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강타하면서 박 대통령 사퇴 여론이 득세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조기대선론’이 힘을 받고 있다. 조기대선론은 1년2개월여 남은 차기 대선을 앞당겨 권력을 이양하자는 정국 시나리오다.
조기대선론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잠룡으로 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처음 들고 나왔다. 박 시장은 지난 3일 한 라디오프로그램서 ‘조기대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작은 혼란과 고통이 있을 것으로 생각 한다”면서도 “모든 새로운 탄생엔 껍질을 벗는 아픔이 있지 않느냐”고 말해 조기대선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통령 내리고
선거 치르자”
다만 박 시장은 “국민의 요구와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당분간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박 시장이 조기대선론을 처음 언급했다면 정의당 심상정 공동대표는 조기대선론을 위한 절차를 가장 먼저 제시했다.
심 대표는 지난 4일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면, 여야 4당이 국회의장 주재로 과도중립내각을 확정해야 한다”며 “권력이양 일정이 확정되면 ‘조기대선준비특위’를 구성해 선제적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조기대선 실시에 따른 문제점과 혼란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면 과도중립내각을 구성한 뒤 조기대선을 실시한다는 로드맵이다. 심 대표는 내년 4월10일로 예정된 재보궐 선거에 맞춰 대선을 치르자는 방안도 제시했다.
대통령 사임은 조기대선일 전 60일로 정한다. 즉 대통령이 사임 날을 조기대선일에 맞추는 것이다. 과도중립내각은 권력이양 및 일정관리, 헌정유린 사태 진상규명·헌정유린 사범 단죄, 경제·안보 등 국가위기 관리를 목적으로 운용된다.
같은 당의 노회찬 원내대표도 조기대선론을 강조했다.그는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 있다가도 여론이 조금이라도 우호적으로 돌아온다 싶으면 언제든지 권한을 행사할 위험성이 있다”며 “현재 보수적인 헌법재판소 구성상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더라도 헌재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따라서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와 맞물려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까지 대통령이 명예롭게 하야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한시적인 ‘퇴진 프로그램’을 작동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직 국회의장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대통령의 조기대선이 거론됐다. 지난 7일 전직 국회의장 6명은 국회의장 초청으로 오찬 회동을 가졌다. 임채정 전 의장은 “대통령은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고 내각에 모든 권한을 넘겨야 하며 앞당길 수 있으면 대선을 앞당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를 했다”며 “지금 이 상태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출구 전략 거론
박원순 최초 언급…“국민 요구에 달려”
차기 대선주자인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도 조기대선론에 동참했다. 안 전 대표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지난 9일 회동을 갖고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조기대선 실시에 뜻을 같이 했다. 이들은 “나라의 혼란을 가장 빨리 수습하는 방법은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이라며 지난 12일 ‘민중 총궐기’에도 참석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을 언급해 박 대통령이 국회의 의견을 수렴한 책임총리제에 대해서도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최근 SNS를 통해 ‘조기대선이 해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민 의원은 과도거국내각의 성역 없는 수사, 선거관리, 6개월 후 조기대선을 강조했다.
민 의원은 선출 권력이 아닌 과도내각이 1년 이상 지속되는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됨을 들어 대선을 6개월 후로 앞당기자고 말했다. 일정기간의 시간을 둬 차기후보들이 대선 준비를 마치고 경선에 참여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향후 정치 일정이 확정돼 안정된 권력이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 일부 의원이 공개성명을 통해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면서 조기대선안에 힘을 실었다.
이상민, 안민석, 홍익표, 한정애, 소병훈, 금태섭 의원은 “박 대통령의 국정을 이끌어갈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은 이미 붕괴돼 산산조각이 났고, 다시 복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스스로 퇴진을 하게 된다면 헌법에 따라 60일 내 선거를 통해 임기 5년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게 되는 만큼 국정혼란 수습과 새 출발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와중에 새누리당이 조기대선론을 주장하는 교수의 강연을 들어 이목이 집중된다. 새누리당 당내 소장파 모임인 ‘최순실 사태 진상규명과 국정 정상화를 위한 새누리당 국회의원 모임(약칭 진정모)’은 지난 8일 김형준 명지대 교수를 초빙해 조언을 들었다.
2선 후퇴 후
대선 치른다?
김 교수는 강연서 “김병준 총리 내정자 지명을 철회한 뒤 현 새누리당 지도부가 사퇴하고, 박 대통령이 거국중립내각 총리에게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며 “내년 상반기 안에 조기대선을 치를 수 있는 체제로 바뀌는 것이 문제 해결의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초빙한 전문가가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않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 내부의 입장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이처럼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조기대선론은 대통령의 모르쇠와 버티기에 대한 야권의 응수타진으로 풀이된다. 특히 야권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은 국회를 방문하며 야당이 주장한 국회 추천 책임총리 방안 수용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야3당은 대통령의 국회 국무총리 추천 요청에 대해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거부했다. 이들은 강력한 검찰수사와 국정조사 및 별도 특검을 신속히 추진한다는 데도 의견을 함께했다.
이들이 박 대통령의 제안을 일축한 이유에 대해서는 2선 후퇴에 대한 명시적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추 대표는 “박 대통령의 요청은 2선 후퇴도, 퇴진도 아니고 그냥 (사태를) 눈감아 달라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국정에서 한시바삐 손을 떼고 국회 추천 총리에게 권한을 넘기겠다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야권이 주장하는 ‘2선후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권이 주장하는 2선 후퇴론은 대통령이 내치뿐만 아니라 외치까지 모두 내려놓고 새 총리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야권 인사 중 2선 후퇴론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으로 꼽힌다. 추 대표는 지난 9일 국회에서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외치든 내치든 자격이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청와대는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외교·국방 분야에 대한 권한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엇갈리는 잠룡
조기 뛰어든다?
