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몰래카메라'(이하 몰카) 범죄 해결을 위해 대통령까지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몰카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10년 사이 몰카 범죄는 12배 이상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로 몰카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는 여성들은 일상 공간서조차 마음 편히 지낼 수 없다. 몰래 카메라의 종류와 범죄사례를 통해 몰카 공화국이 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대한민국이 몰카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옷차림이 얇아지는 여름철에 더 기승을 부린다.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운 초소형 카메라까지 등장하면서 몰카 범죄는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지능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구멍도 안 보여
공중화장실 문을 보면 수 없이 많이 뚫린 정체불명의 구멍들은 몰카의 흔적일 확률이 높다. 한 네티즌은 “실제로 펜으로 구멍을 톡톡 쳤더니 렌즈 깨지는 소리가 들린 적이 있었다”고 SNS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그밖에 도서관(책상 아래서 촬영), 치마 속(버스, 지하철 등), 옆집, 자취방, 숙박업소가 밀집된 모텔촌 등도 위험의 대상이 된다.
카메라의 종류도 다양한데 안경, 펜, 시계, 라이터, 단춧구멍, 옷걸이 등은 숙박업소 혹은 가정집에 설치될 위험이 높다. 또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명함을 주면서 촬영하는 명함지갑, 물을 마시며 촬영할 수 있는 텀블러 뚜껑 카메라도 있다.
지난달 평소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교사가 학원 버스, 계단,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몰카를 찍다가 발각되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교사의 저장 하드에 무려 400개의 영상이 있었다.
지난 3월에는 걸그룹 ‘여자친구’의 팬사인회서 이 그룹 멤버 예린이 자신을 ‘안경 캠코더’로 찍는 남성을 찾아내 논란이 됐다. 또 최근 SNS에서는 ‘안경 캠코더’를 이용한 한 음식점 고발 프로그램의 ‘몰래 촬영법’이 도마에 올랐다.
유명 핫도그 체인점의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밝힌 한 트위터 사용자가 “(음식점 고발 프로그램 관계자가) 우리 가게에 몰카 안경을 끼고 찾아온 듯하다”는 글을 썼고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본인의 페이스북서 “억지로 걸려고 하면 또 안 걸릴 게 없는 게 이놈의 음식업”이라며 요식업자들을 위해 ‘몰카 안경’의 특징을 자세히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온라인에선 온갖 종류의 초소형카메라를 손쉽게 살 수 있다. 옷걸이, 탁상시계, 액자, 화재경보기, 벽 스위치 등으로 위장해 실내에 부착하는 제품도 있고, 담배 케이스, 블루투스 이어폰 등 휴대용 제품도 꾸준히 새롭게 나온다.
가격은 기능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40만원을 넘지 않고, 구매에는 제약도 주의사항도 따라붙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서 초소형 몰래카메라 제품이 인기 생활용품 부문 1위 제품으로 올라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쿠팡 판매 1위 몰카 제품 올라옴’ 등의 제목으로 쿠팡 생활용품 부문 인기 제품에 몰카가 올라왔다는 글이 게재됐다. 해당 글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졌고 이를 접한 네티즌들의 항의글이 쿠팡 고객센터에 넘쳐났다.
2015년 발생한 워터파크 몰카 사건으로 초소형 몰래카메라 범죄의 심각성이 대두되자 그해 11월에는 조정식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초소형 카메라 판매를 허가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단속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지되면서 사실상 초소형 몰래 카메라의 판매를 규제할 방법이 없어 시중서도 버젓이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판매되고 있는 것.
몰카 논란이 일었던 2015년 당시에도 인터넷 쇼핑몰 여러 곳이 초소형 몰래카메라를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여론의 거센 질타가 쏟아졌다.
몰카 범죄 10년새 12배 이상 증가
갈수록 교묘하고 지능적으로 진화
당시 국내 소셜커머스 업체인 티켓몬스터(이하 티몬)는 초소형 몰래카메라 판매로 비난 여론이 들끓자 공식 SNS를 통해 초소형 몰래카메라를 판매한 것에 대해 사과한 뒤 더 이상 초소형 몰래카메라 제품류는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2년이 지난 지금 티몬서 ‘히든캠’ ‘몰래카메라’ ‘몰카’ 등의 제품을 검색해도 초소형 몰래카메라 제품 판매는 검색되지 않는다. 티몬 외에도 위메프, 11번가, 지마켓 등에서 ‘몰래카메라’를 검색하면 ‘초소형 몰래카메라’ 대신 ‘몰래카메라 검사기’가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쿠팡을 포함해 일부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선 여전히 안경, 라이터, 보조 배터리, 볼펜, 손목시계 등으로 위장된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몰래카메라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청와대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초소형 카메라 등 디지털기기를 사용한 몰래카메라 범죄가 계속 늘어나면서 사내 화장실, 탈의실, 공중화장실, 대중교통 등 일상생활 곳곳서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여성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몰래카메라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온라인을 통해 순식간에 퍼지고 당사자에게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신속한 대응이 필수”라며 “신고가 들어오면 심의에만 한 달이 걸린다고 하니 이래선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몰카 영상물을 유통하는 사이트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하고, 영상물 유포자에게 기록물 삭제 비용을 부과하는 등 전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피해자들의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치유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최근 국내 포털사이트서 음란물을 실시간으로 감지해서 자동으로 차단해주는 AI(인공지능) 기술이 개발됐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며 “98%의 적중률을 보였다는데 이런 신기술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도 언급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초소형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범죄는 2006년 523건이 발생한 것과 비교해 2015년 7623건이 발생해 10년 새 1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통계적으로 파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변화보다도 마음가짐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보는 것이 아닌 관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몰카의 위협은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