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북한이 노리는’ 김정은의 데스노트

다음은 누구? 암살 타깃 리스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몰래 사람을 죽임’ 암살의 사전적 의미다.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공항서 여성 2명에게 독극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아 사망한 김정남을 보면 암살의 사전적 의미가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대담한 범행이었다. 사건 내용이 조금씩 구체화되면서 ‘북한 배후설’이 힘을 얻고 있다. 당장 다음 타깃은 누가 될 것인지를 두고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방이 뻥 뚫린 공항서 여성 2명이 스쳐갔을 뿐이다. 그 한 번의 스침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쓰러졌다. 김정남은 지난 13일 오전 9시(한국시각 오전 10시)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에서 독극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고 실신,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오전 11시께 사망했다. 김정남 피살 소식이 전해지자 용의자와 그 배후를 둘러싸고 수많은 억측이 쏟아졌다.

김정남 피살
북 배후 확실

사건 발생 사흘 뒤인 지난 15일 말레이시아 경찰은 베트남 여권을 소지한 도안 티흐엉,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 등 여성 용의자 2명을 체포했다. 범행에 직접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체포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됐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여성 용의자들에게 범행을 사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 용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지난 17일 북한 국적의 리정철을 체포했고, 19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리정철 등 신원이 확인된 북한 국적의 남성 용의자 5명 중 4명은 모두 사건 직후 출국했다고 발표했다.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부검 결과를 믿을 수 없다”(17일) “경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 북한이 배후가 아니다”(20일)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지난 22일 경찰청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이 김정남 피살 사건에 연루돼 있다고 공개했다. 또 앞서 지목한 5명의 남성 용의자 중 4명은 이미 북한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또 나머지 한 명은 아직 말레이시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통일부는 지난 22일, 정례브리핑서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용의자, 북한 국적자들의 행적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이미 말씀드린 대로 배후는 북한인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앞서 통일부는 강철 북한대사가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가 한국”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21일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억지 주장이자 궤변”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주요 탈북인사들의 안전 문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서 열린 김정남 피살 사건 긴급 최고위원회에서 “국내에도 북한서 보낸 암살자가 잠입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말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현재 국내서 활동 중인 암살자는 남성 2명으로 국적은 알려지지 않았다”며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내놨다. 또 지난해 탈북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를 두고 “워낙 고위급 인사였고 최근 정보를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암살) 타깃 1순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눈엣가시’ 꼽히는 탈북인사 초긴장
이미 암살자 잡입? 경찰 경계 강화

‘암살 타깃 1순위’로 지목된 태 전 공사는 지난해 8월17일, 영국 주재 공사로 지내던 중 일가족과 함께 망명했다. 공사는 대사 다음 서열로, 태 전 공사는 탈북 외교관 중 지난 1997년 미국으로 망명한 장승길 주 이집트 대사 다음으로 최고위직이다. 그는 10년 이상 덴마크와 영국 등 서방 세계서 북한 체제 선전 등 외교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

태 전 공사는 서유럽 사정에 정통한 베테랑 외교관으로 평가받았다. 2001년 6월 벨기에 브뤼셀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의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 외교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학창시절 중국 유학을 통해 중국어를 익힌 태 전 공사는 평양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외무성 8국에 배치됐다.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 굵직한 직무를 맡았던 태 전 공사는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서 현학봉 대사에 이어 2인자 자리까지 올랐다. 그에 대한 북한의 신임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그의 탈북은 북한 당국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북한 대남 매체들은 그를 가리켜 ‘특급 범죄자’라고 맹비난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달 MBC와 인터뷰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 김정은 체제에는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김정은은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처럼 행동하고 있다” 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을 이유로 탈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 전 공사는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김정은 정권의 사악성을 알리는 데 기여한 사건”이라며 “체제 붕괴에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은 이 세상에 태어난 첫날부터 오늘까지 테러를 생존 수준으로 간주하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고 있는 태 전 공사에 대한 경호 수위는 김정남 피살 사건 전보다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태 전 공사 측은 암살 위협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외부활동을 잠정 중단키로 했지만 태 전 공사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공개활동을 계속하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태 전 공사는 “어떤 위협이 조성된다 해도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을 한 순간도 중지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한 방송과 인터뷰서 진행자가 “(김정은이) 당신을 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느냐”고 묻자 “물론이다. 나도 암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해 암살 위협에 노출돼 있음을 고백했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역시 표적 1순위로 거론된다. 하 의원은 지난 16일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기 때문에 김정은은 사실 후지산 혈통”이라며 “(김정남 피살 사건은) 백두혈통에 대한 김정은의 열등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백두혈통은 김일성 주석과 부인 김정숙이 백두산서 항일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며 신격화한 내용으로 일종의 권력 정통성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김정남은 백두혈통의 장자이자 그의 아들인 김한솔도 백두혈통이다.

