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정체’ 문재인 딜레마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6.11.21 11:02:06
  • 호수 10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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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고우면하다 영영 뒤집힐라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혼란한 정국을 기화로 지지율 1위를 꿰찼다. 최근에는 퇴진운동을 선언하며 선명성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전면에 나서면 새누리당에 ‘대통령 된 줄 착각한다‘는 비판을 듣고, 뒤로 물러서면 야권에게 ‘책임감 없는 대선주자’라는 평을 듣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최근엔 현 정국의 호재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아냥도 들려온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5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 지역까지 함께 하는 비상기구를 통해 머리를 맞대고 퇴진운동의 전 국민적 확산을 논의하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식?
광폭행보 나서

최근 문 전 대표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퇴진’을 내세우며 광폭행보에 나선 모양새다. 지난 12일 100만 촛불집회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 다른 야권 잠룡들에 비해 다소 늦은 시점에 촛불집회 참석의사를 밝히는 등 이슈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달 말부터 문 전 대표는 퇴로를 두는 전략을 취하면서 이슈를 이끌기보다는 관망하면서 목소리를 높였고, 확정된 의견을 밝히기보다는 입장 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서 과도하게 뒤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판의 목소리를 의식한 듯 최근 들어 단호한 입장으로 선회한 모습이다. 문 전 대표의 광폭행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전 대표는 ‘퇴진운동’을 강조해 안 전 대표가 주장한 ‘정치혁명’과 같은 맥락의 강한 어조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때문에 안 전 대표에 대한 견제 차원서 박 대통령에 대해 강도 높은 공세를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 전 대표가 현 정국서 이슈를 선점하고 대통령 하야를 주장해 왔기 때문이 더 이상 눈치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문 전 대표의 하야 주장에 대해 “결국은 이번 하야를 통해 조기 대선을 점화시키겠단 것”이라며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통령 ‘퇴진운동’ 선언…다소 늦은감
거국중립내각 화두 던졌는데 청와대 수용?

뒤에 머물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보류한 그를 정면 비판하는 잠룡들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왔다.

지난 1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좌고우면하는 문 전 대표의 행보를 비판했다. 박 시장은 “당내 최대 세력인 문 전 대표가 입장을 확실히 정하지 않고 그동안 계속 바뀌어 왔지 않느냐”며 “민주당이 왜 이렇게 갈지자 행보를 하느냐. 이것은 문재인 전 대표의 어정쩡한 자세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 위상에 흔들림이 있을까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권 일각서 어정쩡한 문 전 대표의 태도를 비판했다면 여권은 오락가락 행보에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문 전 대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지난달 26일 ‘거국중립내각’ 화두를 정치권에 처음으로 던졌다. 새누리당은 당초 예상과 다르게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새누리당 추천 내각은 거국중립내각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선회해 여권을 당혹스럽게 했다. 이 같은 변화는 더민주 지도부서 거국중립내각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국회를 방문해 국회에 총리 추천권을 넘기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총리 추천권은 야권3당의 공식적으로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단순 국회 추천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총리에게 조각권과 국정 전반을 맡기라고 요구했다.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셈이다. 거국중립내각 때와 마찬가지로 문 전 대표는 청와대의 야권 요구 수용을 거부했다. 이러한 문 전 대표의 행보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은 진실성과 일관성이다. 문 전 대표의 이런 말 바꾸기가 너무 안타깝다”고 불만을 표했다.

호재를 이렇게?
확장성이 문제

정치권에선 문 전 대표가 대형 호재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지율 정체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11월 3주차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20.0%로 18.4%를 기록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앞서며 3주째 1위를 이어가고 있다. 문 전 대표가 반 총장을 앞서면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더민주 지지율은 10% 이상 상승하고 반 총장 지지율이 7∼8% 떨어지는 등 큰 폭의 변동이 있었지만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상반기 지지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10%를 돌파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다.

문 전 대표 고정 지지층(20%)은 견고하지만 이밖에 중도, 새누리당 이탈 지지층을 흡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즉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것은 현 청와대의 실정으로 인한 착시효과인 셈이다.

또 청와대가 마비되고 새누리당이 친박-비박 간 주도권 경쟁에 함몰된 상황서 문 전 대표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민주 한 초선의원은 문 전 대표에 대해 “현재 정국의 과실을 빼먹지 못하고 있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지율 확장의 숙제를 안고 있는 문 전 대표는 최근 총선 전 ‘호남발언’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지난 4월 “호남 패배 시 정계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총선서 더민주는 제1당에 오르며 여소야대 국회의 선봉장이 됐지만 호남에선 국민의당에게 깃발을 뺏겼다. 문 전 대표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계 은퇴가 자연스러운 수순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국회가 열린지 5개월이 지난 현 시점까지 과거 ‘호남발언’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15일 국회 기자회견서 처음으로 구체적 해명에 나섰다. 그는 "당시 선거서 우리가 승리하고 또 새누리당 과반 의석을 막아 우리 당 정권 교체의 기반을 구축했다"며 "광주와 호남서 우리당이 지지받기 위한 전략적인 판단으로 했던 발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이 만약 광주·호남 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점이 있다면 죄송하고, 그 발언의 맥락을 잘 살펴달라”며 “광주·호남 민심 지지가 없다면 대선을 포기할 것이란 부분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하야는 찬성 탄핵은 반대
지지율 1등인데 의문부호


해명 이후 정치권에선 ‘선거 전략으로 그냥 했던 말이란 이야기 아니냐’며 문 전 대표를 강하게 질타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문 전 대표의 해명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러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90% 이상 지지를 해준 호남 사람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과 말을 하는 분이 또 다시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것은 말로만 호남을 생각한다면서 완전히 호남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여태까지 뚜렷한 의견제시를 하지 않고 있다가 민심이, 또 정당들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자 퇴진을 요구한다”며 비판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은 당 차원서도 강력하게 항의했다. 국민의당 김경록 대변인은 논평서 “문 전 대표는 전략적 거짓말을 해서 미안한 것인지, 아직도 정계를 은퇴하지 않아서 미안한 것인지 분명히 밝히라”며 “대통령 되는 것이 꿈이면 호남을 전략적으로 이용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비꼬았다.

