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당 대표 도전을 선언했다. 대선 이후 칩거할 것이란 정치권의 분석과 달리 안 전 대표는 빠르게 몸을 풀었다. 안 전 대표의 깜짝 행보에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다. 선당후사를 강조하며 ‘구원투수론’을 꺼내든 그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지난 3일 안 전 대표는 오는 8·27전당대회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기자회견을 연 그는 “8월27일 치러질 국민의당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며 “선당후사의 마음 하나로 출마의 깃발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로써 안 전 대표는 지난해 6월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으로 대표직서 물러난 뒤 1년2개월 만에 당 대표에 다시 도전하는 셈이다.
“당 구하겠다”
깜짝 재등판
당초 정치권은 안 전 대표가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당분간 칩거에 들어가 몸을 낮출 것이라 예상했다. 일각에선 대선으로 내상을 입은 안 전 대표가 정계은퇴 수순을 밟을 것이란 조심스런 관측도 나왔다.
정가의 예상을 뒤집고 안 전 대표는 조기 등판을 선언했다. 안 전 대표의 등판에 국민의당은 물론 정치권은 술렁였다. 안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와 동시에 당내 비안계로 꼽히는 박준영·조배숙·장병완·이찬열 의원 등 10여명은 “국민의당은 대선 패배와 증거 조작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운 지도부가 필요하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성명을 냈다.
일찌감치 당대표 출마의사를 밝힌 정동영, 천정배 의원도 안 전 대표의 당대표 출마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정 의원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의당은 지난 1년 반 사당화의 그림자가 지배했다”며 국민의당 사당화의 중심이었던 안 전 대표를 비판했다.
정 의원은 “당 건설은 지체됐고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았다”며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고 아무 때나 출마할 수 있고 당선될 수 있다면 이것 또한 사당화의 명백한 증거다. 사당화는 패배의 길이며 공당화가 승리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천 의원도 안 전 대표 공세에 가세했다. 천 의원은 “안 전 대선후보의 당 대표 출마는 구태 중의 구태정치”라며 “누울 자리, 누워서는 안 될 자리조차 구분 못 하는 몰상식, 몰염치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예상 깬 깜짝 등판…곳곳 반발 기류
명분 없는데 “당 생존이 중요하다”
그는 “이번 전당대회는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도부를 대체하기 위한 보궐선거다. 가장 큰 책임은 안 전 후보 본인에게 있다”며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난 당 대표 자리를 대선 패배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대선후보가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안 전 후보가 그렇게 부르짖던 새 정치인가”라고 꼬집었다.
당내 당권주자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안 전 대표는 전대서 승리해 당권을 거머쥔다는 복안이다. 당초 안 전 대표의 조기복귀를 가로막는 걸림돌로는 ‘대선 패배’와 ‘제보조작 파문’ 두 가지가 꼽혔다.
안 전 대표는 선거라는 전장서 패배한 패장이기 때문에 이에 마땅한 책임을 지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제보조작 파문은 안 전 대표가 직접적인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은 당내 조사 및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지만, 안 전 대표의 측근이 벌인 일이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이 무거웠다.
이 때문에 명분도 없이 당 대표에 도전한다는 비판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최근 안 전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는 이상돈 의원도 안 전 대표의 출마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인지부조화나 나르시시즘이 있는 것”이라며 “충격요법 운운하는데 그게 맞는 말인가. ‘내 미래보다 당의 미래’라고 강조했는데 ‘당의 미래보다 내 미래’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비꼬았다.
절체절명 국당
친안vs비안 혈투
그렇다면 정치권의 비판을 무릅쓰고 안 전 대표가 전면에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당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안 전 대표를 정치 일선에 복귀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민의당은 대선 패배 이후 제보조작 파문으로 좌초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각종 여론조사서 정당 지지율은 5%대에 머무르며 원내교섭단체 중 꼴지를 달리고 있다. 정치적 기반인 호남서의 지지율도 좀처럼 반등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 전 대표는 고심 끝에 지금이야 말로 나서야 할 때라고 인식한 듯 보인다. 안 전 대표는 출마선언을 통해 “제 미래보다 당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며 출마 결심 배경을 설명했다.
안 전 대표의 한 측근인사는 “창당이후, 대선을 위한 경선이나 대선 과정서 안 전 대표의 창당정신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고 당 조직은 계파별로 나눠먹기가 됐다”며 “대선 패배 직후부터 당 정체성을 고민하게 됐고 이게 출마로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당권 도전에 나선 만큼 안 전 대표 입장에선 당 대표에 당선되는 것이 급선무인 상황이다. 현재 전대 분위기는 안 전 대표가 다소 앞서 있고 정 의원과 천 의원이 뒤따르는 ‘1강 2중’구도라는 것이 정치권 중론이다. 다만 단일화와 결선투표 등 변수가 남아 있어 안 전 대표 입장에선 판세를 낙관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안 전 대표의 출마로 자연스럽게 ‘친안’ 대 ‘비안’ 구도가 형성됐다. 안 전 대표의 당권 저지를 위해 정 의원과 천 의원이 대승적 차원에서 단일화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당초 친안계로 분류된 이언주 의원의 출마도 변수로 작용될 전망이다.
