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맞춘’ 홍-안 공조카드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9.04 10:39:56
  • 호수 1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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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보수 대결집 서막 열렸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지난 대선서 날을 세웠던 두 사람이 만났다. 문재인정부의 고공행진 속에 두 사람은 나란히 현 정부에 쓴 소리를 내뱉었다. 야권 공조의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상황.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사람이 선거연대에 나설 것이란 조심스런 관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29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전격 회동했다. 지난 대선 때 각 당의 후보였던 두 사람은 대선 패배 3개월여 만에 당 대표로 다시 만났다. 안 대표가 홍 대표를 찾은 명분은 취임 인사차지만, 실질적으론 야권 공조를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양당 대표 회동
정부와 대립각

이날 홍 대표는 문재인정부를 비판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그는 “문재인정부가 한반도 운전대론을 들고 나왔는데 미국도, 일본도, 북한도 외면하고 있다”며 “레커차에 끌려가는 차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도 “외교·안보가 아주 우려된다. 코리아패싱이 실제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여러 채널을 동원해야 한다”며 동조했다. 

두 사람은 날로 거세지는 북한의 대남 위협에 문 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안 대표는 이날 아침 북한 미사일 도발을 언급하며 “안보 위기, 경제 위기가 앞으로 더 심각해지는 것 아니냐”며 “국회서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대표도 “위기가 겹쳤는데 이 정부는 사법부까지 좌파 코드로 전부 바꾸려고 하니 참 그렇다”며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 야당이 힘을 합쳐서 이 정부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거론했다. 

두 대표는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80% 안팎의 지지율을 얻고 있는 문재인정부를 상대로 촘촘한 야권 공조를 펴지 않으면 중도보수의 기반이 와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묻어난다고 분석했다. 

두 대표 전격회동…정부에 맹공 퍼부어
외교·안보 쓴소리…심상찮은 움직임들

앞서 ‘최순실 게이트’로 보수진영은 이른바 붕괴됐다.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박 전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며 일부 의원들은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여파로 자유한국당은 9년 만에 여당 자리마저 내줬다.

또, 안철수 대표를 필두로 한 국민의당은 중도를 표방하며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을 아우르려 했지만, 확장성 실패로 지난 대선서 쓴잔을 들이켰다. 대선이 끝나고 나선 정국을 강타한 ‘제보조작’ 파문이 터지면서 국민의당은 창당 이후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이 시점에 대선 패배 ‘책임론’ ‘정계은퇴론’ 등 외곽에 머무를 것이라 예상됐던 안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국민의당은 분당 위기를 맞기도 했다. 전당대회 결과 친안(친 안철수)계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대표에 오른 안 대표지만 당장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대선서 각을 세운 홍 대표를 먼저 찾아 방문한 것을 두고 반전계기를 마련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당내 분란과 혼선을 잠재우기 위해 ‘야권 공조’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특히 안 대표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호남’ 민심이 안 대표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은 안 대표가 ‘야권 공조’에 힘을 싣는 중요 이유 중 하나다. 


당 내홍 속
공조 분위기

지난달 27일 열린 국민의당 당 대표 경선서 안 대표는 결선투표 없이 51%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정치권에선 안 대표가 첫 투표서 과반수 득표를 얻지 못했다면 결선투표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분석했다. 

앞서 대선서 90%에 가까운 지지율로 대선후보에 올랐던 것에 비해 당내 입지가 확연히 줄어든 모양새다.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안 전 대표는 야권 공조를 통해 중도·보수 세력을 규합하고 문 정부에 날을 세워 선명 야당을 일으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안 대표는 ‘중도통합’ 매시지를 꺼내 들면서 당이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했다.
 

여소야대, 여야 4당 교섭단체 체재의 복잡한 정국 속에서 중도통합의 길로 좌우를 수렴해 중심에 서겠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31일 안 대표는 국회 행사서 “문제 해결 중심 정당으로서, 실천적 중도개혁 정당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강한 야당의 길을 간다면 많은 분이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안 대표가 향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기될 수 있는 야권연대나 정계개편 등의 정치 국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홍 대표가 안 대표와 함께 야권공조 대열에 합류한 이유도 안 대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홍 대표는 지난 19대 대선서 2위를 기록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이후 자유한국당 인물난 속에서 전당대회에 출마해 자유한국당 대표에 올랐다. 대선서 박 전 대통령 지지층 흡수 및 친박(친 박근혜)계 지원을 위해 박 전 대통령을 옹호했던 홍 대표는 최근 박 전 대통령과 선긋기에 나섰다.

지난달 27일 부산지역 토크콘서트에 참여한 그는 “박 전 대통령은 이제 우리가 구할 방법이 없다”며 “정치인 박근혜를 자연인 박근혜로 풀어주자”고 언급했다. 박 전 대통령과 한국당과의 유일한 끈을 끊어버리겠다는 셈이다.

홍 대표는 “(문재인정부가) 우리 당과 함께 엮어가지고 지방선거까지 박 전 대통령을 압박해야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볼 것"이라며 "한국당이 궤멸돼버리면 박근혜가 살아날 길도 없다"고 했다. 

홍 전 대표의 발언에 친박계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선 때는 자가기 당선되면 박 전 대통령을 석방할 수 있다고 했다가 얼마 전에는 박 전 대통령 재판을 생중계하는 것은 ‘시체에 칼질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냐”며 홍 대표의 오락가락 행보를 꼬집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변화를 보이며 변화를 꾀한 홍 대표는 특보단을 구성해 자기세력 구축에 나선 모양새다. 지난달 10일 홍 대표는 원내 현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특보를 꾸렸다. 선임된 특보는 정책 특보 11명, 지역 특보 14명 등 25명이다.

