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에 실종된 정치권 ‘뜨거운 감자’

속으로 미소 짓는 사람들 “휴~쓰나미 아니었으면…”


일본 대지진이 정치권의 이슈마저 집어삼켰다. 지난 연말부터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던 정치권이다. 새해 예산안 강행 처리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동남권 신공항 등 지역과 관련된 현안이 이어졌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에리카 김의 잇따른 입국 이후 불거진 ‘김경준 기획입국 편지 조작설’과 ‘상하이 스캔들’은 정치권을 흔들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연임 문제와 강만수 산업은행지주회장 선임까지 굵직한 이슈들이 빼곡했지만, 모두 뒤로 밀려난 상황이다.

나라 뒤흔든 ‘상하이 스캔들’ 온데간데없어
구문 된 BBK 김경준 기획입국 편지 조작설

대지진이 연일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지진에 쓰나미까지 겹치면서 붕괴와 화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위태로운 원자력발전소로 세계의 시선이 고정된 상태다. 대지진의 여파는 바다 건너 여의도 정치권까지 미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왔던 사건·사고들이 자취를 감춘 것.

정치 이슈 행방불명
여의도에서 “꼭꼭 숨어라”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본 대지진과 관련, “항간에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정말 천운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국내 주요 뉴스는 대부분 앵커 리포트로 끝나거나 중요하게 배치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최고위원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불가피하지만 국민이 알아야 할 중요한 뉴스가 많다”며 “이 대통령의 측근 오기 인사의 종결판인 강만수가 산업은행지주회장으로 오늘 선임된다. 끝없는 주군의 총애에 강만수가 보답하는 길은 스스로 용퇴하는 것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 대해서도 “청문회 역시 ‘한결 수월해지겠구나’ 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국민은 방통위원장을 원하지 먹통위원장을 원하지 않는다. 노욕 부리지 말고 초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 최고위원은 또 ‘상하이 스캔들’을 거론하며 “이 사건이 일본 지진 이전엔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대형 사건이었나 싶을 정도로 잊혀져가고 있다”며 “국가적인 치욕 사건인 이 사건은 한 치의 의혹도 없이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획입국 편지 조작설에 대해서는 “2008년 대선을 뒤흔든 BBK와 도곡동 땅 진실을 국민은 알고 싶어하고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재해에 쏠린 관심을 틈타 대충 넘기려 하면 안된다”며 “민주당은 꼼꼼히 챙기고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도 지난 15일 박선영 대변인의 현안 브리핑을 통해 “상하이 스캔들, 장자연 사건, 한상률 사건, 에리카 김 사건 등 국내 주요 현안들이 일본의 대재앙이라는 쓰나미에 쓸려 나갔다”며 “어떤 환경에서도 국내 현안을 철저하게 챙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다짐과는 달리 대부분의 정치 이슈들은 ‘조용히’ 넘어가는 모양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에리카 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달 중 마무리될 전망이다. 한 전 청장과 관련된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한 전 청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시작으로 전·현직 국세청 직원과 골프 로비 의혹 당시 참석자, 전군표 전 국세청장 등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난리통 속에 ‘MB의 남자들’ 화려한 귀환  
강만수·최시중 ‘구렁이 담 넘듯’ 제자리로일본


또한 한 전 청장의 자택과 그림 로비에 사용된 ‘학동마을’을 구입한 서미갤러리 등 3곳을 압수 수색했다. 에리카 김의 횡령 혐의 등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달 26일과 27일, 지난 9일 김씨를 소환 조사해 김경준씨의 주가 조작 및 횡령 가담 여부와 2007년 대선 당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그러나 한 전 청장과 관련된 그림 로비와 연임 로비,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 과정의 직권 남용, 이명박 대통령의 도곡동 땅 차명 소유 관련 의혹 등 여러 혐의 중 그림 로비 의혹에 대해서만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에리카 김에 대해서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무혐의 처분하고 횡령과 주가 조작 등의 혐의에 대해선 불기소 처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야권은 당장 검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하고 나섰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15일 검찰이 한 전 청장과 관련된 수사에서 계좌 추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으며 “일반적인 뇌물 사건에 있어 수사 개시 즉시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변인까지 계좌 추적을 벌이는 것이 검찰의 통례”라면서 “한 전 청장에 대한 수사가 의혹을 파헤치는 시늉만 내고 있음이 입증된 것이며, 결국 봐주기 수사로 한 전 청장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 대변인은 또 “일본 대지진에 국민의 관심이 쏠린 틈에 어물쩍 진실을 은폐하려는 검찰의 작태”라며 격분했다. 
 
