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진화하는 청소년 비행문화 천태만상

음란한 아이들 “갈 데까지 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10대들의 비행문화가 갈수록 진화해 가고 있다. 어린 시절의 치기어린 행동으로만 생각되던 예전과는 달리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 더욱 잔인해지고 지능화된 10대들의 비행문화. 대책이 시급하다.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코인노래방이 아지트로 각광받고 있다. 코인노래방은 기계가 설치된 작은 부스 안에서 한 곡에 500원 정도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공간이다.

10여년 전부터 놀이공원이나 번화가를 중심으로 생겼는데 최근 의식주와 취미생활을 혼자 하는 ‘혼족’이 늘면서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무인 코인노래방이 늘면서 청소년 일탈을 방치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유로운 일탈]
코인노래방

현행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은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오후 10시 이후 노래방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울시내 노래연습장 6447곳 가운데 192곳이 코인노래방으로 운영된다.

노래연습장의 등록, 관리를 담당하는 한 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중반부터 코인노래방 등록이 급증했다”며 “지난해 6월 이후 우리 구에 새로 등록한 노래연습장 11곳 모두가 코인노래방”이라고 설명했다.


각 방서 결제하기 때문에 별다른 관리가 필요하지 않는 코인노래방은 청소년들이 어른의 눈을 피해 탈선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한 노래방 업주는 “카운터에 있지 않아도 CCTV로 노래방 내부를 다 보고 있다”며 “CCTV로 보고 있다가 청소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현장에 가서 신분증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의 증언은 달랐다. 이웃 상점 종업원 김모(22)씨는 “청소년으로 보이는 손님이 술을 가지고 들어가도 업주가 내려온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더욱 잔인해지고 지능화 ‘심각 단계’
갈수록 숨어드는 아지트 ‘일탈 방치’

코인노래방 주변서 만난 고등학생 A군은 “사장이나 종업원이 없거나 있어도 신분증 검사를 잘 안 하는 코인노래방을 ‘잘 뚫리는 곳’이라고 부른다. 많은 친구들이 오후 10시 이후에 잘 뚫리는 노래방을 찾는다”고 말했다.

경찰과 구청은 단속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코인노래방 밀집지역 지구대의 한 경찰은 “청소년들이 코인노래방서 술과 담배를 한다는 신고가 종종 들어온다. 하지만 출동해도 노래방에 업주나 종업원이 없어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고 이미 청소년들은 현장을 떠난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서울의 한 구 관계자는 “오후 10시 넘어 청소년이 출입하는 현장이 적발되면 해당 노래방에 영업정지 10일 등 행정처분을 한다. 하지만 모든 업소를 단속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가출 해방구]
24시간 찜질방

최근 찜질방에선 청소년들에 의한 열쇠털이 절도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회식자리가 많은 연말연초엔 특히 비행 청소년들이 찜질방 투숙객들을 범죄 표적으로 삼는다.

이들 청소년은 찜질방서 자는 사람들의 열쇠를 몰래 훔친 뒤 옷장을 열고 금품을 훔쳐 달아나는 수법을 사용한다. 열쇠를 빼낼 때는 문구용 커터칼, 손톱깎이 등을 이용한다.

사실 찜질방은 과거부터 청소년 범죄 온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이라는 특성에 따라 가출 청소년들의 숙박장소로 쓰이면서 도난 사고 등 각종 청소년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청소년보호법을 통해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청소년들의 찜질방 출입을 제한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찜질방은 찾기 힘들다.

청소년들이 찜질방서 숙박하기 위해서는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출입동의서가 있어야 하는데 청소년들이 부모의 주소, 전화번호 등 간단한 인적사항만 적어내면 사실상 무사 통과다.

서울의 한 대형 찜질방 직원은 “교복 차림이 아니면 청소년인 것을 알아채기도 힘들거니와 일일이 신분증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 불가능하다. 일부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서 청소년 고객들의 출입을 아예 막을 수도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카운터에 맡긴 귀중품은 우리가 관리하지만 그게 아닌 이상은 신경 쓰기가 힘들다. 찜질방에 도둑이 많다는 소문이 돌면 안 좋으니까 되도록 조용히 넘어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시민 김모(50·회사원)씨는 “찜질방을 자주 이용하는데 청소년 출입이 제한된 시간에도 청소년들이 술을 먹고 들어와 추태를 부리는 경우를 자주 본다”며 “찜질방 관련 범죄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지만 단속의 손길은 미흡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모 구청 관계자는 “지도점검을 나가더라도 단속 실적이 없으면 일을 하지 않고 놀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주로 시설 쪽이나 위생 쪽으로 단속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또다른 구청 관계자는 “이들 시설에 대한 지도점검을 2∼3차례 정도 실시하고 있으나 현장서 이러한 사례들을 적발하기는 무척 힘들다”고 해명했다.