하 의원의 말대로 김정은이 권력 정통성을 위해 이복형을 암살했다면 김한솔은 ‘또 다른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태영호 1순위
“그래도 활동”

현재 김한솔의 행방은 묘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한솔이 비밀리에 말레이시아에 입국해 변장한 채 영안실서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돌았지만 현재 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정보는 없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한솔이 입국하면 신변을 보호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한솔은 김정남이 1995년 동거녀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2011년부터 보스니아의 유나이티드월드칼리지 모스타르 분교서 유학생활을 했다. 이후 프랑스 르아브르 파리정치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9월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한솔은 대학원 등록 전 중국 정부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진학을 포기했다고 알려졌다. 영국서 생활할 경우 북한의 암살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버지 김정남을 따라 외국서 자란 김한솔은 10대 때부터 머리를 염색하는 등 개방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한때 자신의 SNS에 “나는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이후 미국 공영방송과 인터뷰에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는 모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2012년에는 김정은에 대해 독재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북한대사관이 피살된 남자가 김정남이 아니라고 극구 주장하는 것을 두고 시신의 신원 확인이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김한솔을 찾아 DNA 샘플을 채취하기 위한 것.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한솔을 비롯한 김정남의 가족들이 사건 이후 보안에 극도로 신경 쓰면서 행적을 드러내지 않고 현지 정부의 엄밀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 중이다.

김정은의 숙부 김평일 주 체코 북한대사가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홍콩 인터넷매체 <홍콩01>은 김평일과 김정남은 유사한 점이 많다며 이 같이 보도했다. 이 매체는 세계탈북자대회서 김평일을 망명정부 지도자로 추대했다는 설이 그에게 치명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국제탈북민연대 김주일 사무총장은 국내 언론과 인터뷰서 “지난해 10월 체코에 거주하는 탈북민을 통해 현지서 열린 외교행사에 참석한 김평일 대사에게 ‘국제탈북민연대가 망명정부 수립을 위해 당신과 접촉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구두로 전했다”고 밝혔다. 김평일은 당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백두혈통 김한솔
행방 묘연한 상황

홍콩의 시사평론가는 김평일이 공개적으로 탈북 의사를 밝힌 적도 없고, 행동을 조심하고 있지만 김정은정권에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제거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가 다음 암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체코 정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체코 당국은 김평일이 외부 약속 등으로 외출할 때마다 동향을 점검하는 등 관련 정보를 수집 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국내 주요 탈북 인사들에 대한 북한의 테러 경계령을 최고 수위로 올렸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서 “대테러센터 등 관계기관은 테러 대응 태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탈북 인사의 신변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북한이 노리는 국내 주요 탈북인사는 1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6년 전 독살 위기를 넘겼고, 지금도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검찰은 2011년 독침으로 박 대표를 암살하려 한 혐의로 탈북자 출신 공작원 안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당시 안씨는 독총과 독침을 가지고 있었다.

침에는 10㎎만 인체에 들어가도 즉사할 수 있는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이라는 독약 성분이 묻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는 법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박 대표 독살 위협 사건은 김정남 피살 사건서 독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다.

대담한 범행 방식은 20여년 전 자신의 집 앞에서 피살된 이한영 사건과 닮은 점이 많다. 이한영은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처이자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 김정남과는 이종사촌 간이다.

1978년 모스크바 외국어대 어문학부를 전공한 엘리트 출신 이한영은 1982년 한국으로 망명했다. KBS 국제국 러시아어 방송 PD로 근무했던 이한영은 1996년 김정일의 사생활을 담은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을 출간해 관심을 끌었다.

거슬렸다간 소리소문 없이…
친인척도 가차 없이 제거

그로부터 1년 뒤인 1997년 2월15일 이한영은 망명 15년 만에 경기도 자택서 피살당했다. 현장서 북한제 권총에 사용되는 탄피가 발견됐고 이한영이 의식을 잃기 전 ‘간첩’이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범인은 검거하지 못했다.