이 의원은 당내 후보들을 견제하면서 독자적 입지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 17일 광주시의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여러 번 실패한 정동영, 천정배 두 호남 출신으로는 미래 가치를 만들 수 없다”며 “당의 희생을 위해 밀알이 돼 당의 버팀목으로서 역할을 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 드린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를 겨냥해서는 “대표가 되면 우려되는 게 굉장히 많다. 당의 갈등 상황을 수습하려는 노력, 절박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당을 살리는 게 아니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안 전 대표가 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유로 내년 지방선거서 친안계를 당내 주류에 포진시키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상 친안-비안 대결구도서 친안계가 당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장악하고 넘어 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 대선서 안 전 대표는 친안계의 전폭적 지지로 손학규 전 고문과 박주선 비대위원장을 무난하게 물리치고 대선후보로 우뚝 섰다. 당내 지분율을 대선 국면에선 빛을 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친문 패권주의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당내 친문계의 든든한 지지로 대선후보에 올랐다. 결국 당내 권력지형이 유력대권 주자의 향후 정치행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안 전 대표가 비안계로 구성된 당권 주자들의 견제를 뚫고 당권을 잡더라도 풀어야 할 숙제는 쌓여있다. 당내 갈등을 봉합하는 일이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비안계는 친안계에서 촉발된 제보조작 파문으로 당의 위상이 떨어졌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서 갈등 봉합 없이 단순이 또 국민의당이 안 전 대표의 질서대로 움직이면 내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표가 대표에 오른 뒤 가장 먼저 오를 본격적 시험대는 내년 6·13지방선거다.
현재 국민의당은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등 핵심 지역에 딱히 내세울만한 후보가 없는 상황이다. 안 전 대표에게는 다시 당 대표가 될 경우 인재영입을 통해 유력주자들을 발굴해내야만 하는 막중한 책임이 뒤따른다.
6·13지방선거
본격적 시험대
이밖에 현재 당내 경선 과정서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론’도 불거지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16일 라디오 인터뷰서 서울시장 출마 의지를 묻는 질문에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놓겠다”며 “(내년 지방선거 때) 어떤 역할을 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될지 그때 기준으로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오후 당 대표 후보자 토론회가 끝난 자리에선 “당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는 뜻”이라며 톤을 높였다.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 여부에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면서 당권주자들은 뿔이 난 모양새다.
지난 17일 이언주 의원은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차출론에 대해 “당이 원하면 당연히 나가야 한다”며 “현재 안 전 대표가 출마여부를 명확히 하지 않고 있는데 당 대표가 된 뒤 출마하게 되면 당이 혼란에 빠지는 만큼 서울시장을 출마한다면 차라리 당 대표 후보를 사퇴하고 지방선거에서 기여하라”고 촉구했다.
서울시장 출마여부에 대해선 안 전 대표도 고심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서울시장에 출마하게 된다면 당 대표에 나서는 명분이 약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섣부르게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 우뚝 솟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서울시장 출마설 솔~솔
결국 대권행 수순 밟기?
안 전 대표는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선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차기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선 “지금 제 머릿속에는 없다”고 강조했다. 안 전 대표가 차기 대선에는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은 지금 당대표에 출마하는 것이 사실상 차기 대권을 노린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만약 안 전 대표가 당대표에 오른 뒤 서울시장에 나서지 않고 지방선거 총책임자 역할에 머무른다면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향후 입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민의당 창당 이후 첫 지방선거라는 점에서 총선서 보여줬던 저력을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나서지 않더라도 지방선거서 선전을 거둔다면 향후 당 대표서 자연스럽게 물러난다 하더라도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다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대선주자로 자연스레 거듭났다. 이처럼 안 전 대표가 지방선거를 통해 위기의 당을 구해낸다면 사당화 논란서도 자유롭게 될 전망이다.
시장은 YES
대권은 NO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선 안 전 대표의 당 대표 도전에 대한 시각이 엇갈린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리더는 위기 때 나타나야지 자기가 살려고 나와서는 안 된다”며 “지방선거 결과가 좋을 수도 있지만 나쁠 경우 위기 돌파를 위해 나오는 것은 모르지만 이번에는 너무 조급했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안철수가 아니면 국민의당이 독자적인 자강 노선을 걷기가 어렵다고 하는 현실이 있는 것 같다”며 “명분은 없지만 정치 현실적으로 강행되는 것으로 본다”고 말해 정치현실 상 불가피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