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손학규

‘이랬다 저랬다’ 몸값만 떨어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손사래치던’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이 드디어 돌아왔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으로 내려간 지 꼬박 2년 만이다.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 선언에 대선판이 어떤 방향으로 요동 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 전 고문의 그간 행보와 정계 은퇴 번복 과정, 향후 반향에 대해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이제 7공화국을 열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모든 것을 내려놓아 텅 빈 제 등에 짐을 얹어주십시오.”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이하 손 전 고문)이 지난 20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서 정계 복귀를 공식선언하고 다시 정치권으로 뛰어들었다.

손 전 고문의 복귀 선언에 14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 구도에 또 하나의 변수가 더해졌다. 그는 “정치와 경제의 새판짜기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 국회의원·장관·도지사·당 대표를 하면서 얻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겠다. 당적도 버리겠다”며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탈당도 선언했다. 그의 더민주 탈당으로 제3지대 정계개편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새판짜기
안철수와 연대

손 전 고문은 지난 2014년 7·30 재보궐선거서 경기 수원병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에게 패했다. 그는 다음날인 7월31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으로 내려가 칩거에 들어갔다.

당시 손 전 고문은 은퇴 기자회견서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이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저의 생활 철학”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치인은 선거로 말해야 하는데 재보선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도 했다.


당시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선 그의 정계 은퇴 선언이 영구적이진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허다했다. 실제 손 전 고문은 야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강진 칩거 2년2개월 동안 정치권 인사들과 언론은 그의 행보에 수많은 억측을 내놨다. 그 사이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론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흘러 나왔다.

손 전 고문이 칩거생활에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이 제기됐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와 맞물려 당대표 후보군들이 손 전 고문을 연일 찾아간 것이다. 당시 새정치연합은 내부 계파끼리의 경쟁이 첨예한 상황이었다.

그 과정서 친노 진영과 대척점에 있던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 박지원 원내대표, 더민주 박영선 의원 등은 손 전 고문을 찾아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손 전 고문 측은 정계 복귀 가능성에 대해 일축했다.

지난해 5월에는 손 전 고문이 서울 구기동으로 거처를 옮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정계 복귀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는 경조사 참석 차 두 차례 상경하는 등 취재진 앞에 몇 번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평창·구기동 일대는 정치계 인사들이 많이 살고 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구기동은 당시 문재인 전 대표가 이사해 살고 있는 곳인 만큼 그의 거처 이전은 묘한 해석을 낳았다.

위치뿐만 아니라 시기도 미묘했다. 손 전 고문이 이사한 시기는 새정치연합이 4·29재보궐선거서 새누리당에 참패한 직후였다. 새정치연합은 야당의 텃밭이나 다름없던 서울 관악을 의석을 빼앗긴 것은 물론 광주 서구을에서 천정배 당시 무소속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지는 등 완패했다.
 

새정치연합의 재보궐선거 패배는 당대표였던 문 전 대표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남겼다. 선거 패배로 문 전 대표에 대한 실망감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손학규 대안론’이 급부상한 시기이기도 했다.


2년 만에 정계 복귀…은퇴 또 번복
더민주 탈당 선언 당적도 오락가락

또한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호남발 신당 바람도 불고 있던 때였다. 손 전 고문의 측근은 “분당 아파트 전세를 더 이어갈 이유도 없고, 마침 손 전 고문의 딸이 구기동 인근에 거주해 딸 가족과의 접근성을 고려해 이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 측은 복귀 가능성에 대해 부인했지만 일각에선 정계 복귀를 위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는 여기저기서 울리는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초심 그대로, 조용히 있겠다”며 복귀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지난해 8월에는 박영선 의원이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서 정계 복귀를 촉구한 적도 있다. 박 의원은 “그 분(손 전 고문)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 등을 봤을 때 커다란 역할이 부여돼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손학규 역할론을 내세웠다.

