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사내 자살 미스터리

끙끙 앓다…목숨 던져 목소리 내다

[일요시사 취재 1팀] 박호민 기자 = 현대인에게 직장은 일터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직장은 삶 자체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런 일터에서 목숨을 내던진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무엇이 그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을까.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지난달 21일 오후 4시경, 국내 모바일 게임업계 순위 1위 넷마블게임즈 구로동 사옥 20층서 퇴사 직원 박모씨가 몸을 던져 자살했다. 넷마블 관계자는 “고인의 사망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사망한 직원은 회사 내부서 회사 재화를 무단으로 취득해 사적으로 이득을 취한 비위로 인해 징계를 받았고 극한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절실한 목소리
마지막 몸부림

넷마블 관계자가 밝힌 것처럼 박씨는 현금 기준 억대 수준의 게임머니를 불법유통시킨 혐의가 드러나 사내 조사를 받았다. 관련 혐의는 박씨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박씨는 징계 조사 과정서 부당한 압박을 받았다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씨는 자살 전 메신저를 통해 “윤리경영팀장의 고압적이고 인신 모독적 발언과 비아냥까지 감수하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며 “유서는 이미 지난 주에 인사에 보냈으니 가족에게 전달 부탁드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넷마블서 다들 건승하길”이라며 회사측에 불만을 표출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비위사실에 대한 정상적인 조사절차를 진행했고 고압적인 자세 등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한쪽에선 죄가 있더라도 조사 과정서 인격 및 인권이 침해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넷마블이 숨진 직원에 대해 고압적인 분위기 등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반면 개인 비위 규모가 큰데 조사 과정이 거칠다고 회사 탓을 하며 목숨을 끊는 것은 상식적이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회사가 지난해 말 박씨의 비위를 한 차례 눈감아 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같은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였다.

직장서 근무하다 스스로 목숨 끊어
왕따에 내부고발 사연도 가지가지

하지만 회사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특히 지난 7월 넷마블서 직원이 돌연사 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됐다. 당시 넷마블 소속의 30대 사원이 사우나서 사망했다. 넷마블 모바일 RPG ‘길드 오브 아너’ 배경 원화를 담당한 30대 남성 직원이 휴가 중 사우나서 쓰러진 채 발견돼 숨졌다.

당시 이 소식이 전해지자 넷마블의 높은 근무강도가 사망의 원인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넷마블이 업계에서 업무강도가 높은 회사로 꼽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씨의 죽음이 넷마블의 높은 근무강도가 원인이 됐는지는 그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유족 측도 사망의 원인이 과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선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넷마블은 ‘구로역의 등불’이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야근이 많은 것으로 전해져 실체 없는 의혹이 떠돌고 있다.

한 게임업계의 관계자는 “넷마블 직원들이 구로역의 등불이라는 별명을 의식해서인지 블라인드를 치고 일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넷마블은 올해 두 차례나 사망사건이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이에 따라 회사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탄압에 의해 근로자가 희생되는 경우도 있다. 유성기업의 근로자였던 한광호씨는 지난 3월 충북 영동군의 한 공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유성기업 노조원인 한 씨는 2011년 회사와 노조가 대립각을 세우던 때 불법파업을 이유로 견책을 받았고, 2013년 노조활동에 대한 회사 관리자들과의 대치과정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출근정지 2개월 징계를 받았다.

지난 3월 10일엔 회사로부터 징계를 위한 ‘사실조사 출석요구서’를 받은 뒤 동료들에게 우울감을 호소했다. 7일 뒤 그는 세상을 등졌다. 그의 자택에는 뜯지도 않은 경찰 출석요구서가 발견됐다.

억울한 사람들
사연은 제각각

유성기업은 한씨가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간부로 활동했던 2012년 10월부터 2014년 9월까지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11차례 고소했다. 이 가운데 2건만 기소되고 나머지 9건은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노조 측은 “한씨가 사실조사 출석요구를 해고 수순으로 받아들였으며, 평소에도 치료는 받지 못했지만 회사의 임금 삭감·고소고발·징계 등 때문에 우울증을 호소해왔다”며 “한씨의 죽음에 유성기업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사측은 한씨가 숨지기 전에 유서 등을 남기지 않았고, 우울증 진단경력이 없었던 점을 들어 “자살이 유성기업의 노무지휘권을 사실상 박탈당한 상태서 불법적인 노조 활동을 함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사업주인 유성기업의 지배 관리하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서 이를 원인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지난 달 18일, 근로복지공단은 한씨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라는 판정을 내렸다.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는 한씨의 유족이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청구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질병판정위원회는 “한씨가 수년간 노조활동과 관련한 갈등으로 인해 우울증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사건 발생 1주일 전 (회사로부터 받은 무단결근) 사실조사 출석요구서가 정신적 압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업무와 사망 간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회사의 경영진으로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도 있다. 롯데의 2인자로 평가받는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인 이인원 부회장의 죽음이 이 같은 경우다. 지난 8월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자살을 선택한 이인원 부회장의 죽음에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현재 롯데그룹을 이끌고 있는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그는 사망하기 전까지 총수 일가의 경영활동을 보좌하고 90여개 그룹 계열사를 총괄 관리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두 가지 분석이 나왔다.

