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바꾼 일상 ‘천태만상’

대한민국 주인은 국민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냄비 근성. 우리 국민들의 국민성을 표현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쉽게 끓어오르고 쉽게 식는 냄비의 특성처럼 이슈에 따라 빠르게 달아올랐다가 금방 외면해버린다는 뜻으로, 보통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된다.

지난 10월29일 1차 집회를 시작으로 지난 3일 6차에 이른 촛불은 ‘냄비 근성’을 비웃듯 더욱 크게 타오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촛불집회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주 역사를 쓰고 있는 상황이다. 촛불이 바꾼 일상, 대한민국을 들여다봤다.

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6차 촛불집회에 전국 232만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이번 집회는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고, 헌정사상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됐다.

가족 연인 학생↑
연말모임 광장서

매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토요일 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일 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진다. 정치 상황, 날씨 등을 고려해 ‘전주보다 감소’ ‘유지’ ‘증가’ 등 의견이 나온다. 언론 역시 촛불집회 참여 예상 인원에 따라 정치권에 가해질 압박, 사회 변화 등을 언급한다.


촛불로 가득한 광화문 광장의 전경이 월요일 조간신문 1면을 채운 지도 한 달이 넘었다. 100만명이 광장으로 뛰쳐나온 3차 집회 후 한풀 꺾일 것이라고 진단했던 몇몇 정치인들은 점점 늘어나는 촛불에 주눅이 든 상태다. 과거 광장에서만 울리던 외침이 일상 속으로 들어오면서 촛불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동창회를 광화문서 하기로 했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아이디 fe***씨는 지난 2일 한 커뮤니티에 ‘저희 동창회 연말모임 광화문입니다. 25명 참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친구들과 광화문서 모이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30대 직장인 한모씨는 “친구들과 금요일에 송년모임을 하고 토요일에 함께 집회에 가기로 했다”며 “광화문이 2차 송년회 장소가 될 것 같다”며 웃었다. 20대 대학생 장씨는 매주 토요일 광화문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

장씨는 “처음 집회에 가자고 했을 땐 싫어했지만 지금은 데이트 코스로 굳어졌다”며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고 놀랐다. 지난달 12일, 3차 촛불집회 당시 사회를 맡았던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서 “밑바닥 민심 보셨잖아요. 동창회, 동호회를 광화문서 합니다”라고 말했다.

시민들 가운데 집회나 시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심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를 보고 ‘빨갱이들’ ‘데모하는 놈들’ 등의 말이 여과 없이 언론 인터뷰로 나올 정도였다. 1∼6차 촛불 집회는 그런 의미에서 대다수 시민의 인식을 바꿔 놓았다.

전문가들은 촛불집회가 6차에 이르는 동안 광장은 ‘만남의 장’ ‘자기치유의 장’ ‘축제의 장’ 등으로 발전했다고 진단했다.

정의석 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 대표는 <광주일보>에 기고한 칼럼서 “이번 촛불집회는 외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양극화되고 불안하고 외로운 한국사회서 경험한 상처들을 어루만지는 국민 치유의 장”이라고 분석했다.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자녀 등 가족 단위 참가자들은 집회를 구성하는 인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초등학생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크게 호응해주는 광경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노동조합위원장, 시민단체 회원, 대학교 학생회장, 정치인 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광장의 발언대도 중·고등학생,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각계각층의 구성원에게 개방되고 있다.

일상으로 파고든 집회
회차 거듭될수록 진화
송년 모임도 거리에서

지난달 5일, 1차 대구 시국대회 무대에 오른 송현여고 조모 학생은 “평소라면 자습실 책상에 앉아 역사책을 읽으며 11월 모의고사를 준비했을 것”이라며 “허나 저는 부당하고 처참한 현실을 보며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에 오늘 살아있는 역사책의 현장에 나오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학생은 “56년 전, 1960년 2월28일 대구 학생들이 불의와 부정을 규탄해 민주주의를 지켰듯 우리 대구 시민들이 정의의 기적을 일궈야 할 때”라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민주주의여 만세!”로 발언을 마쳤다. 대구 시민은 학생의 당찬 발언에 아낌없는 박수 갈채를 보냈다.