뒷전으로 밀린 사건들
쉬쉬하며 조용히 넘겨라?

박지원 원내대표도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일본 지진의 여파 속에서 국민과 당이 염려했던 한 전 청장, 에리카 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예상했던 대로 꼬리 자르기 면죄부 수사로 마무리 될 전망”이라며 “지진을 핑계로 수사를 묻으려고 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이 진실을 묻으려고 한다면, 일본 지진의 여파로 (진실이) 땅 속으로 묻힐 것 같지만 언젠가는 또 폭발할 것”이라며 “구제역의 경우처럼 임시방편으로 땅에 파묻었다가 해동이 되면 터져 나오듯 밝혀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현희 원내대변인은 “그야말로 깃털만 건드리는 형국”이라며 “한 전 청장이 판도라의 상자임을 우리 국민들은 뻔히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하이 스캔들’에 대한 정부 합동조사단의 조사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17일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내외신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일어난 문제와 관련 정부합동조사단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는 중에 있어 곧 그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결과가 나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깃털 건드린 수사
판도라의 상자 닫힐까

정치권은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4월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계획이어서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상하이 스캔들’의 진실뿐 아니라 이 대통령의 ‘보은 인사’에 대한 지적이 강도 높게 제기될 수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번 스캔들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의 측근 인사 챙기기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개각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사퇴 의사를 밝힌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비롯해 일부 장관들의 교체 얘기가 나오면 이 대통령의 인사 문제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강만수 전 대통령 경제특보의 산은금융지주 회장 내정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연임을 두고도 말이 많다. 민주당, 자유선진당, 미래희망연대, 창조한국당 등 야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들은 지난 18일 공동성명을 내고 강만수 경제특보의 산은금융지주 회장 임명 취소를 주장했다. 야 4당 정무위원들은 이날 “강 특보가 과거에 재무부에 재직했었고, 기획재정부 장관을 했었다는 이유만으로 산업은행 민영화 추진 등을 위한 적임자라고 볼 수 없다”면서 “강 특보는 이 대통령의 측근이며 경제 과외교사였는지는 모르지만, IMF 경제 위기를 초래한 주범 중 한 사람이며 지난 3년간 서민의 삶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실패한 MB노믹스’의 주역으로서 더 이상 공직에서 우리 경제나 금융에 대해 조언하거나 관여해서는 안 되는 인사”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또 “강 특보가 산은지주 회장이 된다는 것은 MB정부 ‘관치금융’의 완결편”이라며 “국내 주요 3대 금융지주사(KB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의 회장이 이 대통령의 친구와 대학 동문 등으로 선임되어 있는데, 여기에 산은지주까지 대통령의 측근이 되면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며, 한국 경제는 퇴행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연임 도전이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최 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17일 강행됐지만 본인과 가족들의 땅 투기와 증여세·소득세 탈루 등 10여 가지의 의혹이 제기된 것.

강만수·최시중의 귀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라

민주당은 최 위원장의 낙마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어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도 난항이 거듭되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현행법에 따라 이 대통령은 소정의 날짜가 지나면 임명할 수 있기 때문에 23∼24일경에는 임명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럴 경우 앞으로 3년간 중요한 방송 정책과 통신 정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후보자 본인과 국민이 판단하리라고 믿는다”고 경고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지진에 흔들리고, 쓰나미에 휩쓸렸던 정가 이슈들이 거대한 ‘후폭풍’을 몰고 돌아올 수 있다”며 “4월 임시국회와 4·27 재보선에서는 이러한 이슈들이 다시 활개를 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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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