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GS그룹의 회장 승계구도가 복잡해지고 있다. 그룹 3세 막내인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이 지분 매입에 나선 것이다. 이번 지분 매입으로 허 부사장의 지분율이 사촌형이자 그룹을 이끌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을 넘으면서 그룹 회장 자리에 성큼 다가섰다. GS그룹이 승계구도에 대해 말을 아끼는 사이 차기 그룹 회장 자리가 요동치고 있다.
가족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GS그룹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자산기준 재계서열 7위(공기업 제외), 69개의 계열사, 그룹 전체 매출 52조원 등을 책임지게 될 차기 회장 후계자 자리가 안갯속이다. 2004년 LG와 갈라선 후 줄곧 ‘허창수’ 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GS그룹 승계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조짐이다.
허창수 체제
허용수 부각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6일까지 GS그룹 지주사 GS 주식 14만7522주를 매입했다. 기존 GS 지분율 4.47%서 4.63%까지 늘어난 것이다. 지난 9일에는 재차 18만2846주를 매수하면서 지분율을 4.82%까지 끌어올렸다.
이로써 허용수 부사장의 지분율은 현재 GS를 이끌고 있는 허창수 회장의 지분율 4.75%를 뛰어넘으며 GS 최대주주가 됐다. 허 부사장이 GS 최대주주에 오르자 차기 그룹 회장 후보로 단숨에 부각됐다. 허용수 부사장은 고 허만정 GS그룹 창업주의 막내 허완구 승산회장의 외동아들이다.
3세 가운데는 막내인 셈. 허 부사장은 본격적인 주식 매입 전인 지난 11월22일 GS 주식 144만1401주를 담보로 자금을 확보했다. 담보로 설정된 주식은 당일 종가(5만5500원)를 기준으로 약 800억원 규모다. 허용수 부사장이 11월 말부터 최근까지 사들인 GS 주식은 약 180억원어치로 추산된다.
따라서 앞으로도 추가적으로 지분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허창수 회장을 따돌리고 지분을 급격히 늘릴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이기도 한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이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을 주도하는 등 정경유착의 한 축으로 지목되면서 체면을 구긴 상황이라 향후 GS그룹 수장 자리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최근 인사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허용수 GS에너지 에너지/자원사업본부장 부사장은 GS EPS 대표이사에 신규 선임됐다. GS그룹도 “40대의 차세대 경영자를 대표이사에 신규 선임하는 등 지속성장이 가능한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100년 장수기업의 플랫폼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허용수 부사장은 2007년 GS홀딩스에 입사, 사업지원담당 상무를 거쳤으며, 2010년 GS 사업지원팀장 전무, 2013년 GS에너지 종합기획실장 부사장을 지냈다. 올해부터는 GS에너지 에너지·자원사업본부장 부사장을 맡았다.
GS그룹 오너일가가 가족 간 화합을 중시하고 가족회의를 통해 중대사를 결정하는 전통이 있다는 점을 볼 때 이번 지분 매입도 가족 간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GS그룹은 허창수 회장 체제 이후 한 번도 승계가 이뤄지지 않아 이번 허용수 부사장의 행보가 사전에 조율돼 있는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전 조율없이 허용수 부사장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지분 매입에 나섰다면 가족경영이 깨지는 단초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허용수 부사장의 나이를 감안해 아직 그룹 회장으로 나서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허 부사장은 1968년생으로 아직은 40대다. 1948년생인 허창수 회장보다 나이가 20년 아래다. 허 회장이 처음 GS그룹 회장에 올랐을 때와의 나이 차이도 8살이나 난다.
3세 가운데 허용수 부사장을 제외하면 유력 후보군은 허창수 회장의 동생들과 사촌들이다. 최근까지 그룹 차기 회장으로는 허진수 GS칼텍스 회장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허 회장은 지난 11월 말, 임원인사를 통해 부회장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지난 2월, 사촌 형인 허동수 회장이 경영 일선서 물러난 뒤 회사를 이끌다 회장직에 오른 것이다. GS칼텍스는 GS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허진수 회장의 차기 그룹을 이끌 회장후보의 행보로 자연스럽다는 평가가 있었다.
GS칼텍스는 GS그룹 전체 매출의 60%를 책임질 만큼 비중이 크다. 미국 석유회사 셰브론과 합작으로 1967년 탄생한 GS칼텍스는 지난 9월 말 연결기준 순자산만 18조6000억원에 달한다.
전설의 가족경영
혹시 돌출행동?
허진수 회장이 허창수 회장의 친동생이라는 점도 차기 그룹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다. 창업주의 삼남 고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의 아들들이 회사의 주류 자리를 공고히 하는 모양새라 이 같은 분석에 힘이 실렸다. 일단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3세 가운데 고 허준구 명예회장의 자녀가 가장 많다.
첫째 허창수 회장과 셋째 허진수 회장을 비롯해 둘째 허정수 GS네오텍 회장, 넷째 허명수 GS건설 부회장, 막내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 등 총 5형제가 그룹 핵심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물론 허진수 회장 뿐만 아니라 허정수 회장, 허명수 부회장, 허태수 부회장 등도 차기 그룹 회장자리를 꿰찰 가능성이 있다.
