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맞춘’ 홍-안 공조카드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9.04 10:39:56
  • 호수 1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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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보수 대결집 서막 열렸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지난 대선서 날을 세웠던 두 사람이 만났다. 문재인정부의 고공행진 속에 두 사람은 나란히 현 정부에 쓴 소리를 내뱉었다. 야권 공조의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상황.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사람이 선거연대에 나설 것이란 조심스런 관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29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전격 회동했다. 지난 대선 때 각 당의 후보였던 두 사람은 대선 패배 3개월여 만에 당 대표로 다시 만났다. 안 대표가 홍 대표를 찾은 명분은 취임 인사차지만, 실질적으론 야권 공조를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양당 대표 회동
정부와 대립각

이날 홍 대표는 문재인정부를 비판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그는 “문재인정부가 한반도 운전대론을 들고 나왔는데 미국도, 일본도, 북한도 외면하고 있다”며 “레커차에 끌려가는 차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도 “외교·안보가 아주 우려된다. 코리아패싱이 실제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여러 채널을 동원해야 한다”며 동조했다. 

두 사람은 날로 거세지는 북한의 대남 위협에 문 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안 대표는 이날 아침 북한 미사일 도발을 언급하며 “안보 위기, 경제 위기가 앞으로 더 심각해지는 것 아니냐”며 “국회서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대표도 “위기가 겹쳤는데 이 정부는 사법부까지 좌파 코드로 전부 바꾸려고 하니 참 그렇다”며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 야당이 힘을 합쳐서 이 정부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거론했다. 

두 대표는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80% 안팎의 지지율을 얻고 있는 문재인정부를 상대로 촘촘한 야권 공조를 펴지 않으면 중도보수의 기반이 와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묻어난다고 분석했다. 

두 대표 전격회동…정부에 맹공 퍼부어
외교·안보 쓴소리…심상찮은 움직임들

앞서 ‘최순실 게이트’로 보수진영은 이른바 붕괴됐다.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박 전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며 일부 의원들은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여파로 자유한국당은 9년 만에 여당 자리마저 내줬다.

또, 안철수 대표를 필두로 한 국민의당은 중도를 표방하며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을 아우르려 했지만, 확장성 실패로 지난 대선서 쓴잔을 들이켰다. 대선이 끝나고 나선 정국을 강타한 ‘제보조작’ 파문이 터지면서 국민의당은 창당 이후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이 시점에 대선 패배 ‘책임론’ ‘정계은퇴론’ 등 외곽에 머무를 것이라 예상됐던 안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국민의당은 분당 위기를 맞기도 했다. 전당대회 결과 친안(친 안철수)계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대표에 오른 안 대표지만 당장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대선서 각을 세운 홍 대표를 먼저 찾아 방문한 것을 두고 반전계기를 마련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당내 분란과 혼선을 잠재우기 위해 ‘야권 공조’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특히 안 대표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호남’ 민심이 안 대표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은 안 대표가 ‘야권 공조’에 힘을 싣는 중요 이유 중 하나다. 


당 내홍 속
공조 분위기

지난달 27일 열린 국민의당 당 대표 경선서 안 대표는 결선투표 없이 51%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정치권에선 안 대표가 첫 투표서 과반수 득표를 얻지 못했다면 결선투표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분석했다. 

앞서 대선서 90%에 가까운 지지율로 대선후보에 올랐던 것에 비해 당내 입지가 확연히 줄어든 모양새다.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안 전 대표는 야권 공조를 통해 중도·보수 세력을 규합하고 문 정부에 날을 세워 선명 야당을 일으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안 대표는 ‘중도통합’ 매시지를 꺼내 들면서 당이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했다.
 

여소야대, 여야 4당 교섭단체 체재의 복잡한 정국 속에서 중도통합의 길로 좌우를 수렴해 중심에 서겠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31일 안 대표는 국회 행사서 “문제 해결 중심 정당으로서, 실천적 중도개혁 정당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강한 야당의 길을 간다면 많은 분이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안 대표가 향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기될 수 있는 야권연대나 정계개편 등의 정치 국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홍 대표가 안 대표와 함께 야권공조 대열에 합류한 이유도 안 대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홍 대표는 지난 19대 대선서 2위를 기록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이후 자유한국당 인물난 속에서 전당대회에 출마해 자유한국당 대표에 올랐다. 대선서 박 전 대통령 지지층 흡수 및 친박(친 박근혜)계 지원을 위해 박 전 대통령을 옹호했던 홍 대표는 최근 박 전 대통령과 선긋기에 나섰다.

지난달 27일 부산지역 토크콘서트에 참여한 그는 “박 전 대통령은 이제 우리가 구할 방법이 없다”며 “정치인 박근혜를 자연인 박근혜로 풀어주자”고 언급했다. 박 전 대통령과 한국당과의 유일한 끈을 끊어버리겠다는 셈이다.

홍 대표는 “(문재인정부가) 우리 당과 함께 엮어가지고 지방선거까지 박 전 대통령을 압박해야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볼 것"이라며 "한국당이 궤멸돼버리면 박근혜가 살아날 길도 없다"고 했다. 

홍 전 대표의 발언에 친박계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선 때는 자가기 당선되면 박 전 대통령을 석방할 수 있다고 했다가 얼마 전에는 박 전 대통령 재판을 생중계하는 것은 ‘시체에 칼질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냐”며 홍 대표의 오락가락 행보를 꼬집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변화를 보이며 변화를 꾀한 홍 대표는 특보단을 구성해 자기세력 구축에 나선 모양새다. 지난달 10일 홍 대표는 원내 현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특보를 꾸렸다. 선임된 특보는 정책 특보 11명, 지역 특보 14명 등 25명이다.