촛불집회 구성원이 다양화된 데에는 비폭력·평화 시위 기조가 크게 작용했다. 6차 촛불 집회에 전국서 232만명의 시민이 대통령 퇴진을 외쳤지만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0명이었고 충돌도 없었다. 6차 집회 때는 법원이 청와대 경계 100m 지점인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을 허용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청와대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집회 행렬이 청와대 100m 앞까지 간 것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법원으로서 이례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촛불 행렬은 청와대서 1.3㎞ 떨어진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 멈췄다. 이후 900m(3차), 500m(4차), 200m(5차)로 집회를 거듭할수록 점차 청와대와 가까워졌다. 매주 조금씩 북상한 민심이 청와대 코앞까지 온 것이다.
 

촛불집회에 모인 민심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분노를 가슴에 품고 있다.

현재까지 집회에 네 번 참여했다는 40대 강모씨는 “우리가 박 대통령에게 권력을 준 건 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는 뜻이었지, 일반인과 나눠가지라는 게 아니었다”면서 “너무 화가 나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막 수능을 끝낸 고3 학생 이모양은 “수능을 보기까지 정말 엉덩이가 아프도록 공부했다”면서 “그 사이 누군가는 잘못된 방법으로 명문대에 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일각에선 시민들의 분노 수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말도 있다. 6차 집회서 그간 등장하지 않았던 횃불이 나왔고, 대통령에 대한 구호도 하야, 퇴진, 탄핵, 체포, 구속 등으로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참가자들은 평화 시위 방식을 굳건히 고수하고 있다. 충돌을 미리 방지할 수 있도록 서로를 독려하는 것은 물론 경찰을 보듬어 안아주는 방식으로 시위를 이끌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은 고 백남기 농민을 향해 직사 살수했다. 백씨는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후 깨어나지 못한 채 지난 9월25일 세상을 떠났다. 백씨의 사망으로 공권력에 대한 시민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촛불 집회 1차 참가자 수가 2만명서 1주일 만에 20만명으로 폭발했을 때 시민들은 공권력의 탄압이 자행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실제 2차 집회까지만 해도 살수차 등장 여부가 관심을 모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살수차에 물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공권력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던 때였다.

평화·비폭력
의경 안아주기도

지난달 7일, 2차 집회 직후 이철성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서 “경찰이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은 3만명에 불과한데 10만∼20만명이 모이고 시위가 격화될 경우 막을 수 있는 한계가 있다”며 “최후방에서 불가피하게 살수차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현재 이 청장의 우려는 기우가 됐다. 오히려 이 청장은 지난달 21일 기자간담회서 19일 4차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붙인 꽃 스티커를 떼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경찰 버스에 붙인 꽃 스티커는 평화 집회의 상징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5차 집회 때 서울 종로구 통인동 사거리서 선두에 서있던 집회 참가자 20여명은 두 팔을 벌려 대치 중이던 의경들을 끌어안았다. 이들은 “추운 날씨에 고생하는 경찰이 무슨 죄냐. 다 같은 국민이다”며 시민들의 말에 의경들은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입가에 웃음을 매달았다.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촛불집회 사진을 보면 의경이 시민들의 집회 인증샷을 찍어주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의경과 팔씨름을 하는 집회 참가자의 모습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주말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일종의 대형 공공축제 같은 모습”이라고 전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한국 국민이 평화롭고 축제 형태로 집회의 새 장을 열었다”고 강조하는 등 외신도 평화적인 집회 분위기에 찬사를 보냈다.

봉사 나눔 배려
스마트 집회도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달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김 의원의 말에 스마트폰과 LED 촛불을 들어 보이며 눈·비가 몰아쳐도 꺼지지 않는다며 반박했다.

실제 지난달 26일,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서 190만명이 촛불을 들었다. 참가자들은 ‘순순촛불’ 등 각종 촛불 앱으로 주변을 환히 밝혔다. 바람이 불어도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시민들이 증명했다.

스마트폰, SNS의 발달은 집회도 ‘스마트’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박항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은 ‘카이스트 대오 위치 보기’ 앱을 만들었다. 광장에 나부끼는 수많은 깃발로는 대오를 찾기 어려운 학생들의 불편함을 보고 고안했다.

