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연임 노리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

조용한 카리스마 '공룡' 길들이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연임 의사를 밝혔다. 권 회장은 철강업계의 불황 속에서도 성과를 이끌어냈다. 덕분에 그의 연임 가능성도 높다. 그의 발자취를 정리했다.

권오준 회장은 지난 달 9일, 서울 포스코센터서 오후 3시30분께 시작된 정기이사회에 참석, 사외이사들에게 연임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CEO 후보추천위원회는 권 회장에 대한 심사에 돌입했다.

권 회장은 이날 “지난 3년간 회사 경쟁력 강화와 경영 실적 개선에 매진한 나머지 후계자 양성에 다소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회사를 이끌어 나갈 리더 육성을 위해 올해 도입한 톱 탤런츠 육성프로그램이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CEO 심사 돌입
경쟁자가 없다

그는 “3년간 추진해왔던 정책들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하고 남은 과제들을 완수하기 위해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직 연임 의사를 표명드리며, 회사 정관과 이사회 규정에 따른 향후 절차를 충실히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최근 3년간 포스코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권 회장이 취임하기 직전인 2013년 말 포스코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정준양 전 회장의 체제서 내홍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 전 회장의 과도한 기업인수합병(M&A)으로 체질이 부실해졌다.


결국 정 전 회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013년 11월 물러났다. 이목은 신임 회장 인선에 집중됐다. 당시 포스코 회장 선임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서 권 회장이 8번째 수장으로 포스코를 이끌게 됐다.

신임회장으로 권 회장이 낙점되자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경영인 출신이 아닌 연구원 출신이 포스코를 이끌게 됐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 윈저대학교 금속공학 석사, 피츠버그 대학교 금속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86년부터 포스코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기술연구소 부소장, 기술연구소장, 유럽사무소장,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장 등을 거쳤다.

취임식서 권 회장은 비장했다. 당시 포스코의 상황은 주변 상황을 신경쓸 만큼 여유가 없었다. 권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포스코는 지금 큰 어려움의 한가운데 있다. 신용등급은 떨어지고, 주가는 바닥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장이 아니라 생존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내몰렸다”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 2008년 연결기준 매출 41조7000억원에 영업이익 7조1700억원, 영업이익률 18%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이래 5년 새 실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2013년 연결기준 매출액이 61조8000억원을 기록하며 2008년 대비 50% 늘어난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2조9000억원, 영업이익률은 5% 이하로 떨어졌다.

“아직 할 일 남았다” 연임 가시화
압도적인 성과…지속적 실천의지

업계에선 당시를 ‘잃어버린 5년’으로 부르기도 했다. 부진 원인으로는 무리한 M&A가 거론된다. 정 전 회장은 사업 다각화를 명분으로 외형을 키우기 위해 2010년 대우인터내셔날 인수를 시작으로 M&A에만 5조원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2008년 말 58.9%였던 포스코의 부채비율은 2013년 84.3%까지 치솟을 만큼 재무 건전성은 악화됐다.


매출액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줄었고, 부채비율이 치솟으면서 포스코에 대한 외부 평가도 달라졌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기존 Baa1서 Baa2로 강등시켰다. S&P와 피치 등 다른 신용기관들 역시 최근 2~3년 사이에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권 회장은 타개책으로 ‘혁신 포스코 1.0’을 내세우며 임직원들에게 포스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권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일류는 자만과 허울을 벗고,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한다”면서 “위대한 포스코를 재창조하자”고 말했다.

권 회장은 적극적인 경영으로 부실해졌던 체질을 개선했다. 철강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경영인이 밀어붙이는 뚝심에 눈길이 쏠렸다. 당시 포스코는 위기라는 말이 어울리던 시기였다. 2008년 7조2000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3년 2조9000억원까지 축소됐다.
 

