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주사파 전성시대 막전막후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5.15 10:10:35
  • 호수 1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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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띠 매고 대거 청와대로?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서 ‘송민순 회고록’ ‘주적’ 발언 등을 통해 불안한 안보‧대북관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취임 초기 ‘주사파’ 출신 인사를 청와대 핵심 인사로 등용해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첫날인 지난 10일, 1기 내각을 발표했다. 국무총리로 이낙연 전남도지사를 등용했고, 비서실장으로는 임종석 전 의원을 발탁했다. 국정원장과 경호실장에는 각각 서훈 전 국정원 3차장과 주영훈 전 경호실 안전본부장이 내정됐다.

국보법 위반
전대협 출신

청와대는 임종석 비서실장(이하 실장)을 내정하면서 “여야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정치권 인맥을 갖고 있어 청와대와 국회 사이의 대화와 소통의 중심 역할이 기대된다”며 “합리적 개혁주의자로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결정과정을 중시해 청와대 문화를 ‘대화와 토론, 격의 없는 소통’으로 이끌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원 시절 통일외교통상위서만 6년간 활동해 외교 분야에도 전문성이 있다”며 “외교적으로 어려운 상황서 외교안보실장과 호흡을 맞춰 대외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기대감과 달리 정치권에선 임 실장 임용을 두고 우려를 표명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0일 논평을 내고 임 실장 인선을 겨냥해 “권력의 핵심인 비서실장이란 중책을 주사파 출신이자 개성공단 추진자에게 맡기는 것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깊다”며 “국민적 통합을 위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실장은 인선 발표 이후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서 “(문 대통령에게) 격의 없이 토론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신임 비서실장으로서 의지를 다졌다. 자유한국당이 본인을 ‘주사파’라고 비난한 데 대해서는 “한국당과 더 소통하도록 노력하겠다”며 “국회·야당과 잘 소통할 테니 지켜봐달라”고 짧게 답했다.

임 실장 논란의 핵심은 '주사파'다. 주사파는 1980년대 중반 운동권 학생 일파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과 행동지침으로 내세운 주체사상파의 줄임말이다. 특히 민족해방을 강조해 ‘NL파’라고도 불렸다. 이들은 제5공화국 정부를 타도하는 데 앞장서 당시 대학생들로부터 호응을 받아 크게 확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1기 인선 발표…깜짝 등용 술렁
청 누비는 ‘임길동’ 전과도 OK?

임 실장이 주사파 논란에 서게 된 이유는 과거 이력 때문이다. 1989년 한양대 재학시절 임 실장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연합회(이하 전대협) 의장을 맡아 노태우정부에 대한 학생 시위를 주도했다. 같은 해 임수경 방북 프로젝트인 ‘평양 축전참가’를 진두지휘했다. 당시 노태우정부는 평양축전 참가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전대협은 극비리에 임수경을 제3국을 통해 북한으로 파견했다.

당시 임 실장은 ‘임길동’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학생운동으로 지명수배된 상황서 공권력을 따돌리고 신출귀몰한 행적으로 전국을 누볐기 때문이다. 도피생활을 이어가면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기자회견을 발표하는 등 경찰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후 임 실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3년6개월을 복역했다.


임 실장은 2000년 정치권에 데뷔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에 따라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같은 해 임 실장은 16대 총선서 서울 성동구에 입후보해 한나라당의 4선 의원이던 이세기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당당히 국회에 입성했다. 17대 총선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18대 총선에선 낙선했다.

이후 지난 2014년 지방선거서 박원순 캠프에 합류하면서 ‘박원순의 남자’가 됐다. 그는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돼 2015년까지 재직했다. 임 실장은 지난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재차 국회 입성을 꿈꿨지만 공천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내각 급물살
그들의 득세

임 실장의 청와대 등용으로 주사파 출신인 임수경 전 의원의 정치 재개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12년 임 실장은 임 전 의원의 정치 입문에 도움을 줬다. 당시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을 지낸 임 실장은 “임수경을 영입하기를 희망한다”고 강력히 당 지도부에 호소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 두고 전대협 의장단 출신 486그룹의 임 전 의원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도 “임수경씨가 방북했는데 이후 삶의 굴곡이 심한 것을 보고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이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임 전 의원은 19대 총선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선 당내 공천과정서 컷오프 돼 부침을 겪었다. 당시 임 실장은 자신의 SNS에 “그래 수경아, 너무 안타까워하지 않을게. 수고했어”라며 “많이 아프고, 많이 자존심 상할 텐데 담담하게 넘겨줘서 고맙고 아프다. 좀 쉬었다가 나랑 같이 다시 통일운동하자”고 전했다. 임 실장의 임 전 의원에 대한 부채의식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임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탈북자에게 막말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탈북 대학생 백씨에 따르면 임 전 의원이 종로 인근 식당서 백씨에게 “근본도 없는 탈북자 XX들아, 대한민국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아. 개념 없는 탈북자 XX들이 어디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기는 거야. 변절자 XX들아”라며 폭언을 쏟은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임 전 의원은 이 외에도 “너 그 하태경하고 북한인권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짓 하고 있다지. 하태경 그 변절자 XX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라고 말하는 등 동료 의원인 하태경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처럼 임 전 의원은 임 실장과 함께 대표적인 주사파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보수진영에선 문 대통령의 불안한 안보관과 연관해 주사파의 득세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임 실장을 필두로 주사파 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입각에 성공한다면 보수진영의 반발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청와대 인사가 대탕평 기조를 이룬 것은 맞지만 굳이 주사파 출신을 청와대 2인자로 앉힘으로써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가고
종북이 온다

