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초월’ 병역기피 수법들 천태만상

“예나 지금이나” 군대 안 가려고 별의별 짓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한민국 헌법 제39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이 부여한 신성한 의무를 져버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상상을 초월하는 병역 기피 수법들이 갈수록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만 19세가 되면 징병검사를 받아 1∼3급은 현역으로, 4급은 공익근무요원으로 각각 병역의무를 이행하게 된다. 이때 신체등위 5∼6급을 받게 되면 24개월간 군대 ‘짬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 병역 의무에서 해방된 이들은 때론 ‘신의 아들’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때만 되면 터지는 병역비리 사건 때문에 주기적으로 의혹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병역비리 수사망을 운 좋게 피했더라도 이런 의혹은 본인이나 부모 앞길에 장애가 될 때도 있다. 면제자들은 평생 ‘의혹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기상천외
수법도 발전

‘꽃다운 20대를 희생해야 한다’는 병역 공포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를 악물고 24개월을 버티는 방법과 고의로 병역을 기피하는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특히 후자는 지금까지 밝혀진 병역비리 사건을 꼼꼼히 더듬어 보면 여기에도 세월에 따른 유행과 트렌드가 존재하는데, 그 수법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1960~70년대에는 장기간 병역을 회피한 뒤 ‘고령’ 등을 사유로 한 병역면탈 수법이 유행했다. 입영 대상자들은 대학 재학 또는 대학원 입학 등으로 군에 가야 할 시점을 늦췄다.

이렇게 시간을 끌어 당시 31세(만 30세)였던 입대 제한연령을 넘긴 뒤 ‘장기 대기로 인한 소집면제’ 등으로 군 복무를 피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 제대로 된 병무전산시스템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70년대 초부터 80년대 정부가 체계적인 병역시스템 수립에 나서면서 더 이상 ‘고령’을 이유로 군복무 회피가 힘들어지자 내과적 질병을 이용한 수법이 유행했다.

멀쩡한 어깨수술은 고전
점점 엽기적으로 진화중

폐결핵, 만성간염, 관절염, 중이염 등으로 당시 의료 기술로는 확인하기 힘들고 환자를 바꿔치기하기 쉬운 병들이었다. 이런 방법은 최근까지도 유행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는 산업기능요원과 영주권 취득을 통한 병역면제 수법이 단골 메뉴였다. 업체에 거액을 주고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법상 채용이 금지된 4촌 이내 혈족을 산업기능요원으로 뽑는 사례도 있다. 이렇게 선발된 이들은 대부분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으며 출근한다고 해도 일은 하지 않고 업무와 관련 없는 자기 일을 하면서 복무기간을 채운다. 재입대 곤욕을 치른 후 제대한 가수 ‘싸이’가 이에 해당된다.


또 국외이주와 영주권 취득 등 장기간 외국에 체류함으로써 입대 제한연령을 초과해 면제받는 수법도 통용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외과적 수법이 새롭게 부각된다. 최근 경기도 일산경찰서가 수사 중인 어깨탈구수술을 통한 병역 면제는 무릎·디스크 수술과 함께 전통적인 ‘신체 훼손’ 수법에 들어간다. 즉 자기 신체를 고의로 훼손해 병역을 감면받는 것이다.

‘미친 척’
정신질환 많아

지난 5일 병무청에 따르면 특별사법경찰관이 도입된 지난 2012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병역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다 적발된 건수가 203건에 달했다.

2012년 9명, 2013년 45명, 2014년 43명, 2015년 47명, 2016년 54명, 2017년 1월 5명 등으로 나타나 꾸준히 늘고 있는 셈이다. 종류별로는 정신질환 위장이 49건(24%)으로 가장 많았다. 고의 문신이 47건(23%), 고의 체중 증·감량 46건(23%), 안과 질환 위장 20건(10%), 기타 41건(20%) 순이었다.

체중을 갑작스럽게 늘리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게 병역의 의무를 피하는 수법으로 이용되지만 단속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달 인천지법 형사항소4부(김현미 부장판사)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24)씨 등 대학생 보디빌더 2명에게 징역 8개월∼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A씨는 2012년 8월 인천·경기지방병무청의 징병검사를 앞두고 90㎏인 몸무게를 123㎏까지 늘려 4급 판정으로 병역의무를 감면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B씨도 2013년 11월 징병검사를 받기 전 75㎏인 몸무게를 109㎏으로 늘려 4급 판정을 받아 현역 복무를 회피했다.

