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위기탈출 플랜

남은 17개월…여기서 밀리면 끝난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국회가 파행과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되면서 국감은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청와대발(發) 각종 의혹이 범람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묵묵부답’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 위기의 나날을 보내는 박근혜정부의 타개책은 무엇일까.

집권 4년차 박근혜정부는 측근비리와 인사파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8월, 박 대통령이 임명한 김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을 통해 부동산의혹이 쏟아지면서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개각카드 실패
샘솟는 의혹들

게다가 김 장관은 모교인 경북대 동문회 SNS에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온갖 모함·음해·정치적인 공격이 있었다”며 “농식품부 장관으로 부임하면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명예를 실추시킨 언론과 방송·종편 출연자를 대상으로 법적인 조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며 오히려 논란을 부채질했다.

또한 “시골 출신에 지방학교를 나온 이른바 ‘흙수저’라고 무시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면서 본인의 속내를 드러냈다. 이에 여론의 뭇매를 맞은 김 장관은 장관해임결의안 가결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역대 정권 사상 장관해임결의안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국회의 결정이 민의를 대변한다고 생각해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을 ‘국정 흔들기’로 규정하고 거부권 행사라는 강수를 뒀다.


박 대통령에 힘을 실어주듯 여당은 연일 야당에 대한 공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당 대표실서 단식투쟁에 나서면서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이번에 물러서면 다음에 제2, 제3의 이번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과거 같으면 야당이 국감을 보이콧하고 싸워야 하는데 오히려 야당은 국감에 임하고 있다”면서 “장관 해임안이 통과되는데 왜 여당이 의장을 상대로 단식투쟁을 하는지 정말 어안이 벙벙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새누리당 의원끼리 ‘여기서 밀리면 끝나’라는 얘기를 하는 것을 우연히 엿들었다”며 “일종의 파워게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힘 대결로 생각하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각종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에 대해 임기 말 레임덕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한 방책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가 여당을 방패삼아 난관을 극복하자는 판단이 섰다는 것이다.

집권 4년차 들어 자고나면 의혹
모르쇠 버티기…새누리 방패삼기

앞서 지난달 25일, 새누리당 이 대표는 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세균 국회의장은 대통령을 쓰러뜨리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같은 날 의원총회서 “이들은 대통령을 쓰러뜨린 후 국정운영을 잘못했다고 핑계대고 정권교체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쓰러질 때까지 탄핵까지 할지 모르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지켜보고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가결을 빌미로 새누리당이 국정감사를 불참하는 등 파행이 빚어진 데 대해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국회서 발생한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이처럼 청와대는 국정 반전을 위한 개각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해임건의안까지 제출되면서 정부와 국회는 날선 공방만 남았을 뿐 협치는 사라지게 됐다. 최근에는 지난 2014년 이후 다시 한 번 비선실세 의혹이 부각되면서 청와대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과정서 최순실씨가 개입됐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청와대는 “언급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미르재단에 대한 대기업 기부금 모금에 관여했다는 녹취록이 국정감사서 제기됐다.

더민주 노웅래 의원은 기부금을 출연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공개해 안 수석이 전경련에 모금을 종용했고, 이에 따라 전경련이 대기업에 출연금을 할당해 미르재단에 돈을 몰아줬다고 밝혔다. 이에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일방적인 의혹 제기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각종 의혹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 ‘언급하지 않겠다’ ‘가치가 없다’고 말해 해명을 피하는 모습이다.

인사파행·측근비리라는 악재가 겹친 박 대통령은 어떤 플랜을 선보일까. 역대 정권들은 임기말 레임덕을 피해가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불거진 측근 비리와 이라크 파병 논란을 겪으면서 지지율이 20%까지 떨어졌고 임기 말까지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50%의 높은 지지율로 시작했지만 광우병 파동으로 20% 초반까지 지지율이 급락했다. 이후 중도실용 노선을 구축하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렸지만 지난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면서 지지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해 레임덕을 맞았다.

사정기관 잡고
안보이슈 띄우고

대통령 임기를 17개월 남긴 박 대통령은 30% 초중반대의 지지율을 형성하고 있다.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40% 이상의 지지율을 보였지만 잇단 악재로 인해 지지율이 빠지는 모습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지지율 30%를 레임덕 마지노선으로 여기고 있다. 20%대의 지지율을 가지고는 국정운영이 힘들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우선 안보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안보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국을 달궜던 사드배치를 둘러싼 이슈도 잠잠해진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8일 “우리 정부는 확고한 안보태세 위에 국제사회와 긴밀히 공조해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해다. 같은 날 영상메시지를 통해 “북한의 도발과 위협은 우리 대한민국뿐 아니라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안보와 더불어 안전행보도 선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경북 경주 지진 피해 현장과 월성 원자력 발전소를 찾아 ‘특별재난지역 선포’ ‘재난 안전 시스템 마련’ 등을 지시했다. 이는 신공항 백지화와 성주 사드배치 문제로 뒤숭숭한 TK(대구·경북)민심 달래기 차원으로 풀이된다.

최근 박 대통령의 안보행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현재 국민들이 느끼는 경기 체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안보 장사’에만 주력한다면 국민들의 안보 피로감이 더해져서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위기 탈출 해법으로는 사정기관 카드가 거론된다. 최근 박 대통령 최 측근들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KBS보도외압‘의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처가 부동산 거래‘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인턴 채용 외압‘ 논란의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등이 권력을 남용한 흔적이 곳곳서 발견됐다.
 