이한영은 ‘한국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의미로 이름까지 개명한 상황이었기에 그의 죽음에 대한 충격은 더욱 컸다. 이후 2003년 2월 이한영의 아내 김모씨는 국가를 상대로 약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김씨는 “남편은 국가가 철저히 신분을 보호해야 하는 요시찰 보호 대상이었지만 북한 암살단이 심부름센터를 이용해 남편의 신상정보를 빼내 그를 살해할 때까지 이를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는 남편이 사망한 후 추가 테러 위협이 있다는 이유로 가족의 활동을 제한해 기본적인 인권을 박탈했다”고 소송 이유를 밝힌 바 있다.

2008년 대법원은 “국가는 유족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안전기획부의 만류를 무시하고 언론 인터뷰와 TV 출연 등을 통해 자신을 노출한 이씨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국가 책임을 60%로 제한, 유족에게 9699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2010년 사망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1997년 망명한 이래 평생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황장엽은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권력층 중 최고위직으로 꼽힌다. 망명 당시 직책은 노동당 중앙위 국제담당 비서였다. 주체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에 ‘주체사상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황장엽은 망명 이후 북한 체제 비판과 북한 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매진했다. 북한의 실상을 잘 알고 있던 황장엽은 북한으로선 꼭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실제 2010년 국내에 탈북자로 위장한 ‘황장엽 암살 2인조’가 침투했다가 사정 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공작원으로, 황씨를 살해하라는 북한 고위직의 지시를 받고 중국과 태국을 거쳐 입국했다가 잡혔다.

북한은 지난 2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고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한 북한 배후설은 ‘음모책동’이라고 비난했다. 이는 김정남 사망 이후 열흘 만에 나온 북한의 첫 공식 반응이다. 북한 측은 담화에서 김정남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공화국 공민의 쇼크사’로 지칭했다.

북한은 담화문서 사망한 공화국 공민은 심장 쇼크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부검을 할 필요가 없고, 말레이시아 당국의 시신 부검은 자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자 인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라고 비판했다.

이한영 피살과
대담수법 닮아

또 북한 배후설과 관련해 “남조선 당국이 이번 사건을 이미 전부터 예견하고 있었고 그 대본까지 미리 짜놓고 있었다”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박근혜 역도의 숨통을 열어주며 국제사회의 이목을 딴 데로 돌려보려는 시도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반응에 통일부 관계자는 “억지주장이자 궤변”이라며 “(북한 반응은) 예상해왔던 것이고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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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0년 묵은’ 서불대 교수 학위 논란

