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바뀌는 당명 비하인드 스토리

아직도 한나라당이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정당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당명으로 정체성과 이념을 밝히며 존재해왔다. 건국 이후 잦은 이합집산과 당명 변경으로 보수·진보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커지고 있는 상황.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과 야권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합당을 이뤘다. <일요시사>는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정당들의 당명에 얽힌 뒷이야기를 살펴봤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은 지난 18일, 창당 61주년을 맞아 원외 민주당과 합당을 전격 발표했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김민석 민주당 대표와 경기 광주의 해공 신익희 선생 생가를 방문한 자리서 “우리는 61년 전 신익희 선생이 창당한 민주당의 같은 후예”라며 “분열로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수 없어 두 당의 통합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보스 맘대로

합당은 더민주가 민주당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추후 약칭을 민주당으로 쓰기로 한 것 이외에는 통합에 아무 조건도 달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합당 뒤에도 별도의 당직을 맡지 않을 것으로 알려진다. 이로써 더민주는 지난 2014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출범으로 잃었던 민주당 당명을 약칭으로나마 2년6개월 만에 다시 달게 됐다.

민주당이라는 이름은 지난 1955년 9월18일 신익희 선생 등이 창당한 민주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36년 동안 정당 간 이합집산을 거듭하다 1991년 9월 신민당과 민주당이 합당하게 되면서 김대중-이기택 공동대표 체제의 민주당이 등장했다.

이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는 정권을 잡고 여당이 됐지만 약칭으로만 민주당을 사용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의 분당으로 열린우리당이 등장하면서 분열의 길을 걷기 시작해 새천년민주당에는 구 민주당 인사들만 남게 됐다.

열린우리당은 내홍에 시달리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탈바꿈했고, 2008년 손학규-박상규 공동대표 체제의 통합민주당으로 이어졌다. 같은해 8월에는 통합민주당이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2011년에는 민주당은 친노계, 시민사회계,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민주통합당을 세운다. 민주통합당은 2년 뒤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꾸지만 2014년 안철수 국민의당 전 국민의당 공동상임대표를 중심으로 한 새정치연합과 합당을 계기로 사라지게 사라진다. 당명 약칭도 민주당을 사용하지 못했다.

지난 4·13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서 안철수 전 대표가 탈당하면서 국민의당을 창당해 기존 새정연은 더민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김민석 대표를 중심으로 원외서 민주당이 존재했기 때문에 약칭으로 ‘더민주’만 쓸 수 있었을 뿐 ‘민주당’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처럼 진보정당은 민주당이라는 큰 뿌리를 중심으로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 왔다. 정부수립 이후 보수정당의 계보도 복잡하다.

현 새누리당의 근간이 된 자유당은 1951년 12월 창당해 이승만 대통령을 당수로 했다. 이후 제1공화국 기간 중 여당으로 존속했고, 1960년 이후 해체 위기를 겪으면서 일부는 탈당해 민주공화당과 신민당 등으로 이탈했다. 이후 민주공화당은 구 자유당 세력과 군부세력이 힘을 합쳐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17년간 대한민국의 집권여당이 됐다.
 

신군부가 해체를 명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초대 총재로 하는 민주정의당이 1981년 창당했다. 이후 1990년 민주자유당이 3당합당을 선언하며 거대 여당을 구성했다.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한 신한국당이 출범했지만 2년여 뒤인 1997년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한나라당은 약 15년간 대한민국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 재보궐선거 패배로 한나라당은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 중심으로 변모했다. 이듬해 2월 박근혜 지도부는 ‘새로운 세상’이라는 의미의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민주당이 있었나? 더민주와 합당
무분별 이합집산…유사정당 존재

2012년 11월 선진통일당과 합당해 2000년대 중반 이후 분열을 맞이한 보수 정당들은 새누리당으로 흡수됐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유일한 제도권 보수정당으로 남게 됐다. 최근에는 보수진영을 표방한 원외 정당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동일 명칭을 쓰는 정당도 존재한다.

한나라당 이태희 대표는 지난 19대 총선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원내 입성을 노렸지만 유효투표 총수 2% 이상을 확보하지 못해 당시 정당법 규정에 따라 정당등록 취소 절차를 밟았다. 지난 2013년 4월 ‘새한나라당’으로 다시 정당 등록을 한 뒤 지난해 2월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효투표 총수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하는 정당은 등록을 취소한다는 정당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한나라당은 정당을 유지했다.

현재 한나라당 공약은 ‘우파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는 한나라당’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지원하고, 반기문을 지지하는 한나라당’ ‘반기문의 세계평화 정책을 지지하는 한나라당’ 등 총 10가지다. 이처럼 한나라당은 중점 공약으로 현 정권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지지를 내세워 친정부·친여권을 표방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지지를 표방하는 정당은 올해에만 2곳이 등장했다. 지난 3월21일 정당등록을 마친 친반통일당은 반 총장을 적극 지원하는 정당이다. 친반연대는 과거 친박연대와 비슷하게 특정 정치인을 지칭하는 표현을 당명으로 사용했다.

친박연대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측에서 당명을 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선거관리위원회 측은 ‘친박연대’라는 명칭이 문제없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후 친박연대는 새누리당과 합당하는 길을 택했다.
 

지난 2월15일 정당 등록을 마친 한누리평화통일당(한누리당)도 반 총장 대통령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호일 총재는 “반 총장을 대선 후보로 추대해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을 이뤄 대한민국을 하나 되고 큰 나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총재는 과거 한나라당 소속으로 14·15·16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다. 그는 지난 2월 “4·13총선에 전 지역구 후보를 배출해 반드시 원내교섭단체를 이루는 정당이 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총선서 단 1석도 가져오지 못하면서 원외 정당으로 머물러 있다.

유력 대선주자를 당명으로 내세우는 정당들은 반 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정당목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들 조직은 반 총장의 의지와 무관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반 총장의 대권행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랬다 저랬다

정당들의 잦은 당명 변경에 대해 한 정치 전문가는 “정당이 이념과 노선, 정책을 근간으로 하지 않고 인물·보스를 중심으로 한 이합집산 구조 탓”이라며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과정에서 대부분 새로운 당을 창당한 데서도 잘 확인된다”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거지당, 핵나라당…’이색 정당들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8개 정당이 정당 등록을 마쳤다. 최근에는 거지당·핵나라당·재개발반대당 과 같이 독특한 당명을 지닌 정당들이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신고를 마치고 정당 등록을 기다리고 있다. 우선 거지당 창당을 준비중인 김모씨는 “지금까지는 부자정치였다. 부자정치는 감동이 없다”며 “지금부터는 감동이 있는 거지정치다”라고 말했다.

거지당 당원으로는 “어민, 농민, 서민, 일용직 노동자, 구걸인, 노숙자 그리고 정치인이 부를 버리고 명예를 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핵나라당이 결성신고를 했다. 핵나라당은 발기취지문을 통해 핵무장은 물론 6000조원 국채 발행, 해병대 50만 명 증강 등 목표를 제시했다.

이색 정당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지난 13일 “정당의 목적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법에서 정한 창당 절차 등을 거치면 정당 등록을 해준다”고 밝혔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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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