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억울하게 세상 떠난 고 백남기

평범한 농부 누가 죽였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달 25일, 농민 백남기씨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대회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지 317일 만이다. 백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과 정치권 인사, 경찰까지 나섰다. 사인 등 그를 둘러싼 여러 문제가 아직 봉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망 이후에도 영면에 들지 못한 채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백씨의 삶을 <일요시사>가 조명했다.

1947년 전남 보성서 태어난 백남기씨는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8년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했으나 1971년 위수령 시위 혐의로 1차 제적됐다.

위수령은 육군 부대가 한 지역에 계속 주둔하면서 그 지역의 경비, 군대의 질서 및 군기 감시와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대통령령이다. 이 법에 따른 최초의 위수령은 1971년 10월15일 각 대학에서 반정부시위가 격화됐을 때 서울 일원에 발동된 것이었다. 당시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비롯한 10개 대학에 휴업령이 내려지고 무장군인이 진주했다.

쌀값 폭락 항의
보성서 상경해

백씨는 1973년 10월 교내서 유신 철폐 시위를 주도했고, 다음 해 수배돼 1975년까지 명동성당에 피신했다. 같은 해 전국대학생연맹에 가입했다가 학교서 2차로 제적됐다. 그 이후 수녀원서 잡부, 수도사 등으로 지내다가 1980년 3월 ‘서울의 봄’ 당시 복교했다.

백씨는 학교로 돌아간 뒤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았고, 도보행진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던 중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서 계엄군에 체포됐다. 그 후 다시 퇴학처분이 내려졌다. 같은 해 8월에는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이듬해 3·1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백씨는 그 이후 고향인 보성으로 내려갔다.


1986년에는 가톨릭 농민회에 가입했다. 이듬해에는 가톨릭농민회 보성·고흥 협의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연합회장, 1992년부터 1993년까지 가톨릭 농민회 전국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2년에는 우리밀살리기 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을 주도했고, 1994년에는 우리밀살리기 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으로 일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2014년에는 가톨릭농민회 전남동지회 회장, 지난해에는 우리밀살리기 광주·전남본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물대포 사태가 일어났다.

백씨는 지난해 11월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남 보성서 상경했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노동, 학생 등 50여개 단체가 모인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서울 대학로, 서울역, 서울광장 등에서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3만명이 모였다(경찰 추산 6만8000명). 당시 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2008년 6월 서울 광화문 일대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주최 측 추산으로 70만명(경찰 추산 8만명)이 모인 이래 가장 많았다.

백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 촉구를 위해 120여명의 농민들과 버스를 타고 상경해 집회에 참석했다. 쌀 시장 개방으로 쌀값이 폭락하고 농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것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 쌀 한 가마니에 21만원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였던 당시 쌀값은 17만원이었다. 하지만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쌀값은 한 가마니에 10만원도 되지 않는 9만6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민중총궐기대회 경찰 물대포 맞고 중태
입원 317일 만에 사망…책임 공방 가열


백씨를 비롯한 농민들의 항의는 공허한 외침이 됐다.

백씨는 집회 당일 저녁 6시50분경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약 2m 정도를 날아가 쓰러졌다. 주변 시민들은 발견 당시 백씨가 입과 코, 귀 등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했다. 백씨는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4시간에 걸친 뇌수술을 받았지만 의식불명 상태로 사경을 헤맸다.

백씨를 치료해온 서울대병원 측은 지난달 25일 오후 2시15분경 백씨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백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을 비롯해 경찰 병력까지 서울대병원으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백씨의 사인을 두고 입장이 엇갈리면서 부검 여부를 두고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달 26일,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백남기 농민 상황 및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바꿔 책임을 모면하려고 한다”며 “유족과 대책위는 이런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씨의 장녀 도라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경찰이 병원 주변에 진을 치고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길 때도 방해하고 밤중에 부검영장을 신청했다고 들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우리 가족을 괴롭게 하는 경찰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백씨의 사망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경찰이 신청하고 서울중앙지검이 청구한 영장에 대해 “부검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다”며 기각한 바 있다. 경찰은 영장을 재신청했고 법원은 부검 사유 등에 대해 더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요구한 채 판단을 보류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달 28일, 부검 영장이 발부됐다.

법원은 영장을 발부하면서 부검 장소는 유족의 의사를 확인하고 서울대병원서 부검을 원하면 서울대병원으로 할 것 등 조건을 내걸었다.

법원은 “사망 원인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하되, 부검의 객관성과 공정성, 투명성 등을 제고하기 위해 방법과 절차에 관해 구체적인 조건을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조건의 세부사항은 ▲유족이 희망할 경우 유족 1∼2명, 유족 추천 의사 1∼2명, 변호사 1명의 참관을 허용할 것 ▲부검 절차 영상을 촬영할 것 ▲부검 실시 시기, 방법, 절차, 경과에 관해 유족 측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것 등이다.

집회 물대포 직사
뇌수술 후 의식불명

법원의 조건 제시는 그동안 부검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온 유족의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영장 발부 후 열린 기자회견서 도라지씨는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만든 사람들의 손을 다시 받게 하고 싶지 않다”며 “절대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경찰과 대책위가 백씨의 시신 부검을 두고 대립하는 이유는 양측이 주장하는 고인의 사인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은 지난달 25일 백씨의 사망을 공식 발표하면서 사인을 급성신부전증이라고 밝혔다. 백씨의 사망진단서에 급성신부전증은 중간선행사인으로 기록돼 있다. 선행사인은 급성 경막하출혈, 직접 사인은 심폐기능정지다.


