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는’ 국정원 IO의 세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6.12 10:24:36
  • 호수 1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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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에 붙어 앞잡이 노릇 ‘그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앞으로 국정원 직원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훈 신임 국가정보원장이 국내 정보 담당관(IO)을 폐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폐지되는 국정원 IO의 세계를 돌아봤다. 
 

“취임하면 바로 첫 번째 조치로 국내 정보관의 기관 출입을 전면 폐지하겠다.”

서훈 신임 국가정보원 원장은 지난 1일 취임식 후 국내 정보 담당관 제도를 완전하고 즉각적으로 폐지하라고 국정원에 지시했다. 서 원장은 “통상 IO(Intelligence Officer)라고 부르는 부처·기관·단체·언론 등에 출입하는 정보관들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역대 정권서 
실패했는데…

국정원 IO는 ‘정보관’ ‘담당관’ ‘연락관’ 등으로 불리며 사회 각 분야를 출입해왔다. 국회·정당·언론사 출입 IO 외에도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과 주요 기업 등 경제 분야를 담당하는 IO도 활동해왔다. 국내 파트 IO는 국정원 2차장이 담당하고 있다.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 의혹에 자주 연루돼왔다.

국정원 국내 IO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중앙정보부(이하 중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신정권이 들어서고 중정은 특무부대 요원 3000명을 중심으로 결성됐다. 그 후 급격히 요원수를 확대, 3년 뒤인 1964년에는 무려 37만명에 이른다. 


당시 중정 IO는 무소불위 권력이었다. 학생운동권, 친북한세력 외에 반(反) 유신세력 및 재야시민단체, 여성주의, 해방신학, 통일운동 등 반정부 또는 체제 비판 세력을 적발, 단속했다. 또 암암리에 정부시책을 홍보하고 여론을 정부에 유리하게 조성하는 등 권력의 말초신경 역할을 수행했다. 

실제로 중정 IO는 국회, 언론, 정부 부처 등에 상주하며 이들 동향을 살폈다. 특히 언론사에 상주하며 정권에 불리한 기사 삭제를 지시하는 등 언론 탄압도 서슴지 않았다. 이 외에도 검찰의 배후에서 수사권뿐만 아니라 기소권까지 실질적으로 행사했다. 

정보담당관 기관·단체 출입 폐지
사실상 정보수집·생산 중지 결단

중정의 정치 공작 사례로는 ‘부일장학회 헌납 및 경향신문 매각 사건’(5·16이후 군사정권이 사유재산과 언론기관을 강제로 탈취, 중정의 주도적 개입 의혹), ‘인민혁명당 및 민청학련 사건’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피의자들에 대한 고문과 사실 왜곡, 조작 의혹) 등이 있다.
 

이외에도 ‘동백림 사건’(1967년 선거 당시 중정이 공안정국을 조성하고자 사건의 실체를 조작했다는 의혹), ‘김대중 납치사건’(유신체제에 반대하며 일본에 체류 중이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납치한 사건으로 이후락 전 중정부장이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중정은 유신정권이 무너지고 전두환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로 확대·개편됐다. 기존의 대공, 대북, 방첩업무와 정보수집 업무는 여전했다. 오히려 더 강화됐다고 한다. 안기부는 남산(국내 파트)과 이문동(해외 파트)에 안기부 청사가 있었다. 보통 안기부 IO들은 “남산서 나왔다”는 표현을 쓰며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다. 

이 때문에 남산과 이문동 출신 간 반목도 심했다. 남산 IO는 당시 조직서도 실세 중 실세였다. 정치공작과 민주화운동 탄압을 하며, 정권 유지의 첨병이었다. 남산 출신들은 정권의 총애를 받아 출세길이 훤했다. 


반면 이문동 청사는 말 그대로 해외서 북한 공작원들과 맞서면서 온갖 정보를 수집하며,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를 수행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남산 출신들에 비해 표도 안 났다. 

수사기관 
IO는 필수? 

