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수상한 무상원조’ 내막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2.13 10:50:38
  • 호수 1101호
  • 댓글 0개

제 코가 석자인데…남 돕는다고?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민의 개개인 한표가 모여 민의를 대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는 무엇보다 신뢰성과 투명성이 생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대선을 비롯해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럴 때마다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미봉책만 내놓을 뿐이다. 최근에는 국내 도입이 시급한 개표결과전송단말기를 에콰도르에 무상 지원하는 작태를 보이기도 했다. <일요시사>는 선관위의 수상한 무상원조 내막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12월 21일 코이카(KOICA)는 에콰도르의 선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현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선거 단말기 1850대를 기증한다고 밝혔다. 코이카는 기증된 단말기가 각 투표소에서 집계한 투표결과를 중앙으로 전송하는 역할을 하며 내년 2월 에콰도르 대통령 선거 기간 전국 1800여개 중간집계소에 설치될 예정이라고도 했다.

부정의혹 자초

해당 무상 사업은 에콰도르 선관위가 지난해 4월, 한국을 방문해 총선을 참관한 후 선거 장비 도입을 적극 요청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선관위는 지난해 8월 ‘에콰도르공화국 개표결과전송단말기 공급 사업’ 제안 요청서를 작성하고 같은 해 10월 입찰공고를 올렸다.

하지만 11월2일까지 3차례의 유찰이 있은 후 같은 달 7일에서야 해당 사업을 실질적으로 진행할 사업체를 선정했다.

문제는 해당 지원 사업의 내용이다. 국내에 먼저 도입해 선거의 신뢰도와 투명성을 높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 퍼주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에콰도르에 공급하는 개표결과전송단말기(이하 단말기)는 모바일, 유·무선 통신기능 지원이 가능하도록 돼있다. 주목할 점은 개표결과 이미지와 텍스트를 동시에 전송한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는 개표결과 이미지가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올라가지 않는다. 다만 일반인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선거 10일 후쯤 개표결과의 근거인 개표상황표를 받아 볼 수 있을 뿐이다. 17대 대선을 살펴보면 선관위 홈페이지에 투표구별로 선거인수, 투표수, 후보자별 득표수, 무효 투표수, 기권수 등의 텍스트파일이 올라가 있다.

종로구를 예로 들면 부암동은 부암동제1투표구, 부암동제2투표구의 집계상황을 올리고, 삼청동도 마찬가지로 삼청동제1투표구, 삼청동제2투표구의 결과를 올리는 식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개표결과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 개표결과 이미지란 ‘개표상황표’를 의미한다.

에콰도르에 선거장비 지원
지금 다른 나라 도울 땐가?

개표상황표에는 투표지분류 개시시각과 종료시각이 표시되어 있고 후보자별 득표수가 수기로 기록돼있다. 18대 대선은 오히려 후퇴했다. 18대 대선에는 선거개표 결과를 투표구별로 공개하지 않았다. 종로구를 예로 들면 종로구 투표구 전체 누적표가 적시될 뿐이다.
 

투표구별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18대 대선에도 개표결과 이미지(개표상황표)는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되지 않았다. 또한 투표구별 개표결과(텍스트)를 당일에 올리지 않고 이틀이 지나서야 올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됐다.

한 선거전문가는 개표결과 이미지 즉, 개표상황표에 대해 “개표결과(텍스트)만 공개하고 개표결과 이미지(개표상황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결과만 있고 결과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것”이라며 “선관위가 선거 부정의혹을 자초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선관위는 선거 부정의혹이 끊이지 않자 지난 20대 총선서 미봉책을 내놨다. 투표구별 개표상황표를 일반에 공개키로 한 것이다. 개표상황표를 개표소 내 게시판에 부착하고 개표소 출입이 제한된 대다수 일반인의 경우 확인 요청을 통해 사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 법으로 명시돼있지 않아 보장할 수 없다.  


개표상황표를 개표소 외부 게시판에 부착해 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대해서는 많은 양의 상황표를 게시할 물리적 공간 확보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음을 토로했다.

다른 선거전문가는 “일반인에게 자유롭게 공개하지 못할 것이면 차라리 선관위 홈페이지에 개표결과 이미지를 올리면 될 것”이라며 “선관위가 좋은 절차와 제도, 기술이 있음에도 정작 절실히 필요한 우리나라를 외면하고 에콰도르에 무상원조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선관위가 에콰도르에 무상으로 공급한 단말기의 경우 개표결과 이미지를 바로 전송하는 시스템을 갖춰 투표결과에 대한 근거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결과만 공개될 뿐 근거는 알 수 없어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개표결과 이미지를 선거개표와 동시에 선관위 홈페이지에 올리는 방안에 대해 선관위 정보센터 관계자는 “심사집계 이후 위원장 공표가 끝나면 개표상황표가 여러 개 묶여 있는 상황에서 보고용 PC로 자료를 입력한다”며 “자료를 입력하는 과정서 개표상황표가 누적되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 올리는데 인프라의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도입을 한다고 하면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접속해서 들어올 것”이라며 “시간과 예산 확보가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올려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방안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인프라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만약 에콰도르에 공급한 단말기를 우리나라에 도입한다면 개표상황표 전송과 수신을 위해 별도로 팩스를 사용하는 불필요한 이중구조가 없어질 것”이라며 “경비 절감과 인력축소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도입 안하나?”
주무부처의 이상한 변명

선거제도 도입 여부를 검토하고 판단하는 선관위 선거1과 관계자는 개표결과 이미지 전송에 대해 “최근 거기(개표결과 공개)에 대한 요구가 있어서 좋은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라며 “개표사무에 큰 지장을 주지 않고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다가오는 대선과 재보궐에 이미지전송 시스템이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개표결과 이미지 파일을 올리는 방안까지는 생각을 못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법적으로 검토돼야 할 문제인지 단순히 절차를 도입하면 되는지에 대해서는 “그것은 검토를 해봐야 할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번 에콰도르 단말기 사업에 실질적 사업수행기관인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관계자는 해당 단말기의 국내 도입 가능성에 대해 “국내 공직 선거법에는 ICT장비를 이용해 선거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라며 “우리나라는 수개표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못 쓴다”고 잘라 말했다.

세계선거기관협의회 관계자의 이 같은 반응에 선거전문가는 “수개표 때문에 개표결과 전송단말기를 못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수개표를 하는 것과 이미지파일을 전송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개표는 개표의 한 방법일 뿐 개표결과를 전송하는 것과는 절차상 겹치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투표소에서 보고용 PC를 통해 개표결과를 전송하는 작업은 가장 마지막에 이뤄지는 절차로써 수개표를 한다고 해서 개표결과 전송에 방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아울러 선거전문가는 “에콰도르의 경우 보고용 PC를 통해 텍스트(개표결과)와 이미지파일을 보내는 과정을 일원화함과 동시에 개표결과 이미지를 국민에 공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18대 대선 당일을 기준으로 볼 때 개표일에 텍스트만 공개해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이러니∼

그는 “이런 첨단 개표결과 전송기법은 이미 온두라스, 도미니카 등 여러 나라서 이미 채택 적용해 사용하고 있는 추세”라며 “정작 선관위를 비롯해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창설을 주도한 우리나라서 이런 추세를 외면하고 타국에 먼저 무상원조를 제공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덧붙였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