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로또’ 로또판매점 쟁탈전

대박 잡으려다 박 터질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계속되는 불황에도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로또 판매가 사상 최대의 수치를 기록한 것. 이에 발맞춰 로또를 판매하는 사람들도 호황을 맞았다. ‘로또 판매가 로또’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에 너도나도 로또를 팔겠다고 나서지만 대부분이 높은 경쟁률과 까다로운 판매자격의 벽에 좌절했다. 로또 판매권을 사고파는 사람들도 생겨나는 실정이다.

경기침체가 깊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로또복권 판매량만큼은 예외였다. 지난 16일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로또복권 판매는 액수 기준 3조5500여억원. 판매량 기준 3억5000여 게임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하루 평균 97억2600여만원어치가 판매된 셈으로 판매량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치며 판매액 기준으로도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역대 1위인 2003년 로또복권 판매액이 한 게임당 2000원이였던 것을 감안하면(현재 게임당 1000원) 작년 판매액이 사상 최대라고 볼 수 있다.

불티나게 팔려

2003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로또복권은 그해 4월12일 당첨금 이월로 사상 최대의 금액인 407억2000만원이 1등에게 돌아갔다.

그 후 사행성 논란이 커지면서 2004년 8월 당첨금 이월 횟수가 줄고 게임당 가격 역시 2000원서 1000원으로 내리면서 판매의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2013년까지 2조원대의 판매액을 유지하던 로또 복권은 2014년부터 3조원대를 회복했다.


지난해 로또의 판매량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에는 100만명이 넘는 실업자 수 등 불경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야말로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복권은 경기불황일 때 소비가 증가하는 대표적인 ‘불황형 상품’이다. 그렇지만 정부측 해석은 로또 판매점의 증가가 주요 요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2003년 로또복권 판매점 지정 이후 그동안 신규 모집을 하지 않았던 정부가 2015년부터 장애인 및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을 우선 대상으로 판매점을 모집했기 때문. 이에 따라 2014년 말 조사했을 당시 6015곳에 불과했던 판매점은 지난해 6월 기준 6834곳으로 늘어났다.

손쉽게 안정적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로또를 팔겠다고 나서지만 아무나 팔 수 있는 건 아니다. 복권 수탁사업자인 나눔로또는 복권 및 복권기금법에 따라 판매인 자격을 국가유공자·기초생활수급자·장애인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신규 판매인 610명을 뽑는 데 6만9689명이 지원해 114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로또 판매인 자격을 얻는다고 끝이 아니다.

추첨을 통해 자격을 얻으면 6개월 이내에 로또 판매를 위한 사업장을 소유하거나 임차해야 한다. 그런데 로또가 생업을 팽개치고 매장을 차릴 만큼 돈벌이가 되는 것은 또 아니다. 지난해 판매점 평균 수입(판매수수료)은 연간 2795만원으로 추산됐다.

불황에 로또복권 판매 사상 최대
돈되는 판매점…경쟁률 사상 최고


‘대박’ ‘명당’ ‘성지’라고 불리는 일부 판매점을 제외하면 세간의 인식만큼 높은 수익을 내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권리금에 임대료도 빼야 한다. 목 좋은 자리에 매장을 차릴만한 형편이 되는 ‘취약계층’도 그리 많지 않다.

서울 강북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A(50)씨는 계산대 옆에 놓인 로또 단말기를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고 했다.

2015년 3월 설치했는데 매상에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로또를 사러 가게에 들른 손님들은 다른 상품도 꽤 많이 장바구니에 담는다. A씨는 “장사하는 입장에선 담배하고 로또만 있으면 본전은 뽑는다”고 말했다.
 

A씨는 진즉부터 로또를 팔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2003년 이후 신규 로또 판매인 모집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동네 부동산 소개로 B씨(42)를 알게 됐다. B씨는 장애인이다. 로또 판매인이 될 취약계층 ‘자격’을 갖췄지만 로또 판매점을 낼 형편이 안됐다.

두 사람은 A씨 가게에 로또 단말기를 설치하고 수익을 반씩 나누기로 했다. B씨가 A씨 가게에 들어와 장사하는 ‘숍 인 숍(Shop in Shop)’ 형태로 사업자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A씨가 로또를 판매했다.

