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만남’ 담철곤-조경민 인연과 악연 풀스토리

‘배신에 배신’ 까인 충신의 한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점입가경이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의 비리에 대한 폭로가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후에는 조경민 오리온 전 사장이 있다. 그의 폭로로 담 회장은 휘청대고 있다. 인연으로 시작해 악연으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이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의 비리혐의가 밝혀지면 회복 불가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그는 비리 관련 집행유예 기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또다시 유죄가 확정되면 중형을 면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담 회장의 검찰 소환이 임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검찰 수사는?
각종 추측 난무

하지만 담 회장이 위기를 타개하기 만만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회사 사정에 밝은 조경민 전 오리온 사장이 칼을 갈고 그의 목을 겨누고 있다. 담 회장과 조 전 사장은 처음부터 악연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 전 사장은 경신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84년 오리온(당시 동양제과)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오리온 이양구 창업주의 둘째 딸 이화경 현 부회장의 눈에 들어 입지를 넓혀 갔다. 그 과정서 조 전 사장은 이 부회장 남편인 담 회장과의 인연을 맺었다. 
 

담 회장에게도 조 전 사장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담 회장은 중국화교 출신으로 이양구 동양그룹 회장의 차녀 이 부회장과 10년 열애 끝에 1980년 결혼하면서 로열패밀리가 됐다. 같은 해 동양시멘트 과장으로 동양그룹서 회사 생활을 시작한 담 회장은 이듬해 오리온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회사내 입지가 현재와 같이 막강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조 전 사장의 실력적인 면이 필요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지면서 조 전 사장은 담 회장의 최측근이 됐다. ‘담철곤의 남자’로서 승승장구한 조 사장은 평사원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인 사장까지 올랐다.

조 사장 토사구팽에 담 회장 의혹 폭로
무산된 광복절 특사…격화되는 미스터리 

그러나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담 회장의 비리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2011년 담 회장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조 전 사장도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나란히 재판을 받게 됐다.

검찰은 담 회장이 오리온의 위장계열사 의혹을 받고 있던 아이팩을 차명 소유주에게 급여와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꾸며 2006년 7월부터 2011년 3월까지 38억3500만원을 횡령했다고 보고 기소했다. 

또 아이팩이 리스료를 지급한 외제 스포츠카를 담 회장의 자녀 통학에 이용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정황도 드러났다. 아울러 서울 성북구 자택 관리비로 회삿돈 20억원을 유용하고 자택 옆에 위치한 아이팩 서울영업소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도 받았다.

이 외에도 담 회장은 법인자금으로 거액의 미술품 10여점을 사들여 자택에 전시한 정황도 검찰의 수사망에 포착됐다.

이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은 조 전 사장을 비롯한 직원들도 기소됐다. 1심 재판서 법원은 담 회장과 조 전 사장에 대한 공소 사실을 인정했다. 그 결과 담 회장은 징역 3년, 조 전 사장에게는 징역 2년6월이 선고됐다. 


당시 재판부는 담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계열사를 사유물로 여기는 범행을 했다”고 강도 높게 질책했다.

집행유예 기간
또 다시? 긴장

이들은 바로 항고했다. 이듬해 1월 담 회장은 2심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조 전 사장 역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담 회장과 함께 풀려났다. 

검찰은 대법원에 항소했고 이들은 2013년 4월 집행유예 선고로 형이 확정됐다. 일각에선 집행유예로 끝난 재판을 두고 유전무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는 재판 과정서 둘 간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내용은 이렇다. 담 회장의 비자금 조성 지시를 받은 조 전 사장이 지시와는 무관하게 개인의 용도로 착복한 돈이 만만치 않다는 소문이었다. 

조 전 사장 입장에선 담 회장이 자신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운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신뢰관계가 깨진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다.

스포츠토토 비자금 조성 사건이 터지면서 둘 간 사이에 변곡점이 생겼다. 검찰은 2012년 조 전 사장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조 전 사장은 지난 2007~2009년 스포츠토토를 운영하면서 경기 포천의 골프장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서 회사 자금 14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조 전 사장이 스포츠토토를 비롯한 5~6개 계열사 임직원 급여를 과대 계상해 지급한 뒤 다시 돌려받는 수법으로 회사 돈을 빼돌린 정황도 발견했다.

