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선고 임박> 탄핵 기각 후폭풍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3.06 10:55:15
  • 호수 1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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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박두’ 대통령의 복수혈전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대통령은 사인(私人)에게 청와대 기밀을 넘겨주고 뒤를 봐줬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촛불로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이제는 마지막 관문만을 남겨두고 있다. 헌법재판관 8명의 손에 의해 대한민국 현대사가 결정된다. 어떤 판결이 내려질까. <일요시사>는 만약 ‘대통령 탄핵이 기각된다면’을 가정해 우리나라 정치권의 앞날을 예측해봤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지난달 27일, 17차 변론을 끝으로 모든 심리를 마쳤다. 지난해 12월9일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지 81일 만이다. 헌재는 탄핵 선고를 위해 3·1절인 지난 1일에도 출근해 기록 검토 작업에 돌입했다. 법조계에선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일인 13일을 감안해 오는 10일 또는 13일 선고가 유력시된다고 내다보고 있다.

그가 돌아오면
복수 시작된다

선고일이 다가올수록 탄핵 찬반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어 헌재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공정한 결론을 도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탄핵심판은 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하면 ‘인용’ 그렇지 않으면 ‘기각’된다.

만약 탄핵이 인용되면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 대통령으로서 ‘파면’을 당해 대통령직에서 강제퇴직된다. 물론 전직 대통령 예우도 받을 수 없다.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법률에 따라 정국은 빠르게 대선 국면으로 전환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선 인용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대선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탄핵이 기각될 것이란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우선 헌재가 ‘8인 체제’로 진행 중인 점이 변수로 꼽힌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은 지난 1월31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기존 9명에서 8명으로 숫자가 줄면서 산술적으로 인용 판결 가능성이 낮아진 탓이다.


박 대통령이 지명한 재판관이 2명이라는 점도 돌발 변수로 꼽힌다. 그동안 주요 헌재 결정을 보면 김이수 재판관을 제외한 재판관들의 보수 성향이 반영됐다는 점도 기각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다만 헌재가 원칙대로 재판을 지휘해왔다는 점을 감안해 재판관들의 양심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헌재의 탄핵 선고만 앞둔 가운데 지난 1일 ‘촛불집회’와 ‘탄핵 반대 집회’ 진영은 광장에 총결집했다. 이날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김문수 비대위원은 “엉터리 졸속 재판을 하는 헌법 재판관들을 탄핵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81일 만의 심리종결…10일 또는 13일 결정
만약에 기각되면…검찰 죄고 언론 죽인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3·1 만세 시위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자는 것이고 지금 촛불집회는 무너진 나라를 다시 일으키자는 것”이라며 탄핵 찬성 측을 독려했다. 박 대통령 측은 “헌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며 “결과를 차분히 기다리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만약 헌재가 박 대통령을 탄핵할 만한 중대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해 ‘기각’ 결정을 내리거나 탄핵심판 요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각하’ 선고를 할 경우 박 대통령은 90여일 만에 직무에 복귀한다. 식물대통령이 불가피하지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복수혈전’이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박 대통령은 탄핵 기각 가능성에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지난 1월25일 박 대통령과 인터뷰한 <정규재TV> 진행자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박 대통령이 탄핵 기각 후 국민의 힘으로 언론과 검찰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미 박 대통령은 해당 인터뷰서 검찰과 언론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당시 현 상황을 두고 “우발적으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며 기획설을 제기했다. ‘국회와 언론, 검찰 개혁이 필요한데 이 세력이 동맹을 맺은 것처럼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는 질문에 “그동안 추진해온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을 테고,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들도 합류했다고 본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을 압박해온 집단에 대한 ‘복수’는 비단 박 대통령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달 11일,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탄핵이 기각되면 검찰을 손 보겠다”고 발언해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선 “탄핵이 기각이나 각하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된다”며 “정권 다 넘어간 것으로 그렇게 착각하지 마시라고 해 달라.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말해 탄핵 기각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칼 휘두르고
정권 재창출?

기각 이후 박 대통령이 ‘강공’ 전략을 들고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검찰 인사' '언론에 대한 법적 대응' '개각' 등을 단행해 반전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는 탄핵 기각 이후 약 1년 남은 시간동안 식물대통령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론으로 꼽힌다. 특히 개각은 국정운영이 마비된 현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필수요소다.

박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해 개헌 희망세력을 규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현재는 국회를 중심으로 개헌이 논의되고 있지만 제1당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미온적 반응을 보여 대선 전 개헌은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민주당은 지지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선주자가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개헌’ 논의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기각 이후 박 대통령이 대승적 차원서 개헌을 주장하면 반문지대, 여권, 개헌론자들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온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서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헌에 정치인들이 동참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박 대통령이 기각 후 ‘하야’를 선언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여권의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무엇보다 명예 회복에 뚜렷한 의지가 있다”며 “하야 후 명예를 되찾는 활동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점에 대해 정치권 의견은 분분하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29일 3차 대국민담화서 ‘4월 퇴진·6월 조기 대선’을 받아들였다. 이 당시 발언을 볼 때 탄핵 기각이 나오면 일정 시간을 가진 후 자진사퇴를 선언해 마지막 남은 명예를 찾고자 할 가능성이 있다.