손 전 고문이 한나라당을 탈당할 당시 내세웠던 메시지를 언급하며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는 국민들이 바라는 무언가, 그 무언가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야당 지도자를 찾고 있는데, 손 전 고문도 분명히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당 창당설로 세간에 오르내리던 천정배 의원 역시 “한국 정치 상황이 워낙 어렵고 특히 야권이 지리멸렬해 있기 때문에 (손 전 고문이) 큰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게 제 솔직한 바람”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행보…
찻잔 속 태풍?

그 와중에 손 전 고문이 음악회 참석으로 공개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손 전 고문의 등장에 야권은 들썩이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당시 그의 주가는 천정부지에 달해 있었다.

야권 재편 논의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손 전 고문을 구심점으로 판을 바꿔보려는 인사들이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4월 총선서 ‘새정치연합 80석 예상’ 등 참패론이 나오고 있던 시기라 손 전 고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는 정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본격적으로 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11월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계 은퇴 선언 후 카자흐스탄서 첫 해외강연 후 뒤 귀국 현장에서 그는 취재진과 만나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키거나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국민을 통합하는 일을 해야 한다”며 묘한 뉘앙스로 발언했다.

박근혜정부의 현안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르게 신랄하게 비판했다. 국정교과서 논란에 대해 “우리 학생들은 편향되지 않은 역사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기성세대는 학생들에게 편향되지 않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담보해줘야 한다”면서 “역사 교과서는 학계 최고 권위자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집필할 수 있도록 맡겨줘야 하고, 국가는 그런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2년 넘는 칩거기간 동안 정치권과는 거리를 둔 손 전 고문은 이후 11월22일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때 모습을 보였다. 그는 매일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지켰고, 정치권에선 이를 계기로 그가 정계 복귀에 시동을 걸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조문 정치, 빈소 정치로 불린 손 전 고문의 행보는 그가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 후 강진 토굴로 되돌아가면서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의 이름은 야권 분열, 신당 창당, 제3지대론 등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거론됐다. 지난해 12월, 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도 손 전 고문은 ‘대안, 역할, 구심점’ 등 정치권 지각변동의 변수로 언급됐다.

그쯤에는 손 전 고문도 칩거 초반보다 훨씬 더 열린 태도로 정계 복귀에 대해 논했다. 손 전 고문은 “강진의 산이 나보고 ‘아우 더 이상 너는 이제 아주 지겨워서 못 있겠다, 나가 버려라’ 그러면 뭐 그때는…”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부 기자는 만나지 않겠다’ ‘돌아갈 가능성 없다’ 등 단호하게 복귀를 부인했던 때와는 달라진 분위기였다.

야권 유세 거절
복귀 시점 놓쳐

안 전 대표가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새로운 세력을 규합하고 있을 무렵 손 전 고문에 대한 러브콜이 사방팔방에서 이어졌다. 하지만 총선 시기와 맞물려 정동영 의원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던 것과는 달리 손 전 고문은 상황을 관망하는 쪽에 가까웠다.

특히 더민주 내 손학규계로 분류됐던 의원들이 야권 재편에 따라 탈당과 잔류 등으로 엇갈린 행보를 보이면서 손 전 고문의 향방을 예측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정치권의 러브콜에도 묵묵부답을 유지하던 손 전 고문은 올해 1월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 초청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뒤 귀국한 자리에서 “새판을 짜서 새로운 희망을 주고 우물에 빠진 정치에서 헤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새판짜기’는 손 전 고문이 정계복귀를 전격 선언한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된 단어다.


‘정치권 복귀 의사는 없다’면서도 정중동의 움직임을 보이던 손 전 고문은 총선이 다가오자 자신의 측근들을 측면 지원하기 시작했다. 손 전 고문은 더민주 이찬열, 우원식, 이언주 의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격려 메시지를 보냈고, 국민의당 최원식·김성식 의원의 개소식 때도 격려사를 전했다.

손 전 고문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찬열 의원은 그가 정계 복귀를 선언한 후 탈당을 발표할 정도로 사이가 가깝다.
 