박씨가 만든 앱은 대오 인솔자의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지도에 표시해 주는 방식이다. ‘집회출석’ 앱도 있다. 집회 당일 광화문 반경 2km 안으로 들어오면 자동으로 출석체크가 된다.

이외에도 공권력감시대응팀과 진보네트워크센터서 만들어 배포한 집회 시위 매뉴얼에는 처음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위한 준비물, 법률 등이 담겨있다. 화장실, 응급시설, 촛불, 피켓 배포 장소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편의시설 안내 앱도 등장했다.
 

집회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한 앱도 있다. ‘오천만 촛불’은 개인사정이나 근무, 육아 등으로 집회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촛불 사진을 SNS에 공유하면 참석 인원으로 체크해 해당 지역별로 분류했다. 그렇게 몰린 인원이 37만명에 달했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 각종 인터넷 생중계 채널에도 시민들이 몰렸다. 이들은 현장 참가자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등 뜨겁게 호응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
의원에 카톡 제보도

외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도 온라인 촛불을 켜는 등 국내서 일어나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 LA에 거주 중인 문모씨는 “매주 한국서 열리는 집회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참여할 수 없어 안타깝다”며 “일단 카카오톡 프사(프로필 사진)를 촛불로 해놓고 교민들끼리 진행하는 촛불집회에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나눔과 봉사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26일, 새마을금고 광화문 본점 근처에선 한 상인이 추운 날씨에 집회에 참가한 시민을 위해 따뜻한 물을 제공했다.

지난 3일, 김진태 의원의 지역구인 강원도 춘천에선 무료 ‘하야 커피’를 주는 푸드트럭이 등장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핫팩, 방석, 촛불, 종이컵 등을 무료로 나눠주는 시민의 손길이 집회가 거듭될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쓰레기봉투를 여러 장 사서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사람을 봤다며 글을 올렸다.

그 학생은 33만2000원을 들여 쓰레기봉투 100L 100장, 50L 100장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매번 집회 때마다 광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쓰레기 줍는 등 주변을 청소하는 시민들 덕분에 광화문 광장은 집회 이후에도 이전과 다름없는 말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시민들의 촛불 퍼포먼스나 피켓 문구 등도 집회의 또 다른 볼거리로 떠올랐다. 3차 집회 때 100만명의 촛불 파도타기는 장관을 이루며 외신에 보도됐고, 5∼6차 집회 때 이뤄진 1분 소등행사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문구를 실현했다.

촛불집회는 10대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는 촉매제로도 작용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지난 8일 라디오 프로그램 <KBS 공감토론>에 출연, “저는 촛불민심의 국면에 대해서 전혀 겪어보지 못한 주권재민의 실체하는 힘을 느끼고 있다”면서 “민주주의 역사에서 이 역사의 순간을 보고 있다는 것에 정말로 가슴 떨리는 외경심이나 두려움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촛불민심은 최순실 게이트가 열린 이후 중요한 국면마다 정치권을 압박했다. 촛불을 통해 전달된 시민들의 요구에 놀란 정치권은 화답했다. 의회는 시민의 대리인이며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원칙이 현실화된 것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국회의원의 휴대폰 번호가 무더기로 뿌려졌다. 시민들은 의원들에게 탄핵 관련 입장을 밝히라며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의원들은 시민 개개인의 요구에 답변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동안 민심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은 의회는 시민의 목소리를 촛불이나 문자, 카카오톡을 통해 직접 듣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공개된 전화번호는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 7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에 카카오톡 캡처 게시글이 올라왔다. 주갤러가 올린 캡처에는 2007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청문회 영상과 관련 사안을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에게 제보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촛불 이후…
직접민주주의

제보를 받은 박 의원은 이를 영상 자료와 시각 자료로 만들어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에 참여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몰아붙였다.

김 전 실장은 그 때까지 최순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했다가 증거가 나오자 “기억을 잘 못했다. 내가 최순실을 모른다고 한 것은 전화를 하거나 만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등으로 해명하며 진술을 번복했다.

박 의원은 질의가 끝난 이후 “네티즌 수사대와 함께한 일”이라며 SNS를 통해 감사를 표했다. 누리꾼들은 “직접 민주주의의 쾌거” “온오프 합작 성공”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