권 회장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군을 정리했다. 2014년 3월 취임 후 그해 7월 포스코-우루과이, 포스화인 등의 지분 매각을 시작으로 포스코 리빌딩이 시작됐다. 포스코는 총 149건의 구조조정 목표 가운데 현재까지 총 98건(65.8%)을 달성했다. 포스코는 올해 나머지 51건의 구조조정을 매듭지을 방침이다.

“성과 창출 위해
시간이 더 필요”

권 회장은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에 주안점을 뒀다. 시장서 고가의 철강재로 인식되는 포스코의 제품을 고객에 니즈에 맞게 공급하는 것이 골자다. 권 회장은 “철강사업본부 내에 제품솔루션센터를 창설해 고객의 잠재적인 니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고부가가치강인 월드프리미엄(WP) 제품에 집중하면서 중국발 저가 철강 제품과 차별화를 두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세웠다. WP제품은 세계에서 포스코만 단독으로 생산하는 월드퍼스트(WF), 기술력과 경제성을 갖춘 월드베스트(WB), 고객선호도와 영업이익률이 높은 월드모스트(WM) 제품을 의미한다. 이 같은 구상은 권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전부터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회장 면접 당시 “기술로 수요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수요에 맞는 정확한 기술을 개발하겠다. 이를 위해 시장의 동향과 상황을 면밀히 분석한 것을 토대로 기술 개발에 전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회장 취임 전부터 계획했던 내용을 그대로 경영에 녹이고 있는 셈이다.

그가 밝힌 솔루션 마케팅은 바로 고객사가 가장 쓰기 좋은 형태, 원하는 형태로 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가장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를 재가공하기 용이한 기술도 같이 제공해 고객사의 만족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의 경영전략은 시장서 통했다. 포스코의 WP 판매량은 작년 3분기 기준 403만8000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철강재 판매량의 절반 수준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2013년 1분기 판매 점유율 38%(313만2000톤) 대비 10%포인트 가량 증가했다.

WP제품 판매 비중은 48.1%를 늘었다. WP제품은 15%에 달하는 영업이익률를 보이며 높은 마진율을 자랑하기 때문에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서 수익률을 지켜주는 효자 상품 노릇을 했다.

2015년 철강업계는 중국발 공급 과잉의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2014∼2105년 동안 세계철강수요는 1%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이 철강 물량을 내수에서 소화하지 못하자 싼 가격으로 수출로 물량을 밀어낸 것이 주된 요인이다.


중국과 더불어 국내 철강재의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이 중국과 더불어 한국의 열연강판에 대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율을 적용했다. 당시 포스코는 반덤핑 3.89%, 상계관세 57.04% 등이 부과돼 관세율이 총 60.93%에 달했다.

국내 철강사들의 실적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배경서도 포스코는 선전했다. 가장 최근 실적인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조343억원을 기록, 4년 만에 1조원을 돌파했다. 매출은 12조7476억원, 순이익은 4755억원 수준이다.

이는 포스코의 3분기 영업이익이 9000억원 규모일 것이라는 증권가의 예상을 깬 깜짝 실적이다. 또 우려가 제기되던 해외법인이 사업도 호조로 돌아서며 그의 경영능력을 입증했다. 해외 철강 법인의 합산 영업이익은 전분기보다 1148% 늘어난 1323억원을 기록한 것.

불확실한 업황…선명한 비전 제시
외형 확장보다 내실 다지기 중점

이 가운데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인 PT.크라카타우 포스코가 38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멕시코 자동차 강판 생산법인인 포스코 멕시코와 베트남 냉연 생산법인인 포스코 베트남, 인도 냉연 생산법인인 포스코 마하라슈트라 등도 호실적을 거뒀다.

실적을 분석하면 그동안 권 회장의 포스코 재건 작업이 착실히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2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그룹 구조조정에 따른 법인 수 감소로 0.9% 줄었지만, 철강 부문 실적이 대폭 개선되고 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 부문 실적이 개선되면서 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52.4%와 115.6%가 증가했다.


