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바른정당 연대 시나리오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1.09 11:16:50
  • 호수 10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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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대통합 이뤄지나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국회의 탄핵 결정에 따라 조기 대선 정국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연대 가능성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요시사>는 양당의 연대 가능성과 연대의 형태, 연대 이후의 야권 정치 지형을 분석해 봤다.

오는 24일 창당을 목표로 창당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바른정당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서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당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바른정당은 이날, 앞으로의 지향점과 가치를 담은 정강·정책 가안을 공표했다.

앞서 유승민 의원은 지난달 28일 “보수신당은 안보는 보수, 민생은 개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주목할 부분은 “친박·친문만 아니면 손을 잡을 수 있다”며 여권과 야권을 아우르는 '빅텐트론'을 언급했다.

서로 러브콜
친밀감 과시

현재 바른정당서 거론되는 대선주자는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다. 정치권에선 바른정당이 소규모로 시작됐지만 ‘폐족’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비교해 세 확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외연확장의 숙제를 안고 있는 국민의당과의 연대 가능성도 점쳐진다.

지난 5일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영남의 일부도 같이 도와야 한다”며 바른정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주 원내대표는 “안철수 전 대표도 양극단을 제외하고는 함께 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처음에 하셨다”면서 “가칭 신당의 이름이 보수이기 때문에 정체성에선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주 원내대표는 “호남 지역서 비박(비 박근혜) 신당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며 성급한 연대에는 선을 그었다. 지난달 30일에는 주 원내대표가 바른정당(당시 개혁보수신당)의 주호영 원내대표를 찾으며 친밀감을 과시했다.

주승용 원내대표는 “적 보수기 때문에 정강·정책이 만들어지면 어떨지 몰라도 우리당과 정체성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단지 흠이 있다면 과거 새누리당서 박근혜정권과 4년을 함께 한, 국정농단의 공동 책임을 졌다는 데 분명히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국정의 한 축을 이뤘던 정부 여당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피해갈 생각이 없다”면서 “다만 새누리당 친박(친 박근혜)의 횡포에 맞서 말리고 비판하고 했지만, 숫자적으로 적어서 안 된 것은 국민께 여러 차례 사과했다”고 말했다.

서로연일 러브콜…박지원-김무성 힘겨루기?
바른정당과 연대…안 ‘NO’ 지도부 ‘YES’

이처럼 물밑에서 국민의당과 보수신당이 연대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2일 양당 간 ‘연대설’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요즘 일각서 국민의당이 새누리당에서 떨어져 나온 비박과 연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은 호남 민심과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고 믿는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그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 연대에는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하지만 더민주와 국민의당 연대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 전 대표는 “국민의당과 대선 과정서 힘을 모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며 “함께 힘을 모아서 제3기 민주정부를 만들어내라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고, 호남 민심이 요구하는 게 그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유력 대선주자인 문 전 대표는 국민의당과의 공조를 바라는 모양새지만 국민의당은 더민주와의 연대는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당 안 전 대표가 대선 완주를 천명한 만큼 더민주와의 연대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현재 흐름대로 대선 국면이 펼쳐질 경우 다자구도의 대선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각 당에서 거론되는 유력 대선주자를 살펴보면 더민주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외곽의 반기문 유엔 전 유엔사무총장 등이 있다. 문재인, 반기문 양강구도를 사이에 두고 다른 잠룡들이 쫓아가는 모양새다.

더민주는 탄핵 정국의 호재에 힘입어 지지율 40%를 넘겼고, 호남서도 국민의당을 누르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조기 대선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반전카드를 꺼내지 않는다면 문 전 대표의 낙승도 점쳐볼만하다.

강한 ‘경선’
강한 ‘주자’

그렇다면 국민의당과 보수신당이 연대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시너지 효과를 들 수 있다. 안 전 대표는 탄핵정국을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떨어졌다. 아울러 본인이 지지했던 김성식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서 떨어지고 호남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주승용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리더십에도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안 전 대표가 당을 이끌던 시기 호남 의원들 사이서 그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기는 했지만 당의 중심축이 호남으로 간 적은 없었다. 안 전 대표 입장에선 당 내부 정치와 지지율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형국이다. 아울러 연대를 두고 호남지역 의원들과 안 전 대표의 입장은 엇갈린다.

호남 의원들은 바른정당을 비롯한 다각도의 연대를 주장하지만 안 전 대표는 무분별한 연대는 독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4일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속한 정당에 대한 믿음이나 그 정당 내 대선후보에 대한 믿음 없이 계속 외부만 두리번거리는 정당에 국민들이 믿음을 주지는 않는다”며 “지금 새누리당이 갈라지긴 했지만 친박도 비박도 어느 쪽도 다음 정권을 맡을 자격이 없고, 더 나아가면 대통령 후보를 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안 전 대표는 반 전 총장 및 비박과의 연대에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에선 국민의당이 연대를 통해야만 유력 대권주자를 만들 수 있다는 기류가 강하다. 현재 국민의당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한 인물은 안 전 대표와 천정배 전 대표 두 명이다. 손학규 전 더민주 대표도 국민의당에 합류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이 더민주 잠룡들을 상대하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더민주는 문 전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잠룡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강한 경선을 통해 강한 대선주자를 내세운다는 계획이다. 강한 경선을 통한 강한 대선은 모든 당의 숙제이자 대선승리를 위한 필수요소로 꼽힌다.


국민의당 입장에서 바른정당과 연대한다면 보수와 진보진영을 아우르는 경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있다. 두 연대를 통해 거론되는 대선주자로는 안 전 대표, 천 전 대표, 손 전 대표,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다.