이 같은 특보단 구성의 표면적 명분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대비해 당직을 정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박계는 홍 대표의 ‘자기사람 심기’로 해석하며 사당화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 친박계 최고위원은 특보단 명단을 놓고 “홍 대표의 사당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친홍(친 홍준표) 성향의 한 최고위원은 “원래 특보단 임면권은 당 대표 고유 권한”이라며 간섭하지 말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당 대표에 오른 홍 대표가 친정체제 구축에 나서자 당내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이 커진 모양새다. 

이처럼 두 대표는 각각 친박계 및 반안계 반발로 당내 입지가 불안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당 외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야권 공조를 통해 문 정부를 압박하면서 세력을 넓혀가겠다는 것이다. 

선거 앞두고 
연대 나선다?


공조의 구체적 그림으로는 ‘선거연대’가 꼽힌다. 하지만 두 대표는 회동서 선거연대에는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비공개 회동서 배석한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선거연대와 관련해 “안 대표는 ‘국민의당은 원칙적으로 정면돌파다. 선거연대는 생각 없다’고 말했고, 홍 대표도 ‘우리도 그렇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다만 전 대변인은 “홍 대표가 ‘그러나 정치라는 것은 늘 상황이 변한다’고 말했다”며 여운을 남겼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선거연대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서로 스스로 주도권을 쥐는 ‘동상이몽’식 통합·연대론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경우 자강론을 앞세워 주도권 쟁탈전이 한창이다. 

다만 야3당 중 선거연대에 첫 운을 띄운 것은 한국당이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야3당의 수도권 광역단체장 단일후보론을 제기한 바 있다. 그는 “야3당만이라도 단일후보를 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가진 의원들이 꽤 많다. 수도권만이라도 선거연대를 해보자는 개인적인 제안”이라고 밝혔다. 

같은 당 김성태 의원도 “현재 추세라면 지방선거서 민주당의 싹쓸이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며 “그런 측면서 지방선거 연대는 야권 입장서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는 카드”라며 정 원내대표의 제안을 긍정 평가했다. 

지방선거 연대 화두
한 ‘반색’ 바른 ‘난색’

하지만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들은 연대에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는 정 원내대표의 제안에 대해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 현재는 촛불 혁명의 산물로 태어난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운 대한민국, 국가 대개혁을 할 정기국회다. 따라서 도둑질도 너무 빠르고, 우물가에 가서 숭늉 내놓으라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정우택 원내대표가 3당 단일화 이야기를 한 것은 상당히 엽기적이다. 지금 정치적 상식서 너무 벗어났다"며 "그건 역사적 퇴행"이라고 주장했다. 바른정당의 경우 한국당과 각을 세워 보수적자 대결을 벌이는 만큼 연대는 없다는 입장이다.

또, 막상 연대를 하게 된다면 한국당에 흡수되는 그림도 그려지기 때문에 섣부르게 연대에 나서기 어려운 모양새다. 현재 한국당을 제외한 원내 야2당이 지난 대선처럼 연대에 선을 긋고 있지만 막상 지방선거에 다다르면 다른 그림이 그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재 문재인정부의 국정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민주당이 5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상황서 현 흐름이 내년 6월까지 이어진다면 야3당은 존폐 위기에 놓이기 때문이다. 

국민-바른 NO
한국당 YES

한 정치평론가는 정치권에 흐르는 야권공조 분위기에 대해 “운동권 중심의 핵심 참모들이 틀어쥔 문재인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국민이 요구하는 바가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는 합당이나 통합의 이전 단계로서 3당이 정책 공조를 하고 흐름을 같이 하면서 선거공조는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혜훈 금품수수 의혹

지난달 31일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가 사업가 A씨로부터 명품 의류 등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YTN은 이날 ‘이 대표가 20대 총선에 당선될 경우 사업 편의를 봐주겠다고 해서 그에게 수천만원대 금품을 제공했다’는 사업가 A씨의 주장을 보도했다. 

A씨는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근거로 이 대표 소개로 대기업 부회장급 임원과 금융기관 부행장을 만나고, 조찬 약속을 잡아주거나 연락처를 적어 보낸 문자메시지 등을 제시했다. 

해당 의혹에 이 대표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면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공식 입장을 내 해명한 데 이어 오후에 경기도 파주 홍원연수원서 열린 연찬회 도중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 대표는 먼저 이 사업가와의 관계에 대해 “(그가) 정치원로를 통해 ‘언론계·정치권 인맥이 두터운 동향인인데 자원해 돕고 싶다’며 (나한테) 접근해 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선 “수시로 연락해 개인적으로 쓰고 갚으라고 해 중간중간 갚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는 방식으로 지속하다 오래 전에 전액을 다 갚았다”고 단언했다.

이 대표는 다만 “의도를 갖고 접근해온 사람을 분별하지 못하고 제대로 차단하지 못해서 생긴 일로, 실례를 끼쳐 여러 가지로 유감이다”고 사과했다. 정치권은 깨끗한 보수를 강조해온 바른정당 현직 대표가 청탁이나 대가 관계가 의심되는 부적절한 금품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 돼 앞으로 이 대표의 입지가 현격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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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