[대범해진 10대]
카셰어링


10대들은 점차 대범해진다. 어른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카셰어링 서비스도 요즘 10대 청소년들의 범죄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부산 금정경찰서는 심야시간에 렌터카를 몰고 다니며 자전거 22대 등을 훔친 김모(16)군 등 10대 8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김군 등은 2015년 6월부터 올해 2월 말까지 부산 강서구의 군인아파트와 사하구의 한 고등학교 등에 침입해 23차례에 걸쳐 자전거 22대와 자동차 공구 50점 등 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

이들은 주로 보관대에 세워둔 자전거의 잠금장치를 절단기로 자르고 나서 렌터카에 싣고 달아나는 수법을 사용했다. 피해자는 모두 26명에 이르며 훔친 자전거는 주로 온라인 중고물품 사이트를 통해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조사 결과 김군 등은 2대의 렌터카에 나눠 타고 범행을 저지르면서 운전면허도 없이 부모 명의의 신용카드로 차량을 빌린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일반 렌터카 업체와 달리 카셰어링 업체 렌터카는 직원이 직접 나와 회원 본인 여부와 운전면허증을 확인하는 절차가 없어 10대 범죄에 자주 악용되고 있다”며 “회원 본인이 아니더라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고 있으면 모바일 어플 등을 통해 접촉이 가능하는 등 본인 인증 절차가 많이 허술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카셰어링 서비스 업체 측은 “무인시스템이 기본 운영방식이라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휴대폰 본인 인증 도입 등 보안 강화에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른 뺨치는]
보험사기

교통사고법을 역이용해 2년 넘게 억대의 자동차 보험사기를 이어 온 10대들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김모(18)군을 포함한 10대 24명은 남양주 일대를 중심으로 2014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년간 총 17차례에 걸쳐 교통사고 보험사기를 벌여 총 1억원이 넘는 합의금을 받아냈다.

이들은 주로 편도 1차선 도로서 주·정차 차량을 피하려 불가피하게 중앙선을 잠시 넘는 차량들을 범행 대상으로 골랐다. 중앙선을 침범한 운전자는 교통사고특례법상 중과실처벌 대상이라 벌금이 나와 형사처벌을 받기에 신고를 꺼린다는 점을 악용한 것.

김군 등은 사기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옷을 사거나 음식을 사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기를 주도했던 김군을 구속하고 나머지 24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이 같은 일은 전북 전주서도 벌어졌다. 전주덕진경찰서는 지난달 일방통행로서 역주행하는 차량을 고의로 들이받고 보험금을 타낸 10대 15명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역주행하는 차량을 이른바 ‘망잡이’가 발견하고 공범에게 연락하면 공범이 자신의 차량으로 고의로 역주행하는 차량에 부딪치는 수법을 사용해 6달 동안 전주 시내서만 여섯 차례의 고의사고를 내 보험금 2400만원을 챙겼다.

[사이버 공간]
지능적으로

10대들의 범행은 사이버 공간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국내서 사이버범죄를 일으키는 일명 ‘블랙 해커(크래커)’는 5명 중 1명꼴로 10대 청소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따르면 불법 해킹을 시도하는 미성년자가 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관리가 필요한 상황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집계한 지난해 정보통신망 침해형 범죄 피의자 연령대별 비율 통계서 10대가 17.7%로 전년 16% 대비 상승했다.

이처럼 10대들이 해킹을 쉽게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최근 해킹 도구와 관련 기술의 동영상 강의가 인터넷에 넘치며 해킹 진입 장벽이 낮아진 환경적 변화가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디지털에 친숙한 10대는 유튜브 등을 통해 공유되는 해킹기술을 익히기 쉽다. 특히 해커들 사이에서 기초해킹 입문 프로그램으로 통하는 ‘칼리 리눅스’에 대한 서적 등도 많아져 누구나 마음을 먹으면 해커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 4일 불법도박사이트 업체와 손잡고 경쟁 사이트에 디도스 공격을 하고 개인정보를 빼돌려 판매한 10대 해커 13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정부 산하기관이 주관한 정보보안전문가 교육을 받은 학생들로 도박사이트 운영자로부터 의뢰를 받아 22개 사이트를 해킹해 개인정보 1만8000여건을 유출했다.

이미 가정·학교 울타리 벗어나 
범정부 차원 사회적 시스템 시급

직접 게임 불법프로그램을 만들어 파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지난해 8월 대전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인기 1인칭 슈팅게임(FPS)서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캐릭터의 공격능력을 강화하는 일명 ‘핵’을 제작해 판매한 중학생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평소 이 게임을 즐긴 이들은 독학으로 익혀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 게임 설정 파일 일부를 수정해 가면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용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사이버보안인재센터 보안교육기획팀 팀장은 “10대 해커들이 혼자 독학해 해킹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가 그룹이나 학원 등의 모임을 통해 관련 기술을 공유해 익히고 있다”며 “이를 위해 보안 기술을 가르쳐 주기 전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윤리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사례들처럼 범죄조직서 해킹에 재능있는 10대를 이용하고 버리는 상황도 늘고 있어 학교와 경찰서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네트워크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청소년 범죄는 대부분 호기심과 충동적인 행동에 기인하고 있으며 죄의식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게 특징이다.

인터넷이나 게임에 중독돼 인간 관계와 사회적인 교류가 결여된 상황서 죄의식 없이 단순히 범죄를 모방하고 호기심서 시작된 범죄가 강력범죄로 변하는 경우가 많아 예방 노력이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죄의식 부족 심각
예방 노력이 절실

한 경찰청 아동청소년계장은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은 이미 가정이나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의 보살핌을 기대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범죄의 심각성이나 자신의 인생에 미칠 영향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범행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들 청소년의 문제를 상담하고 치료할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청소년 범죄의 연소화와 우발적 범죄의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단기간 처방으로는 부족하다”며 “가정과 학교에서의 정기적인 인성 교육을 통해 규칙을 준수하고 가치관을 적립하는 과정이 장기간에 걸쳐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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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