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간당간당한 이양호 마사회장

적폐 리스트 오를라 ‘전전긍긍’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최순실 사태서 한국마사회는 정유라라는 시대가 낳은 괴물을 탄생시킨 ‘둥지’로 꼽힌다. 그 여파로 당시 현명관 마사회장이 밀려나고 이양호 현 마사회장이 마사회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 회장도 자리가 위태롭다. 회장 선임부터 알박기 인사란 비판이 나오면서 예견된 수순이다.
 

한국마사회는 설립 후 꾸준히 비리 복마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유난히 외풍이 센 공공기관이기 때문이다. 마사회가 설립되고 내부 승진을 통해 회장이 된 인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정권 눈치보기 
TF…실효성은?

1922년 4월 조선경마구락부(사단법인)서 1949년 한국마사회로 회명을 변경한 이후 60년의 기간동안 34명이 회장이 거쳐갔지만 회장직은 ‘관피아’ ‘낙하산’ 논란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권을 차지한 정당이 전리품처럼 자신의 인사들로 마사회를 채워왔기 때문이다. 

그 정점에 선 인물은 현명관 전임 마사회장이었다. 낙하산 논란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현 회장은 2013년 12월 회장직에 오르면서부터 낙하산 논란이 제기됐다. 현 전 회장은 196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1968년 감사원서 부감사관으로 일했다. 

1981년에는 호텔신라 이사로 선임돼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그는 삼성 주요계열사의 요직을 거치며 2010년 삼성물산 상임고문으로 삼성을 떠나기까지 삼성맨으로 살았다


. 그는 박근혜 대통령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이기도 하다. 현 전 회장은 박 대통령의 대선 당시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멤버다. 박 대통령의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 세우자)를 기획한 인물이다. 

이 점 때문에 현 전 회장이 마사회장직에 오르자 ‘낙하산 논란’으로 이어졌다. 현 회장은 회장직을 맡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잡음이 흘러나왔다. 마사회가 설립한 산하재단 ‘렛츠런재단’에 자신이 과거 속했던 전경련과 삼성 출신 인사들을 등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계속된 논란에도 현 전 회장은 회장직을 유지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로 현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임기를 끝으로 회장직서 물러났다. 그 배경에는 최순실 사건에 그가 이끈 마사회가 깊숙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다. 마사회와 현 전 마사회장은 압수수색과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청산 대상 명단에 포함?
솔솔 부는 ‘조기강판론’

공석이 된 마사회장 자리에 자연스레 눈길이 쏠렸다. 새로 선임되는 회장에 따라 마사회 의혹 해결을 위한 조사에 협조 정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서 마사회는 투명한 인선으로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마사회 노조측은 회장 인선 막바지에 성명서를 내고 마사회가 바뀌기를 희망했다. 노조는 현 전 회장에 대해 “체질을 개선한다고 포장했으나 사실상 조직을 사유화해 조직 내 줄세우기, 낙인찍기로 일관했고 경영농단을 일삼다가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특히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과 관련한 의혹에 연루돼 마사회에도 치유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마사회 내부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대통령 권한 대행이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공석이었던 공공기관장 인선을 단행했다. 가장 먼저 단행한 공공기관장 인선은 마사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낙하산과 알박기 인사 논란이 동시에 제기됐다. 정부는 TK(대구+경북) 인사를 회장으로 선임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후임 회장으로 이양호 전 농촌진흥원 원장이 마사회장으로 낙점됐다. 일각에선 최순실 관련 의혹을 핵심 연결고리인 마사회의 의혹을 감추기 위해 TK 출신을 회장 자리에 앉히는 ‘알박기’ 인사를 단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툭하면 사건
비리 백화점

이 회장은 마사회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1982년 제26회 행정고시를 합격했다. 1983년 총무처 수습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며, 주로 농림부에 몸 담다 2016년 8월 농촌진흥청장 자리를 끝으로 잠시 공직생활을 떠나있었다. 

그는 TK 인사로 분류됐다. 이 회장은 구미시서 태어났으며 영남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를 졸업했다.

인선 과정도 논란을 자초했다. 당시는 최순실 사태로 나라가 어수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정지로 각종 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던 황 전 국무총리는 시급한 현안을 제쳐두고 서둘러 마사회 회장 인사를 단행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황 전 총리는 마사회 회장 인선과 관련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려운데 조금이라도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고,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데도 도움이 되는 이런 공백들을 메우는 일은 부득이 해야 되지 않겠나”라며 ‘경제’라는 논리는 끌어들였다.