이들의 지분을 살펴보면 허진수 회장은 2.02%, 허정수 회장 0.12%, 허명수 1.95%, 허태수 1.98% 수준이다. 2세 가운데 맏인 고 허정구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의 자녀들은 그룹사 경영권 외각서 지원하는 모습이다. 장자 승계원칙을 감안하면 이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지분율도 장남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2.58%, 차남 허동수 전 회장 1.75%, 삼남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2.27%로 낮지 않다. 다만 이들 삼형제가 GS그룹 내에서 사실상 독자 노선을 걷고 있어 당장 경영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허동수 전 회장은 GS칼텍스 회장직을 내려놓은 뒤 경영 참여가 아닌 재단 복지사업에 힘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허남각 회장은 GS그룹에 속해 있는 삼양통상을 이끌고 있지만 사실상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삼남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역시 허남각 회장을 돕고 있는 모양새다.
2세 가운데 차남 고 허학구 전 새로닉스 회장은 고 허전수 새로닉스 회장을 외동아들로 뒀지만 고 허전수 새로닉스 회장이 지난 2010년 별세하면서 대가 끊겼다. 2세 중 넷째인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은 두 아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장남 허경수 코스모화학 회장이고, 둘째는 허연수 GS리테일 사장이다. 지분율은 허경수 회장(2.11%)과 허연수 회장(2.58%) 모두 2%를 기록하고 있다.
창업주 아들 가운데 막내인 허완구 승산회장은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만을 외아들로 뒀다.
현재 GS그룹을 상황을 요약해 보면 허창수 회장의 5형제가 그룹을 이끌고 있는 가운데 다른 사촌들은 경영권 외각서 지원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허용수 부사장의 이번 행보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향후 그룹내 승계구도가 바뀔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허용수 부사장의 행보가 주목되는 점은 그동안 GS그룹이 3세경영 체제서 4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는 승계 작업이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4세 가운데 허세홍 GS글로벌 대표이사, 허준홍GS건설 전무 등이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이었다. 허세홍 대표이사는 내년도 인사에서 대표이사로 최고경영자가 됐다.
이에 따라 허용수 부사장이 허창수 회장으로부터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아 3세와 4세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차기 그룹 회장직으로 허용수 회장이 거론되면서 3세를 이어 회사를 이끌 4세를 바라보는 시각에 미묘하게 변했다.
허창수 회장 체제 아래에선 허윤홍 GS건설 전무가 차기 선두주자로 꼽혔다. 그는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이다. 올해 38세인 허윤홍 전무는 허창수 회장과 같은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학을 졸업하고 2002년 GS칼텍스(당시 LG칼텍스)서 평사원으로 경업수업을 시작했다.
허윤홍 전무는 2004년 말까지 평사원으로 재직하면서 영업전략팀과 강남지사, 경영분석팀 등을 거쳤다. 2005년 GS건설(당시 LG건설)로 자리를 옮겨 재경팀 대리로 승진했고, 경영관리팀 과장·차장·부장을 거쳐 2013년 상무로 승진했다.
입사해 임원에 오르는 데 11년이 걸렸다. 다른 대기업 2∼4세들의 평균 임원 선임 나이가 31세, 승진기간이 28개월이란 점을 감안하면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나씩 뚝뚝
계열분리 가능성
하지만 허용수 부사장이 허창수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끌 경우 ‘4세 리더’의 기회가 어디로 갈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범LG가는 보수적인 가풍 속에서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와 함께 그룹을 이끌던 GS그룹 역시 유교적인 가풍으로 남성 중심의 지분구도가 눈에 띈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현재 4세 가운데 허윤홍 전무의 가장 큰 라이벌은 GS그룹의 장손 허준홍 전무다. 그의 GS 지분율은 1.73%로 4세 가운데 가장 높다. 허윤홍 전무의 지분율은 0.49%로 4세 가운데 높은 편이 아니다. 허동수 회장의 외아들 허세홍 대표이사도 1.43%로 4세 중 두 번째로 높은 지분율을 기록하며 강력한 후보 중 하나다.
그룹 장악력만 놓고 보면 4세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이기도 하다. 그는 빠른 승진으로 그룹내 장악력을 높여가고 있다. 허세홍 대표이사는 4세 가운데 가장 먼저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경영능력은 올해 본격적인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끌고 있는 GS글로벌은 2009년 GS로 편입된 계열사다. 국제무역 전문업체로 글로별 역량과 사업 관련 경험이 풍부한 허세홍 부사장의 경영시험대로 제격이라는 평가다.
허정수 회장의 첫째 허철홍 GS과장도 지분율로만 따지면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그의 지분율은 1.37% 수준이다. 최근에는 허광수 회장의 장남 허서홍 GS에너지 전력집단에너지사업 부문장(상무)이 지분 매입에 공격적으로 나서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허서홍 상무는 지난달 초 GS 주식 총 1만5000주를 장내매수 했다. 이로써 허 상무가 보유한 GS 주식은 1.08%에 달한다. 주목되는 것은 이전에도 허서홍 상무가 GS 주식을 꾸준히 늘려왔다는 점이다. 허 상무는 지난해 말 부장에서 상무로 승진한 이후 지금까지 13만9351주의 주식을 사들였다. 1년 새 지분율은 0.93%에서 1.08%로 0.15% 포인트 늘었다.
GS그룹은 허용수 부사장의 행보에 대해 단순 주식 매입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허창수 회장이 직을 내려놓을 마땅한 이유가 없을뿐더러, 서열상 허용수 부사장 위로 차기 회장이 될 만한 후보가 많다는 게 근거다.
“미리 조율”
계획된 행보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그룹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허 회장의 형제, 사촌들이 각 계열사들을 경영하고 있어 다음 세대엔 계열 분리까진 몰라도 사실상 별도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며 “따라서 누가되든 반쪽짜리 그룹을 승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