전년동기 대비로도 실적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8.9% 줄고 영업이익은 58.7% 늘었다.
 

영업이익률이 개선된 점 역시 권 회장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실제 영업이익률은 WP 제품과 솔루션 마케팅 판매량 확대, 철강 가격 상승, 원가절감 등에 힘입어 전분기보다 2.1%포인트 오른 14.0%로 집계됐다. 이는 2011년 3분기 이래 최고 수준이다.

업계는 몸살
실적은 긍정적

재무건전성도 역시 개선됐다. 연결 부채비율은 전분기보다 5.5%포인트 낮아진 70.4%로 연결 회계 기준을 도입한 이래 최저치였고, 별도 부채비율은 2.3%포인트 내린 16.9%를 기록해 창사 이래 가장 낮았다.

연결기준 차입금은 전분기 대비 2조2643억원 줄었고, 별도 기준으로는 외부 차입금보다 자체 보유 현금이 많아지면서 순 차입규모가 마이너스(-8295억원)로 전환됐다. 권 회장의 3년간 리빌딩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이는 권 회장 연임으로 가는 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권 회장이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돼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포스코에 대한 수사결과가 무혐의로 속속히 발표되면서 권 회장의 연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검찰은 최순실 관련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이 대기업에 자금 출연 등 압력을 행사했다”며 “포스코를 포함한 대부분 기업들은 피해자”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검찰 발표서 포스코 경영진이 포레카 매각 관련 초기 작업부터 최씨 측과 공모했다는 의혹 역시 언급되지 않았다. 2014년 권 회장 선임 당시 최씨 측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일각의 주장도 발표문서 제외됐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포스코 관련자들은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서 증인채택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 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포스코는 CEO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단일후보로 권 회장의 연임을 놓고 검증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CEO후보추천위원회는 청와대의 선임 개입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도 검증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주주총회가 내년 3월 열리고 이 자리서 차기 회장 선임 안건을 의결해야하는 만큼 권 회장의 연임 검증작업은 늦어도 내년 1월 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CEO후보추천위원회가 권 회장의 연임이 적격하다고 판단하면 이후 주주총회와 이사회 승인을 거쳐 권 회장의 연임이 최종 결정된다.

이명우 포스코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 의장(동원산업 사장)은 4일 “권오준 회장 연임 여부는 무엇이 포스코의 장기적인 이익이 될 것인지를 고려해 25일 이사회 전까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포스코 사외이사로 구성된 CEO 후보추천위원회는 권 회장에 대한 자격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명우 의장, 신재철 전 LG CNS 대표이사 사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일섭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김주현 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 선우영 법무법인 세아 대표 등 6명이 CEO 후보추천위를 구성하고 있다.

