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10대들의 비행문화가 갈수록 진화해 가고 있다. 어린 시절의 치기어린 행동으로만 생각되던 예전과는 달리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 더욱 잔인해지고 지능화된 10대들의 비행문화. 대책이 시급하다.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코인노래방이 아지트로 각광받고 있다. 코인노래방은 기계가 설치된 작은 부스 안에서 한 곡에 500원 정도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공간이다.
10여년 전부터 놀이공원이나 번화가를 중심으로 생겼는데 최근 의식주와 취미생활을 혼자 하는 ‘혼족’이 늘면서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무인 코인노래방이 늘면서 청소년 일탈을 방치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유로운 일탈]
코인노래방
현행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은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오후 10시 이후 노래방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울시내 노래연습장 6447곳 가운데 192곳이 코인노래방으로 운영된다.
노래연습장의 등록, 관리를 담당하는 한 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중반부터 코인노래방 등록이 급증했다”며 “지난해 6월 이후 우리 구에 새로 등록한 노래연습장 11곳 모두가 코인노래방”이라고 설명했다.
각 방서 결제하기 때문에 별다른 관리가 필요하지 않는 코인노래방은 청소년들이 어른의 눈을 피해 탈선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한 노래방 업주는 “카운터에 있지 않아도 CCTV로 노래방 내부를 다 보고 있다”며 “CCTV로 보고 있다가 청소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현장에 가서 신분증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의 증언은 달랐다. 이웃 상점 종업원 김모(22)씨는 “청소년으로 보이는 손님이 술을 가지고 들어가도 업주가 내려온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더욱 잔인해지고 지능화 ‘심각 단계’
갈수록 숨어드는 아지트 ‘일탈 방치’
코인노래방 주변서 만난 고등학생 A군은 “사장이나 종업원이 없거나 있어도 신분증 검사를 잘 안 하는 코인노래방을 ‘잘 뚫리는 곳’이라고 부른다. 많은 친구들이 오후 10시 이후에 잘 뚫리는 노래방을 찾는다”고 말했다.
경찰과 구청은 단속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코인노래방 밀집지역 지구대의 한 경찰은 “청소년들이 코인노래방서 술과 담배를 한다는 신고가 종종 들어온다. 하지만 출동해도 노래방에 업주나 종업원이 없어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고 이미 청소년들은 현장을 떠난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서울의 한 구 관계자는 “오후 10시 넘어 청소년이 출입하는 현장이 적발되면 해당 노래방에 영업정지 10일 등 행정처분을 한다. 하지만 모든 업소를 단속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가출 해방구]
24시간 찜질방
최근 찜질방에선 청소년들에 의한 열쇠털이 절도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회식자리가 많은 연말연초엔 특히 비행 청소년들이 찜질방 투숙객들을 범죄 표적으로 삼는다.
이들 청소년은 찜질방서 자는 사람들의 열쇠를 몰래 훔친 뒤 옷장을 열고 금품을 훔쳐 달아나는 수법을 사용한다. 열쇠를 빼낼 때는 문구용 커터칼, 손톱깎이 등을 이용한다.
사실 찜질방은 과거부터 청소년 범죄 온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이라는 특성에 따라 가출 청소년들의 숙박장소로 쓰이면서 도난 사고 등 각종 청소년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청소년보호법을 통해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청소년들의 찜질방 출입을 제한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찜질방은 찾기 힘들다.
청소년들이 찜질방서 숙박하기 위해서는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출입동의서가 있어야 하는데 청소년들이 부모의 주소, 전화번호 등 간단한 인적사항만 적어내면 사실상 무사 통과다.
서울의 한 대형 찜질방 직원은 “교복 차림이 아니면 청소년인 것을 알아채기도 힘들거니와 일일이 신분증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 불가능하다. 일부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서 청소년 고객들의 출입을 아예 막을 수도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카운터에 맡긴 귀중품은 우리가 관리하지만 그게 아닌 이상은 신경 쓰기가 힘들다. 찜질방에 도둑이 많다는 소문이 돌면 안 좋으니까 되도록 조용히 넘어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시민 김모(50·회사원)씨는 “찜질방을 자주 이용하는데 청소년 출입이 제한된 시간에도 청소년들이 술을 먹고 들어와 추태를 부리는 경우를 자주 본다”며 “찜질방 관련 범죄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지만 단속의 손길은 미흡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모 구청 관계자는 “지도점검을 나가더라도 단속 실적이 없으면 일을 하지 않고 놀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주로 시설 쪽이나 위생 쪽으로 단속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또다른 구청 관계자는 “이들 시설에 대한 지도점검을 2∼3차례 정도 실시하고 있으나 현장서 이러한 사례들을 적발하기는 무척 힘들다”고 해명했다.
