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연임 노리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

조용한 카리스마 '공룡' 길들이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연임 의사를 밝혔다. 권 회장은 철강업계의 불황 속에서도 성과를 이끌어냈다. 덕분에 그의 연임 가능성도 높다. 그의 발자취를 정리했다.

권오준 회장은 지난 달 9일, 서울 포스코센터서 오후 3시30분께 시작된 정기이사회에 참석, 사외이사들에게 연임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CEO 후보추천위원회는 권 회장에 대한 심사에 돌입했다.

권 회장은 이날 “지난 3년간 회사 경쟁력 강화와 경영 실적 개선에 매진한 나머지 후계자 양성에 다소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회사를 이끌어 나갈 리더 육성을 위해 올해 도입한 톱 탤런츠 육성프로그램이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CEO 심사 돌입
경쟁자가 없다

그는 “3년간 추진해왔던 정책들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하고 남은 과제들을 완수하기 위해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직 연임 의사를 표명드리며, 회사 정관과 이사회 규정에 따른 향후 절차를 충실히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최근 3년간 포스코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권 회장이 취임하기 직전인 2013년 말 포스코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정준양 전 회장의 체제서 내홍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 전 회장의 과도한 기업인수합병(M&A)으로 체질이 부실해졌다.


결국 정 전 회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013년 11월 물러났다. 이목은 신임 회장 인선에 집중됐다. 당시 포스코 회장 선임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서 권 회장이 8번째 수장으로 포스코를 이끌게 됐다.

신임회장으로 권 회장이 낙점되자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경영인 출신이 아닌 연구원 출신이 포스코를 이끌게 됐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 윈저대학교 금속공학 석사, 피츠버그 대학교 금속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86년부터 포스코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기술연구소 부소장, 기술연구소장, 유럽사무소장,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장 등을 거쳤다.

취임식서 권 회장은 비장했다. 당시 포스코의 상황은 주변 상황을 신경쓸 만큼 여유가 없었다. 권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포스코는 지금 큰 어려움의 한가운데 있다. 신용등급은 떨어지고, 주가는 바닥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장이 아니라 생존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내몰렸다”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 2008년 연결기준 매출 41조7000억원에 영업이익 7조1700억원, 영업이익률 18%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이래 5년 새 실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2013년 연결기준 매출액이 61조8000억원을 기록하며 2008년 대비 50% 늘어난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2조9000억원, 영업이익률은 5% 이하로 떨어졌다.

“아직 할 일 남았다” 연임 가시화
압도적인 성과…지속적 실천의지

업계에선 당시를 ‘잃어버린 5년’으로 부르기도 했다. 부진 원인으로는 무리한 M&A가 거론된다. 정 전 회장은 사업 다각화를 명분으로 외형을 키우기 위해 2010년 대우인터내셔날 인수를 시작으로 M&A에만 5조원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2008년 말 58.9%였던 포스코의 부채비율은 2013년 84.3%까지 치솟을 만큼 재무 건전성은 악화됐다.


매출액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줄었고, 부채비율이 치솟으면서 포스코에 대한 외부 평가도 달라졌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기존 Baa1서 Baa2로 강등시켰다. S&P와 피치 등 다른 신용기관들 역시 최근 2~3년 사이에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권 회장은 타개책으로 ‘혁신 포스코 1.0’을 내세우며 임직원들에게 포스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권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일류는 자만과 허울을 벗고,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한다”면서 “위대한 포스코를 재창조하자”고 말했다.

권 회장은 적극적인 경영으로 부실해졌던 체질을 개선했다. 철강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경영인이 밀어붙이는 뚝심에 눈길이 쏠렸다. 당시 포스코는 위기라는 말이 어울리던 시기였다. 2008년 7조2000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3년 2조9000억원까지 축소됐다.
 

권 회장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군을 정리했다. 2014년 3월 취임 후 그해 7월 포스코-우루과이, 포스화인 등의 지분 매각을 시작으로 포스코 리빌딩이 시작됐다. 포스코는 총 149건의 구조조정 목표 가운데 현재까지 총 98건(65.8%)을 달성했다. 포스코는 올해 나머지 51건의 구조조정을 매듭지을 방침이다.

“성과 창출 위해
시간이 더 필요”

권 회장은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에 주안점을 뒀다. 시장서 고가의 철강재로 인식되는 포스코의 제품을 고객에 니즈에 맞게 공급하는 것이 골자다. 권 회장은 “철강사업본부 내에 제품솔루션센터를 창설해 고객의 잠재적인 니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고부가가치강인 월드프리미엄(WP) 제품에 집중하면서 중국발 저가 철강 제품과 차별화를 두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세웠다. WP제품은 세계에서 포스코만 단독으로 생산하는 월드퍼스트(WF), 기술력과 경제성을 갖춘 월드베스트(WB), 고객선호도와 영업이익률이 높은 월드모스트(WM) 제품을 의미한다. 이 같은 구상은 권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전부터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회장 면접 당시 “기술로 수요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수요에 맞는 정확한 기술을 개발하겠다. 이를 위해 시장의 동향과 상황을 면밀히 분석한 것을 토대로 기술 개발에 전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회장 취임 전부터 계획했던 내용을 그대로 경영에 녹이고 있는 셈이다.

그가 밝힌 솔루션 마케팅은 바로 고객사가 가장 쓰기 좋은 형태, 원하는 형태로 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가장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를 재가공하기 용이한 기술도 같이 제공해 고객사의 만족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의 경영전략은 시장서 통했다. 포스코의 WP 판매량은 작년 3분기 기준 403만8000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철강재 판매량의 절반 수준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2013년 1분기 판매 점유율 38%(313만2000톤) 대비 10%포인트 가량 증가했다.

