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설’ 반기문 낙마의 비밀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2.06 10:44:46
  • 호수 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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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장어’ 누가 끌어내렸나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여권 내 유력 대선주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낙마했다. 귀국 직후 ‘정치교체’ 화두를 던진 그는 언론의 검증 공세에 시달렸다. 동시에 한때 문재인 전 대표를 앞질렀던 지지율은 완전히 반 토막 났다. 위기의 나날을 보내던 그는 측근에게도 알리지 않고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왜 야인의 길을 택했을까. 반 전 총장의 낙마 이면의 진실을 파헤쳐봤다.

여권 대선주자의 핵으로 꼽힌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날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가졌던 반 전 총장은 “내가 주도해 정치교체와 더불어 국가통합을 이루려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말했다. 유엔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지 3주 만에 대선 포기를 전격 선언했다.

귀국 후 그는 고향인 충주와 음성을 비롯해 부산과 대구, 광주 등 전국을 도는 강행군으로 대권 행보를 이어왔다. 설 직후에는 개헌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4개당은 이에 싸늘하게 반응했다.

불출마 선언
갑자기 왜?

반 전 총장은 기자회견서 “내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다”며 “오히려 내 개인과 가족, 그리고 10년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고 언급했다.

이어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가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권행보 기간인 20여일 동안 각종 구설에 오르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귀국 첫날인 지난달 12일 공항철도 발권기에 2만원을 투입한 모습이 포착돼 ‘서민 코스프레’ 논란에 휩싸였다. 이 밖에 ‘국립현충원 방명록 커닝’ ‘퇴주잔’ ‘봉하마을 방명록’ ‘조류독감 방역 체험’ 등의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다.

귀국 후 본격 검증에 나서기도 전에 대권행보마다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지지율도 함께 곤두박질쳤다. 언론의 맹공에 반 전 총장은 ‘가짜 뉴스’라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아울러 자신의 정치행보를 평가절하한 정치인들은 ‘구태의연하고 편협하다’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이유에 대해 지난 2일, 바른정당 김성태 의원은 “설 연휴 이후 여론조사를 했는데 13%대 지지율에 머무른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던 반 전 총장이 지지율 격차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떨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의 분석처럼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최근에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귀국 직후 ‘컨벤션 효과’를 누리며 20% 초반 지지율서 상승세를 보였지만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문 전 대표와 20% 넘게 벌어졌다.

정치권 염증·지지율 하락…진짜 이유?
새누리 탈당 미적미적…결정적인 원인?

김 의원은 추가적인 이유로 “오는 8일 (반 전 총장이) 정당과 비슷한 결사체를 만들려 했고, 이를 위해서는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의 힘이 필요했지만 이들의 탈당이 불발돼 충격을 받아 사퇴를 결심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당초 정진석 전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13명)은 설 연휴 직후 반 전 총장을 돕기 위해 집단 탈당하겠다고 예고해왔다. 반 전 총장 측은 이들과 함께 바른정당에 입당하거나 독자 창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충청권 의원 8명은 지난달 31일 회동서 탈당을 보류했다.

반 전 총장 측 한 캠프 인사는 “이게(충청권 의원들의 배신) 가장 큰 타격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20명을 데리고 나올 수 있다고 하더니 나중엔 5명도 안 된다고 하더라. 겨우 이 정도를 데리고 바른정당에 입당한다면 영이 서겠느냐”고 했다.

반 전 총장이 갑작스레 대선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충청권의 한 의원은 “우리가 보기에는 그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있었다. 선대본부를 꾸려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고, 전혀 콜(요청)이 없었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충청권 의원들이 강력한 지원을 해주길 원했지만 자신의 행보를 관망하는 모습에 못내 서운함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당도 없고
돈도 없고

반 전 총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다음 날인 지난 2일, 기존 정당에 입당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제약이 있었다. 가장 큰 정당이라고 본 새누리당이 분열돼있고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었다.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수의 분열도 반 전 총장의 낙마를 부추긴 셈이다.
 

이와 동시에 반 전 총장의 대한민국 정치판에 대한 나이브한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 전 총장이 지난 2일 “나는 태생이 아주 순수하고 단순하고 직선적이어서 복선이 깔린 이야기는 평생 해본 일이 없다”고 말한 점을 볼 때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서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유로는 자금사정도 거론된다. 귀국 후 대선 행보를 시작한 지 5일 만에 반 전 총장은 “당이 없으니 돈 문제가 힘들다”는 말을 했다. 의원도 아니고 정당에 소속된 입장이 아니다 보니 자금과 조직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처지였다.

아울러 눈딱 감고 당에 들어가면 반 전 총장이 주창한 ‘정치교체’에 대한 명분이 서지 않았다.

돈 때문? 현실적 문제 직면?
동생·조카가 발목 잡았다?

반 전 총장은 경남 김해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정치 경험도 없는데 상당히 빡빡하게 시작하고 있다. 조직과 돈은 (운용을) 아예 해보지 않아 잘 못한다”고 토로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선을 치르는 해에 후보를 추천한 정당에 선거보조금을 지급한다.