야권 내부서도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범위를 놓고 노선이 엇갈리고 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일단은 적어도 내정에 대해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천 전 국무총리 역시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를 운영해보니 총리가 갈 수 있는 회의가 있고 대신할 수 없는 회의가 있다. 대통령이 갈 곳에 총리가 대신 가면 큰 나라 대통령들은 상대도 안해주더라”고 말해 대통령의 외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헌법 제74조를 보면 국군 통수권을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 등 안보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헌법에 따라 군을 통수할 수 있는 권한은 총리에게 없는 셈이다. 다만 야권 일각에서 박 대통령에게 외치까지 손을 떼라고 하는 것을 두고 자진해서 내려오게 하기 위한 압박용 포석이라 분석이 나온다.
또한 박 대통령이 2선 후퇴라는 단어를 명시함으로써 대통령이 책임총리를 간섭할 여지를 없애겠다는 복안이다. 게다가 통치 능력과 권위를 상실한 대통령이 외교와 안보를 통할할 수 있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상 ‘2선 후퇴’라는 용어는 ‘하야’라는 단어를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대통령이 2선 후퇴를 넘어 하야를 한다면 조기대선이 불가피하다. 대통령 궐기 후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하는 헌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각 당의 잠룡들도 빠르게 대선정국에 합류할 전망이다. 우선 조기대선론에 대한 각 잠룡들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하야-과도중립내각-조기대선 로드맵
물건너간 거국내각…엇갈리는 잠룡들
당초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사임할 경우 현직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가능하냐에 대한 견해가 분분했다. 지난 5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하야하면 헌법상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하게 되어 있는데, 공직선거법 53조에는 공무원의 경우 (선거전) 90일 이내에 사퇴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며 “이 규정에 의하면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성 성남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자치단체장들은 차기 대선에 출마를 못하게 된다”고 말해 여야 잠룡들을 압박했다.
당초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2일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면서 “대통령이 하야하면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르게 돼 있지만 지자체장이 출마하려면 90일 이전에 사임해야 한다. 나는 모든 것을 버렸다”고 말해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선관위는 “출마가 가능하다”고 정리했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35조는 대통령 사임으로 대선을 치르게 되는 경우 ‘보궐선거’ 규정을 준용해 자치단체장들이 입후보하는 경우 30일 이전에 사퇴하면 출마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조기대선론에 대해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중대결심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대통령 탄핵이나 하야는 명시하지 않았다. 조기대선도 검토치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문 전 대표 측근 김경수 의원은 “문 전 대표는 국정 운영을 해본 경험이 있고 탄핵 사태까지 경험했다”며 “현재로선 가장 바람직한 차선책은 거국내각”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하야하고 조기대선을 치르면 솔직히 문 전 대표가 가장 유리하다고 볼 수 있지만 국정이나 헌정의 문제는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헌정중단이란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김부겸 의원도 신중한 모습이다. 안 지사 측은 조기대선에 대해 “위기를 어떻게 수습할 지가 문제이지 향후 정치 일정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의원도 “2선 후퇴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청와대에 각을 세웠지만 하야라는 표현은 자제하는 모양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외교를 포함한 모든 권한을 여야 합의 총리에게 이양하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다만 조기대선에 대해서는 “지금은 이후를 논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해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권한대행 필요
내년 4월 적기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9일 “현재는 헌법적으로 대통령 ‘사고’ 상태”라며 “따라서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권한대행 총리는 합헌적으로 대통령 권한을 가지면서 국정을 운영하고 조기대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조국 교수는 “내년 대통령, 국무총리, 여야 대표가 내년 4월12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일, 조기대선을 치른다고 합의 공표하길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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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대통령 햐야’ 갈리는 야권 잠룡들
야권 공조 깨진다?
잠룡들 사이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하야에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지난 9일 조찬회동을 갖고 박 대통령 즉각 퇴진을 요구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박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이 시장은 “박근혜는 대통령직을 박탈하고 형사처벌해야 한다”며 “금품갈취 집단범죄의 왕초는 그냥 두고 졸개들만 처벌하고 끝낼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문재인-손학규 부정
박원순-안철수 긍정
반면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 손학규 전 고문은 하야 요구에 사실상 선을 그었다. 문 전 대표는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서 박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것은 아주 길고 긴 어려운 투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은 “국민들의 대통령 하야 요구는 당연하지만 지금 하야했을 때 생기는 정치적 혼란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느냐”며 하야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박 대통령 하야 여부를 놓고 야당 잠룡들의 셈법이 엇갈리면서 공조 분위기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사 속 기사> ‘대통령 퇴진’ 국민의당 당론 보니…
국민의당은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운동에 적극 나서기로 당론을 결정했다. 국민의당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제1차 중앙위원회를 통해 박 대통령 퇴진운동을 공식화 했다. 아울러 오는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민중총궐기 촛불집회에 당 차원에서 적극 참여키로 결정했다.
중앙위원들 간에 박 대통령의 탄핵 또는 하야 촉구를 당론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며 2시간이 넘는 격론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논의 끝에 구체적 퇴진 방향은 추후 결정키로 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퇴진 운동 방향에 대해 “먼저 거국내각을 구성해서 그 총리의 책임 하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최순실씨 사단을 인적 청산하고 검찰 수사와 국정조사, 특검으로 진실규명이 되면 그 결과를 갖고 국민 정서를 보면서 해결방법을 내자”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가 시작한 박 대통령의 퇴진 서명운동을 중앙당 및 전국지역위원회 차원으로 확대 실시키로 했다. 박 위원장은 “현재 의원총회와 비대위에서 사실상 퇴진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 서명운동으로 이어나가자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