온몸에 문신하는 것도 대표적인 병역 회피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꼼수다. 2015년 11월 서울지방병무청에 신체검사를 받은 C(당시 19세)씨는 병역 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온몸에 문신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C씨는 병역기피 목적을 전면 부인했다. 단순히 문신에 관심이 많아 어렸을 때부터 새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온몸에 문신을 새기면 현역병 입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추가로 문신해 미필적으로나마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1월 24일 의정부지법은 C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밖에도 병역을 기피하기 위한 수법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귀신이 보인다”며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행세한 김모씨. 정신질환을 이유로 공익요원 대상자가 됐지만 거짓이 드러나 지난해 8월 대법원서 징역 1년이 확정됐다.


이모(21)씨는 징병검사를 앞두고 보육원에 위장 등록해 시설 생활을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병무청에 제출했다. 병역법에 따르면 부모가 없거나 아동양육시설에 5년 이상 보호된 사람은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모(23)씨는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는데도 불필요하게 척추 수술을 받았고 지난해 8월 척추 운동이 제한된다는 사유로 군 복무가 면제됐다. 사고로 손가락 접합 수술을 받은 또다른 이모(23)씨는 손가락을 다시 절단해 면제 판정을 받기도 했다.

손가락에
고환도 제거

붙이는 멀미약을 눈에 발라 동공운동장애를 위장해 병역을 기피한 사례가 처음으로 적발되기도 했다. D씨 등은 2009년과 2010년 키미테를 눈에 발라 동공을 크게 한 뒤 “축구공에 맞았다”며 동공운동장애가 발병한 것처럼 속여 의사에게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이들은 이렇게 발급받은 진단서를 병무청에 제출해 재신체검사를 신청하는 수법으로 병역을 감면 받아 공익근무요원으로 판정됐다.

D씨 등은 멀미약에 들어있는 성분이 눈에 닿으면 일시적으로 동공이 커지고 시력을 떨어뜨려 동공운동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을 악용했다. 이들은 서울 송파에 있는 한 방문판매회사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키미테를 눈에 바르면 동공이 커진다’는 정보를 주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요즘 멀미약을 눈에 발라 안과질환을 위장하는 방법은 ‘애교’ 수준이다. 발기부전제를 주사하고 양쪽 고환과 전립선을 적출한 이도 있다.

병무청 5년간 203건 적발
적발시 5년 이하의 징역형

여러 명이 모여 정보를 나누면서 병역을 기피하는 편법도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편법이 널리 퍼져 병무청 단속이 들어오겠다 싶으면 금세 다른 수법이 등장한다. ‘환자 바꿔치기’ 병역 비리를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는 브로커도 병역연기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입대 예정자들을 모았다. 이런 사이트는 정보를 공유한다는 취지인 만큼 단속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지난해 E씨는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발기부전제를 주사한 후 양쪽 고환과 전립선을 적출하다 병무청에 걸렸다. F씨는 고의로 아토피 환부를 자극하고 치료를 방치해 군 면제를 시도하기도 했다.
 

인터넷서 병역 면탈을 모의하거나 면제 사실을 자랑하다 걸린 사례도 있다. G씨와 H씨는 인터넷에서 4급 공익 판정을 받기 위해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고 실행에 옮겼다.

I씨는 인터넷에 “아픈 데 없고 정신 멀쩡한데 군 면제 받았다”고 자랑하는 글을 올렸다가 병역 면탈 행위를 들켰다. 인터넷 커뮤니티서 병역기피 글을 본 J씨는 미국 중학교 중퇴한 뒤 다른 중학교에 입학했으면서도 학력을 속여 군대에 가지 않으려다 적발됐다.

인터넷에는 입영을 연기하거나 병역 기간을 줄이는 방법을 묻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병역 비리글은 바로 지우겠다’는 경고문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회원 가입제 카페 뿐 아니라 포털사이트에도 ‘입영 연기’ 관련 게시물이 줄줄이 검색된다.

국방의 의무를 피하려고 국적까지 바꾸는 사례들도 많다 보니 뜻하지 않게 외국 언론의 조명을 받는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9월 이란 국영 프레스TV가 입대를 피하려 국적을 바꾸는 세태를 알리는 기사까지 내보낼 정도다. 이 방송은 서울발 보도를 통해 “매년 수천명의 한국 젊은이가 징병을 피하려고 국적을 바꾼다”며 “지난 5년간 8000명이 (한국 국적을 버리고) 미국으로, 3000명이 캐나다와 일본 국적으로 변경했다”고 전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몸에 문신을 과도하게 하거나 신체를 갑작스럽게 증·감량하는 것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중대 범죄”라고 강조했다.

국방의무 외면
“처벌 강화해야”

그러면서 “현행법상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신체를 손상하거나 속임수를 쓴 사람은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외면, 국민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범법 행위에 대해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헌법상 의무인 병역의무 면탈 범죄를 뿌리 뽑을 때까지 지속적인 수사와 단속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