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 1팀] 박호민 기자 = 현대인에게 직장은 일터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직장은 삶 자체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런 일터에서 목숨을 내던진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무엇이 그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을까.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지난달 21일 오후 4시경, 국내 모바일 게임업계 순위 1위 넷마블게임즈 구로동 사옥 20층서 퇴사 직원 박모씨가 몸을 던져 자살했다. 넷마블 관계자는 “고인의 사망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사망한 직원은 회사 내부서 회사 재화를 무단으로 취득해 사적으로 이득을 취한 비위로 인해 징계를 받았고 극한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절실한 목소리
마지막 몸부림
넷마블 관계자가 밝힌 것처럼 박씨는 현금 기준 억대 수준의 게임머니를 불법유통시킨 혐의가 드러나 사내 조사를 받았다. 관련 혐의는 박씨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박씨는 징계 조사 과정서 부당한 압박을 받았다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씨는 자살 전 메신저를 통해 “윤리경영팀장의 고압적이고 인신 모독적 발언과 비아냥까지 감수하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며 “유서는 이미 지난 주에 인사에 보냈으니 가족에게 전달 부탁드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넷마블서 다들 건승하길”이라며 회사측에 불만을 표출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비위사실에 대한 정상적인 조사절차를 진행했고 고압적인 자세 등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한쪽에선 죄가 있더라도 조사 과정서 인격 및 인권이 침해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넷마블이 숨진 직원에 대해 고압적인 분위기 등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반면 개인 비위 규모가 큰데 조사 과정이 거칠다고 회사 탓을 하며 목숨을 끊는 것은 상식적이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회사가 지난해 말 박씨의 비위를 한 차례 눈감아 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같은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였다.
직장서 근무하다 스스로 목숨 끊어
왕따에 내부고발 사연도 가지가지
하지만 회사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특히 지난 7월 넷마블서 직원이 돌연사 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됐다. 당시 넷마블 소속의 30대 사원이 사우나서 사망했다. 넷마블 모바일 RPG ‘길드 오브 아너’ 배경 원화를 담당한 30대 남성 직원이 휴가 중 사우나서 쓰러진 채 발견돼 숨졌다.
당시 이 소식이 전해지자 넷마블의 높은 근무강도가 사망의 원인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넷마블이 업계에서 업무강도가 높은 회사로 꼽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씨의 죽음이 넷마블의 높은 근무강도가 원인이 됐는지는 그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유족 측도 사망의 원인이 과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선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넷마블은 ‘구로역의 등불’이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야근이 많은 것으로 전해져 실체 없는 의혹이 떠돌고 있다.
한 게임업계의 관계자는 “넷마블 직원들이 구로역의 등불이라는 별명을 의식해서인지 블라인드를 치고 일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넷마블은 올해 두 차례나 사망사건이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이에 따라 회사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탄압에 의해 근로자가 희생되는 경우도 있다. 유성기업의 근로자였던 한광호씨는 지난 3월 충북 영동군의 한 공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유성기업 노조원인 한 씨는 2011년 회사와 노조가 대립각을 세우던 때 불법파업을 이유로 견책을 받았고, 2013년 노조활동에 대한 회사 관리자들과의 대치과정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출근정지 2개월 징계를 받았다.
지난 3월 10일엔 회사로부터 징계를 위한 ‘사실조사 출석요구서’를 받은 뒤 동료들에게 우울감을 호소했다. 7일 뒤 그는 세상을 등졌다. 그의 자택에는 뜯지도 않은 경찰 출석요구서가 발견됐다.
억울한 사람들
사연은 제각각
유성기업은 한씨가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간부로 활동했던 2012년 10월부터 2014년 9월까지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11차례 고소했다. 이 가운데 2건만 기소되고 나머지 9건은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노조 측은 “한씨가 사실조사 출석요구를 해고 수순으로 받아들였으며, 평소에도 치료는 받지 못했지만 회사의 임금 삭감·고소고발·징계 등 때문에 우울증을 호소해왔다”며 “한씨의 죽음에 유성기업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사측은 한씨가 숨지기 전에 유서 등을 남기지 않았고, 우울증 진단경력이 없었던 점을 들어 “자살이 유성기업의 노무지휘권을 사실상 박탈당한 상태서 불법적인 노조 활동을 함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사업주인 유성기업의 지배 관리하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서 이를 원인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지난 달 18일, 근로복지공단은 한씨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라는 판정을 내렸다.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는 한씨의 유족이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청구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질병판정위원회는 “한씨가 수년간 노조활동과 관련한 갈등으로 인해 우울증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사건 발생 1주일 전 (회사로부터 받은 무단결근) 사실조사 출석요구서가 정신적 압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업무와 사망 간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회사의 경영진으로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도 있다. 롯데의 2인자로 평가받는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인 이인원 부회장의 죽음이 이 같은 경우다. 지난 8월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자살을 선택한 이인원 부회장의 죽음에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현재 롯데그룹을 이끌고 있는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그는 사망하기 전까지 총수 일가의 경영활동을 보좌하고 90여개 그룹 계열사를 총괄 관리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두 가지 분석이 나왔다.
