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회고록 사태> 박근혜-김정일 4시간 독대 미스터리

3박4일서 지워진 의문의 4시간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송민순 회고록’이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특히 여권은 ‘국기문란’ ‘내통’ 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야권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야권 내부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방북 당시 활동을 공개하라고 대응하면서 맞불을 놓고 있다. <일요시사>는 시계추를 2002년으로 되돌려 당시 박 대통령과 김 전 위원장의 4시간 ‘밀담’ 미스터리를 되짚어봤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회고록서 2007년 당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투표에 앞서 북한에 의견을 물어봤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송 전 장관이 유엔 채널을 통해 북한 측에 “‘찬성’이 현실적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설득하고 있다고 주장하자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고, 당시 비서실장이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남북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매 맞는 야권
대반격 카드

당시 회의록을 바탕으로 새누리당은 야권에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문 전 대표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사실상 북한의 인권 탄압에 동조하며 북한과 내통한 것”이라며 이적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야권은 새누리당의 정치공세를 ‘색깔론’으로 규정하고 강력 비판했다. 지난 18일,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새누리당이 말하는 ‘(남북외교관계)일관성’이라는 게 외교적 시각에서 보면 무지하기 짝이 없다”며 “일관성이라는 것은 통일외교와 국익 차원의 관점에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국감 파행과 불참으로 시작한 새누리당이 결국 마지막 색깔론으로 끝내고 있다”며 “이번 색깔론 공세는 결코 국민에게 지지받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고 말했다.


최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이어 미르·K스포츠재단 등 정부와 관련된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국면전환용’으로 색깔론을 악용한다는 게 더민주의 입장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새누리당의 공세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8일 “저는 ‘국민의 정부’에서 (2002년) 당시 박근혜 야당 대표가 평양에 가서 김정일과 4시간 동안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잘 알고 있다”며 “새누리당이 이런 식으로 계속 색깔론을 제기한다고 하면 저도 다 이야기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는 새누리당-더민주 간 ‘송민순 회고록’ 공방이 계속된 와중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김대중정부 시절 대북송금 문제까지 거론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여권과 야권의 날선 ‘색깔론’ 공방이 오고 가는 가운데, 2002년 박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의원, 부총재) 방북 때 숨겨진 4시간의 진실에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누리당이 2007년 사건을 놓고 문 전 대표에 ‘국기 문란’ ‘반역’이라는 거친 단어를 사용했지만 만약 2002년 박 대통령이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을 만나 나눈 이야기 중 국익에 배치되는 예민한 사안이 드러날 경우 여권은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밀담 내용은?
뭔가 있었나

박 대통령과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의 만남은 2002년 5월11일 전격 성사됐다. 방북에 앞서 2000년 당시 북한은 노동당 창건 행사를 앞두고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비롯, 민주노동당 등 30곳 등 35명 인사들에 초청장을 보냈다.

북한의 바램과 달리 당시 2000년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에는 사회·종교단체 회원 30명만 방북했을 뿐 박 대통령은 방북하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 관계자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주변의 반대가 있어 방북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2년 뒤인 2002년 5월11일엔 방북길에 오른다.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가 남북협력사업을 펼쳐온 ‘유럽-한국재단’ 이사진을 초청함에 따라 재단 이사 자격으로 방북하게 된 것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방북을 앞두고 “북한이 국제사회 일원이 돼 남북 간에 평화 증진을 위해 협력하고 우방과도 힘을 합치기를 바란다”고 했다.

특히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가 북측 공작원으로 알려졌던 문세광에 의해 살해됐던 것과 관련해서도 “개인적으로 불행을 겪은 사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남북 간의 평화 공존과 정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당시 박 대통령의 대북관에 변화가 온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1960∼1970년대 치열한 체제 경쟁상대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전 주석의 2세 간 만남이라는 점에서 당시 정가의 이목이 집중됐다.

당초 박 대통령은 고려항공을 이용해 북한에 입국할 예정이었지만, 김 전 국방위원장이 전용기를 제공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묵었던 백화원초대소의 같은 방을 숙소로 제공했다. 또한 박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한 2002년 5월11일 저녁 북측이 만수대 예술극장서 환영 만찬을 열어주는 등 융숭한 대접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만찬장에는 김용순 비서와 김영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회장 등 북측 유력 인사들이 참석했다. 당시 북측 방송은 김영대 회장이 “누구든 민족을 위하고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정견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마음을 합쳐 나갈 수 있다”고 환영 인사를 건네자 박 대통령은 “남북이 힘을 합쳐 7·4남북공동성명과 6·15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해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공동발전을 이룩하자”고 화답했다며 당시 만찬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했다.

‘문 타깃’ 노무현정권 북과 내통 이슈몰이
야, 2002년 회담 반격 “박 방북부터 털자”

하지만 김 전 위원장과 박 대통령이 4시간 가량 밀담을 나눈 것으로 알려진 5월13일 상황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공개된 사실이 없어 정가엔 무성한 추측만 떠돌았다. 다만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 2007년 7월 펴낸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라는 자서전에는 비밀회담에 대한 대략적인 상황이 묘사돼 있다.