단일후보…
이달 말 결정

CEO 후보추천위원회는 앞으로 2∼3주 동안 검증작업을 벌여 권 회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한 뒤 오는 25일 열리는 이사회서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 의장은 “위원회에 속한 사외이사들만의 시선으로 후보를 보는 것은 옳지 않으니 다양한 그룹으로부터의 의견을 청취·수렴 중”이라며 “근로자 대표, 전임 회장단, OB 모임, 포스코 투자자 등 포스코 내외부 이해 관계자들로부터 (권오준 회장) 후보에 대한 생각, 평가, 기대를 골고루 듣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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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회상을 반영하는 표현으로 ‘○○ 공화국’을 쓰곤 한다. OECD 국가 중 극단적 선택률 1위를 놓치지 않는 우리나라를 ‘자O 공화국’이라고 하거나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연예인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최근 또 하나의 공화국이 세워졌다. 바로 ‘쿠팡 공화국’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제시한 쿠팡의 비전이자 슬로건이다. 국민의 일상에 깊숙하게 파고들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실제 쿠팡은 전 국민의 생활을 차례로 잠식했다. ‘로켓배송’을 무기로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했고 ‘쿠팡이츠’로 배달업계를 흔들었다. ‘쿠팡플레이’로 OTT 업계에도 진출했다. 생태계 잠식 대체재 없다 쿠팡의 위력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 더욱 뚜렷하게 증명됐다. 지난달 29~30일 쿠팡 이용자에게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유출된 정보는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주문 정보 등이다. 쿠팡은 결제 정보와 로그인 관련 정보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이용자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한 시기가 주말이어서 혼란은 배가 됐다. 특히 배송 과정에서의 편의를 위해 적은 공동현관 비밀번호, 최근 주문 내역 등이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출된 정보를 조합하면 가족 구성을 알 수 있는 상황이라 교묘하게 제작된 스팸 문자 등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의 수는 무려 3370만명에 달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5168만명)의 65%에 이르는 숫자다. 여기에 개인정보 유출이 지난 6월24일, 무려 5개월여 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또 해킹 등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은 다른 업체와 달리 쿠팡 사건은 내부 직원의 소행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이 가중됐다. 중국 국적의 직원이 해외에서 개인정보를 빼돌렸다는 것이다. 앞서 쿠팡은 지난달 20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 고객 계정이 4500개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열흘 새 3370만명이라고 다시 공지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쿠팡의 프로덕트 커머스 부분 활성고객(구매 이력이 있는 고객)은 2470만명인데 피해 고객은 이보다 900만명 많다. 최근 3개월 간 구매 이력이 없는 고객까지 포함한 수치다. 사실상 전체 고객의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소셜커머스 시작 로켓배송 도입 날개 달아 이번 쿠팡 사태의 규모는 지난 2011년 해킹으로 약 35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싸이월드·네이트 사례와 맞먹는다. 올해 4월 발생한 SK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약 2324만명)를 상회한다.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 규모가 더 커진 선례를 보면 쿠팡 역시 피해 범위와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의로든 타의로든 쿠팡을 놓지 못하는 이용자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 사태 이후 보고서를 통해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지위를 갖고 있다”며 “한국 소비자는 데이터 유출 이슈에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아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쿠팡이 독점하고 있기에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걱정을 표하면서도 막상 탈퇴하긴 어렵다는 글이 보인다. 당장 내일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쿠팡이 아니면 재료를 조달할 방법이 없다는 글도 있다. 김범석 의장이 지향하던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가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현실화한 셈이다. 쿠팡은 어떻게 한국을 지배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쿠팡이 ‘틈새시장’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 틈새를 만든 건 쿠팡이 아니라 정부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대형마트를 규제하자 소비자는 전통시장을 찾는 대신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2010년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은 현재 대적할 상대가 없는 ‘유통 공룡’으로 성장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시행됐다. 정보 털려도 쓸 수밖에… 유통법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만 영업 가능 ▲대형마트 월 2회 의무 휴업일 지정 ▲의무휴업일과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 배송 서비스 금지 ▲전통상업보존구역 반경 1km 내 출점 불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발 묶인 사이 이커머스 시장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팡이 2014년 도입한 로켓배송은 그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든 ‘신의 한 수’였다. 