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세태> 카바레는 지금…

바람난 주부들 어디로 가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70∼80년대 흥했던 유흥업소 카바레의 흔적은 현재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중장년층의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카바레는 전국적으로 20개 미만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 많던 카바레는 왜 사라졌을까?
 

1970-80년 ‘3대 화류계’하면 나이트클럽, 룸살롱, 전국에 춤바람을 몰고 온 카바레를 꼽을 수 있었다. 그 중 나이트클럽과 룸살롱은 아직도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지만 카바레는 어디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카바레가 자리하고 있던 몇 백여평의 부지는 대부분 나이트클럽이나 콜라텍 등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사라진 카바레
우후죽순 콜라텍

한 업계 관계자는 “나이트클럽의 부킹문화가 붐이 일면서 자연스럽게 카바레의 행적이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화류계서 여성고객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카바레로 향하던 수많은 미시족과 여성들이 나이트클럽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가 바로 ‘부킹’이다. 미시들의 성의 해방구, 자유의 성지 카바레는 폐단이 너무 많았다.

우선 춤을 배워야 하고 그러다 보니 춤 선생(일명 제비)을 만나 그들의 금전적 요구와 신체적 접촉 등의 불편한 요구사항 등을 들어줘야 했다. 하지만 나이트클럽에선 웨이터는 물론이고 뭇남성들이 미시족들을 여왕처럼 모시기 때문에 카바레와 나이트클럽의 명암은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카바레의 몰락 원인은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젊은 시절에 화류계에 몸을 담고 카바레만 4년 넘게 운영했다는 김모(63)씨는 “막대한 세금과 수많은 불법 변태영업자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카바레의 문이 닫혔다”고 주장했다.


주류 판매가 허용되는 카바레는 유흥업소로 분류하고 있어 보통 총 매출액의 40%를 특소세를 포함한 각종 세금으로 내고 있다.

그러나 나이트클럽이 크게 흥하면서 카바레서 술을 마시는 손님들은 거의 사라지고, 오직 1~2만원 정도의 입장료만 지불한 뒤 사교댄스를 추러 온 사람들로 붐벼 수입이 쏠쏠하지 못했다. 나이트클럽서 마시는 술과 카바레서 마시는 술값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결국 카바레 업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폐업신고를 하기에 이르렀고 생계를 위해 돌파구로 찾은 것이 바로 성인 콜라텍과 무도장이었다.

현재 서울에는 강동구 길동과 강서구 화곡동 등 대여섯 군데만 카바레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손님이 줄자 자연스레 웨이터들의 수입도 줄었다. 남성 웨이터들은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났고 그 자리를 중년 여성 웨이트리스들이 메웠다. 한 여성 웨이트리스는 “단골 만들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손님 한 명이 단골이 되고, 그 손님이 다른 친구를 데려오는 일명 ‘새끼치기’가 이뤄져야 안정적인 돈벌이가 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거였다. 손님이 귀해지다 보니 ‘뻐꾸기 먹는(다른 웨이터에게 손님을 뺏기는)’ 웨이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막대한 세금 충당 못해 무도장으로
술 안 판다던 콜라텍 불법영업 버젓

밖으로 나가는 손님에게 접근해 명함을 얻어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낮에 연락해 커피 한잔을 한다거나 경조사를 챙기는 방식으로 다른 웨이터의 단골을 빼가는 것. 그녀는 “주말엔 손님의 친인척 결혼식에도 얼굴을 비추는 등 인맥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카바레 업주 A씨는 불법 변태업소인 성인콜라텍이나 무도장으로 업종을 바꾼 업주들 때문에 영업을 중단했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콜라텍·무도장 업주들이 주류를 팔지 않고 춤추는 스테이지만 관리한다면 자신도 이렇게 정부에 민원을 넣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제제에 대한 법적규제가 따로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당국의 허술한 현장단속과 무관심으로 음지에선 불법영업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다.

콜라텍 맞은편에는 식당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들이 차례로 나열돼 있었고 음식과 주류를 팔고 있었다. 그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당연하다는 듯 영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A씨는 “콜라텍 업주가 콜라텍만 운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로 옆에 6-7개로 줄지어 영업하고 있는 일반음식점도 분명히 콜라텍 업주와 동일한 인물임에 틀림없다“며 “만약 구청 관계자가 콜라텍과 식당영업에 대한 단속을 한다면 그들은 중간에 있는 복도를 핑계로 각자 다른 영업을 하고 있다고 둘러대겠지만 그건 분명히 단속을 피하기 위한 ‘꼼수’임에 틀림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술 파는 콜라텍
카바레 문닫게 해

그는 “이들(콜라텍·무도장 업주)은 카바레에 비해 세금도 적고 내는 횟수도 일 년에 한 두 번 밖에 없음에도 세금포탈을 일삼는다. 정직하게 세금 내고 운영하는 카바레 업주들만 바보”라며 “이런 문제들로 인해 카바레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성인 콜라텍은 카바레와 달리 식품위생법 등 관련 법의 규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 영업형태는 카바레와 같지만 관할사무소에 사업자 등록만 하면 영업이 가능한 자유업종이다. 자유업종은 시설 기준이나 관리 법령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대형 화재 등 만약의 사고에는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경기도 부천의 A 콜라텍 내부에 들어서자 300여명의 손님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천장과 간이 중앙무대서만 비추는 조명 탓에 조명이 비치지 않는 곳에 위치한 비상구와 소화기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비상구인 출입구가 3개가 있지만 통로폭이 좁아 화재 등 사고 발생 시 행동이 느린 노인들이 출입문 쪽으로 한꺼번에 몰리게 될 경우에는 대형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 콜라텍에 일주일 중 다섯 번은 간다는 김모 할아버지는 “만약 여기서 불이 나면 발생하면 장담컨대 10명 중 9명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며 “가끔씩 불안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콜라텍은 허가나 신고대상 업종이 아니므로 관할 구가 관리할 권한이 없다.
 

