱스는 지난해 이들 사외이사에 4100만원을 보수로 지급했다.

코리아써키트에는 앞서 소개한 영풍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신정수 이사가 상반기 기준 유일하게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Neil Yoohoon Kim은 올해 3월까지 사외이사로 활동하다 퇴임했다. 코리아써키트는 지난해 사외이사 한명당 평균 3800만원을 보수로 지급했다. 

Neil Yoohoon Kim 이사는 안건 회의에 전부 불참했으나 신 사외이사는 100% 찬성표를 던졌다. 주요 안건 내용은 ▲이사 선임의 건(사외이사 포함)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 ▲이사회 의장 선임의 건 ▲ 대표이사 선임의 건 등이다.

영풍정밀은 정관계와 재계 인사를 고루 선임했다. 한봉훈 사외이사의 경우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출신으로 현재 액센추어 코리아 대표도 겸직하고 있다.

관피아 논란에도 비중 확대
정치인 공공기관장도 선호

김선우 사외이사는 언론인 출신이다. 한국방송공사 이사, 한국교육방송공사 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총 5회 사외이사로 활동했는데 영풍그룹 비관료 출신 가운데 연임횟수가 가장 많았다.

신재국 이사는 국세관료 출신이다. 그는 9급 공채로 국세청에 투신해 역삼·서초 ·반포·용산·광화문·구로·남대문·중부산 세무서를 거쳐 국세청 국제조사과, 국세청 조사국,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등에서 근무했다. 
 

또한 서초·홍천 세무서장을 역임했고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과장, 국세청조사2과장, 광주지방국세청 조사1국장직 등 요직을 거쳤다.

이들 역시 주요 안건에 100% 찬성표를 던졌다. 안건 내용은 ▲이익배당(안) 결의의 건▲감사위원회위원 후보자 추천의 건▲이사 보수한도 승인요청액 결정의 건 ▲대표이사 선임의 건 등이었다. 

회사는 이들에게 1인 평균 5800만원의 보수를 지급했다.

인터플렉스는 코리아써키트 사외이사인 심일선 사외이사에 직을 또 맡겼다. 올해 심 이사는 인터플랙스에서도 주요 안건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주요내용은 ▲KEB하나은행(전 외환) 여신변경의 건▲금전채권신탁계약의 건▲유상증자 결의의 건 ▲미국지사 설립의 건 등이다. 

인터플렉스는 심 이사에게 지난해 3800만원의 보수를 지급했다.

결과적으로 영풍그룹의 총 15명(중복허용)의 사외이사 가운데 10명이 관료출신이었다. 총 사외이사대비 66% 비중. 이는 전년 56% 대비 10% 포인트 높아진 수준이다. 또한 공공기관장과 정치인까지 포함하면 13명이 정관계 출신으로 구성됐다.

문제는 이들 사외이사의 연임 가능성이 높아 독립성에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이다. <CEO스코어>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영풍그룹의 사외이사는 평균 3.6번 연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함없는 고집
도대체 이유가?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계 상위권인 영풍그룹은 일감몰아주기, 순환출자 등 많은 논란 요소가 있지만 적극적인 개선 방안엔 미온적인 모습”이라며 “관료출신 사외이사 역시 매년 논란이 되는 가운데 올해 그 비중을 대폭 늘리며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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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