하나는 단순히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에 압박감을 느껴 개인적인 압박감에 자살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에 자살하는 경우에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검찰 수사 가운데 자살한 사람은 100명이 넘는다. 지난해에만 17명의 피의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검찰 수사에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롯데그룹의 핵심 인물인 이 부회장이 검찰 수사가 그룹사 전체에 강도 높게 진행되자 경영진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인격모독 참을만
폭력에 노예생활

실제 이 부회장이 자살하자 검찰의 수사는 흐지부지 되는 모습이었다. 검찰은 롯데 계열사 17곳, 관계자 500여명을 조사했지만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롯데그룹 3부자의 구속영장은 줄줄이 기각됐다.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의 롯데수사가 ‘용두사미’ 수사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경영진으로서 책임감을 느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평사원부터 시작한 이 부회장이 회사에 갖는 애사심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회사의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경우도 있다. 대구지방경찰청은 지난 15일, 경북 포항서 A건설사 간부 2명이 함께 목을 매 숨진 사건과 관련해 이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에서 회사비리에 대한 의혹이 제기돼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대구 A건설사의 중견 간부로 지난달 13일 오전 8시께 포항시 북구의 한 야산서 같은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이 숨진 현장서 유서가 발견됐다. 분량은 A4용지 4장. 유서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담은 내용과 함께 회사 내의 비리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에는 회사 대표가 법인 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대구 모 사립학교 건설 공사 수의계약 수주 과정서의 비리의혹과 함께 공무원 등에 뇌물성 편의를 제공한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 내용을 바탕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라며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하다 갑자기 왜?
잇달아 터지는 비보

사내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기도하는 사례도 있다. 충남 아산경찰서는 지난달 20일, 2년 간 직장 후배로부터 월급 등 3900만원 상당을 금품을 빼앗은 강모(22)씨를 상습공갈 등의 혐의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직장 후배를 상대로 ‘조폭생활을 했다’며 문신을 보여주며 위력을 과시하는 등 지난 2014년 3월부터 최근까지 42회에 걸쳐 폭행과 강요 등으로 3900만원 상당의 금품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강씨가 직장 후배에게 사소한 이유로 폭행을 일삼으며,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군입대 강제 연기에 이어 실행되지 않았지만 보험사기 제의와 허위 신고 등도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인 직장 후배는 더 이상 노예로 살수 없다며 최근 3차례나 자살을 시도한 상태”라며 “강씨를 구속해 여죄를 수사 중이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를 위해 지역 내 고질적인 갑질 횡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내 왕따(따돌림)가 자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올초에는 직장서 왕따를 당하던 여직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서 2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사실상 자살로 결론을 내린 가운데 유족들은 직장내 따돌림이 자살 원인이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서 A(29·여)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함께 살던 남동생이 A씨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외부 침입 흔적이나 타살 흔적이 없어 경찰은 A씨가 자살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녀의 자살 원인은 직장 내 왕따가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찰은 모 대기업 인턴 디자이너로 일하던 A씨가 지난 25일 지인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 ‘죽으라는 소린가 보다’, ‘내가 없어지면 그만이다’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을 확인했다.

최근에는 직장 내 왕따도 혐의가 입증되면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2014년 판례를 살펴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1부는 직장 내 왕따로 자살을 기도하고 우울증 판정을 받은 공무원 A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공무상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동사무소 직원인 A씨는 일처리 과정서 동료 직원들과 갈등을 빚어오다 동료 직원이 민원인들 앞에서 자신을 모욕하자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이후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동료 여직원과 폭행 시비가 붙기도 한 A씨는 우울증이 심해지자 자살기도를 한 뒤 2008년 주요우울장애 판정을 받고 공무원연금공단에 산재 신청을 냈다.

사측의 압박
못이겨 그만…

그러나 공단 측은 A씨의 우울증 등이 업무에 의한 것이 아니라며 이를 거절했고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공단 측 주장을 받아들였으나 2심 재판부는 달랐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했지만 근무지에서 상급자나 주변 동료들로부터 적절한 배려를 받지 못했다”며 “이 과정서 과도한 업무량이 부여돼 증상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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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