급성 경막하출혈은 외부 충격으로 두개골과 뇌 사이 경막이라는 얇은 막 아래 출혈이 생겼다는 말이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측이 사인을 급성신부전증으로, 사망의 종류도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고 발표하면서 유족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유족과 대책위는 백씨가 뇌수술을 하고 입원해 있는 과정에서 급성신부전이 생겼을 뿐 사인은 뇌출혈로 봐야하며 병사가 아니라 외인사라는 입장이다.

'병사냐 외인사냐' 하는 문제는 백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가 원인이 돼 숨진 것인지, 개인적인 질병 때문에 숨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기에 중요한 쟁점 사안이다.

경찰은 사태가 벌어진 직후부터 물대포 운용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물대포 사태 발생 직후인 지난해 11월16일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서 “불상사가 발생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빠른 쾌유를 빌 뿐”이라면서도 “집회 당일 경찰의 살수차 운용은 전반적으로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민중총궐기대회는) 유례없는 폭력집회였다”면서 “이번을 계기로 집회 문화가 바뀌었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같은 해 11월18일 백씨의 가족과 전농 등 단체들은 강신명 전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지방청장, 제4기동단장 등 7명에 대해 살인미수와 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 등으로 처벌해 달라고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살인미수가 적용되지 않을 경우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해 달라고 했다.

“돌아가시기 전부터
경찰, 병원에 몰려”

2011년에도 경찰의 무분별한 물대포 사용에 대한 위헌소송이 헌법재판소에 청구됐던 적이 있었다. 박희진 당시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는 2011년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


박씨는 집회서 경찰이 직사 살수한 물대포에 맞아 고막이 찢어졌고, 함께 참가했던 당시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이강실 목사 역시 물대포에 맞아 뇌진탕 부상을 입었다. 이후 두 사람은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청구했다.

헌재는 2011년 제기된 청구에 대해 2년 반이 지난 2014년 6월 각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물포 발사 행위는 이미 종료돼 심판청구가 인용되더라도 권리 보호의 이익이 없다고 해석했다.

또 집회 및 시위 현장서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유형의 근거리에서 물포 직사살수라는 기본권 침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물포 발사 행위의 위법성은 법원이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확정해 판단할 문제일 뿐 헌법적 해명을 통한 심판 청구의 이익도 없다고 봤다.

당시 헌재 결정은 재판관 6대3의 의견으로 갈렸다.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은 “집회 및 시위 현장서 물포가 반복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소수 의견 재판관들의 예상처럼 근거리 물대포 직사살수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박씨는 민중총궐기 집회 물대포 사태에 대해 “경찰의 물대포 사용 방식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백씨의 사고는 언젠가는 나올 수밖에 없던 참사였다”고 비판했다.
 

지난 3월 백씨의 가족은 국가와 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2억4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당시 도라지씨는 “사건이 발생한지 130일이 지났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거나 사과하지 않았다”며 “헌법소원 청구, 형사고발, 손해배상 청구까지 가족 입장에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했다”고 했다.

살수차 내부 모니터에 찍힌 영상 일부를 언론에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증거보전신청을 통해 입수한 동영상에는 백씨가 10여초가량 물대포를 맞는 모습이 비교적 선명하게 찍혀 있다.

병사 vs 외인사…사인 두고 대립
아직 끝나지 않은 사태 결론은?

유엔특별보고관의 ‘일침’도 있었다. 집회·결사 자유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1월 한국을 찾은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하 특보)은 기자회견서 “한국의 집회의 자유가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키아이 특보는 경찰의 집회 관리 방식에 대해 “물대포는 백씨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매우 위험한 무기이고 시위대와 경찰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키아이 특보는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21페이지 분량의 실태보고서를 내고 우리나라 집회결사 자유의 후퇴와 한국 정부의 집회시위 진압 방식에 대해 강하게 우려했다. 또 경찰의 물대포 사용이 무차별적인데다 특정인을 겨냥해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한국 경찰은 평화롭고 합법적인 시위대에 물대포를 사용한 적 없고 불법 폭력 시위자를 막는 데 사용했을 뿐”이라며 반박했다.

키아이 특보는 백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후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부검 반대를 촉구했다. 키아이 특보는 지난달 28일 유엔 공식홈페이지에 “백씨의 유족과 지인들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며 “경찰의 물대포 사용에 대해 철저하고 독립적인 수사를 한국 정부에 요청한다”고 했다.

이어 “영상을 통해 본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 사용이 백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명확하다”며 “유족의 뜻에 반해 백씨의 시신을 부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달 12일에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서 물대포 사태와 관련해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에는 강 전 경찰청장, 구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백씨의 가족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청문회에선 경찰의 과잉진압, 집회의 폭력시위 여부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증인으로 출석한 강 전 청장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끝내 물대포 사태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명확히 한 후에 답변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법원 부검 영장
유족 절대 불가

한편 경찰은 일단 백씨의 부검 영장을 당장 강제 집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유족을 접촉하고 설득해 긴 호흡으로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유족은 부검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영장 유효기간인 오는 25일까지 긴장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