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억울하게 세상 떠난 고 백남기

평범한 농부 누가 죽였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달 25일, 농민 백남기씨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대회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지 317일 만이다. 백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과 정치권 인사, 경찰까지 나섰다. 사인 등 그를 둘러싼 여러 문제가 아직 봉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망 이후에도 영면에 들지 못한 채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백씨의 삶을 <일요시사>가 조명했다.

1947년 전남 보성서 태어난 백남기씨는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8년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했으나 1971년 위수령 시위 혐의로 1차 제적됐다.

위수령은 육군 부대가 한 지역에 계속 주둔하면서 그 지역의 경비, 군대의 질서 및 군기 감시와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대통령령이다. 이 법에 따른 최초의 위수령은 1971년 10월15일 각 대학에서 반정부시위가 격화됐을 때 서울 일원에 발동된 것이었다. 당시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비롯한 10개 대학에 휴업령이 내려지고 무장군인이 진주했다.

쌀값 폭락 항의
보성서 상경해

백씨는 1973년 10월 교내서 유신 철폐 시위를 주도했고, 다음 해 수배돼 1975년까지 명동성당에 피신했다. 같은 해 전국대학생연맹에 가입했다가 학교서 2차로 제적됐다. 그 이후 수녀원서 잡부, 수도사 등으로 지내다가 1980년 3월 ‘서울의 봄’ 당시 복교했다.

백씨는 학교로 돌아간 뒤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았고, 도보행진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던 중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서 계엄군에 체포됐다. 그 후 다시 퇴학처분이 내려졌다. 같은 해 8월에는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이듬해 3·1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백씨는 그 이후 고향인 보성으로 내려갔다.


1986년에는 가톨릭 농민회에 가입했다. 이듬해에는 가톨릭농민회 보성·고흥 협의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연합회장, 1992년부터 1993년까지 가톨릭 농민회 전국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2년에는 우리밀살리기 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을 주도했고, 1994년에는 우리밀살리기 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으로 일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2014년에는 가톨릭농민회 전남동지회 회장, 지난해에는 우리밀살리기 광주·전남본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물대포 사태가 일어났다.

백씨는 지난해 11월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남 보성서 상경했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노동, 학생 등 50여개 단체가 모인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서울 대학로, 서울역, 서울광장 등에서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3만명이 모였다(경찰 추산 6만8000명). 당시 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2008년 6월 서울 광화문 일대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주최 측 추산으로 70만명(경찰 추산 8만명)이 모인 이래 가장 많았다.

백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 촉구를 위해 120여명의 농민들과 버스를 타고 상경해 집회에 참석했다. 쌀 시장 개방으로 쌀값이 폭락하고 농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것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 쌀 한 가마니에 21만원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였던 당시 쌀값은 17만원이었다. 하지만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쌀값은 한 가마니에 10만원도 되지 않는 9만6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민중총궐기대회 경찰 물대포 맞고 중태
입원 317일 만에 사망…책임 공방 가열


백씨를 비롯한 농민들의 항의는 공허한 외침이 됐다.

백씨는 집회 당일 저녁 6시50분경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약 2m 정도를 날아가 쓰러졌다. 주변 시민들은 발견 당시 백씨가 입과 코, 귀 등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했다. 백씨는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4시간에 걸친 뇌수술을 받았지만 의식불명 상태로 사경을 헤맸다.

백씨를 치료해온 서울대병원 측은 지난달 25일 오후 2시15분경 백씨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백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을 비롯해 경찰 병력까지 서울대병원으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백씨의 사인을 두고 입장이 엇갈리면서 부검 여부를 두고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달 26일,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백남기 농민 상황 및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바꿔 책임을 모면하려고 한다”며 “유족과 대책위는 이런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씨의 장녀 도라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경찰이 병원 주변에 진을 치고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길 때도 방해하고 밤중에 부검영장을 신청했다고 들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우리 가족을 괴롭게 하는 경찰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백씨의 사망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경찰이 신청하고 서울중앙지검이 청구한 영장에 대해 “부검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다”며 기각한 바 있다. 경찰은 영장을 재신청했고 법원은 부검 사유 등에 대해 더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요구한 채 판단을 보류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달 28일, 부검 영장이 발부됐다.

법원은 영장을 발부하면서 부검 장소는 유족의 의사를 확인하고 서울대병원서 부검을 원하면 서울대병원으로 할 것 등 조건을 내걸었다.

법원은 “사망 원인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하되, 부검의 객관성과 공정성, 투명성 등을 제고하기 위해 방법과 절차에 관해 구체적인 조건을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조건의 세부사항은 ▲유족이 희망할 경우 유족 1∼2명, 유족 추천 의사 1∼2명, 변호사 1명의 참관을 허용할 것 ▲부검 절차 영상을 촬영할 것 ▲부검 실시 시기, 방법, 절차, 경과에 관해 유족 측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것 등이다.

집회 물대포 직사
뇌수술 후 의식불명

법원의 조건 제시는 그동안 부검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온 유족의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영장 발부 후 열린 기자회견서 도라지씨는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만든 사람들의 손을 다시 받게 하고 싶지 않다”며 “절대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경찰과 대책위가 백씨의 시신 부검을 두고 대립하는 이유는 양측이 주장하는 고인의 사인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은 지난달 25일 백씨의 사망을 공식 발표하면서 사인을 급성신부전증이라고 밝혔다. 백씨의 사망진단서에 급성신부전증은 중간선행사인으로 기록돼 있다. 선행사인은 급성 경막하출혈, 직접 사인은 심폐기능정지다.