임 실장과 마찬가지로 운동권 출신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송영길 의원의 입각 가능성도 점쳐진다. 민주당은 오는 16일 새 원내대표 선출이 있기 때문에 우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직서 물러날 예정이다. 몸이 가벼워진 우 원내대표는 최근 통일부장관으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그는 19대 국회서 외교통일위원회 상임위 소속으로 활동했다. 평소에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우 원내대표가 입각에 성공할 경우 임 실장과 함께 운동권 인사라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우 원내대표는 1987년 연세대 총학생 회장으로 대규모 시위를 이끌면서 전대협 부의장을 맡은 경력이 있다. 1995년에는 ‘8월 부여 간첩사건’에도 연루된 바 있다.

당시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남파간첩 김동식, 박광남은 한국으로 침투한 뒤 이인영 당시 전대협 동우회장, 우상호 당시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등을 만나 “함께 통일운동을 하자”며 포섭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우 원내대표는 검찰에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해 신고할 가치를 못 느꼈다”고 주장해 기소를 면했다.

우 원내대표는 임 실장과 같은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 이외에 정치적 입문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나란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젊은 피’로 영입했던 인사들이다. 외교부장관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민주당 송영길 의원도 운동권 출신이다.

송 의원은 1984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부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인천광역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여권 내 ‘중국통’으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 11월23일 북측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송 의원은 망언으로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연평도를 찾은 자리서 북한군의 포격으로 불에 탄 소주병을 들고 “이거 진짜 폭탄주네”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운동권 출신 우상호·송영길 선봉
불안한 보수진영…마찰 심해질 듯

흥미로운 것은 입각에 성공한 임 실장을 비롯해 입각을 노리는 우 원내대표와 송 의원 세 사람이 함께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는 점이다. 2009년 12월 국회에선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논란이 일었다. 2004년 설립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은 2005년부터 북한 당국의 저작권 자료에 대한 저작권료를 걷어 북한에 보내는 단체였다.

해당 단체는 북한 작가의 소설이나 역사서 등을 출판하던 국내 소형 출판사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해 합의금을 받고 북한 당국에 전달했다. 이 단체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북한에 준 저작권료는 67만6525달러(한화 8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은 임 실장이었다. 부이사장은 송 의원과 우 원내대표가 각각 맡았다. 상임고문은 이미경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이 맡았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통일부는 “해당 단체의 사업 파트너인 북 저작권 사무국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고, 저작권료가 저작권자에게 전달됐는지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밝혀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은 저작권료라며 국내 소형 출판사로부터 받은 돈 가운데 1억2700만원을 북한에 전달하지 않고 보관했다. 정부로부터 지적을 받은 뒤 법원에 공탁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문재인정부서 하마평에 오르는 해당 인물들이 과거에 북한과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수진영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 진영
친북 우려↑

자유한국당 중앙선대위원장을 맡아 이번 선거를 이끌었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인선은 대통령 재량이므로 일단은 존중한다”면서도 “친북적인 생각에 전과도 있는 인물을 핵심 요직에 앉히는 배경이 무엇인지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미친북 성향을 드러낸 문 대통령의 그동안 발언을 우려했던 사람들이 이미 많지 않으냐”며 “이런 경향을 강화하는 인선이 계속되면 국민의 걱정이 현실적 저항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주사파란?

주사파는 대한민국 민족해방 계열의 하나로 북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지지하고 그에 따른 정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사파는 80년대 중반 통일을 지향해 당시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제5공화국 정부를 타도하는 데 앞장섰다.

지나친 북한 노선에 치중해 우리나라가 반봉건사회고 미국의 식민지라고 주장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다. 특히 1986년 10월 건국대학교서 무리하게 애학투련을 결성하려다가 대규모 공권력의 투입으로 인해 조직이 타격을 받았다.

1987년 이후에는 반정부 투쟁으로 이어졌고, 주사파 세력은 운동권 전면에 나서 서울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등 학생단체를 주도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통일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면서 1989년 7월 평양서 개최된 한민족 축전에 전대협 대표를 파견해 주목을 받았다. 문민정부 이후에는 학생운동이 퇴조해 주사파의 활동은 위축됐다.

1995년 박홍 서강대 총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주사파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키자 잠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다만, 공산주의의 퇴조, 김일성의 사망, 학생운동 위축으로 주사파 세력은 미미해졌다는 평가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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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