특히 성인 콜라텍은 수개월간 영업을 하다 문을 닫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구는 업체 현황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경찰과 구청 등은 “자유업종으로 분류돼 단속할 만한 법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자유업이라는 이유 때문에 식품위생법이나 체육시설에 관한 법률로도 단속할 근거가 모호해 법규 개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남아있는 ‘제비’
피해사례 잇따라

카바레가 사라져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제비’들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지난해 9월 경기 의정부경찰서는 전국 카바레 등에서 만난 중년 여성에게 목돈을 벌 수 있다고 속여 돈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로 범모(59)씨를 구속했다. 범씨는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군산 평택 안산 의정부 진주 등 전국 무도회장, 카바레 등을 돌며 50~60대 여성 5명으로부터 8000여만원을 받아 챙겼다.


범씨는 다른 공범과 함께 무도장서 만난 피해여성들에게 여러 차례 식사를 대접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 환심을 샀다. 이후 “구하기 어려운 도금 약품인데 한 상자에 230만원에 파는 것을 220만원에 주겠다”고 속여 한 두차례 이익금을 나눠준 뒤 거액을 유도해 떼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사전에 여성에게 접근하는 ‘제비’, 약품을 공급하는 ‘수입회사 사장’, ‘도금업체 사장’ 등으로 역할을 나눠 짜여진 대본대로 역할을 연습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특히 ‘경계심이 많고 말을 하지 않는 소심한 사람이나 처음 만났는데 말이 많고 기가 센 사람은 피할 것’ ‘매너를 지키며 좋은 인상을 심어 믿음을 줄 것’ ‘대본에 충실하게 연습하고, 정확히 전달할 것’ 등의 자체 매뉴얼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외간남자와 어울리다 사기를 당했다는 점 때문에 신고를 꺼려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보다 앞선 2014년에는 성관계 사실을 알리겠다며 억대의 돈을 뜯어낸 제비 박모씨가 법의 심판을 받았다. 박씨는 2004년 4월 전주의 한 카바레서 만난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후 “가족에게 알리겠다”며 2011년까지 26차례에 걸쳐 모두 1억7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업주들 1년 동안 세금 한번 안내
불법영업 법규 있지만 단속 미흡


박씨는 상대 여성이 돈을 주지 않자 3차례에 걸쳐 욕설하고 온몸을 마구 때린 혐의도 추가됐다. 중고차 매매업자인 박씨는 버스·승용차 구매, 당구장 개업, 술집 영업에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월에는 나이트클럽서 만난 50대 주부를 등쳐 8300여만원과 벤츠 승용차를 받은 40대 제비가 4년여만에 잡히기도 했다. 피해 여성은 제비에 속아 대출은 물론이고 별거 중인 남편으로부터 받은 자녀 보육료까지 끌어 모아 제공했다. 욕심을 채운 제비는 경찰 수배를 피해 전국을 떠돌며 과일장사를 하다 끝내 잡혔다.

위모(44)씨는 지난 2010년 11월 광주의 한 나이트클럽서 울산에서 친구들과 놀러 온 A(51·여)씨를 만났다.

자신을 열대과일 수입업자라고 B씨에게 소개해 환심을 산 위씨는 교제 도중 “사업이 잘 안 돼 짜증이 난다, 돈이 필요한데 고민”이라고 했다. B씨가 “무슨 일이냐, 도와줄 방법 없는가”라고 안타까워 하면 “누나는 신경 쓰지 마라”면서도 고통스런 표정을 지어 궁금증과 연민을 자극했다.

계속해서 B씨가 걱정하자 위씨는 못이기는 척 “나중에 갚을 테니 돈을 빌려달라”며 본색을 드러냈다. 위씨는 1년여동안 A씨로부터 27차례에 걸쳐 8300여만원을 등쳤다.

B씨는 사업상 차가 필요하다는 위씨에게 벤츠 승용차까지 사주는 등 위씨에게 푹 빠졌지만 어느날 위씨가 연락을 끊고 사라지자 속았다는 것을 알고 경찰서에 고소했다. 위씨는 자신 명의의 휴대전화도 없앤 뒤 트럭을 구입해 전국을 떠돌다가 최근 광주서 검거됐다.

철저한 단속 없인
불법은 지속된다

몇 년 전 자신도 성인 콜라텍을 운영하려고 했다던 천모(59)씨는 “막대한 세금부담에도 불구하고 정당하게 세금내고 사는 국민인데 당당하지 못한 불법영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어 “불법영업에 대한 강력한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관련 업주들은 이보다 더한 불법행위를 저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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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