[단독] ‘10년 묵은’ 서불대 교수 학위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체 구성원이 200명도 안 되는 학교서 한 교수를 둘러싼 논쟁이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교수의 학사학위가 논란의 시발점이다. 임용 당시 서류에 기재한 내용을 두고 사실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고등교육법 제30조(대학원대학)에 따르면, 특정 분야의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대학원만 두는 대학, 이른바 대학원대학을 설립할 수 있다. 일반적인 종합대학과 달리 학사과정을 운영하지 않고 석·박사 과정만 두는 교육기관이다. 작은 학교 오랜 잡음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이하 서불대)도 그중 한 곳이다. 재단법인 불교안양원의 이사장인 덕해큰스님이 설립했다. 2002년 9월1일 개교한 서불대는 불교학과, 상담심리학과, 심신통합치유학과 등 3개 학과로 구성돼있으며 현재 석‧박사 학위과정 입학정원은 81명이다. 학교법인 보문학원서 운영을 총괄한다. 최근 서불대가 소속 교수의 학사학위 문제로 시끄러워졌다. 부교수인 정모씨의 학사학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두고 경찰 고발까지 진행되는 등 심각한 상황이 연출됐다. 문제는 정 교수의 학위 논란이 불거진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월 서불대 관계자는 정 교수를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정 교수가 지원 당시 제출한 서류에 학력 부분을 허위로 기재하고 임용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발인은 “학사학위도 없는 교수가 석‧박사를 지도하는 엉터리 같은 상황이 우리 대학원서 자행되고 있다”며 “사실 여부를 정확히 가려 일벌백계해달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2005년 9월1일 서불대 전임강사로 신규 임용됐다. 2007년 9월1일 조교수로 승진, 2015년 3월1일 부교수가 된 이후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쟁점이 된 부분은 정 교수가 2005년 7월 서불대 전임강사 임용 과정서 제출한 ‘신원진술서’와 ‘교수초빙 지원서’의 학력란이다. 정 교수는 학사 부분에 학교명 ‘Buddhist and Pali University’(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 학과명 ‘Buddhist Social Philosophy’, 전공 ‘Buddhist Social Philosophy’라고 기재했다. 수학 기간은 1992년 3월부터 1997년 2월로 1997년 1월1일에 문학학사학위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 교수가 함께 제출한 ‘신원진술서’에 1994년 6월부터 1995년 12월까지 군대에 다녀왔다고 적은 부분이다.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서 공부한 기간과 군 복무 기간이 겹치는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정 교수는 1997년 1월에 스리랑카로 출국, 같은 해 3월에 입국했다. 2015년 첫 문제 제기 2021, 2022년, 올해도 기록의 모순점이 알려지면서 정 교수의 학사 학위를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서불대 학위검증위원회는 2014년 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정 교수의 학사학위를 검토했다. 그리고 정 교수의 학사학위에 하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정 교수는 당시 소명서에 학사과정을 적은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가 아닌 한국분교서 군 복무 기간에 진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심지어 한국분교인 ‘한국불교대학’은 당시 교육부 미인가 대학이었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보문학원 이사회의 처분이다. 보문학원은 2015년 9월2일 개최한 이사회서 정 교수의 임용 과정 중 면접위원이었던 이모 교수와 김모 교수를 중징계 조치했다. 정 교수가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의 한국분교서 학사과정을 한 사실을 인지했지만 이를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아 보문학원과 서불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퇴직 상태였기 때문에 ‘퇴직 불문’ 처리됐다. 근무 중 문제가 발생했지만 징계 절차 전에 퇴직해 문제 삼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서불대에는 기관경고 처분을 하면서도 정 교수에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징계처분을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정 교수의 학위 논란에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다. 일단락되는 듯했던 학위 논란은 지난 2021년 재차 불거졌다. 이번에 문제된 부분은 성적증명서였다. 한국불교대학서 정 교수가 학부 과정을 진행했다는 시기와 인접한 때에 발부한 성적증명서와 그가 제출한 문서가 다르다는 새로운 의혹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 정 교수가 제출한 서류는 성적증명서가 아닌 졸업시험성적표로 확인됐다. 서불대는 ‘계약제 교수 업적평가 규정’에 따라 계약제로 임용된 교수의 계약기간을 1~3년으로 정하고 있다. 정년보장 교수(정교수) 승진 전까지 1~3년 단위로 재계약을 진행하는 것이다. 교원인사위원회가 영역별로 평가한 뒤 임용 혹은 면직을 제청하면 법인서 이를 승인하는 방식이다. 정 교수는 당시 일정 기간 단위로 계약을 새로 체결해야 하는 부교수 신분이었다. 6년 만에 바뀐 결론 서불대는 2021년 6월21일 열린 교원인사위원회서 정 교수의 부교수 임용 심의에 대해 논의했다. 그 결과 정 교수가 임용 서류에 학사학위 관련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이 면직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는 법률 자문 결과를 들어 면직을 제청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립학교법 제58조(면직의 사유)는 ▲인사기록에 있어 부정한 채점‧기재를 하거나 거짓 증명 또는 진술을 했을 때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임용됐을 때 등의 이유로 해당 교원의 임용권자는 그 교원을 면직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변호사는 정 교수가 교원으로 임용될 당시 제출한 지원서에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이 사실이라면 면직 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자문했다. 그러면서 교원인사위원회서 심의하고 교원징계위원회의 동의가 이뤄지면 정 교수를 면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서불대 교원인사위원회는 정 교수의 면직을 보문학원에 제청했다. 