문 전 대표가 내년 대선에 앞서 호남 민심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가 대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지난 대선에선 문 전 대표는 호남서 90% 이상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총선서 호남 민심이 문 전 대표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호남서 더민주가 단 1석도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호남에 전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의당이 명실공히 호남의 맹주라고 봐도 무방하다.

총선 이후 문 전 대표의 꾸준한 호남행은 그의 대선 플랜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지난 9월11일 광주를 방문해 ‘그린카 산업’ 홍보를 위해 전기차를 타고 민심을 살폈다. 지난 2일에는 광주 학생독립운동 진원지인 옛 나주역사,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한 뒤 광주대교구청서 김희중 대주교를 예방하며 민심다지기에 나섰다.


문 퇴진운동
새누리 반발

최근에는 새누리당서도 친박계를 중심으로 문 전 대표의 행보를 질타해 문 전 대표의 대선행보를 어둡게 하고 있다.

친박계 중진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지난 16일 “문 전 대표는 대통령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며 “국민 분열을 틈타 권력을 손에 쥐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사람 아닌가”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유력 후보가 전국을 다니면서 대통령 퇴진운동을 한다는 것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본다. 당 차원에서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최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대통령을 하겠다는 분이 초헌법적, 초법률적으로 여론몰이를 통해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인민재판’”이라며 문 전 대표의 대통령 퇴진운동을 인민재판으로 규정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문 전 대표 비난행렬에 동참했다. 그는 “국회를 무시하고 ‘원맨쇼’하겠다는 것이냐”며 “지금 대통령이 다 된 줄 착각하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처럼 야권의 대표적인 대권주자인 문 전 대표를 견제하는 발언들이 여야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문 전 대표 입장에선 현 정국서 전면에 나서면 새누리당의 집중포화를 받게 되고 뒤로 물러서면 국민의당 및 정의당 등 야권의 공세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는 박 대통령 자진퇴진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탄핵과는 시종일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5일, 문 전 대표는 박 대통령 탄핵 제기와 관련해 “나는 지금은 탄핵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며 선을 그었다.
 

다만 “하야까지도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탄핵 절차까지 밟는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나쁜 대통령”이라고 힐난했다. 문 전 대표가 탄핵이 아닌 퇴진에 중점을 둔 이유로는 하야를 통하면 60일 이내에 조기대선이 치러진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지지율만 놓고 봤을 때 조기 대선은 문 전 대표에게 불리할 것이 없는 싸움이다. 또한 탄핵은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의 동의와 더불어 헌재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탄핵은 결론이 나기까지 최장 6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 국정동력을 상실한 박근혜정부에 정국을 수습할 시간을 벌어주는 꼴이 된다. 문 전 대표는 퇴진을 주장함으로써 ‘조기대선’과 ‘청와대 압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반기문-잠룡연대
뜨면 문재인은?

문재인 전 대표를 둘러싼 정치 지형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문재인 전 대표에 힘이 실릴수록 다른 대선주자들은 다른 지점에서 대선을 도모할 수 있다”며 “만일 반기문 총장과 연대한다면 문 전 대표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재인 싱크탱크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달 6일 서울 프레스센터서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가칭)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대선 준비에 착수했다. 싱크탱크에는 교수와 각 분야 전문가 등 약 500명이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싱크탱크는 ‘성장’에 방점을 찍고 외연확장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로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다면 이번에는 중도층 표심잡기에 닻을 올린 셈이다.

싱크탱크는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연구소장을 맡았다. 조 교수는 국제기구 출신 경제학자로 참여정부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역임했다. 추진단장은 김현철 서울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한 양봉민 서울대학교 보건학과 교수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진심캠프’에서 활동한 정영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등이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정책공간 국민성장’은 산하에 각 분야별 7개 분과로 조직됐다. 또한 경제·민생 대안을 내놓기 위한 10개 핵심추진단도 운영된다.

<기사 속 기사> ‘개헌’ 문재인 생각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고 말해 개헌론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지난 15일, 국회서 박근혜 대통령의 조건 없는 퇴진을 주장하는 긴급기자회견서 문 전 대표는 “우리 헌법은 손볼 대목이 많다”며 “당연히 저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대선서 개헌을 공약한 바도 있다”며 “그러나 지금 개헌을 논의하면 국면 전환을 초래해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문 전 대표는 지난달 박 대통령이 꺼내는 개헌카드에 대해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 참 느닷없다. 생각이 갑자기 왜 바뀌었는지 의심스럽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의한,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개헌은 절대 있어선 안된다. 정권연장을 위한 제2의 유신헌법을 만들자는 거냐”고 꼬집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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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