안기부의 정치 공작 사례로는 ‘KAL 858기 폭파사건’(1987년 대통령선거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안기부가 KAL858기 폭파를 자작했다는 설), ‘남한조선노동당 사건’(1992년 안기부가 대선을 앞두고 고문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조작, 과장했다는 의혹) 등이 있다. 국정원 IO가 이런 사건들을 주도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런 만행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개편하고 기능을 축소했다. 하지만 국정원 국내 파트의 정치 개입과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이명박·박근혜정권 10년 동안 국내 IO를 적극 활용해 정치 공작을 펼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각에선 40년 전 중앙정보부 시절로 퇴행했다는 비판도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이 시기 국정원의 미행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2013년 1월 국정원 직원이 신분을 속이고 진보단체서 활동하는 간부를 미행하다가 발각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 언론인 등 정치권서 국정원 사찰을 받았다는 주장이 늘었다.  
 

이들 정권서 국정원의 정치 개입 사건으로 ‘국정원 해킹 사건’(2015년 국정원이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해 불법 감청을 했다는 의혹),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원세훈 국정원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거를 방해했다는 의혹), ‘국정원 최순실 라인’(‘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과정에 국정원 IO가 연루됐다는 의혹) 등이 꼽힌다. 

중정→안기부→국정원 
정치공작 수단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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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 때문에 역대 정부에선 국정원의 국내 파트는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왔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3년 5월 국정원은 조직 개편을 통해 국내정보 담당인 2차장 산하의 대공정책실을 폐지하고 국가 안보와 관련 없는 부처나 언론 등의 IO 상시 출입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005년 8월 노 전 대통령과 언론사 정치부장단 간담회서 IO 출입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4년에도 국정원 IO들의 국회와 정당, 언론사 상시 출입을 금지하고 관련 조직을 폐지하거나 축소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에는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의지가 명확한 만큼 해당 업무를 관장해 온 조직에 대한 재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정원이 IO를 전면 폐지한다면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지속돼온 국정원의 정보 수집 행태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국정원은 각 부처와 기관 등에 상시 출입 담당관을 두고 정보를 수집해왔다. 국정원 정보는 장차관 등 고위 공무원과 기관장 인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공작의 달인?
또 흐지부지?


이 때문에 IO 업계에선 국정원 정보 파트가 완전히 폐지되기는 어렵다고 내다보고 있다. 

한 사정기관 IO 관계자는 “국정원은 정부의 각종 인사를 위해 신원 조회를 해야 하고 부처나 기관의 보안 점검도 한다”며 “사전 정보 없이 이런 업무를 수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사정기관 관계자는 “국내 파트 기능이 많이 축소되겠지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정원 대수술 예고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달 31일 국내 정보파트 폐지 등 강도 높은 국정원 개혁을 시사했다. 김병기 국정기획위 외교·안보 분과위원은 이날 국정원 업무보고를 받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 개혁 과제는 100가지도 넘을 것”이라며 “예산부터 조직, 인사, 업무 등 할 게 널려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하루만 보고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해서 이행 과정을 점검할 것”이라며 “국정원 개혁에 대해 강한 주문을 당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단기간에 급히 추진할 내용과 올해 안에 해야 할 개혁, 중장기적 과제 등을 나눠서 모두 챙기겠다. 그동안 야당이라는 이유로 국정원 개혁을 못 한다고 했었는데, 이제 안 통한다. 반드시 개혁에 성공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또 자신이 국정원 출신이라 과감한 국정원 개혁에 나서지 못할 것이란 주장에 대해 “어림없는 소리”라며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 직원과 역량 강화를 위한 개혁이지, 국정원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테러방지법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테러방지법에 독소조항은 당연히 빼야 한다”며 “오남용 방지 방안으로 강력한 제재 방안을 둔다면, 테러방지법도 국회서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들이 충분히 테러방지법의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없도록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국내정보 분야를 폐지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도 이행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 공약인데 (당연하다)”며 “다만, 어떤 식으로 이행하느냐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겠다”고 전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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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