자진사퇴는 정권재창출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차원에서 진행될 수도 있다. 대통령직서 내려와 범보수를 결집한 뒤 이후 치러질 대선서 보수정권을 재창출한다는 시나리오다. 만약 차기 대선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더라도 이후 이어질 개헌, 지방선거, 총선 등에 대비해 2선으로 물러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일각에선 권한만 있고 영향력은 없는 ‘관리형’ 대통령에 머물러 임기를 마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탄핵이 기각되면 촛불민심이 다시 한 번 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섣불리 광폭 행보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배수진 쳤는데
망하게 생겼다


탄핵이 기각될 경우 가장 큰 후폭풍은 민심의 동요다. 박 대통령이 탄핵에 오기까지는 언론의 집중포화 이후 광장의 촛불민심이 있었다. 결국 촛불민심을 거스르기 어려웠던 국회는 절대 다수의 표 차이로 박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만약 절대 다수의 지지 속에 이뤄진 탄핵이 헌재서 기각 결정이 날 경우 ‘헌재 폐지론’에 휩싸일 수 있다.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은 한 언론과 인터뷰서 탄핵 기각 이후에 대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헌재가 87년 6월 항쟁 과정서 태어났는데 이 거대한 국민적 요구를 배신한다면 헌재 자체가 날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헌재가 존속할 이유가 없다. 제1적폐가 헌재인 것이다. 헌재 폐지론이 가장 먼저 제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탄핵이 기각되면 촛불민심을 등에 업고 야권은 공세를 퍼부을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정권교체, 적폐청산 등을 내세우며 박 대통령과 여권을 공격할 전망이다. 여권에선 보수발 정계개편이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탄핵 기각으로 생긴 과도기를 틈타 보수가 뭉친다는 시나리오다. 바른정당이 ‘한국당과의 연대는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막상 대선 정국이 가동되면 정권재창출을 위해 결집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야권의 전유물이었던 ‘후보단일화’ 방안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탄핵 직후 바른정당은 후폭풍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은 보수를 지향하지만 박 대통령 탄핵 기각 시 의원직 총사퇴 카드를 들고 나왔다. 배수진을 쳤지만 그만큼 위험부담이 큰 상황이다. 또한 박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며 한국당을 박차고 나왔기 때문에 당의 존립 명분도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명예로운 퇴진하고 정권 재창출
여권발 정계개편 보수층 지각변동


현재 유력 대선후보들의 지지율만 놓고 보면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야권 후보의 낙승이 예상된다. 탄핵이 기각되면 기존의 대선 일정에 맞춰 12월에 대선이 치러진다. 여권 입장에선 ‘보수 대 진보’ 대결 국면으로 이끌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셈이다.
 

특히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대선 완주를 천명한 터라 '민주당-국민의당' 연대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기 때문에 야권연대는 공염불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 과정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권의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황 대행은 90여일간 정국을 차질 없이 운영했다는 점과 대통령을 지켜냈다는 명분으로 보수층에 어필할 수 있다. 대선출마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여권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점도 보수층 결집 시 확장성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보수층의 지각변동 가능성도 주목을 끈다. 보수층은 박 대통령의 존립에 집중하는 부류와 보수 정권재창출에 방점을 찍은 부류로 나뉜다.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박사모가 보수층 내부서 입김이 더욱 세질 것이란 전망이다.

후유증 극심
무엇이 최선?

한 정치평론가는 “탄핵을 둘러싼 복잡한 해법이 나오고 있으나 어떤 결과가 나오든 후유증은 극심할 것”이라면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과 탄핵 찬반 세력 모두 국가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최선이고 어떻게 하면 최악을 피할 수 있는지 깊게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헌법재판관 8인 성향은?

대한민국 역사의 변곡점에 헌법재판관 8명이 있다. 이들은 오는 10일 혹은 13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들 8명은 총 800건에 가까운 사건의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통진당 해산 위헌심판 당시는 야당 몫으로 2012년 선출된 김이수 재판관 만이 유일하게 통진당 해산 반대와 전교조 법외노조 근거법의 위헌을 주장했다.

지난해 5월 새누리당 의원들이 낸 ‘국회 선진화법’ 관련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해서는 각하(5), 기각(2), 인용(2) 의견으로 나뉘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만이 인용 의견을 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합헌이 된 '김영란법'은 김창종·조용호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냈고, 간통죄에 대해선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과 안창호 재판관이 합헌 의견을 냈다. 남자의 병역 의무에 대해서는 남성에 한해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병역법이 평등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전원 일치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현재 8명의 재판관이 주요 결정 가운데 모두 똑같은 의견을 낸 것은 이 사건이 유일하다. 주요 결정에 있어서는 개별 재판관의 소신에 따른 결정이 주를 이뤘지만 일부 결정에서는 정치적 성향이 드러났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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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