급성 경막하출혈은 외부 충격으로 두개골과 뇌 사이 경막이라는 얇은 막 아래 출혈이 생겼다는 말이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측이 사인을 급성신부전증으로, 사망의 종류도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고 발표하면서 유족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유족과 대책위는 백씨가 뇌수술을 하고 입원해 있는 과정에서 급성신부전이 생겼을 뿐 사인은 뇌출혈로 봐야하며 병사가 아니라 외인사라는 입장이다.

'병사냐 외인사냐' 하는 문제는 백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가 원인이 돼 숨진 것인지, 개인적인 질병 때문에 숨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기에 중요한 쟁점 사안이다.

경찰은 사태가 벌어진 직후부터 물대포 운용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물대포 사태 발생 직후인 지난해 11월16일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서 “불상사가 발생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빠른 쾌유를 빌 뿐”이라면서도 “집회 당일 경찰의 살수차 운용은 전반적으로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민중총궐기대회는) 유례없는 폭력집회였다”면서 “이번을 계기로 집회 문화가 바뀌었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같은 해 11월18일 백씨의 가족과 전농 등 단체들은 강신명 전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지방청장, 제4기동단장 등 7명에 대해 살인미수와 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 등으로 처벌해 달라고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살인미수가 적용되지 않을 경우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해 달라고 했다.

“돌아가시기 전부터
경찰, 병원에 몰려”

2011년에도 경찰의 무분별한 물대포 사용에 대한 위헌소송이 헌법재판소에 청구됐던 적이 있었다. 박희진 당시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는 2011년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


박씨는 집회서 경찰이 직사 살수한 물대포에 맞아 고막이 찢어졌고, 함께 참가했던 당시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이강실 목사 역시 물대포에 맞아 뇌진탕 부상을 입었다. 이후 두 사람은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청구했다.

헌재는 2011년 제기된 청구에 대해 2년 반이 지난 2014년 6월 각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물포 발사 행위는 이미 종료돼 심판청구가 인용되더라도 권리 보호의 이익이 없다고 해석했다.

또 집회 및 시위 현장서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유형의 근거리에서 물포 직사살수라는 기본권 침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물포 발사 행위의 위법성은 법원이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확정해 판단할 문제일 뿐 헌법적 해명을 통한 심판 청구의 이익도 없다고 봤다.

당시 헌재 결정은 재판관 6대3의 의견으로 갈렸다.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은 “집회 및 시위 현장서 물포가 반복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소수 의견 재판관들의 예상처럼 근거리 물대포 직사살수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박씨는 민중총궐기 집회 물대포 사태에 대해 “경찰의 물대포 사용 방식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백씨의 사고는 언젠가는 나올 수밖에 없던 참사였다”고 비판했다.
 

지난 3월 백씨의 가족은 국가와 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2억4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당시 도라지씨는 “사건이 발생한지 130일이 지났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거나 사과하지 않았다”며 “헌법소원 청구, 형사고발, 손해배상 청구까지 가족 입장에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했다”고 했다.

살수차 내부 모니터에 찍힌 영상 일부를 언론에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증거보전신청을 통해 입수한 동영상에는 백씨가 10여초가량 물대포를 맞는 모습이 비교적 선명하게 찍혀 있다.

병사 vs 외인사…사인 두고 대립
아직 끝나지 않은 사태 결론은?

유엔특별보고관의 ‘일침’도 있었다. 집회·결사 자유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1월 한국을 찾은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하 특보)은 기자회견서 “한국의 집회의 자유가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키아이 특보는 경찰의 집회 관리 방식에 대해 “물대포는 백씨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매우 위험한 무기이고 시위대와 경찰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키아이 특보는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21페이지 분량의 실태보고서를 내고 우리나라 집회결사 자유의 후퇴와 한국 정부의 집회시위 진압 방식에 대해 강하게 우려했다. 또 경찰의 물대포 사용이 무차별적인데다 특정인을 겨냥해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한국 경찰은 평화롭고 합법적인 시위대에 물대포를 사용한 적 없고 불법 폭력 시위자를 막는 데 사용했을 뿐”이라며 반박했다.

키아이 특보는 백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후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부검 반대를 촉구했다. 키아이 특보는 지난달 28일 유엔 공식홈페이지에 “백씨의 유족과 지인들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며 “경찰의 물대포 사용에 대해 철저하고 독립적인 수사를 한국 정부에 요청한다”고 했다.

이어 “영상을 통해 본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 사용이 백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명확하다”며 “유족의 뜻에 반해 백씨의 시신을 부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달 12일에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서 물대포 사태와 관련해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에는 강 전 경찰청장, 구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백씨의 가족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청문회에선 경찰의 과잉진압, 집회의 폭력시위 여부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증인으로 출석한 강 전 청장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끝내 물대포 사태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명확히 한 후에 답변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법원 부검 영장
유족 절대 불가

한편 경찰은 일단 백씨의 부검 영장을 당장 강제 집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유족을 접촉하고 설득해 긴 호흡으로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유족은 부검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영장 유효기간인 오는 25일까지 긴장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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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