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국민이 보고 있는 헌법재판관 9인

박근혜만? 대한민국 운명이 9명에 달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9일 국회의원 234명을 태운 탄핵 열차가 ‘가결’역에 정차했다. 탄핵소추안 가결 정족수 200명(재적의원의 3분의 2)을 훌쩍 넘긴 압도적 가결이었다. 이날 국회의장 명의의 탄핵소추 의결서가 청와대로 전달되면서 오후 7시3분을 기해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이제 박 대통령의 운명은 헌법재판관 9명의 손에 달렸다. 재판관 9명 가운데 3분의 2인 6명 이상이 찬성하면 박 대통령은 짐을 싸야 한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열린 7차 촛불집회는 축제 분위기였다. 전국 100만이 운집한 집회에서 국민들은 ‘승리’를 자축했다. 일부 시민들은 탄핵 가결이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며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앞으로 행진하자고 주장했다. 1000여명의 시민은 헌재 앞으로 몰려가 “탄핵안을 인용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재 재판관 9명은 역사의 한 가운데서 시민의 목소리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언제쯤 결정?
시민들 압박

재판관들은 비선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의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한다. 탄핵소추안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국민주권주의 및 대의민주주의, 법치국가 원칙, 직업공무원 제도 등 헌법을 폭넓게 위반했다. 또 “헌법질서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하거나 침해, 남용했다”고 적시했다.

헌재는 최장 180일 동안 탄핵안을 심리, 인용 또는 기각·각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인용 결정이 내려지면 박 대통령은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절차에 돌입한다. 반면 기각·각하 결정이 나오면 박 대통령은 즉시 직무에 복귀한다. 시민들의 눈과 귀가 헌재에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판관 9명은 대통령이 3명, 국회에서 3명,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으로 구성된다. 소장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현재 5기 재판부의 경우 박한철 소장,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대통령이 지명했고 김이수·안창호·강일원 재판관과 이정미·김창종·이진성 재판관은 각각 국회와 대법원장이 추천했다.

박한철 소장은 이번 탄핵 심판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의 임기가 내년 1월31일에 끝나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내년 3월13일 임기가 끝나는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면 남은 7명의 재판관 중 두 사람만 반대 입장을 내도 탄핵안은 기각된다.

박 소장은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재판관에 임명됐고, 2013년 4월 박 대통령이 그를 소장에 임명했다. 부산 출신 박 소장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 직전 임명한 조대환 청와대 민정수석과 사법연수원 동기(13기)다.

3분의 2인 6명 이상 최종 판단 주목
보수7·진보1·중도1…과연 결과는?

박 소장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수사를 지휘한 공안통으로 꼽히며 대검 공안부장을 지냈다. 재판관 시절 낙태죄 처벌, 야간 옥외집회 금지에 합헌 의견을 내는 등 사회 안정을 중시하는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2013년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형법상 모욕죄에 대해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소수 의견인 위헌 입장을 밝혀 마냥 보수 성향은 아니라는 평도 있다.


당시 박 소장은 “모욕죄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해서 비꼬는 말이나 풍자·해학을 담은 문학적 표현, 인터넷상 거친 신조어 등도 처벌될 수 있으므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정미 재판관은 2011년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임명됐다. 헌재 사상 최연소이자 5기 재판관들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울산 출생으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재판관 취임사에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에서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소수자와 약자에 대해 따뜻한 배려심을 가지고 그들의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여러 사건서 이 재판관은 소수 의견을 냈다.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사후매수죄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을 당시 이 재판관은 위헌으로 다수에 반대 의견을 냈다.

이 재판관은 “선거 종료 후의 금전 제공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사퇴 의사 결정이나 선거 결과에 부정한 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없는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또 독신자는 친양자를 입양할 수 없도록 규정한 옛 민법조항에 대해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릴 때도 소수 의견 쪽에 섰다.

그는 “편부모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타파돼야 할 대상인 바 이를 이유로 독신자의 친양자 입양을 봉쇄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편견을 강화시키는 것이어서 타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헌재 내에서 가장 진보 성향을 가진 것으로 꼽히는 김이수 재판관은 2012년 야당인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추천으로 임명됐다. 서울남부지법원장, 특허법원장, 사법연수원장 등을 지낸 김 재판관은 통진당 해산심판 당시 유일하게 기각 의견을 냈다.

김 재판관은 “이석기 전 의원의 발언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지만 통진당 전체가 이를 적극 옹호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강제적으로 정당을 해산해선 안 된다”고 소수 의견을 냈다. 조합원 자격을 현직 교사로 제한한 교원노조법 제2조를 두고 헌재가 8대1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릴 때도 유일하게 위헌 입장을 냈다.

박한철·이정미
퇴임이 변수로

김 재판관은 “다른 직종으로 변환이 쉽지 않은 교사라는 직종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일시적인 실업 상태인 해직 교원과 구직 중인 교사 자격 소지자의 가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교사 직종에 속하는 사람들의 단결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서 경찰이 물포를 발사한 행위가 헌재의 심판대에 올랐을 때도 “물포는 국민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해를 가할 수 있는 장비”라며 소수 입장에 섰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천한 이진성 재판관은 서울지법·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거쳐 서울중앙지법원장, 광주고등법원장 등을 역임한 판사 출신이다. 보수 성향이 짙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한 언론이 분석한 재판관 성향 데이터에 따르면 김이수 재판관 다음으로 진보 성향을 띄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이 재판관은 김 재판관과 함께 자주 소수 의견을 냈다. 이 재판관은 강제추행 범죄를 저지를 경우 신상정보를 등록하고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도록 한 법 조항에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등록 조항에 대해서는 “재범의 위험성을 전혀 요구하지 않고 특성이나 불법성의 경중을 고려해 등록대상 범죄를 축소하거나 별도의 불복절차를 두는 등 덜 침해적인 수단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제출 조항에 대해서도 “비교적 경미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재범의 위험성이 인정되지 않는 등록대상자에 대해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다수 보수 성향
판결에 영향 있나

경북 구미 출신인 김창종 재판관은 5기 재판관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인사로 꼽힌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재판관에 임명됐다. 김 재판관은 간통죄 위헌 결정서 다수 의견을 냈다.