담 회장 입장에선 스포츠토토 수사와 관련해 불똥이 튈까 우려스러운 상황이었다. 당시 검찰은 조 전 사장이 조성한 돈이 담 회장에게로 흘러들어갔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담 회장에게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을 두고 검찰이 조 전 사장을 집중 추궁하던 시기였다. 집행유예 기간인 데다 대법원 항소심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스포츠토토와 관련된 혐의에 연루되면 교도소 행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재판결과가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담 회장의 혐의점은 입증에는 실패했다. 담 회장의 지시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흘러나오는 진술이 있었지만 조 전 사장의 개인비리로 재판은 마무리 돼 조 전 사장은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2014년 12월 만기 출소 후 조 전 사장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2011년 소송 중 공식적으로 해임돼 야인이 됐으며, 비자금을 조성한 비리 경영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스포츠토토가 조 전 사장에 소송까지 제기한 점도 뼈아팠다. 스포츠토토는 조 전 사장이 개인 비리로 총 75억원을 손해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소장에 따르면 조 전 사장은 스포츠토토 소송에 대해 담 회장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옥고를 치렀지만 형 집행을 마친 뒤 돌아온 것은 손해배상 소송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담 회장의 지시를 받고 그의 죄를 모두 덮어쓴 것인데, 오히려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 일을 계기로 담 회장과 조 전 사장의 불편한 관계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광복절특사를 노리던 지난해 8월초 조 전 사장이 담 회장을 상대로 수백억원 대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소장 일부가 공개됐다.

조 전 사장은 1992년 회사를 떠나려고 했을 때 담 회장이 붙잡으면서 이들 부부의 지분 상승분 10%를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깊어진 감정
회복은 글쎄

당시 1만5000원이던 주가는 93만원까지 올라 담 회장 부부가 1조5000억원의 이익을 봤으니 이 중 10%인 1500억원은 자신의 몫이라는 게 조 전 사장의 설명이다. 조 전 사장은 1500억원의 약정액 중 우선 200억원에 대해서만 소송을 제기했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조 전 사장은 “2011년 3월 무렵 오리온 그룹이 서류상 회사를 계열사로 만들어 지분을 매각하거나 고급 빌라 건축 과정서 사업비를 빼돌리는 등의 방법으로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자 담 회장이 막무가내로 원고(조 전 사장)에게 대신 모든 책임을 져달라”고 요청했다.
 

“당시까지 비자금 관련 업무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었다”는 조 전 사장은 “어떻게 비자금을 조성했고 전달했는지 알아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자 “담 회장은 그제야 사건의 내막을 그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담 회장이 그동안 오리온 그룹의 계열사 사장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비자금을 만들었고, 이를 직접 상납받았다는 내용도 담겼다.

금고지기 배신?
회장님의 오해? 

조 전 사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순간 고민에 빠지기는 했으나 30여년간 동고동락하며 쌓아온 인간적인 정, 오리온그룹 오너에 대한 부하 직원으로서의 도리 등을 생각해 이를 승낙했고 검찰에 출두해 오리온그룹의 계열사 사장들이 원고의 지시를 받아 비자금을 만든 것”이라고 진술했다. 

오리온 비자금 수사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 재계 관계자는 “당시 담 회장은 조 전 사장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 간부들에게도 자기 대신 책임을 져달라며 요청했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수사가 마무리된 뒤 신분 보장은 물론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며 사정했다고 증언했다.
당시부터 제기됐던 폭로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조 전 사장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회사서 ‘토사구팽’ 당한 전임직원들과 함께 담 회장의 비리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관련 내용이 지속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것. 

오리온은 담철곤 회장의 비리를 폭로하는 내용이 담긴 <추적60분> 5월24일 방영분에 대해 가처분 신청까지 하면서 진땀을 빼고 있다. 

오리온 측은 조 전 사장의 행보에 대해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히고 나간 임직원들의 억측”이라며 “법적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심한 CEO
돌연 저격수로

재계에선 담 회장과 조 전 사장의 극적 화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시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금고지기 역할을 했던 회사 내 핵심 인물은 오너와의 신뢰가 중요한데 소송전을 통해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며 “신뢰가 깨진 상황서 다시 관계가 회복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담철곤-현재현’ 바람 잘 날 없는 동서지간

담철곤 오리온 회장이 폭로로 휘청거리는 가운데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역시 동양사태의 여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민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이 금융사기 사건 논란에 대해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약탈경제반대행동은 지난 18일 “‘동양그룹 금융사기 사건’과 ‘IDS홀딩스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에서 검찰의 수사와 기소 모두 잘못됐다”며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에 따르면 동양그룹 사기사건은 2011∼2013년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 이혜경 부회장, 그룹산하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의 사장 정진석 등이 공모해서, 동양증권 고객을 상대로 저지른 ‘금융사기’ 사건이다. 사기성으로 발행한 기업어음과 회사채는 약 2조 원에 이르고, 피해자도 5만여명으로 추산되는 미증유의 사기사건이다.

약탈경제반대행동은 “두 사건 모두 우리가 피해자들을 조직하여 검찰에 고발했으나 검찰의 직무유기가 지나치다”며 당시 기소를 담당했던 검사들의 처벌을 요구했다. <호>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