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국민의당이 주요 현안에 대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개원 이후 이슈마다 캐스팅보트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자평을 내놓고 있지만 ‘새누리·더민주 이중대’라는 조소 섞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일요시사>는 개원 이후 거대 여야 사이서 ‘정치적 줄타기’를 하는 국민의당의 행보를 되짚어봤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취임한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은 김 장관에 대해 해임건의안을 공동 제출키로 했다. 국무위원의 해임건의안은 재적(300명) 3분의 1 이상의 발의에 의해 재적 과반수(151명)이 찬성할 경우 가결된다. 야3당의 정당별 의원수는 더민주 121명, 국민의당 38명, 정의당이 6명으로 161명에 달해 순조롭게 해임건의안이 가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우왕좌왕 오락가락
당초 합의를 깨고 지난달 21일, 국민의당이 돌연 입장을 바꾸면서 해임건의안은 더민주, 정의당, 무소속 의원 등 모두 132명의 이름으로 제출됐다. 국민의당은 같은 날 오후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해임건의안에 대해 논의했지만 농해수위 소속 일부 의원들이 반대하면서 해임건의안 제출에 합류하지 못했다.
의총 이후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자율투표는 추이를 보고 결정하겠다. 아직 결정난 것은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에 더미주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는 “국민의당이 함께 하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 국민의당 의원들이 야3당 공조를 위해 현명한 판단을 하실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의 갑작스런 입장 변경에 새누리당 정진석 대표는 “성숙한 국정 책임의식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며 국민의당을 치켜세웠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까지 나서 “케네디 명저에 실릴 법한 일”이라고 말해 박지원 원내대표 등 국민의당 지도부를 호평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국민의당은 비록 당론을 뒤집긴 했지만 표결 사안에 대해 신중한 모습을 보여 거대 여야 사이서 중재자의 면모를 뽐냈다.
지난달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김대중·노무현정권의 햇볕정책과 대북송금이 원인이란 취지의 언급을 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국민의당은 다음 날인 지난달 23일 의총을 열고 해임건의안에 대해 당내 의견을 수렴했다.
의총 후 국민의당 이용호 원내대변인은 해임건의안에 대해 “당론으로 가결시켜야한다는 의원들이 다수였지만 헌법기관으로서 의원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자율투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찬성의견이 많지만 당 차원서 찬성 당론을 내세우지는 않겠다는 애매한 입장에 선 것이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민의당 지도부가 자극을 받아 급작스럽게 자율투표로 의견을 바꿨다는 평가가 나왔다. 해임건의안 이야기가 나온 지 불과 20일도 안된 상황에서 찬성과 반대로 당론을 수시로 바꾸면서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의당의 다수 의원이 찬성에 표를 던지면서 김 장관 해임건의안은 가결됐다.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지난달 25일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국민의당 사람들”이라며 “더민주의 이러한 대선전략, 한마디로 국민의당을 이중대로 이용해먹으려는 데 걸려들어서 국민의당이 이중대 노릇을 제대로 한 것”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해임안 찬성서 반대…돌연 자율투표로
거대 여야 속 줄타기 “존재감 떨어져”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도 국민의당은 갈지(之)자 행보를 보였다.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국민의당은 애초 가장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당초 사드 배치 반대 당론이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국민의당의 정체성과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서의 정부의 불통, 사드 배치가 득보다 실이 크다는 논리를 들어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한반도내 안보 불안감이 급증했고, 사드 반대 여론이 불리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국민의당의 사드 배치 당론 변화 기류와 관련해 지난달 19일 “존경스럽고 환영할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저는 사드배치 재검토 찬성으로 이해하고 싶다”며 “국민의당이 그런 입장을 정리해주고 공식적으로 발표한다면 그보다 더한 안보의 힘이 되는 무기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은 P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그 문제(사드 배치 결정)를 꺼내고 나서 불과 우리가 3~4일 만에 반대 당론을 정했기 때문에 놀랐다”며 “이렇게 우리가 정할 사항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사드 배치 반대 당론 채택이 성급했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도 "북한 핵실험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BM)발사 이후 사드 배치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좀 더 찬성 쪽으로 많이 기운 게 사실"이라고 언급해 성급한 당론 결정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게다가 사드 반대에 강한 어조를 내던 더민주 추미애 대표가 당 대표에 오르면서 안보여론을 의식한 듯 더민주는 당론을 유보했다.
결국 국민의당은 사드 반대에 대한 대안 부족이라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정부에 국회 비준동의안 제출을 촉구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국민의당은 사드 배치에 대한 책임을 국회로 넘기면서 한발 뒤로 물러난 모습을 보였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민의당의 사드 배치 입장에 대해 “사드 배치 반대가 국민의당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정치적 감각이 떨어진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못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정치권에선 국민의당이 당리당략에 치우친 나머지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 못하는 것 자체가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처럼 ‘정치적 줄타기’에 의존할 경우 국민의당의 고정 지지층도 실망감을 안고 국민의당을 떠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민주 이중대?
정치권의 우려와는 별개로 국민의당 내부에선 캐스팅보트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국민의당 김영환 사무총장은 “어제 국민의당이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당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위치에 있었다”고 말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국민의당은 원칙을 지키며 소통하고 설득하고 반대도 인정하는 민주정당”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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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총선 이후…국민의당 지지율
여론 조사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국민의당은 총선 직전 17% 지지율을 보이다가 총선 직후 25%로 수직상승하며 더민주를 1%차로 앞질렀다. 이후 급등락을 오가던 국민의당은 지난 6월 리베이트 파문이 터지면서 10%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지난 6월29일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가 동반 사퇴했지만 정당 지지율은 반등하지 않았다.
추석 이후 국민의당의 지지율을 하락세를 그리며 10% 초반을 헤맸다. 사드 배치를 주장한 새누리당과 유보 입장을 밝힌 더민주가 상승세를 보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지난달 30일 조사에서 국민의당은 전주보다 2%포인트 오른 12%로 나타났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