이정현 대표는 박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 속에 새누리당 대표에 올랐다. 지난달 28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이 대표는 “내가 청와대와 소통을 하느냐는 지적이 있는데 소통을 한다”며 “이 자리서 처음 이야기하는데 대통령님과 제가 필요하면 하루에도 몇번 통화를 하고 이틀에 (몇번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 대표는 박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박 대통령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지만 검찰 수사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우 수석도 처가 부동산 거래 및 각종 의혹에 시달리며 검찰 수사대상에 올라있다. 우 수석을 내사하고 검찰에 수사의뢰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은 우 수석뿐만 아니라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안종범 청와대 수석에 대한 내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진다.

정권 핵심부에 칼끝을 들이민 이 전 특별감찰관은 최근 사표가 수리됐다.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28일 특별감찰관보와 감찰관실 직원 6명에게 사퇴를 요청했다. 이 전 특별감찰관의 사표가 수리된 지 불과 닷새 만이다. 일각에선 지난달 30일 국정감사에 특별감찰관실 직원들이 증인으로 채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꼼수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청와대는 현 정권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밖으로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며 일축하고 있지만 안으로는 의혹 감추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의혹이 커지고 명확해 질수록 검찰은 수사에 대한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해 강력한 견제구를 날린다면 박 대통령에게 내상을 입힐 가능성이 높다.

민생행보 ‘척척’
또 재보선 개입?

다른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집권 4년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검찰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이미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을 더욱 틀어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각종 의혹에 대해 청와대가 일축하는 것이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것과 같다는 지적도 있다. 위 3명의 수사결과에 따라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시화될지 혹은 사그라들지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창조경제’를 국정과제의 최우선으로 삼은 바 있다. 최근에는 국내·외로 보폭을 넓혀 ‘창조경제’ 띄우기에 한창인 모습이다. 지난 8월26일 박 대통령은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창조경제 혁신센터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2014년 9월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 17개 지역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차례차례 문을 연 이후 지금 지역의 창업 생태계와 중소기업의 혁신 환경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800여개에 달하는 중소, 벤처기업을 지원해 2850억원의 투자 유치와 1606억원의 매출 증가를 달성해 지난 1년간 약 10배에 달하는 성장을 이뤄냈다”고 치적을 강조했다.

중국 항저우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해서도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포용적 경제 모델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G20이 추구하는 포용적 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정치 평론가는 이에 대해 “치적을 과시해 경제를 살린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임기 말을 이끌겠다는 복안”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민심 행보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경북 포항의 포항공대에서 열린 ‘4세대 방사광 가속기 준공식’에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계속 떨어지는 지지율…안보로 만회?
민생행보 본격 돌입…제3지대 러브콜?

전날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 열린 ‘2016 지역희망박람회’서 각 지자체가 설치한 부스를 돌며 참가자들과 오랜 시간 대화한 데 이어 이날도 입주 기업 임직원들을 두루 만나며 민생 경제를 챙겼다. 박 대통령은 이달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민생 행보를 잠시 중단하고 북한 규탄과 동맹국과의 공동 대응, 사드반대 세력 압박 등에 치중했다.

당초 정치권은 박 대통령이 8·15 광복절 이후 본격적인 민생 행보를 펼칠 것으로 예상했었다. 임기 말 국정의 포인트를 ‘민생’에 두고 서민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면서 정권의 성과를 관리해 나갈 것으로 관측됐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이 최근 민생 행보를 다시 시작한 것에는 지지층 결집을 통한 위기 탈출 의도도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최근 민생 행보에 대해 “박 대통령에게 민생은 언제나 최우선이었다. 더 이상의 의미를 두지 말라”며 선을 그었다.

여·야가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제3지대 사람들을 통한 대화의 길을 모색하는 방법도 위기 극복 플랜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이재오 전 의원,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은 개헌을 고리로 힘을 합쳐 독자세력화를 노리며 제3지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동참할 뜻을 내비쳐 공방을 거듭하는 여야의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는 인물로 불린다. 만약 박 대통령이 대리인을 앞세워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야당과 대화의 길에 나선다면 국정 운영에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내년 재보궐 선거도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총선 지역구 당선자 가운데 40%에 달하는 당선자들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에 있어 당선무효형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도 ‘총선사범에 대한 1심과 2심 재판을 각각 2개월 이내에 마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어 내년 4월 재선거 규모는 10명 안팎으로 점쳐진다.

지난 총선에선 친박 실세들이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한 정황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새누리당이 제1당의 지위를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친박계가 새누리를 장악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친박 실세'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에 올라 박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대선 앞두고
주도권 쟁탈

최근의 뒤숭숭한 정국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여소야대 정국 속에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어떻게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야권과 뺏기지 않으려는 정부·여당 간의 대립은 점차 격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의 이상한 지시, 골프 쳐서 경기 활성화?
시국 어려운데…내수 진작 골프 권장
비상시국 맞아? 장차관 잇달아 라운딩

지난달 24일 청와대서 주재한 ‘2016년 장차관 워크숍’에서 박 대통령은 “내수 진작을 위한 국내 골프에 장관들이 나서달라”요청했다. 참석자들은 “골프를 쳐서 경기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외 골프 등으로 지난해 해외에서 쓴 돈이 26조원에 달해 국내에서 골프를 치면 경기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참석한 장차관들에게 국내 골프를 권장했다는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향해 “지난 4월30일 유 부총리가 경제5단체장과 골프를 치셨는데 그 이후 왜 골프를 안 치시냐. 골프를 더 치셨으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

이에 유 부총리는 “우리(장관들)끼리라도 내수 진작을 위해 (각자 비용을 부담해) 골프를 치자”고 답했다. 이를 두고 안보·경제위기로 현 상황을 ‘비상시국’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장차관들에게 골프르 치도록 권장한 것은 국민들의 정서와 맞지 않는 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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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