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벼랑 끝 전술 막전막후

앞면엔 ‘통 큰 정치’ 뒷면엔 ‘배수의 진’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통 큰 정치’를 꺼내 들었다. 4·27 재보선과 관련, 야권 단일화를 위해 ‘통 큰 양보’를 하겠다고 나선 것. 심지어 순천 재보선에서는 무공천 의사를 밝혀 정가 안팎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야권 연대와 희망대장정으로 민심을 향한 잰걸음을 하고 있는 손 대표. 그러나 정가 일각에서는 그의 결단이 ‘양날의 칼’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재보선이 가지는 의미와 지난 지방 선거,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총선, 대선까지 큰 그림을 보면 ‘필연적 선택’인 동시에, 그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벼랑 끝 전술’이라는 주장이다. 

4·27 재보선 앞두고 야권 단일화 위해 ‘통 큰 양보’
당내 반발에도 흉흉한 재보선 전망 속 ‘순천 무공천’

4·27 재보선이 성큼 다가오면서 여야가 선거 전략을 가다듬는 데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선거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는 반면 당초 계획했던 ‘필승 전략’은 하나 둘 흔들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승부수 띄운 손학규
통 크게 정치판 흔든다

김해을 재보선에서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 카드를 잃은 손 대표의 선택은 야권 단일화였다. 야권 연대를 위해 민주당이 양보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 그러나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통 큰 선택이었다.

손 대표는 지난달 20일 저녁 비공개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민주당이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고 통 큰 양보를 하겠다. 순천은 당연히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이러한 발언은 그의 최측근인 차영 대변인을 통해 전해졌다.

민주당 대변인실은 그러나 이날 밤 출입기자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통 큰 양보’ 발언은 특정 지역과 관련이 없다”고 못 박았다.
손 대표는 그러나 다음 날인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시 한 번 순천 무공천 방침을 확인시켰다. 그는 “(재보선) 결과만큼 중요한 것은 민주당의 자세와 후보 단일화”라며 “민주당은 오늘의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고 내일의 희망을 보고 큰 걸음으로 나갈 것이다. 더 큰 민주당, 더 큰 진보의 길로 나갈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정도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그동안 야권 단일화를 위해 민주당이 외쳤던 ‘기득권 포기’와는 강도가 달랐다. 재보선, 지방 선거 등에서 민주당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연대’로 야권 정당들이 ‘야권 연대는 허울 좋은 것일 뿐 민주당의 들러리를 선 것’이라고 불만의 목소리를 낸 데 대해 야권 연대의 칼자루를 건네는 것으로 답한 것이었다.
순천은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였던 데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층이 두터운 호남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민주당이 ‘무공천’을 하겠다는 것은 야권 단일화를 했을 때 야당들에게 ‘잘 차려진 밥상’을 건네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야권 단일화를 위해 ‘기득권 포기’를 외쳤던 민주당이지만 목소리의 크기만큼 결과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상쇄시킬 패를 꺼내든 것이다.
정가 한 인사는 “현 정권 출범 후 각종 선거에서 ‘야권 단일화’가 승리의 열쇠가 돼 왔다. 민주당은 야권 정당들과 시민사회 진영을 야권 연대의 협상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기득권 포기를 외쳤지만 정말 기득권을 포기했냐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은 야당이 연대를 하면서 파이가 커졌고 소수 정당들도 그들이 가지지 못할 지역과 표를 얻게 됐다고 하지만 압도적인 정당의 크기 차 등으로 야권연대의 중심축이 민주당을 향해 돌았던 게 사실”이라며 “‘이길 수 있는 후보’를 강조하면서 후보 단일화의 무게 중심도 민주당으로 기울었다”고 했다.

이번 재보선은 야권 연대의 역량을 확인해 보는 자리인 동시에 야권 연대를 대하는 민주당의 모습을 야권에 확인시키는 기회이기도 하다. 즉, 야권 연대와 관련한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이 되는 셈이다. 

지방 선거 뒷마무리
총선 위한 ‘기회비용’