자서전에서 박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에 대해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었다”며 일명 ‘김신조 사건’이라 불리는 1968년 북한의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태에 대해 김 전 위원장의 언급을 설명했다.
 

김 전 위원장은 ‘당시 극단주의자들이 일을 잘못 저질렀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다 응분의 벌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박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의 언행을 두고 “김정일 위원장의 화법과 태도는 인상적이었다”고 말해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당시 밀담 과정서 박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에게 ▲이산가족 문제 ▲6·25전쟁 때 행방불명된 국군과 민간인 생사확인 문제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등을 제안했다. 이에 김 전 위원장은 흔쾌히 동의했고, 금강산댐 공동조사 및 남북한 철도연결에 대해서도 긍정적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밀담을 두고 박 대통령은 “한 시간가량의 대화를 통해 김정일 위원장과 많은 약속을 했다”며 “그동안 중단됐던 남북 축구대회 등 스포츠교류를 통해 서로 화합의 장을 열자는 약속도 얻어냈다”고 말했다.


이어 “답방 요구에 김 위원장은 적당한 기회에 가겠다고 말하면서 방문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에도 참배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과의 모든 대화 내용을 언론에 투명하게 밝히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알아서 하세요’라며 신뢰감을 나타냈다”고도 평했다.

박 대통령은 방북 일정을 마치고 판문점을 통해 귀국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김 전 위원장의 제안으로 박 대통령은 “생각지도 못한 제의였다. ‘남과 북이 이렇게 가까운데 먼 길을 에둘러서 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더욱 간절해졌다”고도 회고했다.

북한 왜 갔나
이용당했다?

박 대통령의 방북활동 내용이 담긴 공식적인 문서는 2002년 5월21일 정부에 제출됐다. 당시 동행했던 지동훈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장이 ‘방북결과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정부 당국자는 “지 이사장이 제출한 방북결과 보고서는 A4 용지 3쪽 분량으로 3박4일간 일정이 시간대별로 정리돼 있다”며 “박 의원이 지난 14일 귀환 직후 밝혔던 것 외에 특별히 다른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귀환 직후 10일 이내에 통일부장관에게 제출토록 규정돼 있는 박 의원의 방북결과는 이 보고서로 갈음한다”며 “박 의원의 경우 방북에 따른 행정 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절차를 통해 박 대통령의 방북은 마무리됐고, 당시 김 전 위원장과의 구체적인 면담내용은 현재까지 비밀로 부쳐진 상태다.
 


당시 박 대통령의 방북 성사를 두고 정가에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다. 우선 김 전 위원장이 각종 남북현안들에 대한 북측의 메시지를 남측에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박 대통령과 만났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박 대통령이 제안한 내용은 자서전을 통해 일정부분 드러났지만 김 전 위원장이 박 대통령에 의사를 표명한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의구심은 증폭됐다.

방북 당시 융숭한 대접
만찬·밀담 뒷얘기 무성

또한 남북경협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란 추측도 나왔다. 두 인사의 면담과 만찬 행사에 참여한 당시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 고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 임동욱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등이 대남사업의 실세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선 김 위원장이 남측의 보수세력을 향해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 보수 정치인인 박 대통령을 만남으로써 보수층이라도 남북협력 문제에 있어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 내부에서 김 전 위원장을 상징하는 북한 정치 용어인 광폭정치(대담하고 통이 큰 정치)의 선전용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 대통령을 북한으로 불러들임으로써 북측 주민들에게 광폭정치의 결실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정치권의 평가도 판이하게 엇갈렸다. 2002년 5월15일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박 대통령 방북에 대해 “우리와의 서면 약속도 지키지 않는 김정일 위원장의 말뿐인 공약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해 평가절하했다.

반면 더민주의 전신인 민주당은 대변인을 통해 “김 위원장이 박 위원장과 만나 금강산댐 남북공동조사단 구성,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동해안 철도 연결 등 남북 관계 진전에 매우 의미 있는 약속을 했다”며 “남북관계 진전에 매우 의미 있는 성공적 방북”이라고 평가했다.

“방북 수수께끼
다 털고 가자”

국정원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지난 19일 정보위 국감에서 “역대 정권에서 벌어진 용공·종북 의혹을 다 털고 가자”면서 “2002년 박 대통령의 방북 미스터리가 그 첫째”라고 말해 박 대통령의 과거 방북 문제를 거론했다.

이어 박 대통령 귀환 당시 북한이 보낸 통지문 및 관련 기록 및 협의내용 일체 등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는 “국정원서 근무하며 새누리당 (집권 후) 정부의 이적 행태도 생생하게 목격했다”며 “박 대통령 방북 당시에도 김 전 위원장과의 독대, 만찬 과정에 미스터리가 상당히 많다”고 말해 의구심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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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