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간당간당한 이양호 마사회장

적폐 리스트 오를라 ‘전전긍긍’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최순실 사태서 한국마사회는 정유라라는 시대가 낳은 괴물을 탄생시킨 ‘둥지’로 꼽힌다. 그 여파로 당시 현명관 마사회장이 밀려나고 이양호 현 마사회장이 마사회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 회장도 자리가 위태롭다. 회장 선임부터 알박기 인사란 비판이 나오면서 예견된 수순이다.
 

한국마사회는 설립 후 꾸준히 비리 복마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유난히 외풍이 센 공공기관이기 때문이다. 마사회가 설립되고 내부 승진을 통해 회장이 된 인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정권 눈치보기 
TF…실효성은?

1922년 4월 조선경마구락부(사단법인)서 1949년 한국마사회로 회명을 변경한 이후 60년의 기간동안 34명이 회장이 거쳐갔지만 회장직은 ‘관피아’ ‘낙하산’ 논란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권을 차지한 정당이 전리품처럼 자신의 인사들로 마사회를 채워왔기 때문이다. 

그 정점에 선 인물은 현명관 전임 마사회장이었다. 낙하산 논란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현 회장은 2013년 12월 회장직에 오르면서부터 낙하산 논란이 제기됐다. 현 전 회장은 196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1968년 감사원서 부감사관으로 일했다. 

1981년에는 호텔신라 이사로 선임돼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그는 삼성 주요계열사의 요직을 거치며 2010년 삼성물산 상임고문으로 삼성을 떠나기까지 삼성맨으로 살았다


. 그는 박근혜 대통령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이기도 하다. 현 전 회장은 박 대통령의 대선 당시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멤버다. 박 대통령의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 세우자)를 기획한 인물이다. 

이 점 때문에 현 전 회장이 마사회장직에 오르자 ‘낙하산 논란’으로 이어졌다. 현 회장은 회장직을 맡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잡음이 흘러나왔다. 마사회가 설립한 산하재단 ‘렛츠런재단’에 자신이 과거 속했던 전경련과 삼성 출신 인사들을 등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계속된 논란에도 현 전 회장은 회장직을 유지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로 현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임기를 끝으로 회장직서 물러났다. 그 배경에는 최순실 사건에 그가 이끈 마사회가 깊숙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다. 마사회와 현 전 마사회장은 압수수색과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청산 대상 명단에 포함?
솔솔 부는 ‘조기강판론’

공석이 된 마사회장 자리에 자연스레 눈길이 쏠렸다. 새로 선임되는 회장에 따라 마사회 의혹 해결을 위한 조사에 협조 정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서 마사회는 투명한 인선으로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마사회 노조측은 회장 인선 막바지에 성명서를 내고 마사회가 바뀌기를 희망했다. 노조는 현 전 회장에 대해 “체질을 개선한다고 포장했으나 사실상 조직을 사유화해 조직 내 줄세우기, 낙인찍기로 일관했고 경영농단을 일삼다가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특히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과 관련한 의혹에 연루돼 마사회에도 치유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마사회 내부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대통령 권한 대행이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공석이었던 공공기관장 인선을 단행했다. 가장 먼저 단행한 공공기관장 인선은 마사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낙하산과 알박기 인사 논란이 동시에 제기됐다. 정부는 TK(대구+경북) 인사를 회장으로 선임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후임 회장으로 이양호 전 농촌진흥원 원장이 마사회장으로 낙점됐다. 일각에선 최순실 관련 의혹을 핵심 연결고리인 마사회의 의혹을 감추기 위해 TK 출신을 회장 자리에 앉히는 ‘알박기’ 인사를 단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툭하면 사건
비리 백화점

이 회장은 마사회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1982년 제26회 행정고시를 합격했다. 1983년 총무처 수습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며, 주로 농림부에 몸 담다 2016년 8월 농촌진흥청장 자리를 끝으로 잠시 공직생활을 떠나있었다. 

그는 TK 인사로 분류됐다. 이 회장은 구미시서 태어났으며 영남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를 졸업했다.

인선 과정도 논란을 자초했다. 당시는 최순실 사태로 나라가 어수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정지로 각종 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던 황 전 국무총리는 시급한 현안을 제쳐두고 서둘러 마사회 회장 인사를 단행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황 전 총리는 마사회 회장 인선과 관련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려운데 조금이라도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고,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데도 도움이 되는 이런 공백들을 메우는 일은 부득이 해야 되지 않겠나”라며 ‘경제’라는 논리는 끌어들였다.

