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정읍시 행정보복 논란

서둘러 허겁지겁 어설픈 복구작업

[일요시사 취재 1팀] 박호민 기자 = 정읍시와 잔디로골프텔의 행정폭력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읍시가 잔디로 사업을 방해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는 대행복구 마무리 공사를 두고서다. 양측 간 입장은 첨예하다. 주요 쟁점과 과정을 살펴봤다.
 

잔디로골프텔은 지난 2007년 4월 정읍시와 민자유치사업기본협약(MOU)을 체결하고 유스호스텔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다. 해당 부지는 정읍시 부전도 1065-14 외 6필지로 정읍시가 잔디로의 사업을 적극 도와준다는 것이 골자였다.

감리기술사 
실사는 했나

그러나 사업 내용과 진척 속도에 대한 이견이 나오면서 둘 사이는 극도로 나빠졌다. 급기야 정읍시는 2013년 9월 공사 지연을 이유로 투자협정 파기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잔디로는 그 과정서 정읍시가 행정절차를 무시하는 등의 행정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잔디로는 유스호스텔 사업의 수익성이 맞지 않아 2011년 온천 개발 가능성을 타진하고 정읍시에 허가를 요청했다. 정읍시는 2011년 온천공 신고에 적합 판정을 내렸지만 2013년 9월 돌연 온천개발 사업은 불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잔디로 측은 적절치 않은 행정절차라고 주장했다. 정읍시는 온천공 개발계획 승인신청이 지연됐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잔디로측은 반발했다. 


온천법에 따르면 시장·군수는 온천발견신고를 수리했을 때 수리한 날로부터 일정기간 이내에 온천공보호구역 지정 등을 해야하는데 정읍시는 온천공보호구역 지정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 잔디로 측은 행정절차상의 문제를 내세우며 온천발견신고 수리 취소 처분 및 대집행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양측 간 갈등은 정읍시가 사업 취소 후 명령한 적지복구 명령을 내리면서 극으로 치달았다. 특히 정읍시가 적지복구 기한 내 복구를 완료하지 않았다며 적지복구비용을 잔디로로부터 강제 유치시키면서 양측 간 견해 차이는 더욱 팽팽해졌다.

이후 정읍시는 대행사를 선정해 적지복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잔디로 측은 복구작업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는데 보험공사로부터 11억3000만원을 유치시키고 복구를 허술하게 마무리 지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관련 소송은 이미 진행 중이다. 잔디로가 제기한 대행복구 무효확인 소송(본안소송)과 복구집행정지 신청이다. 지난해 7월에 나온 1심 판결은 정읍시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서는 복구집행 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지난 1월 광주고등법원은 대행복구 무효 확인 소송 판결일로부터 14일이 지난날 까지 효력, 집행 및 절차의 속행을 정지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1심과 달리 본안 소송은 잔디로 측이 유리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본안 소송에 대한 선고가 있기까지 복구작업은 멈춰졌다. 그러나 정읍시 측은 현재 준공계를 받아 서둘러 복구 작업을 마치려고 하는 모양새다.

소송 잔디로에 유리하게 흘러가자
선고 앞두고 준공계 당겨 마무리


정읍시가 행정처분의 취소나 무효확인을 구하는 행정소송서 그 변론이 종결되기 전에 행정처분 실행이 완료된 경우, 그 행위가 위법한 것이라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별론으로 들어간다. 이럴 경우 그 처분의 취소나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의 이익이 사라지기 때문에 정읍시가 서둘러 복구진행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잔디로 측은 봤다.

따라서 복구작업 완료 여부도 쟁점 가운데 하나다. 정읍시는 지난 1월2일 대행복구를 맡은 정읍산림조합으로부터 준공계를 받고 복구를 마무리한 것으로 봤다.

잔디로 측은 복구작업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잔디로가 이처럼 주장하는 것은 2심 결정문을 근거로 한다. 법원은 정읍시가 제시한 증거만으로 복구대행공사가 완료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잔디로 측이 전문 업체 측에 복구 실행이 제대로 됐는지 여부를 확인해 본 결과 상당부분 기준에 미달한 부분이 발견돼 복구 완료로 보기는 힘들다는 주장이다. 

잔디로 측 자료에 따르면 복구 부지에 식재된 소나무, 이팝나무, 단풍나무, 능소화 등은 규격 미달이었다. 회화나무는 수량이 부족했다. 줄떼식재(잔디)는 괴사를 하거나 시공이 돼있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전석은 부실시공이 의심됐다.

잔디로 측은 대행업체가 복구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실제 감리기술사가 실사를 하지 않고 복구가 완료됐다는 준공계를 낸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있다.

행정 시스템상 
불가능한 이론

정읍시 측은 “준공계를 낸 과정에는 문제가 없다. 법원의 결정문과는 별개로 정읍시 측은 복구가 완료된 것으로 봤다”며 “다만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잔디로 측은 복구공사를 대행업체에 넘기는 과정 역시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했다. 잔디로에 따르면 정읍시는 잔디로의 적지복구 기한(2014년 4월30일∼2015년 5월31일)이 끝난 후 이틀 만인 지난 6월3일 사전 공지 없이 11억3000만원의 예치금을 유치시켰다. 

잔디로 측은 적지복구공사가 상당부분 진행된 상태였음에도 이를 감안하지 않고 전액을 청구해 유치시켰다는 점에서 다분히 감정적이고 보복적인 조치로 판단했다. 실제로 2015년 5월 정읍시에 제출된 제7차 감리보고서에 따르면 적지복구공사는 ▲토공 85% ▲부대공 100% ▲식재 20%가 진행됐다.