WP제품 판매 비중은 48.1%를 늘었다. WP제품은 15%에 달하는 영업이익률를 보이며 높은 마진율을 자랑하기 때문에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서 수익률을 지켜주는 효자 상품 노릇을 했다.

2015년 철강업계는 중국발 공급 과잉의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2014∼2105년 동안 세계철강수요는 1%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이 철강 물량을 내수에서 소화하지 못하자 싼 가격으로 수출로 물량을 밀어낸 것이 주된 요인이다.


중국과 더불어 국내 철강재의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이 중국과 더불어 한국의 열연강판에 대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율을 적용했다. 당시 포스코는 반덤핑 3.89%, 상계관세 57.04% 등이 부과돼 관세율이 총 60.93%에 달했다.

국내 철강사들의 실적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배경서도 포스코는 선전했다. 가장 최근 실적인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조343억원을 기록, 4년 만에 1조원을 돌파했다. 매출은 12조7476억원, 순이익은 4755억원 수준이다.

이는 포스코의 3분기 영업이익이 9000억원 규모일 것이라는 증권가의 예상을 깬 깜짝 실적이다. 또 우려가 제기되던 해외법인이 사업도 호조로 돌아서며 그의 경영능력을 입증했다. 해외 철강 법인의 합산 영업이익은 전분기보다 1148% 늘어난 1323억원을 기록한 것.

불확실한 업황…선명한 비전 제시
외형 확장보다 내실 다지기 중점

이 가운데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인 PT.크라카타우 포스코가 38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멕시코 자동차 강판 생산법인인 포스코 멕시코와 베트남 냉연 생산법인인 포스코 베트남, 인도 냉연 생산법인인 포스코 마하라슈트라 등도 호실적을 거뒀다.

실적을 분석하면 그동안 권 회장의 포스코 재건 작업이 착실히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2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그룹 구조조정에 따른 법인 수 감소로 0.9% 줄었지만, 철강 부문 실적이 대폭 개선되고 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 부문 실적이 개선되면서 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52.4%와 115.6%가 증가했다.


전년동기 대비로도 실적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8.9% 줄고 영업이익은 58.7% 늘었다.
 

영업이익률이 개선된 점 역시 권 회장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실제 영업이익률은 WP 제품과 솔루션 마케팅 판매량 확대, 철강 가격 상승, 원가절감 등에 힘입어 전분기보다 2.1%포인트 오른 14.0%로 집계됐다. 이는 2011년 3분기 이래 최고 수준이다.

업계는 몸살
실적은 긍정적

재무건전성도 역시 개선됐다. 연결 부채비율은 전분기보다 5.5%포인트 낮아진 70.4%로 연결 회계 기준을 도입한 이래 최저치였고, 별도 부채비율은 2.3%포인트 내린 16.9%를 기록해 창사 이래 가장 낮았다.

연결기준 차입금은 전분기 대비 2조2643억원 줄었고, 별도 기준으로는 외부 차입금보다 자체 보유 현금이 많아지면서 순 차입규모가 마이너스(-8295억원)로 전환됐다. 권 회장의 3년간 리빌딩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이는 권 회장 연임으로 가는 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권 회장이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돼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포스코에 대한 수사결과가 무혐의로 속속히 발표되면서 권 회장의 연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검찰은 최순실 관련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이 대기업에 자금 출연 등 압력을 행사했다”며 “포스코를 포함한 대부분 기업들은 피해자”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검찰 발표서 포스코 경영진이 포레카 매각 관련 초기 작업부터 최씨 측과 공모했다는 의혹 역시 언급되지 않았다. 2014년 권 회장 선임 당시 최씨 측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일각의 주장도 발표문서 제외됐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포스코 관련자들은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서 증인채택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 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포스코는 CEO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단일후보로 권 회장의 연임을 놓고 검증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CEO후보추천위원회는 청와대의 선임 개입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도 검증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주주총회가 내년 3월 열리고 이 자리서 차기 회장 선임 안건을 의결해야하는 만큼 권 회장의 연임 검증작업은 늦어도 내년 1월 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CEO후보추천위원회가 권 회장의 연임이 적격하다고 판단하면 이후 주주총회와 이사회 승인을 거쳐 권 회장의 연임이 최종 결정된다.

이명우 포스코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 의장(동원산업 사장)은 4일 “권오준 회장 연임 여부는 무엇이 포스코의 장기적인 이익이 될 것인지를 고려해 25일 이사회 전까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포스코 사외이사로 구성된 CEO 후보추천위원회는 권 회장에 대한 자격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명우 의장, 신재철 전 LG CNS 대표이사 사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일섭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김주현 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 선우영 법무법인 세아 대표 등 6명이 CEO 후보추천위를 구성하고 있다.

단일후보…
이달 말 결정

CEO 후보추천위원회는 앞으로 2∼3주 동안 검증작업을 벌여 권 회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한 뒤 오는 25일 열리는 이사회서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 의장은 “위원회에 속한 사외이사들만의 시선으로 후보를 보는 것은 옳지 않으니 다양한 그룹으로부터의 의견을 청취·수렴 중”이라며 “근로자 대표, 전임 회장단, OB 모임, 포스코 투자자 등 포스코 내외부 이해 관계자들로부터 (권오준 회장) 후보에 대한 생각, 평가, 기대를 골고루 듣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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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