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트럼프 빅딜 시나리오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6.19 11:06:55
  • 호수 11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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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사드 주고 FTA 받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 국가원수 자격으로 정상외교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대통령의 외교력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향후 문재인정부의 대북, 대중 외교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한-미 정상회담의 득과 실을 따져봤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29일부터 이틀간 백악관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8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미국 29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 주재 백악관 환영 만찬에 참석해 다음날인 오는 30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무슨 얘기 할까
인식만 재확인?

앞서 두 정상은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의 문 대통령 취임 축하 전화를 통해 서로에게 호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관계는 단순히 좋은 관계가 아니라 ‘위대한 동맹 관계’”라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 4년간 호흡을 맞춰야 할 두 정상이 개인적 유대관계와 신뢰를 구축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오는 29일부터 공식일정을 가질 예정인 가운데 양국 정상이 첫 대면서 무엇을 주고받을지 주목된다. 한미 양국은 각각 발표를 통해 두 정상이 나눌 의제 윤곽을 제시했다.

청와대는 이번 정상회담서 ▲한미동맹을 한층 더 발전시키기 위한 협력 방향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공동 방안 ▲한반도 평화 실현 ▲실질 경제 협력 및 글로벌 협력 심화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도 ▲한미 동맹 강화 ▲경제 및 국제 문제에 대한 협력 증진 ▲양국 간 우호 관계 강화 방안 ▲북한 관련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오는 29일 정상회담에 앞서 방한 중인 토머스 섀넌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을 만난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은 “양측은 양국 신정부 하 첫 한미정상회담이 확고한 대북 공조를 포함한 양국간 포괄적 협력의 토대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 공감하고, 성공적인 행사 개최를 위해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또 “우리 신정부 출범 이후 거의 매주 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굳건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공동의 인식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양국이 제시한 의제는 ‘동맹 강화’ ‘북핵 해결’ ‘경제 협력’ 등으로 요약된다. 다만 3가지 모두트럼프 대통령이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어 양국 간 타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양국은 군사적 동맹으로 공고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대선 과정서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주한미군 방위비를 분담시킬 것이라 공언해왔다. 이는 우리나라에 경제적 부담을 지운다는 점에서 양국 간 군사 동맹에 뇌관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현 정부 첫 한미회담…외교력 시험대
관전포인트는? 퍼주기만 하고 끝날까

정상회담서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비 부담을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평소 그의 언행을 미루어 짐작할 때 정상회담 자리서 방위비 이야기가 거론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양국 간 이견 및 갈등은 쉽사리 좁혀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문제 해결과 관련해서도 두 가지 측면에서 양국 간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지난 4월 북폭설이 나돌 정도로 미국은 북한에 강경책을 취하고 있다.

반면 문재인정부는 앞선 정부와 달리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방침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결을 달리한다. 또, 사드문제를 둘러싼 문제서도 양국의 입장은 첨예하다. 

사드는 지난 정부서 배치하기로 결정된 사안으로 이미 레이더와 발사대 2기가 배치된 상황이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들어 사드 추가 반입 과정 진상 조사와 사드 배치지인 경북 성주골프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검토로 인해 미국과 불편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한미 양국은 최대한 발언을 삼가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 연기 방침을 시사한 상황에서 미국은 사드 배치 철회는 없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히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 결정을 효과적으로 설명해 미국 측의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문제를 직접 거론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만큼 문 대통령이 사드에 대해 모호한 입장표명을 하면, 오히려 미국의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해부터 푼다
경제 협렵은?

경제 협력에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100일을 맞아 백악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무역적자를 이유로 한미FTA 재협상 또는 종료를 주장했다.

당장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미FTA 문제가 중심 의제가 될 가능성은 낮지만 앞으로 남은 4년간 문재인정부와 트럼프정부 간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서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고 협상을 원활이 이끌어나가기 위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제 카드'를 쓸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미에는 미국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을 중심으로 경제사절단이 동행할 방침이다. 당초 30명 안팎으로 예상됐던 사절단 규모는 50명 안팎으로 확대되고 주요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정책실을 중심으로 경제사절단의 규모와 참석자 등을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트럼프정부는 외국 기업에 강한 투자 압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회담을 앞두고 벌써부터 미국측의 압력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4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이하 암참)는 브리핑을 통해 한국정부에 ‘100억달러(10조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 구매펀드 조성’을 제안했다.

경제사절단 대거 파견
선물보따리가 통할까?


암참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서 ▲한미 FTA 미이행 사안 해결 ▲미국산 LNG 및 셰일가스 수입증대 ▲대외군사판매량 무역 수지 산출 시 반영 ▲미국 글로벌 엔트리 프로그램 개선 등 한미 정상회담서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이번 제안은 암참이 지난달 15∼18일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 국가무역위원회 및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도출한 결과라는 점에서 한미회담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암참의 지적과 같이 한미FTA 문제 해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향후 한-미 관계에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한미FTA 이익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연 200억달러 무역 적자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 상황서 문 대통령이 한미FTA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뚜렷이 보여준다면 향후 대미 무역에 득이 될 전망이다. 해결 방법으로는 석유 및 셰일가스 등 에너지원의 수입과 한국 정부 조달 예산으로 약 100억달러의 미국 제품 수입이 거론된다. 

이에 발맞춰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발걸음도 분주한 모양새다. 이미 세계적 브랜드인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은 미국 내 투자를 실시 중이거나 실시할 계획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내 가전공장 투자계획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고, 현대차는 올해 초 미국에 향후 5년간 31억달러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밖에 유력 대기업들이 경제사절단으로 나설 뜻을 내비쳤다. 방미와 동시에 경제사절단이 선물꾸러미를 펼치면 트럼프 대통령도 각종 정치적 현안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성 해소
대북관계 해빙

다만,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에 따라 실익과 평가는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이른바 '할 말 하는 외교'를 펼치고 돌아올 경우 기분은 내더라도 외교적 실익은 없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이 한미회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우선 불확실성 해소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군사적 동맹으로 이어져 있음에도 북한 대응에 대한 세부 내용에는 이견이 있다.

정상회담 과정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이 서로 접점을 찾는다면 북핵에 대한 국민적 불안과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아울러 현 정부가 추진코자 하는 북한 관련 공약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직접적인 현안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하더라도 트럼프와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하고 온다면 그것 자체가 성공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성급히 주요 현안에 대해 논쟁이 오고 갈 경우 한미동맹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국제사회에 비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밀월관계는 국내를 둘러싼 강대국과의 외교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드로 인해 우리나라에 경제보복을 가하고 있는 중국과의 협상전에서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역사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이 일본의 관계서 중재자 역할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신뢰관계 강화
포괄적인 협력

오늘 29일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방미를 통해 두 정상 간 개인적 신뢰와 유대 관계를 강화함은 물론 한미동맹을 더욱 위대한 동맹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비전을 공유할 것”이라며 “확고한 대북 공조를 포함해 양국 간 포괄적 협력의 기반을 굳건히 하는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트럼프 상대법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일본 전문가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정치학 석좌교수는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처럼 트럼프를 띄워주는 방식으로 상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트럼프는 전형적인 ‘예스맨’으로 비판을 싫어한다”며 “아베는 트럼프와 만나 자신이 얼마나 트럼프에 관심이 많고 호감이 있는지 피력해 트럼프가 아주 좋아했다”고 강조했다. 즉 커티스 교수는 문 대통령도 아베처럼 트럼프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커티스 교수는 또 문 대통령과 트럼프가 자주 만나고 대화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풀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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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