B씨는 단말기 명의만 빌려줄 뿐 가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로또판매를 둘러싼 꼼수가 판친다. 편의점 또는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거나 좋은 상권에 로또 판매점을 내려고 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로또 단말기를 들여놓으려 한다.

로또 매장을 차릴 형편이 안 되거나 생업을 접고 로또 판매에 나서기엔 망설여지는 쪽에선 단말기를 임대해 수익을 올리고자 한다.

이런 이해관계가 맞아 자연스레 실체 없는 ‘로또 판매권’이 거래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편의점주가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로또 판매권을 사거나 빌리겠다는 게시물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중고거래 사이트에도 ‘로또 판매권 구합니다’라는 글이 버젓이 게재된다. 편법이 횡행하지만 사실상 단속은 이뤄지지 않는다. A씨와 B씨 경우처럼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나눔로또 측에서 전수 점검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올해에는 단 2명만 위장영업으로 적발됐다.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로또 단말기를 편법으로 임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도 “설사 임대한다 하더라도 어쨌든 취약계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복권위의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해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한 로또 판매점의 매출액은 약 168억원에 달했다. 로또 판매점에게 돌아간 수익은 무려 8억4376만원이다.

신규 경쟁률 ‘114대 1’
1년에 10억 가까이 벌어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3명을 모집했는데 788명이 지원했다. 군 단위 지역에도 지원자가 꽤 몰렸다. 강원 정선군(1명 모집)에 107명, 충북 진천군(2명 모집)에 113명, 전북 완주군(2명 모집)에 250명, 전남 무안군(1명 모집)에 292명 등 세자릿수 지원자가 몰린 군 지역도 꽤 나왔다.

전체적으로 보면 점포당 평균 4억5722만원어치를 팔아 2286만원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로또 판매점으로 지정되면 판매액의 5%를 수수료로 받을 수 있다.

가령 5000원짜리 로또 한 장씩을 사면 판매점에 돌아가는 수익은 250원이다. 만약 1등 당첨자가 나와 소위 ‘로또 명당’으로 소문나면 천문학적인 돈을 만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로또 판매인 사이에 형성될만 하다. 그야말로 ‘로또 판매점으로 선정되는 게 로또’인 셈이다.

물론 로또 판매점간 수익 기준 격차가 크기 때문에 선정된다 하더라도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가장 매출이 낮은 로또 판매점의 매출액은 590만원, 수익은 29만원에 불과했다. 가장 매출이 많은 곳과 수익 기준 격차가 2900배에 달하는 셈이다.
 

지역간 격차도 나타났는데 서울 시내 노원구 판매점 59곳은 1개 점포당 평균 판매액이 6억7400만원인 데 비해 서대문구 판매점 51곳은 점포당 판매액이 3억원에 그쳤다.


인구가 적은 군 단위 지역의 경우 이러한 격차가 더 클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나눔로또는 2015년 로또 판매인 610명을 추가로 선정했다. 11년 만이다.

무작위 전산 추첨을 통해 로또 판매인이 결정됐다. 당시 로또 판매인 모집의 경쟁률은 114대 1. 610명 모집에 총 6만9689명이 지원했다.

각 지역별로 모집을 했는데 대구 달서구에서 2명 모집에 2262명이 몰려 가장 경쟁이 치열했다. 반면 경북 영양군은 1명 모집에 6명이 지원해 가장 낮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성동구가 1명 모집에 308명이 몰렸고 노원구는 10명 모집에 1179명이 지원했다. 강서구에서는 7명 모집에 1022명이 지원했고 송파구(9명 모집)도 지원자가 1193명에 달했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3명을 모집했는데 788명이 지원했다. 군 단위 지역에도 지원자가 꽤 몰렸다. 강원 정선군(1명 모집)에 107명, 충북 진천군(2명 모집)에 113명, 전북 완주군(2명 모집)에 250명, 전남 무안군(1명 모집)에 292명 등 세자릿수 지원자가 몰린 군 지역도 꽤 나왔다.

로또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는 2017년까지 로또 판매점을 2000여곳 늘리기로 했다. 로또 판매점이 지속적으로 자연 감소하고 있고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 등에서 로또 구매가 어려운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꼼수 판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탕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민들은 노력의 한계에 부딪혀 기적을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회적 현상에 대해 단순히 사행산업 발전에만 그치지 않고 중독자 양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 전문가는 “정부는 사행산업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문제점을 파악해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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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