이들 모두 경선에 참여해 강한 경선을 치르고 최종 선택된 대선주자를 지원해준다면 강한 대선주자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반기문 변수
문 때리기

양당이 연대를 통해 수권정당이 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연대카드가 상수라는 것은 정치권의 평가다. 다만 연대 과정서 변수가 있다. 비슷한 규모의 두 정당이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

양당의 대표적인 킹메이커인 박지원 전 비대위원장과 김무성 전 대표 간에 힘겨루기도 예상된다. 경선 룰도 양당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부분이다. 보수신당은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분당하면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대선주자를 배출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오픈프라이머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두 당이 합쳐질 경우 가장 높은 지지율을 차지하고 있는 안 전 대표가 경선 과정서 미끄러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바른정당에 좋은 일만 하다가 끝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변수는 반 전 총장이다. 지난 5일 국민의당 주 원내대표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정체성 검증을 통해 적 보수로 판명이 날 경우 영입해 안 전 대표와 치열한 경쟁이 붙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 전 총장과 손 전 대표 등이 국민의당으로 와서 경선을 치르면 지지율이 올라 국민의당이 정권교체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반 전 총장은 어느 정당에 참여할 지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에 바른정당에 합류하는 그림도 그려진다.

바른정당 주 원내대표는 지난 2일, 반 전 총장이 자당과 함께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 원내대표는 반 전 총장에 대해 “새누리당과는 정치를 같이할 수 없을 테고, 더민주나 국민의당에는 유력한 대선주자들이 이미 있다”며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정치는 혼자 할 수 없고,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모여서 해야 하니, 바른정당과 함께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합리적 추측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양당 연대 얻는 효과는?
반기문은 어디로 가나

하지만 주 원내대표는 반 전 총장 합류시 경선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옹립·추대론’과는 선을 그었다. 여기서 반 전 총장이 움직일 수 있는 카드는 세 가지 정도로 꼽힌다. 국민의당, 바른정당, 독자 신당 중 한 곳이 선택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이 귀국하면 국민의당-바른정당 간 연대 그림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반 전 총장이 거취를 정하지 않은 상태서 양당이 연대를 진행한다면 반 전 총장도 연대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독자 신당 형태로는 국회 내 지지세력이 부족한 반 전 총장이 대선 국면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양당이 연대를 하게 된다면 어떤 행보를 보이게 될까. 우선 문 전 대표를 강하게 견제할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서 ‘개헌 문건’ 파동이 일자 양당은 한 목소리로 문 전 대표를 질타했다. 문 전 대표를 사실상 대선주자로 상정해 놓은 행보라며 비난의 화살을 친문(친 문재인)계와 문 전 대표에게 쐈다.

추미애 대표는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 5일에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문 전 대표에게 돌렸다.

국민의당 조배숙 정책위의장은 의총서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이끈 무책임과 패권주의 또한 청산해야 한다”며 “유신 잔존세력의 적폐뿐 아니라 문 전 민정수석·비서실장, 안희정 충남도지사로 대변되는 패권주의와 무책임한 집단 역시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른정당도 비난 대열에 합류했다. 주 원내대표도 “노 전 대통령 사망으로 끝난 비극적 사건을 막지 못한 책임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실장을 역임한 문재인 전 대표에게 있다는 것이 중론”이라면서 “친 세력은 자칭 ‘폐족 집단’이 돼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줄 알았는데 다시 스멀스멀 나와 활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주 원내대표도 문 전 대표 책임론에 동참했다. 그는 “문 전 대표는 지금 야당이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된 원인의 제공자이고 분당의 책임자”라며 “제가 민주당의 최고위원으로 있으면서 친문 패권주의를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이 패권주의는 정치서 배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당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 전 대표를 공격하면서 ‘문재인 대세론’을 견제하고 내부 결속력을 다지고 있다. 만약 양당이 본격적으로 연대를 한다면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 문 전 대표에 대한 비난 어조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성난 호남민심
정체성 딜레마

한 정치평론가는 “현재 호남 중진의원 중심 지도부들은 비박계나 반 전 총장에도 연대를 시사하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호남 민심과 충돌한다. 국민의당이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보다 외부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힘을 키우려는 시도는 오히려 지지율을 하락하는 원인이 될 것”이라며 “연대 얘기를 꺼내는 것보다 오히려 정체성을 가지고 독자노선을 가질 때 지지율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민의당 전당대회 관전포인트

오는 15일 국민의당은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연다. 국민의당 당대표 경선에는 손금주 의원, 박지원 전 원내대표, 황주홍 의원, 김영환 전 의원, 문병호 전 의원 등 모두 5명이 출마했다.

정치권에서는 전당대회에서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독주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당초 전북의 맹주 정동영 의원이 출마함에 따라 박지원-정동영 양자대결 구도로 좁혀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 의원이 불출마를 경선하면서 중심추가 박 전 원내대표에게로 간 모양새다.

오는 15일 당대표 경선…5명 출마 선언
박 독주 분위기…나머지 자동 최고위원

박 전 원내대표를 제외한 이들이 각각 재선과 원외 인사라는 점에서 다선에 최근까지 당을 지휘했던 박 전 원내대표에 비해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일단 후보들은 반 박지원 전선을 구축해 박 전 원내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황주홍 의원은 “이제 헌 정치를 국민의당서 퇴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환 전 의원은 “국민의당은 어느새 팀플레이가 아닌 단독 드리블 정치로 회귀해 당내 민주주의가 실종됐다”고 말해 박 전 원내대표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오는 15일로 예정된 당대표 경선에서는 최다득표자가 당대표가 되고, 차순위 투표자들은 2위부터 5위까지 최고위원을 역임하게 된다. 전체 당대표 경선 출마자가 5명에 불과해 당대표 경선에 출마를 선언한 이들은 자동적으로 최고위원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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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