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민의 개개인 한표가 모여 민의를 대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는 무엇보다 신뢰성과 투명성이 생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대선을 비롯해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럴 때마다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미봉책만 내놓을 뿐이다. 최근에는 국내 도입이 시급한 개표결과전송단말기를 에콰도르에 무상 지원하는 작태를 보이기도 했다. <일요시사>는 선관위의 수상한 무상원조 내막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12월 21일 코이카(KOICA)는 에콰도르의 선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현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선거 단말기 1850대를 기증한다고 밝혔다. 코이카는 기증된 단말기가 각 투표소에서 집계한 투표결과를 중앙으로 전송하는 역할을 하며 내년 2월 에콰도르 대통령 선거 기간 전국 1800여개 중간집계소에 설치될 예정이라고도 했다.
부정의혹 자초
해당 무상 사업은 에콰도르 선관위가 지난해 4월, 한국을 방문해 총선을 참관한 후 선거 장비 도입을 적극 요청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선관위는 지난해 8월 ‘에콰도르공화국 개표결과전송단말기 공급 사업’ 제안 요청서를 작성하고 같은 해 10월 입찰공고를 올렸다.
하지만 11월2일까지 3차례의 유찰이 있은 후 같은 달 7일에서야 해당 사업을 실질적으로 진행할 사업체를 선정했다.
문제는 해당 지원 사업의 내용이다. 국내에 먼저 도입해 선거의 신뢰도와 투명성을 높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 퍼주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에콰도르에 공급하는 개표결과전송단말기(이하 단말기)는 모바일, 유·무선 통신기능 지원이 가능하도록 돼있다. 주목할 점은 개표결과 이미지와 텍스트를 동시에 전송한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는 개표결과 이미지가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올라가지 않는다. 다만 일반인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선거 10일 후쯤 개표결과의 근거인 개표상황표를 받아 볼 수 있을 뿐이다. 17대 대선을 살펴보면 선관위 홈페이지에 투표구별로 선거인수, 투표수, 후보자별 득표수, 무효 투표수, 기권수 등의 텍스트파일이 올라가 있다.
종로구를 예로 들면 부암동은 부암동제1투표구, 부암동제2투표구의 집계상황을 올리고, 삼청동도 마찬가지로 삼청동제1투표구, 삼청동제2투표구의 결과를 올리는 식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개표결과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 개표결과 이미지란 ‘개표상황표’를 의미한다.
에콰도르에 선거장비 지원
지금 다른 나라 도울 땐가?
개표상황표에는 투표지분류 개시시각과 종료시각이 표시되어 있고 후보자별 득표수가 수기로 기록돼있다. 18대 대선은 오히려 후퇴했다. 18대 대선에는 선거개표 결과를 투표구별로 공개하지 않았다. 종로구를 예로 들면 종로구 투표구 전체 누적표가 적시될 뿐이다.
투표구별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18대 대선에도 개표결과 이미지(개표상황표)는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되지 않았다. 또한 투표구별 개표결과(텍스트)를 당일에 올리지 않고 이틀이 지나서야 올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됐다.
한 선거전문가는 개표결과 이미지 즉, 개표상황표에 대해 “개표결과(텍스트)만 공개하고 개표결과 이미지(개표상황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결과만 있고 결과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것”이라며 “선관위가 선거 부정의혹을 자초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선관위는 선거 부정의혹이 끊이지 않자 지난 20대 총선서 미봉책을 내놨다. 투표구별 개표상황표를 일반에 공개키로 한 것이다. 개표상황표를 개표소 내 게시판에 부착하고 개표소 출입이 제한된 대다수 일반인의 경우 확인 요청을 통해 사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 법으로 명시돼있지 않아 보장할 수 없다.
개표상황표를 개표소 외부 게시판에 부착해 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대해서는 많은 양의 상황표를 게시할 물리적 공간 확보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음을 토로했다.
다른 선거전문가는 “일반인에게 자유롭게 공개하지 못할 것이면 차라리 선관위 홈페이지에 개표결과 이미지를 올리면 될 것”이라며 “선관위가 좋은 절차와 제도, 기술이 있음에도 정작 절실히 필요한 우리나라를 외면하고 에콰도르에 무상원조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선관위가 에콰도르에 무상으로 공급한 단말기의 경우 개표결과 이미지를 바로 전송하는 시스템을 갖춰 투표결과에 대한 근거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결과만 공개될 뿐 근거는 알 수 없어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개표결과 이미지를 선거개표와 동시에 선관위 홈페이지에 올리는 방안에 대해 선관위 정보센터 관계자는 “심사집계 이후 위원장 공표가 끝나면 개표상황표가 여러 개 묶여 있는 상황에서 보고용 PC로 자료를 입력한다”며 “자료를 입력하는 과정서 개표상황표가 누적되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 올리는데 인프라의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도입을 한다고 하면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접속해서 들어올 것”이라며 “시간과 예산 확보가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올려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방안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인프라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만약 에콰도르에 공급한 단말기를 우리나라에 도입한다면 개표상황표 전송과 수신을 위해 별도로 팩스를 사용하는 불필요한 이중구조가 없어질 것”이라며 “경비 절감과 인력축소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도입 안하나?”
주무부처의 이상한 변명
선거제도 도입 여부를 검토하고 판단하는 선관위 선거1과 관계자는 개표결과 이미지 전송에 대해 “최근 거기(개표결과 공개)에 대한 요구가 있어서 좋은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라며 “개표사무에 큰 지장을 주지 않고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다가오는 대선과 재보궐에 이미지전송 시스템이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개표결과 이미지 파일을 올리는 방안까지는 생각을 못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법적으로 검토돼야 할 문제인지 단순히 절차를 도입하면 되는지에 대해서는 “그것은 검토를 해봐야 할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번 에콰도르 단말기 사업에 실질적 사업수행기관인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관계자는 해당 단말기의 국내 도입 가능성에 대해 “국내 공직 선거법에는 ICT장비를 이용해 선거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라며 “우리나라는 수개표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못 쓴다”고 잘라 말했다.
세계선거기관협의회 관계자의 이 같은 반응에 선거전문가는 “수개표 때문에 개표결과 전송단말기를 못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수개표를 하는 것과 이미지파일을 전송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개표는 개표의 한 방법일 뿐 개표결과를 전송하는 것과는 절차상 겹치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투표소에서 보고용 PC를 통해 개표결과를 전송하는 작업은 가장 마지막에 이뤄지는 절차로써 수개표를 한다고 해서 개표결과 전송에 방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아울러 선거전문가는 “에콰도르의 경우 보고용 PC를 통해 텍스트(개표결과)와 이미지파일을 보내는 과정을 일원화함과 동시에 개표결과 이미지를 국민에 공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18대 대선 당일을 기준으로 볼 때 개표일에 텍스트만 공개해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이러니∼
그는 “이런 첨단 개표결과 전송기법은 이미 온두라스, 도미니카 등 여러 나라서 이미 채택 적용해 사용하고 있는 추세”라며 “정작 선관위를 비롯해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창설을 주도한 우리나라서 이런 추세를 외면하고 타국에 먼저 무상원조를 제공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