하지만 당시 많은 공공기관장들의 인선이 밀린 상황이라 뒷말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최고위원은 “국민과 국회로부터 탄핵당한 박근혜정부가 국회와의 협치에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서 재빨리 인사권부터 행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황 권한대행은 마사회장 내정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여타 공기업에 대한 인사권 행사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당시 최순실 사태와 연관된 마사회 의혹들을 감추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황 전 총리의 인선 강행으로 이 회장은 마사회에 합류할 수 있었다. 또한 최순실 사태로 나라가 숨가쁘게 돌아가면서 마사회는 국민들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졌다. 그 사이 박 전 대통령은 탄핵됐으며, 나라는 문재인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알박기 논란 속에 선임
해소 못한 최순실 의혹


이에 따라 마사회에 대한 관심도 다시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도 규명되지 않은 마사회 관련 의혹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알박기 인사라는 논란이 일었던 이 회장을 조기 강판하고 적합한 인물을 새로 앉혀야 한다는 목소리다.

최순실과 마사회의 커넥션 논란은 재판정서 계속되고 있다. 최순실의 승마계 측근으로 알려진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마사회 인선에 최순실이 개입한 사례들을 증언했다. 

박 전 전무는 “2013년 5월 봄 강남 삼성동의 한정식집서 최순실의 남편인 정윤회를 만났는데 정씨가 이상영(전 마사회 부회장)씨를 ‘앞으로 마사회에 갈 사람’이라고 소개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후 마사회 말산업육성본부장 겸 부회장직에 올랐다.

증언에 따르면 이 전 부회장은 2015년 초 임기 만료를 앞두고 박 전 전무에게 연락해 “정윤회 실장을 만나게 해 달라. 유임을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조기 강판에 대한 말이 나오는 이유는 최순실 사태라는 외부적인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위해서도 이 회장이 적합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화가 싫은 
공기업 특성


논란 속에 인선된 이 회장이 개혁의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마사회는 내부적으로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사회는 공공기관 가운데 2번째로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 이 때문에 마사회는 문재인정부의 정책 기조 방향에 따라 대수술이 불가피한 조직으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마사회에 비정규직과 관련한 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언론의 눈길이 마사회에 집중됐다.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의 유명 마필관리사 박경근씨가 지난 27일 자살한 것이다. 박씨는 2004년부터 마필관리사로 일하면서 국내 1호 말 마사지사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지만 비정규직 신분이었다. 

박씨는 전날 오후 9시 아내와 통화에서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한 뒤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유서에는 ‘X같은 마사회’라고 시작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마사회에 대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마필관리사의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안정성을 보장받기 힘들다. 따라서 박씨가 열악한 일자리 때문에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노동조합은 박씨의 죽음에 대해 “한국마사회의 가혹한 착취 구조 때문”이라며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향후 마사회에 대한 개혁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마사회는 문재인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상생일자리’ TF를 구성한 상황이었다.
 

한국마사회는 현 정부 일자리창출 정책의 선도적 이행을 위해 ‘상생 일자리TF’를 신설한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부회장을 총괄TF팀장으로 하고 주요 부서장이 대거 포진해 이양호 한국마사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할 예정이었다.

이 회장은 “경영 효율화서 공공성 강화로 공공기관 정책이 옮겨지는 추세에 발맞춰 일자리 마련과 상생경영을 위한 대책을 적극 마련할 계획”이라며 “전담조직을 통해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적극 부응할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하지만 TF가동 초기에 박씨 자살 파문이라는 대형 암초를 만났다. 여기에 이 회장의 실행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알박기 논란까지 제기됐던 이 회장이 마사회 개혁의 당위성을 마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아닌 마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면 마사회 내 문제를 개혁하기 힘들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방만 경영으로 재미를 본 마사회가 회장 선임에서부터 알박기 인사라는 약점을 가진 이 회장의 개혁 의지를 오롯이 실행할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이 때문에 마사회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의혹과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회장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 불가피해보인다.

개혁 목소리
매번 그때뿐

공공기관 출신의 한 인사는 “마사회와 같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심한 공공기관은 개혁을 실행해야 하는 정규직 직원들의 반발로 회사 내부서조차도 개혁에 시큰둥할 수 있다”며 “이럴 경우 개혁 의지와 추진력을 가진 기관장이 필요한데 알박기 회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이 회장이 직원들의 동의를 구해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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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