하지만 당시 많은 공공기관장들의 인선이 밀린 상황이라 뒷말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최고위원은 “국민과 국회로부터 탄핵당한 박근혜정부가 국회와의 협치에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서 재빨리 인사권부터 행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황 권한대행은 마사회장 내정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여타 공기업에 대한 인사권 행사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당시 최순실 사태와 연관된 마사회 의혹들을 감추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황 전 총리의 인선 강행으로 이 회장은 마사회에 합류할 수 있었다. 또한 최순실 사태로 나라가 숨가쁘게 돌아가면서 마사회는 국민들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졌다. 그 사이 박 전 대통령은 탄핵됐으며, 나라는 문재인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알박기 논란 속에 선임
해소 못한 최순실 의혹


이에 따라 마사회에 대한 관심도 다시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도 규명되지 않은 마사회 관련 의혹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알박기 인사라는 논란이 일었던 이 회장을 조기 강판하고 적합한 인물을 새로 앉혀야 한다는 목소리다.

최순실과 마사회의 커넥션 논란은 재판정서 계속되고 있다. 최순실의 승마계 측근으로 알려진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마사회 인선에 최순실이 개입한 사례들을 증언했다. 

박 전 전무는 “2013년 5월 봄 강남 삼성동의 한정식집서 최순실의 남편인 정윤회를 만났는데 정씨가 이상영(전 마사회 부회장)씨를 ‘앞으로 마사회에 갈 사람’이라고 소개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후 마사회 말산업육성본부장 겸 부회장직에 올랐다.

증언에 따르면 이 전 부회장은 2015년 초 임기 만료를 앞두고 박 전 전무에게 연락해 “정윤회 실장을 만나게 해 달라. 유임을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조기 강판에 대한 말이 나오는 이유는 최순실 사태라는 외부적인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위해서도 이 회장이 적합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화가 싫은 
공기업 특성


논란 속에 인선된 이 회장이 개혁의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마사회는 내부적으로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사회는 공공기관 가운데 2번째로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 이 때문에 마사회는 문재인정부의 정책 기조 방향에 따라 대수술이 불가피한 조직으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마사회에 비정규직과 관련한 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언론의 눈길이 마사회에 집중됐다.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의 유명 마필관리사 박경근씨가 지난 27일 자살한 것이다. 박씨는 2004년부터 마필관리사로 일하면서 국내 1호 말 마사지사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지만 비정규직 신분이었다. 

박씨는 전날 오후 9시 아내와 통화에서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한 뒤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유서에는 ‘X같은 마사회’라고 시작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마사회에 대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마필관리사의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안정성을 보장받기 힘들다. 따라서 박씨가 열악한 일자리 때문에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노동조합은 박씨의 죽음에 대해 “한국마사회의 가혹한 착취 구조 때문”이라며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향후 마사회에 대한 개혁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마사회는 문재인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상생일자리’ TF를 구성한 상황이었다.
 

한국마사회는 현 정부 일자리창출 정책의 선도적 이행을 위해 ‘상생 일자리TF’를 신설한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부회장을 총괄TF팀장으로 하고 주요 부서장이 대거 포진해 이양호 한국마사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할 예정이었다.

이 회장은 “경영 효율화서 공공성 강화로 공공기관 정책이 옮겨지는 추세에 발맞춰 일자리 마련과 상생경영을 위한 대책을 적극 마련할 계획”이라며 “전담조직을 통해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적극 부응할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하지만 TF가동 초기에 박씨 자살 파문이라는 대형 암초를 만났다. 여기에 이 회장의 실행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알박기 논란까지 제기됐던 이 회장이 마사회 개혁의 당위성을 마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아닌 마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면 마사회 내 문제를 개혁하기 힘들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방만 경영으로 재미를 본 마사회가 회장 선임에서부터 알박기 인사라는 약점을 가진 이 회장의 개혁 의지를 오롯이 실행할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이 때문에 마사회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의혹과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회장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 불가피해보인다.

개혁 목소리
매번 그때뿐

공공기관 출신의 한 인사는 “마사회와 같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심한 공공기관은 개혁을 실행해야 하는 정규직 직원들의 반발로 회사 내부서조차도 개혁에 시큰둥할 수 있다”며 “이럴 경우 개혁 의지와 추진력을 가진 기관장이 필요한데 알박기 회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이 회장이 직원들의 동의를 구해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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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