이 같은 특보단 구성의 표면적 명분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대비해 당직을 정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박계는 홍 대표의 ‘자기사람 심기’로 해석하며 사당화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 친박계 최고위원은 특보단 명단을 놓고 “홍 대표의 사당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친홍(친 홍준표) 성향의 한 최고위원은 “원래 특보단 임면권은 당 대표 고유 권한”이라며 간섭하지 말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당 대표에 오른 홍 대표가 친정체제 구축에 나서자 당내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이 커진 모양새다. 

이처럼 두 대표는 각각 친박계 및 반안계 반발로 당내 입지가 불안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당 외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야권 공조를 통해 문 정부를 압박하면서 세력을 넓혀가겠다는 것이다. 

선거 앞두고 
연대 나선다?


공조의 구체적 그림으로는 ‘선거연대’가 꼽힌다. 하지만 두 대표는 회동서 선거연대에는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비공개 회동서 배석한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선거연대와 관련해 “안 대표는 ‘국민의당은 원칙적으로 정면돌파다. 선거연대는 생각 없다’고 말했고, 홍 대표도 ‘우리도 그렇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다만 전 대변인은 “홍 대표가 ‘그러나 정치라는 것은 늘 상황이 변한다’고 말했다”며 여운을 남겼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선거연대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서로 스스로 주도권을 쥐는 ‘동상이몽’식 통합·연대론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경우 자강론을 앞세워 주도권 쟁탈전이 한창이다. 

다만 야3당 중 선거연대에 첫 운을 띄운 것은 한국당이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야3당의 수도권 광역단체장 단일후보론을 제기한 바 있다. 그는 “야3당만이라도 단일후보를 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가진 의원들이 꽤 많다. 수도권만이라도 선거연대를 해보자는 개인적인 제안”이라고 밝혔다. 

같은 당 김성태 의원도 “현재 추세라면 지방선거서 민주당의 싹쓸이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며 “그런 측면서 지방선거 연대는 야권 입장서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는 카드”라며 정 원내대표의 제안을 긍정 평가했다. 

지방선거 연대 화두
한 ‘반색’ 바른 ‘난색’

하지만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들은 연대에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는 정 원내대표의 제안에 대해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 현재는 촛불 혁명의 산물로 태어난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운 대한민국, 국가 대개혁을 할 정기국회다. 따라서 도둑질도 너무 빠르고, 우물가에 가서 숭늉 내놓으라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정우택 원내대표가 3당 단일화 이야기를 한 것은 상당히 엽기적이다. 지금 정치적 상식서 너무 벗어났다"며 "그건 역사적 퇴행"이라고 주장했다. 바른정당의 경우 한국당과 각을 세워 보수적자 대결을 벌이는 만큼 연대는 없다는 입장이다.

또, 막상 연대를 하게 된다면 한국당에 흡수되는 그림도 그려지기 때문에 섣부르게 연대에 나서기 어려운 모양새다. 현재 한국당을 제외한 원내 야2당이 지난 대선처럼 연대에 선을 긋고 있지만 막상 지방선거에 다다르면 다른 그림이 그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재 문재인정부의 국정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민주당이 5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상황서 현 흐름이 내년 6월까지 이어진다면 야3당은 존폐 위기에 놓이기 때문이다. 

국민-바른 NO
한국당 YES

한 정치평론가는 정치권에 흐르는 야권공조 분위기에 대해 “운동권 중심의 핵심 참모들이 틀어쥔 문재인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국민이 요구하는 바가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는 합당이나 통합의 이전 단계로서 3당이 정책 공조를 하고 흐름을 같이 하면서 선거공조는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혜훈 금품수수 의혹

지난달 31일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가 사업가 A씨로부터 명품 의류 등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YTN은 이날 ‘이 대표가 20대 총선에 당선될 경우 사업 편의를 봐주겠다고 해서 그에게 수천만원대 금품을 제공했다’는 사업가 A씨의 주장을 보도했다. 

A씨는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근거로 이 대표 소개로 대기업 부회장급 임원과 금융기관 부행장을 만나고, 조찬 약속을 잡아주거나 연락처를 적어 보낸 문자메시지 등을 제시했다. 

해당 의혹에 이 대표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면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공식 입장을 내 해명한 데 이어 오후에 경기도 파주 홍원연수원서 열린 연찬회 도중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 대표는 먼저 이 사업가와의 관계에 대해 “(그가) 정치원로를 통해 ‘언론계·정치권 인맥이 두터운 동향인인데 자원해 돕고 싶다’며 (나한테) 접근해 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선 “수시로 연락해 개인적으로 쓰고 갚으라고 해 중간중간 갚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는 방식으로 지속하다 오래 전에 전액을 다 갚았다”고 단언했다.

이 대표는 다만 “의도를 갖고 접근해온 사람을 분별하지 못하고 제대로 차단하지 못해서 생긴 일로, 실례를 끼쳐 여러 가지로 유감이다”고 사과했다. 정치권은 깨끗한 보수를 강조해온 바른정당 현직 대표가 청탁이나 대가 관계가 의심되는 부적절한 금품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 돼 앞으로 이 대표의 입지가 현격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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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