보조금은 교섭단체에 총액의 반액이 나눠진다. 이후 국회의원 의석수, 총선 득표수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데 이 돈을 정당은 대선 후보 선거운동에 쓴다. 반 전 총장 입장에선 교섭단체 규모의 새 정당을 구성하는 것이 현실적 과제였던 셈이다.

섣불리 기존 정당에 합류할 수 없는 상황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 것도 반 전 총장을 괴롭게 했다. 귀국 초기 반 전 총장 측근 인사는 “선거비용에 대한 고민은 있다”면서도 “반 전 총장이 20% 이상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어 자금 문제가 향후 행보의 결정적 고려 요인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름 동안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급락해 선거비용보전 지지율인 15%를 장담키 어렵게 됐다. 외교관 출신으로 정치인 생활이 전무한 반 전 총장이 거대 조직을 꾸리고 자금을 융통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부담스런 검증
오락가락 행보

검증 과정도 반 전 총장의 낙마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반 전 총장의 동생인 기상씨와 조카 주현씨에 대한 의혹은 대권행보 초기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지난달 20일 미국 검찰은 한국 정부에 기상씨를 체포·송환해 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경남기업 고문을 지낸 기상씨와 조카 주현씨는 미국 연방법원에 250만달러(29억원 상당)의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지난 2014년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경남기업 소유 ‘랜드마크 72’를 매각하는 과정서 중동의 한 관리에게 50만달러(6억원)의 뇌물을 건네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반 전 총장 측은 지난달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친인척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 보도된 대로 한미 법무 당국 간에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면, 엄정하고 투명하게 절차가 진행돼 국민의 궁금증을 한 점 의혹 없이 해소되길 희망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에 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2일 반 전 총장을 향해 “치국 이전에 수신제가부터 하시라”고 꼬집었다. 기 대변인은 “반기상씨와 아들 주현씨가 사기행각 과정서 반 전 총장을 지속적으로 언급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며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지위도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더 이상의 회피와 꼬리 자르기는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다”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 유엔 재직시 발언과 업적에 대한 논란도 반 전 총장의 운신의 폭을 좁혔다. 지난달 24일 반 전 총장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서 “내가 (성소수자) 지지를 한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과거 유엔사무총장 당시 발언과 정면충돌됐다.

지난 2015년 9월 그는 “나는 괴롭힘 당하는 10대 게이, 구직을 거절당한 트랜스젠더 여성, 흉악한 성범죄에 노출된 레즈비언의 편에 선다”고 말한 바 있다. 퇴임 한 달여 전인 지난해 11월30일에는 “내가 성소수자 운동가임이 자랑스럽다”는 말도 했다. 불과 두 달 사이 성 소수자에 대한 입장이 바뀐 셈이다. 진보와 보수를 오락가락하는 행보가 결국 반 전 총장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발목 잡은
정체성 딜레마

반 전 총장의 중도 낙마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지지율 하락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처음에 제기됐던 정체성의 모호성 등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어떤 쪽의 스탠스를 잡을 수 있을지가 대단히 애매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기문 대체마는?

반기문 전 총장이 낙마하면서 보수층을 결집할 대체자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5월 한 언론은 '반기문 대망론 vs 홍석현 대망론'이란 칼럼을 게재하며 홍 회장이 대권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홍 회장은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대사직과 함께 차기 유엔사무총장 후보 내정 약속을 받고 2005년 워싱턴 주미대사로 부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2005년 MBC가 ‘삼성 X파일’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홍 회장이 유엔사무총장으로 재직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홍 회장의 행보도 심상찮다. 지난해 2월 포스텍 명예공학박사 수락연설서 그는 “공자도 오십이 돼서야 지천명, 그 뜻을 알게 됐다”며 “공자가 그 뜻을 실천한 것은 그로부터도 18년이 지난 68세 때”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올해로 68세가 된 홍 회장이 대권을 암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전면에 나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성완종 리스트’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홍 지사는 오는 16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홍 지사 측근은 “1심 결과를 뒤집어 이번엔 무죄를 받을 것”이란 예상을 내놓고 있다. 홍 지사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증인의 진술이 1심과 2심서 엇갈리고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심서 무죄를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 홍 지사가 항소심서 무죄를 받으면 새누리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대망론’까지 나오고 있다.

앞서 홍 지사는 “대통령 선거 출마는 모든 정치인의 로망”이라고 말해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지난달 26일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홍 지사가) 항소심서 무죄를 받는다면 대법원 상고심에서 무죄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새누리당 대권주자 대부분이 탈당한 상태라 만약 홍 지사가 새누리당 경선에 출마한다면 그를 당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홍 지사 측 정장수 비서실장은 “재판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며, 대선 출마와 관련해서 (홍 지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현재로선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며 “오로지 도정에 전념하며, 재판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만 밝힐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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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