정치전문가들은 “이번 재보선은 야권에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야권 연대의 중요성이 높다”면서 “그러나 총선을 향한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소수 정당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손 대표도 이 점을 깊게 인식하고 있다. 그는 순천 무공천 의사를 밝히며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을 통해 총선 승리, 정권 교체의 의지를 보일 것”이라며 “재보선의 결과만큼 중요한 것은 재보선을 치르는 민주당의 자세와 후보 단일화의 과정일 것”이라고 야권 후보 단일화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인영 최고위원도 “어떤 지역을 어느 당에 양보할지 특별히 정해진 바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필요하다면 기득권을 내려놓을 것이고 주도적이고 책임있게 나서서 4·27 재보선에 연대 연합이 반드시 성사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손 대표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나 손 대표의 ‘통 큰 정치’가 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호남권 의원들과 순천 출마를 준비해 온 이들의 반발이 만만찮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주선 최고위원이 “적어도 민주당이 야권의 승리를 내년 대선까지 이어가기 위해 통 크고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양보도 원칙과 기준에 입각한 양보를 해야지 떼쓴다고 달래기 위해서 양보하고, 여론이 큰 정당이기 때문에 떼어 주라고 해서 떼어 준다면 그것이 국민의 뜻에 맞고 유권자의 권리에 충실한 야권 연대의 방식인지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순천 출마를 준비해 온 이들도 “공천 양보는 순천 지역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것은 물론이고 야권 전체의 시너지효과를 내자는 연대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는 논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호남권 의원 들썩
역풍으로 불어올까

이들 중 일부는 무소속 출마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게 지역 정가의 전언이다.
박준영 전남지사도 지난달 22일 전남도청 기자실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민주당이 4·27 순천 재보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이른바 ‘순천 무공천’ 방침을 밝힌 데 대해 반대한다”고 밝히며 손 대표에게 반기를 들었다.

박 지사는 “정당의 존립 근거는 당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고, 선거는 이를 추구하는 중요한 방법”이라며 “정당 정치를 위해서는 정당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경쟁하다 필요하면 (야권 연대나 DJP처럼) 연합할 수도 있지만, 대선에서의 연합과 이번 사안은 다르다. 지역민, 지역 국회의원, 도의원 대부분이 반대하는 일을 굳이 할 필요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6월 지방 선거 설거지냐 vs 총선·대선 노림수냐
손학규 대권 전략 중대 고비 넘길 벼랑 끝 전술?

그는 “당 지도부에 대한 반박은 아니”라며 결정에 따르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지역민과 정치권의 뜻에 어긋난 무공천은 자칫 반발성 탈당과 항명에 따른 징계 등을 불러올 수 있어 결국 당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러한 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손 대표가 결단을 내리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한 정치 전문가는 “이번 4·27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전망은 매우 어둡다. 3곳의 국회의원 선거와 강원도지사 선거 1곳 중 3곳이 민주당의 자리였던 만큼 ‘잘해 봐야 본전’이다. 강원도는 이광재 전 지사의 당선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의 세가 강한 곳으로 평가받아 왔고 경기 분당을 또한 한나라당의 세가 강하다. 김해을은 한나라당의 텃밭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가까이에 있는 곳이고 순천은 민주당의 텃밭이다. 이 중 민주당이 승리를 자신하는 곳은 순천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보 단일화를 위해 야당에 양보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좋은 곳이 순천과 김해을”이라면서 “양보한다고 했을 때 한나라당의 세가 강한 곳을 양보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라’고 등을 떠미는 꼴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차피 1년여 후면 총선”이라며 “야권 정당들의 차기 총선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다만 “민주당은 김해을 재보선과 관련, 히든카드를 잃었다. 이 상황에서 국민참여당이 김해을 양보를 바란다면 승산이 있는 승부처 2곳을 내주는 것이 돼 출혈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순천 무공천’ 등 ‘통 큰 정치’가 손 대표의 차기 대권전략 중 한 부분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손 대표는 당권·대권 분리 원칙에 따라 4월 재보선 이후 연말이 되기 전에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 경우 양보와 희생을 통해 총선 승리를 위한 ‘판’을 짜 뒀다는, 야권 연대·야권 통합의 밀알이 됐다는 부분이 ‘잘해야 본전’인 4월 재보선의 결과보다 그의 ‘치적’에 어울린다는 것이다.

당장의 상황만을 본다면 4월 재보선에서의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졌다. 일부 지역을 야권에 넘기면서 힘든 싸움이 예상되지만 물러설 수 없는 곳에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 것. 

 그렇게 선택된 곳이 강원도지사 선거다. 손 대표는 지난 16일 강원도 평창을 찾아 최고위원회·평창동계올림픽 유치지원 특위 연석회의를 진행했다.

선택과 집중으로
대권 큰 그림 완성?

그는 이 자리에서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그간 많은 노력해 오고 구체적 노력을 실천하던 이광재 지사가 안타깝게 그 직을 내놓게 되어 동계 올림픽 유치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고 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 전 지사의 빈 자리가 너무 크지만 민주당이 뜻을 모아, 힘을 모아 그 자리를 채우고 반드시 동계 올림픽 유치의 꿈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그러나 손 대표의 승부수에 대해 “4·27 재보선의 향배와 그 후폭풍이 어디서 어떻게 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며 “손 대표가 쏜 화살이 다시 그에게 되돌아 올지도 모를 일”이라고 사태의 추이에 시선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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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