이후 보문학원은 서불대 교원징계위원회에 정 교수에 대한 면직 동의를 요구하는 문서를 제출했다. 보문학원이 기재한 징계 사유는 “(정 교수가) 임용 지원 당시 교원임용지원서에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 한국분교 한국불교대학’으로 표기했어야 하는 것을 당시 면접위원들과 논의해 ‘한국분교 한국불교대학’을 제외하고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만으로 표기했다”는 것이었다. 정 교수는 “2015년 학위검증위원회서 ‘문제 없음’, 이사회서 ‘불문 처리’됐다며 항변했지만 결국 면직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2015년과 2021년 두 차례 걸친 검증 과정서 서불대와 보문학원 이사회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서불대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2015년에 진행된 학위 검증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판단은 또 달랐다. 보복이냐 허위냐 정 교수는 면직된 이후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면직 처분 취소 청구’를 제기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정 교수의 면직 처분이 위법하다며 취소한다고 결정했다. 당시 정 교수는 ▲2014~2015년 학위 검증 ▲사학비리 신고에 대한 보복성 조치 ▲면직 사유 부존재 등의 주장을 내세웠다. 2021년 1월경 서불대 전 총장 황모씨 등 일부 인사의 입시 및 학위 수여 부정, 다국어교육원 운영과 관련한 횡령 혐의 등을 교육부에 감사 요청한 것을 두고 그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면직 처분을 진행했다는 설명이다. 또 학사학위를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서 받은 사실과 수학한 곳이 해당 학교의 한국분교라는 사실은 서로 다른 범주라고 강조했다. 공부한 곳을 지원서에 적지 않았다고 해서 학사학위를 받은 자체가 허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2014~2015년에 이뤄진 학위 검증에 대해 언급했다. 서불대가 요청한 학부‧석사 성적, 재학증명서에 대해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가 서류를 보낸 점, 당시 면접위원이었던 김모 교수의 확인서 등을 근거로 삼았다. 김 교수는 “학사 및 석사학위에 하자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또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학위검증위원회의 판단 자체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반면 문제를 제기한 쪽은 정 교수가 신규 임용 재계약 과정서 제출해야 할 서류를 내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서불대 규정에 따라 진행하는 재임용 과정서 정 교수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서불대 관계자는 “사립대학 교원의 임용권은 학교법인이나 학교의 장에게 있다는 교육부의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서불대 교원의 신규 임용 후보자는 규정에 따라 14가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대학 졸업증명서 및 성적증명서 ▲석·박사 학위증명서·성적증명서 및 학위기 사본 ▲경력증명서 등이다. 서불대 관계자는 “정 교수는 학사(대학)학위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200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학사 성적증명서를 누락했다”고 주장했다. 학내 결정, 외부 기관 뒤집혀 면직→복직, 재임용 1년→3년 2022년 또다시 학위검증위원회와 교원인사위원회가 잇따라 개최됐다. 정 교수를 포함한 교수 3명의 재임용을 논의하는 과정서 학위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반영됐다. 학위검증위원회는 정 교수의 학사학위에 대해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2015년 학위검증위원회가 잘못 심의한 부분과 2015년 이후 추가로 밝혀진 부분을 참고해 재검증한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서불대 교원인사위원회는 학위검증위원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 교수에 ‘재임용 불가’를 의결했다. 보문학원은 단서 조항을 달아 ‘조건부 1년 재임용’으로 결론내렸다. 하지만 정 교수가 법인의 결정에 반발해 국민권익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안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국민권익위원회가 1년 조건부 재임용 계약을 취소하고 3년 재임용 계약을 체결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정 교수는 서불대의 교직원 부당 채용 의혹 등을 신고한 뒤 재임용 계약기간 단축 등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며 ‘신분보장등조치’를 신청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정 교수의 신고가 없었더라도 동일한 내용의 불이익 조치를 받았을 만한 정당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 교수가 2021년 2~3월에 신고한 교직원 채용 관련 문제에 대해 교육부가 징계 조치 등을 요구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보문학원은 정 교수와 3년 재임용 계약을 맺었다. 강의 배정, 논문지도 교수 위촉 등 국민권익위원회의 주문 사항도 처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월에 이뤄진 경찰 고발사건 역시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해 불송치됐다. 경찰은 정 교수의 업무방해 혐의에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업무방해 혐의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서류 누락 진실은? 서불대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정 교수는 ‘교원의 자격’ ‘신규 임용자의 제출서류’ 등 학교 규정을 무시한 채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며 “학사학위와 관련한 서류를 내면 모든 게 마무리되는데 2005년 신규 임용 때부터 1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걸 못 내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학교나 법인 차원서 처리하지 못하는 게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정 교수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질의서를 보내고 통화를 시도했다. 정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학교법인 보문학원에도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