김 재판관은 “간통죄는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설명했다. 김 재판관은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현행 성매매특별법에 대해서도 다수 의견(합헌)을 냈다.


당시 헌재는 “건전한 성 풍속·도덕을 확립하기 위한 국가 형벌권의 개입은 성매매 자발성 여부와 상관없이 정당하다”며 생계유지 등의 이유라도 성을 사고파는 행위를 합법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안창호 재판관은 대검 공안기획과와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지낸 보수 성향 인사로 분류되며 새누리당 추천으로 임명됐다. 헌재가 간통죄 처벌 규정에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 폐지를 반대한 두 명의 재판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정미 재판관과 함께 안 재판관은 “간통은 일부일처제에 기초한 혼인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훼손하고 가족 공동체의 유지·보호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호 영역에 포함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소수 의견을 개진했다.

헌재 발 빠른 행보
촛불 행렬 헌재로?
 

사법고시를 폐지하는 번호사 시험법 부칙에 대해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도 “사시의 폐해는 응시 횟수를 제한하고 합격률을 높여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할 다른 수단이 있는데도 폐지하는 것은 수험생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로스쿨만 두면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법조계 진입이 불가능해질 수 있어 두 제도를 병행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 재판관은 김영란법 조항 중 배우자가 금품 등을 받은 것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는 공직자를 처벌하는 것에 대해 “미신고 행위만을 처벌하는 조항은 우리 형사법체계서 국가보안법 외에 찾기 어려운 극히 이례적인 입법”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면서 “금품 수수 통로를 차단하려면 배우자를 직접 처벌해야 한다”는 다수 의견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단을 내렸다.

강일원 재판관은 2012년 여야 합의로 재판관이 됐다. 대법원장 비서실장,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을 지냈다. 5기 재판관 가운데 유일하게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2012년 여야가 합의로 강 재판관을 추천할 때 특정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각종 사안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강 재판관은 성매매특별법 사건서 성 구매자에 대한 처벌은 합헌이라는 데 다수 의견과 같이 했지만 “성 판매 여성은 형사처벌 대상이라기보다는 우선적으로 보호받을 사람”이라는 등 일부 위헌 의견을 냈다. 그는 김영란법 헌법소원 사건의 주심을 맡아 합헌 입장에 섰다. 강 재판관은 사건번호 2016헌나1, 대통령 탄핵심판의 주심이기도 하다.

서기석 재판관은 지난 2013년 박 대통령이 임명했다. 법원 헌법연구회 초대 회장, 사단법인 행정판례연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공·사법에 두루 정통한 인물로 꼽힌다. 서 재판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 부임 후 35일 만에 재판관으로 자리를 옮겨 당시 이례적이라는 말이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당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일명 효순·미선이 사건서 관련 수사 기록 제출을 거부하던 검찰에 “미군 재판 기록을 제외한 수사기록을 모두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2008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조용호 재판관도 임명권자가 박 대통령이다. 서울고법원장 재직 기간의 절반 이상 행정·특허 소송을 담당해 행정법 분야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서울대 최종길 교수 의문사와 관련해 유족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음악파일 교환서비스인 ‘소리바다’ 사건과 관련해선 음악 저작권자의 음반복제와 전송권이 침해됐다고 판단, 소리바다 측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도 했다. 직장 상사의 성희롱 사건 재판서 여직원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해고가 지나치다고 판결하면서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조 재판관은 사시 폐지 관련 헌법소원 사건서 헌재가 합헌을 결정할 때 “로스쿨 제도를 통해 양성되는 법조인이 사법시험을 통해 선발된 법조인보다 우수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성매매특별법 사건에선 “성매매 근절을 내세워 삶의 밑바닥에 내몰린 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며 전부 위헌 의견을 폈다.

여론 탄핵 요구↑
개별 의견 부담↑

재판관들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주말도 반납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전 국민의 관심이 헌재에 쏠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형 사건이기에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14일 헌재는 주심 강일원 재판관을 비롯, 이정미·이진성 재판관을 수명재판관으로 지정하고 탄핵심판 사건 준비 절차에 돌입했다.

수명재판관은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당사자들의 주장과 증거를 정리해 단순하게 압축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진성 재판관은 지난 15일, 수명재판관으로 지정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이름으로 헌법을 수호하는 기관”이라는 의미심장한 답변을 내놨다.

일각에선 재판관들의 대다수가 보수 성향인 것을 들어 탄핵 인용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반면 탄핵은 진보·보수 성향에 따라 갈릴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여론이 탄핵 인용 쪽으로 완전히 쏠려 있는 상황이 헌재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지난 1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국민의 75% 이상이 ‘헌재가 박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각해야 한다’는 응답(15.2%)보다 5배가량 높은 수치다. 탄핵 심판 시 재판관 개별 의견을 명시하도록 2005년 법이 개정된 것도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04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당시 재판관들은 개별 의견을 담지 않았고, 이는 내용이 부실하고 책임 소지가 불분명하다는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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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