반면 정읍시는 충분히 기회를 줬다는 입장이다. 예치금 유치를 위한 공문을 수차례 보냈고 1년1개월의 공사기간을 줬는데도 공사가 지연됐다는 것. 수차례에 걸쳐 복구를 촉구하면서 ‘기일까지 완료하지 못할 경우 대행복구를 할 계획’임을 고지했다고 반박했다. 

정읍시 측은 “잔디로가 고지한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별다른 차도가 없는 데다 기간 내에 공사를 끝내지 못해 예치된 복구비로 충당한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잔디로는 정읍시의 일방적 산지 대행복구를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하기도 했다. 권익위는 잔디로의 손을 들어줬다. 정읍시에 시정 권고한 이유에 대해 산지관리법, 행정절차법 등을 들었다. 

산지관리법 제41조 제1조에 따르면 기간 내에 복구를 완료하지 않으면 대행하게 하고 비용을 예치된 복구비로 충당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권익위는 이 규정이 일반적 원칙만 정하고 구체적인 절차는 정하고 있지 않다고 해석했다.

행정목적을 위해 국민의 신체·재산 등에 실력을 가해 행정상 필요한 상태를 실현하고자 하는 침해적 행정처분에 해당한다는 게 권익위의 판단이다. 따라서 행정절차법에 따른 처분 절차가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잔디로가 복구공사를 50% 정도 진행했고, 복구공사를 수행할 의사를 내비친 점도 권고 이유로 꼽혔다. 권익위는 “허가지의 대행복구 중지를 구하는 잔디로의 주장은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된다”며 “이 같은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허가지의 대행복구를 실시한 정읍시의 처분은 위법·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지역경제 개발 
발목잡는 행정

또한 복구에 들어간 비용을 두고도 양측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미 50% 이상 진행된 복구작업에 예치금 11억원을 전부 유치시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또 공사비용이 많이들어갔다는 주장도 있다. 50%가량의 복구공사가 진행되는 데 드는 공사 비용은 대략 3억원 정도였는데 정읍시가 나머지 복구 공사에 들어간 비용은 6억7300만원이다. 


잔디로 측은 이 같이 복구 비용이 많이 들어간 것 역시 잔디로를 괴롭히는 ‘하나의 방법’으로 판단했다. 

정읍시는 예치금을 유치한 것은 당연한 절차라는 설명이다. 정읍시청 관계자는 “내장산 유스호스텔 건에 들어간 복구 비용 11억원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며 “관련 비용이 늘어난 것은 복구 대행 업체가 진행한 공사 과정서 비용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잔디로와 정읍시의 관계가 나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잔디로는 김생기 시장이 원인이 됐다고 봤다. 잔디로에 따르면 정읍시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현 김생기 시장 당선후 시장이 이 토지를 헐값에 넘기라는 요구가 있었는데 이를 거부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정읍시가 공문을 통해 해당 토지 매각과 기부채납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잔디로에 따르면 이후 정읍시가 행정적으로 어깃장을 놓기 시작했다. 잔디로 측은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사업을 하는데 정읍시가 행정적으로 보복을 가하는 것 같다”며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관련 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곳이 있었는데 정읍시 측은 행정적 조치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치열한 소송전 계속될 전망
상생의 길 도모의 목소리도

잔디로 측은 자신들이 유스호스텔 사업서 손을 뗄 경우 전북지역에 거점을 둔 다른 건설업체가 이 사업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즉, 정읍시가 잔디로를 의도적으로 몰아내고 사업권을 친 정읍시 성향의 제3자에게 넘기려는 게 아니냐는 것.

잔디로는 “정읍시가 제대로 된 행정지원만 해줬어도 사업이 지금처럼 좌초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잔디로가 손을 떼면 다른 건설사가 이 사업을 넘겨받기로 돼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돈다”고 지적했다.

정읍시는 공문을 보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잔디로 측에 토지매각과 기부채납의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낸 것은 잔디로 측이 땅 사용과 관련해 향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문의해와 일종의 제안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행정폭력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며 “잔디로 측이 사업 진행 의지가 안 보여 절차를 밟아갔던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정읍시는 대행복구 지연의 실질적 이유로 잔디로 측이 해당부지를 청소년수련시설(야영장) 건립을 위한 의도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내막 속에 현재 2심 본안소송이 한창 진행 중이다. 잔디로는 복구공사의 재판 결과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 등의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양측간 법정 다툼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양측 간 소모적인 법정보단 절충안을 마련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로에게 필요한 중재안은 없는 것일까. 

“적법 절차”
말만 되풀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정읍시는 적극적으로 법인 유치를 나서는 것이 일반적인데 법인과 각을 세우는 모습은 정읍시에 사업을 벌이려는 다른 사업자에게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며 “원만한 해결책 모색이 이제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간당간당’ 김생기 시장, 왜?

김생기(70) 전북 정읍시장이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시장직을 잃을 수도 있다. 

앞서 총선 과정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발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시장에게 직위상실형이 선고됐다. 전주지법 정읍지원 제2형사부(재판장 박노수 부장판사)이 지난달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 시장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것이다. 

이 형이 확정되면 김 시장은 시장직을 잃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선거운동에 개입할 때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공무원들에 비해 훨씬 크다”며 “피고인이 공직선거법의 입법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는 취지의 발언을 계속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김 시장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김 시장은 1심 선고 사흘만에 변호인을 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변호인 측은 “1심 재판부의 판단에 법리오해 및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며 항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김 시장은 고법으로의 항소를 통해 시장직을 유지하게 됐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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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