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때문에…” 대한민국 집단 우울증 진단

‘나는 뭐냐’ 상대적 허탈감에 멘붕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4년 4월16일 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서 침몰했다. 172명 구조, 295명 사망, 9명 실종. 단원고 학생, 교사, 일반인, 선원 등 총 304명이 바다 속에 가라앉은 참사로 전 국민은 혼란에 빠졌다. 혼란은 분노로 바뀌었다가 이내 집단 무기력·우울증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세월호 트라우마’다. 그로부터 2년6개월 뒤, 국민들은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공부는 해서 뭐해요?”(고3 수험생) “코피 쏟으며 들어온 대학인데 누구는….”(대학생) “이력서 50장 썼는데 족족 떨어지고 있어요.”(취준생) “일주일에 네 번 야근, 월급은 100만원.”(중소기업 수습사원)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남는 게 없어요.”(족발집 주인) “기껏 뽑아놨더니 무당한테 나라를 맡겼다.”(70대 노인)

최씨 트라우마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의혹이 하나씩 사실로 드러나면서 전 국민은 연일 언론을 달구는 보도에 경악하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촛불을 든 국민들은 서울광장, 광화문 등에 모여 대통령 하야, 탄핵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달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진행한 1차 범국민 행동 집회에 2만명(주최측 추산)이 모인 것을 시작으로 지난 5일에는 20만명, 12일에는 100만명이 거리로 나와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100만명이 모여도 소용없을 것.” “정치권은 물론이고 검찰, 언론 전부 한 패.” “집회에 나오긴 했지만 변화는 없을 것.” 등 비관론이 나왔다. 지난 2014년 4월 전 국민을 집단 패닉 상태로 몰고 갔던 세월호 참사 이후 또 다시 집단 무기력 현상이 국민들 사이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질병관리본부가 아주대에 의뢰해 수행한 ‘지역사회 건강조사 기반 사회심리 및 안전인식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피해 지역인 경기도 안산은 불안, 스트레스, 자살 생각 등으로 고통 받는 주민의 비율이 타 지역에 비해 높았다.

안산 단원구(11.6%), 상록구(11.3%) 등 주민 10명 가운데 1명은 우울증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지역사회 건강조사’에서 안산 단원구 주민 4.3%, 상록구 주민 4.8%가 우울 증세를 보였던 것에 비해 5년 새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해결 불가능한 거대한 구조적 모순을 목격했을 때 집단 구성원이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순실 게이트는 국민이 투표로 빌려준 권력을 받은 대통령이 일반인과 그것을 나눠 가졌다는 점에서 경악할 만한 사건이다.

게다가 최씨가 문화, 국방, 외교 등 할 것 없이 전방위로 국가 정책에 손을 뻗쳤고, 그 딸인 정유라씨가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의 특혜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일상처럼 사용되는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등의 단어가 실제 눈앞에 현실화됐다는 점도 박탈감에 단단히 한몫을 거들었다.

지난 17일은 2016 대학수학능력 시험일이었다. 수시로 대학에 가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수능의 중요성이 비교적 낮아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10여년 간 수능을 위해 공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렇게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학생들은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학교생활의 기본인 출석일수조차 제대로 채우지 않은 정씨가 이화여대에 입학한 사실이 알고 분노했다. 또 그 과정에서 대학이 학칙을 바꾸고, 면접에서 상위권 학생들에게 낙제점을 주면서까지 정씨의 입학을 도운 사실이 밝혀져 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대입 취업 사업 이념…세대별 박탈감 심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집회 나와 한 목소리


학교는 정씨가 입학한 이후에도 여러 가지 특혜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기본 형식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맞춤법도 허술한 리포트에 교수는 평균 이상의 점수를 줬다. 명문사학으로 불렸던 이대의 위상은 바닥까지 떨어졌지만 최경희 전 총장은 끝까지 정씨에 대한 특혜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평생교육 단과대학(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문제로 학교 측과 대립하던 이대생들은 정씨 특혜 의혹에 분노했고 농성과 시위 끝에 최 전 총장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정씨는 온라인으로 자퇴서 한 장을 낸 것으로 끝이었다.
 

또 정씨가 2014년 자신의 SNS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글을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들이 느낀 상대적 박탈감은 극에 달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20∼30대 취준생 역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 7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5월 경제활동 인구조사 :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준생 10명 중 4명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공시족이다. 일자리의 질이 낮아지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추세가 심화됐다는 방증이다. 9급 공무원으로 3급에 오르려면 33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5급으로 시작해도 20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청와대 전 4급 행정관 이영선씨, 3급 행정관 윤전추씨, 2급 선임행정관 김한수씨 등은 최씨와의 인연으로 30대에 고위공무원 자리에 올랐다. 이씨는 TV조선이 지난달 25일 공개한 대통령 의상실 내부 영상에서 휴대전화를 닦아 최씨에게 두 손으로 건넨 인물이다.

헬스트레이너 출신 윤씨는 영상에서 서류를 보여주거나 옷을 직접 펼쳐 보이는 등 최씨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고위공무원이 최씨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이다.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 측근 연루 의혹이 불거진 포스코 계열 광고회사 포레카 강탈 시도도 있다. 차씨 측근들은 포레카를 인수한 중소기업 대표 A씨에게 지분을 넘기라고 요구하면서 거절할 경우 고강도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협박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이미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된 상태이며, 권오준 포스코 회장 역시 조사를 받고 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로 공정성이 붕괴됐다는 지적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고위직과의 인맥 하나로 돈, 권력 등을 부당하게 갈취한 자들의 모습은 점차 어려워지는 경제 상황에서 허리가 휘도록 일하는 자영업자들을 좌절케 했다.

망가진 민주주의에 대한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최근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는 1987년 전두환정부에 맞서 국민들이 거리로 나왔던 6·10민주항쟁을 떠올리게 했다. 6월 항쟁은 전국 20∼30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됐고 연인원 400∼500만 이상의 국민이 참여했다.

그 결과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6·29민주화선언을 이끌어냈다.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세대는 현재 50대에 접어들었다. 이들은 학생운동과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던 사람들로, 최근 붕괴되는 민주주의를 보며 개탄하고 있다.

특히 50대는 18대 대선 당시 박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었다. 당시 50대의 82%가 투표했고, 그 가운데 62.5%가 박 대통령을 뽑았다. 하지만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11월 2주차(8∼10일)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를 보면 50대의 ‘긍정’ 응답 비율은 6%에 그쳤다.
 


‘콘크리트’라고 불리는 노년층이 느끼는 ‘배신감’도 박 대통령의 지지율 수치를 통해 나타난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연령층의 긍정 응답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18대 대선 때 노년층의 80.9%가 투표했고, 그 가운데 72.3%가 박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돌아온 건 예산 삭감, 복지 축소 등 ‘찬밥’ 대접이다. 더민주 오제세 의원은 지난 3일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내년도 예산안 심사 비경제부처 질의서 “최씨 관련 예산은 2714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46%가 급증했는데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 예산은 5772억원 삭감됐다”고 주장했다.

근본적 해결 시급

이 중 노인 분야는 경로당 냉난방비 및 양곡비 지원비가 전액 미편성 됐고, 노인요양시설 확충 관련 58억원 등 396억원이 삭감됐다. 이는 과거 집회나 시위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던 노년층이 광화문으로 나오게 된 이유로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 없이 사건이 흐지부지된다면 국민이 느끼는 좌절감과 분노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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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