하나는 단순히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에 압박감을 느껴 개인적인 압박감에 자살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에 자살하는 경우에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검찰 수사 가운데 자살한 사람은 100명이 넘는다. 지난해에만 17명의 피의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검찰 수사에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롯데그룹의 핵심 인물인 이 부회장이 검찰 수사가 그룹사 전체에 강도 높게 진행되자 경영진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인격모독 참을만
폭력에 노예생활
실제 이 부회장이 자살하자 검찰의 수사는 흐지부지 되는 모습이었다. 검찰은 롯데 계열사 17곳, 관계자 500여명을 조사했지만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롯데그룹 3부자의 구속영장은 줄줄이 기각됐다.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의 롯데수사가 ‘용두사미’ 수사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경영진으로서 책임감을 느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평사원부터 시작한 이 부회장이 회사에 갖는 애사심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회사의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경우도 있다. 대구지방경찰청은 지난 15일, 경북 포항서 A건설사 간부 2명이 함께 목을 매 숨진 사건과 관련해 이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에서 회사비리에 대한 의혹이 제기돼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대구 A건설사의 중견 간부로 지난달 13일 오전 8시께 포항시 북구의 한 야산서 같은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이 숨진 현장서 유서가 발견됐다. 분량은 A4용지 4장. 유서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담은 내용과 함께 회사 내의 비리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에는 회사 대표가 법인 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대구 모 사립학교 건설 공사 수의계약 수주 과정서의 비리의혹과 함께 공무원 등에 뇌물성 편의를 제공한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 내용을 바탕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라며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하다 갑자기 왜?
잇달아 터지는 비보
사내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기도하는 사례도 있다. 충남 아산경찰서는 지난달 20일, 2년 간 직장 후배로부터 월급 등 3900만원 상당을 금품을 빼앗은 강모(22)씨를 상습공갈 등의 혐의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직장 후배를 상대로 ‘조폭생활을 했다’며 문신을 보여주며 위력을 과시하는 등 지난 2014년 3월부터 최근까지 42회에 걸쳐 폭행과 강요 등으로 3900만원 상당의 금품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강씨가 직장 후배에게 사소한 이유로 폭행을 일삼으며,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군입대 강제 연기에 이어 실행되지 않았지만 보험사기 제의와 허위 신고 등도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인 직장 후배는 더 이상 노예로 살수 없다며 최근 3차례나 자살을 시도한 상태”라며 “강씨를 구속해 여죄를 수사 중이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를 위해 지역 내 고질적인 갑질 횡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내 왕따(따돌림)가 자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올초에는 직장서 왕따를 당하던 여직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서 2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사실상 자살로 결론을 내린 가운데 유족들은 직장내 따돌림이 자살 원인이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서 A(29·여)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함께 살던 남동생이 A씨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외부 침입 흔적이나 타살 흔적이 없어 경찰은 A씨가 자살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녀의 자살 원인은 직장 내 왕따가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찰은 모 대기업 인턴 디자이너로 일하던 A씨가 지난 25일 지인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 ‘죽으라는 소린가 보다’, ‘내가 없어지면 그만이다’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을 확인했다.
최근에는 직장 내 왕따도 혐의가 입증되면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2014년 판례를 살펴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1부는 직장 내 왕따로 자살을 기도하고 우울증 판정을 받은 공무원 A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공무상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동사무소 직원인 A씨는 일처리 과정서 동료 직원들과 갈등을 빚어오다 동료 직원이 민원인들 앞에서 자신을 모욕하자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이후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동료 여직원과 폭행 시비가 붙기도 한 A씨는 우울증이 심해지자 자살기도를 한 뒤 2008년 주요우울장애 판정을 받고 공무원연금공단에 산재 신청을 냈다.
사측의 압박
못이겨 그만…
그러나 공단 측은 A씨의 우울증 등이 업무에 의한 것이 아니라며 이를 거절했고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공단 측 주장을 받아들였으나 2심 재판부는 달랐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했지만 근무지에서 상급자나 주변 동료들로부터 적절한 배려를 받지 못했다”며 “이 과정서 과도한 업무량이 부여돼 증상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