4월이 되면서 손 전 고문에 대한 SOS는 간절한 수준으로 변했다.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는 총선을 일주일가량 남긴 시점에서 “손 전 고문께 남은 선거기간 동안 유세를 간곡히 요청할 예정”이며 “공식적으로 더민주를 도와달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민주 당적을 유지하고 있던 손 전 고문은 소속 정당 대표의 공식 요청에도 유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정계 은퇴 약속과 원칙을 지킬 것”이라며 결국 다시 토굴로 돌아갔다.

일각에선 손 전 고문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자연스럽게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후 야권이 총선에서 뜻밖의 승리를 거두면서 이 분석은 힘을 얻었다.

슬슬 간보다 이미지만 나빠졌다
기회 많았지만 결국 최악 타이밍

총선 이후 손 전 고문은 4·19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는 등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빈도수를 높였다. 또한 총선 당선자들과의 오찬 자리서 “20대 국회에서 근본적인 제도 개선과 제도 혁명을 위한 새판짜기에 나설 수 있도록 모두 마음을 단단히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새판짜기로 대변되는 손 전 고문의 정치적 발언은 무수한 해석을 낳았지만 그는 “(4·19 묘지 참배가) 정치적 의미를 둘 만한 일은 아니다”라며 또 한 번 복귀설에 대해 일축했다.

지난해 11월이 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을 가시화한 시점이라면 올해 5월은 구체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7월 복귀설, 8월 복귀설, 9월 복귀설 등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 시점이 구체적으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총선 때 국민의당의 약진으로 야권 개편이 이뤄진 상황에서 더민주 김 전 대표가 당내 유력 대선주자인 문 전 대표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손 전 고문은 그 대항마로 정계 인사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 사이 손 전 고문은 5·18 시기에 야권의 심장으로 불리는 광주에 방문했다. 당시 손 전 고문은 “국민이 새 판을 시작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광주의 5월은 그 시작”이라며 또 다시 새판에 대해 언급했다.

일본 게이오대학 강연에선 “대선주자들이 개헌에 대한 각자의 안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다음 대통령이 취임해 개헌을 추진하는 게 효과적 방법”이라며 개헌론을 제기했다. 부쩍 잦아진 손 전 고문의 공개 행보와 발언에 그의 정계 복귀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기가 문제였을 뿐이다.

해외에 나갔다가 귀국할 때마다 정치적 발언으로 주목받았던 손 전 고문은 일본 방문 뒤에도 “국민적 요구를 담아낼 그릇인 정치에 금이 갔기 때문에 새 그릇이 필요하다”며 새판에 이어 새그릇론을 내놨다. 새판, 새그릇 등은 손 전 고문이 정계 복귀를 위해 쌓는 명분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사실 그의 정계 은퇴 번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손 전 고문은 2008년 통합민주당 대표로 있을 무렵 18대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2년여간 강원도 춘천에 칩거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도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손 전 고문에 대한 러브콜이 이어졌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은 “반성이 끝나지 않았다” “필요할 때 역할을 할 것” 등의 말로 복귀설을 부인했다. 이에 손 전 고문이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은 2010 6·2 지방선거서 야권연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그때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출마 희망자들의 지원 요청이 쇄도했고, 결국 수원 선대위원장을 맡아 이찬열 의원의 당선을 견인하는 등 손 전 고문의 영향력이 확인됐기 때문에 ‘부드럽게’ 정치 복귀가 가능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현재는 그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4월 총선 당시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러브콜을 모두 거절했기 때문이다.

국민 무관심
지지율 3%

게다가 총선이 야권의 승리로 마무리 되면서 손 전 고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새누리당은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며 “큰 폭발력은 없을 것”이라는 구두 논평을 내놨다. 더민주서도 이찬열 의원 외에 추가 탈당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제3의 길은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 등 대형 이슈가 언론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서 복귀 선언이라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한편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9월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손 전 고문의 지지율은 3%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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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