[대범해진 10대]
카셰어링
10대들은 점차 대범해진다. 어른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카셰어링 서비스도 요즘 10대 청소년들의 범죄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부산 금정경찰서는 심야시간에 렌터카를 몰고 다니며 자전거 22대 등을 훔친 김모(16)군 등 10대 8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김군 등은 2015년 6월부터 올해 2월 말까지 부산 강서구의 군인아파트와 사하구의 한 고등학교 등에 침입해 23차례에 걸쳐 자전거 22대와 자동차 공구 50점 등 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
이들은 주로 보관대에 세워둔 자전거의 잠금장치를 절단기로 자르고 나서 렌터카에 싣고 달아나는 수법을 사용했다. 피해자는 모두 26명에 이르며 훔친 자전거는 주로 온라인 중고물품 사이트를 통해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조사 결과 김군 등은 2대의 렌터카에 나눠 타고 범행을 저지르면서 운전면허도 없이 부모 명의의 신용카드로 차량을 빌린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일반 렌터카 업체와 달리 카셰어링 업체 렌터카는 직원이 직접 나와 회원 본인 여부와 운전면허증을 확인하는 절차가 없어 10대 범죄에 자주 악용되고 있다”며 “회원 본인이 아니더라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고 있으면 모바일 어플 등을 통해 접촉이 가능하는 등 본인 인증 절차가 많이 허술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카셰어링 서비스 업체 측은 “무인시스템이 기본 운영방식이라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휴대폰 본인 인증 도입 등 보안 강화에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른 뺨치는]
보험사기
교통사고법을 역이용해 2년 넘게 억대의 자동차 보험사기를 이어 온 10대들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김모(18)군을 포함한 10대 24명은 남양주 일대를 중심으로 2014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년간 총 17차례에 걸쳐 교통사고 보험사기를 벌여 총 1억원이 넘는 합의금을 받아냈다.
이들은 주로 편도 1차선 도로서 주·정차 차량을 피하려 불가피하게 중앙선을 잠시 넘는 차량들을 범행 대상으로 골랐다. 중앙선을 침범한 운전자는 교통사고특례법상 중과실처벌 대상이라 벌금이 나와 형사처벌을 받기에 신고를 꺼린다는 점을 악용한 것.
김군 등은 사기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옷을 사거나 음식을 사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기를 주도했던 김군을 구속하고 나머지 24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이 같은 일은 전북 전주서도 벌어졌다. 전주덕진경찰서는 지난달 일방통행로서 역주행하는 차량을 고의로 들이받고 보험금을 타낸 10대 15명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역주행하는 차량을 이른바 ‘망잡이’가 발견하고 공범에게 연락하면 공범이 자신의 차량으로 고의로 역주행하는 차량에 부딪치는 수법을 사용해 6달 동안 전주 시내서만 여섯 차례의 고의사고를 내 보험금 2400만원을 챙겼다.
[사이버 공간]
지능적으로
10대들의 범행은 사이버 공간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국내서 사이버범죄를 일으키는 일명 ‘블랙 해커(크래커)’는 5명 중 1명꼴로 10대 청소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따르면 불법 해킹을 시도하는 미성년자가 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관리가 필요한 상황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집계한 지난해 정보통신망 침해형 범죄 피의자 연령대별 비율 통계서 10대가 17.7%로 전년 16% 대비 상승했다.
이처럼 10대들이 해킹을 쉽게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최근 해킹 도구와 관련 기술의 동영상 강의가 인터넷에 넘치며 해킹 진입 장벽이 낮아진 환경적 변화가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디지털에 친숙한 10대는 유튜브 등을 통해 공유되는 해킹기술을 익히기 쉽다. 특히 해커들 사이에서 기초해킹 입문 프로그램으로 통하는 ‘칼리 리눅스’에 대한 서적 등도 많아져 누구나 마음을 먹으면 해커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 4일 불법도박사이트 업체와 손잡고 경쟁 사이트에 디도스 공격을 하고 개인정보를 빼돌려 판매한 10대 해커 13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정부 산하기관이 주관한 정보보안전문가 교육을 받은 학생들로 도박사이트 운영자로부터 의뢰를 받아 22개 사이트를 해킹해 개인정보 1만8000여건을 유출했다.
이미 가정·학교 울타리 벗어나
범정부 차원 사회적 시스템 시급
직접 게임 불법프로그램을 만들어 파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지난해 8월 대전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인기 1인칭 슈팅게임(FPS)서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캐릭터의 공격능력을 강화하는 일명 ‘핵’을 제작해 판매한 중학생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평소 이 게임을 즐긴 이들은 독학으로 익혀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 게임 설정 파일 일부를 수정해 가면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용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사이버보안인재센터 보안교육기획팀 팀장은 “10대 해커들이 혼자 독학해 해킹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가 그룹이나 학원 등의 모임을 통해 관련 기술을 공유해 익히고 있다”며 “이를 위해 보안 기술을 가르쳐 주기 전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윤리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사례들처럼 범죄조직서 해킹에 재능있는 10대를 이용하고 버리는 상황도 늘고 있어 학교와 경찰서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네트워크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청소년 범죄는 대부분 호기심과 충동적인 행동에 기인하고 있으며 죄의식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게 특징이다.
인터넷이나 게임에 중독돼 인간 관계와 사회적인 교류가 결여된 상황서 죄의식 없이 단순히 범죄를 모방하고 호기심서 시작된 범죄가 강력범죄로 변하는 경우가 많아 예방 노력이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죄의식 부족 심각
예방 노력이 절실
한 경찰청 아동청소년계장은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은 이미 가정이나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의 보살핌을 기대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범죄의 심각성이나 자신의 인생에 미칠 영향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범행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들 청소년의 문제를 상담하고 치료할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청소년 범죄의 연소화와 우발적 범죄의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단기간 처방으로는 부족하다”며 “가정과 학교에서의 정기적인 인성 교육을 통해 규칙을 준수하고 가치관을 적립하는 과정이 장기간에 걸쳐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