쿠팡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금을 등에 업고 심야, 새벽 배송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쿠팡이 공격적으로 물류센터를 늘릴 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금은 그 물류 센터가 지역 배송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에서 택배기사의 건강권을 위해 심야 새벽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물론 택배기사 사이에서도 민주노총의 주장에 반발이 나왔다. 소비자는 오후에 주문해도 아침이면 집 앞에 물품이 도착하는 데서 오는 편리함, 택배기사는 경제적 이익, 노동권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실제 민주노총의 주장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쿠팡의 배송 시스템이 국민 생활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소비 트렌드가 완전히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쿠팡의 영향력은 더욱 거대해졌다. 저녁 식사 재료를 사기 위해 퇴근 후 마트나 슈퍼로 뛰어가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과거 회상 장면에나 나온다.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물건을 주문하며 불과 몇 시간 만에 집 앞에 배송된 택배 상자를 안고 들어가는 게 일상이 됐다. 가족끼리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쇼핑을 하는 일은 생활을 위한 게 아니라 이른바 ‘여가’가 됐다. 규제 업고 틈새 노려 방점을 찍은 건 코로나19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커머스 시장은 배달업계와 함께 끝 모르고 성장했다. 이 시기 대형마트는 의무 휴업일이나 심야 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일부 풀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규제에서 자유롭던 쿠팡은 또다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그 결과 쿠팡은 2023년 창사 이후 첫 흑자를 냈다. 당시 쿠팡은 6조2000억원을 투자해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지었다. 영업손실은 2021년 1조7097억원에 달했지만 2022년 1447억원으로 줄었고 2023년에는 결국 흑자로 돌아섰다. 2023년 기준 쿠팡의 매출은 32조원에 이른다. 당시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3년 4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영업이익은 6174억원이다. 매출, 영업이익 모두 전통 유통기업을 제친 1위다. 쿠팡은 흑자 전환의 비결로 고객의 충성도를 꼽았다. 이들이 쿠팡에서 씀씀이를 늘리면서 쿠팡 전체 이익이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쿠팡이 도입한 ‘쿠팡 와우’ 멤버십의 증가가 영업이익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쿠팡 와우는 월 4990원(현재 7890원)을 내면 쿠팡에서 구매하는 대부분 물건을 무료로 배송받을 수 있다. 또 쿠팡플레이라는, 쿠팡이 론칭한 OTT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당시 쿠팡은 쿠팡 와우 멤버십, 즉 유료 가입자가 2021년 900만명에서 2023년 1400만명까지 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쿠팡 매출은 41조원까지 뛰어올랐다. 전체 대형마트 판매액(37조1779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영업이익은 602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억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는데 매출이 3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쿠팡 와우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은 지난해 말 기준 1500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소비트렌드 변화·코로나19로 쐐기 2023년 흑자 전환해 전체 매출 1위 눈여겨볼 대목은 쿠팡 와우의 가격이 지난해 3000원가량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고객이 이탈하기는커녕 되려 대거 늘었다는 점이다. ‘쿠팡 생태계’가 이미 공고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충성 고객층이 이전보다 두꺼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독료 인상분보다 쿠팡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쿠팡을 카카오와 비교하기도 한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를 배경으로 각종 사업에 진출했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중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카카오톡은 카카오가 골목상권에 침투하는 데 훌륭한 ‘씨앗’ 역할을 담당했다. 쿠팡 와우 가입자를 위한 ‘로켓배송’이 심야·새벽 배송 시장을 잠식하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한 것과 비슷하다. 대체재가 많지 않은 것도 닮았다.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톡 업데이트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SNS처럼 바꾸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용자들이 카카오톡 앱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방도를 찾다가 고안한 방법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용자의 반발이 거셌다. 카카오톡 앱 평점은 1점대로 떨어졌고 조롱이 줄이었다. 결국 카카오는 가장 많은 비판이 나왔던 ‘친구탭’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도 카카오톡 변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왔지만 결론적으로 이용자 이탈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톡을 대체할 만한 메신저 앱이 마땅치 않았던 게 문제였다. ‘네이트온’이 노를 저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주도한 홍민택 최고제품책임자(CPO)도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 ‘트래픽, 다운로드는 줄지 않았다’고 쓰기도 했다. 당시 홍 CPO의 해명에 비판이 쏟아졌지만 글 내용만 봐서는 카카오톡 자체에 타격은 크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과징금에 주저 앉나 그러면서도 카카오의 현 상황을 봤을 때 쿠팡도 당국 조사가 진행되다 보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단 이재명 대통령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과징금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벌써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1347억원)을 받은 SK텔레콤의 사례를 넘어 1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