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얼한’ 영화 <내부자들> 실사판 '재구성'

영화보다 현실이 더하네…혹시 결말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우리나라 상위 1%들의 맨 얼굴이 연일 언론 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론사 주필, 고위 관료, 기업 총수, 검사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어두운 일면이 폭로 형식으로 터져 나온다. 이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다. ‘그럴 줄 알았다’ ‘우리나라에 썩지 않은 곳이 어디냐’ 등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실사판 <내부자들>을 들여다보자.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이 최근 화제다. <내부자들>은 3류 조폭과 족보 없는 검사가 언론, 정재계, 검찰 등 우리나라 상위 1%들의 민낯을 낱낱이 노출하고 복수에 성공하는 과정을 그려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했다. 그 결과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9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았다. 개봉 당시에도 큰 화제를 모았던 <내부자들>은 2016년 현재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등장했다. 이번엔 쾌감이 아니라 찝찝한 뒷맛을 남기면서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영화가 현실을 못 따라간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영화 <내부자들> 속 에피소드가 현실에 하나씩 나타나면서 나온 말이다.

<#1> 언론+기업

영화 속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는 신문사 최대 광고주인 미래자동차에 대해 우호적인 칼럼을 쓴다. 미래자동차 오현수(김홍파) 회장은 이강희의 칼럼을 보며 “우째됐건 참 좋은 일이데이. 언론사와 기업이 마케팅 파트너십을 맺는다는 것”이라며 “이 주간 앞으로도 좋은 글 고대하고 있겠데이”라고 말한다.

이강희는 칼럼을 쓰거나 신문 편집 방향에 관여하며 미래자동차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주무른다. 미래자동차는 그 대가로 신문사에는 광고를, 이강희에게는 접대를 한다. 언론과 기업이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셈.


현실도 영화와 유사하다. 지난달 29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조선일보 전 주필 송희영씨가 대우조선해양이 임대한 전세기를 타고 호화 외유를 다녔다고 폭로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송 전 주필은 2011년 9월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전 사장 등 전직 경영진의 출장에 동참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 전직 경영진과 송 전 주필,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박수환 대표 등은 유럽 곳곳을 전세기로 돌아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나폴리서 초호화 요트를 타고, 영국에선 골프 라운딩을 즐기는 등 8박9일간 들어간 경비가 2억원대에 이른다는 김 의원의 폭로도 이어졌다.

문제는 송 전 주필이 출장을 떠났던 2011년 9월 전후로 대우조선해양에 우호적인 칼럼을 썼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법조계에선 출장을 전후해 송 전 주필이 쓴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한 기사, 사설, 칼럼 등의 내용에 따라 배임수재 혐의의 적용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배임수재란 타의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할 때 성립한다.

대우조선해양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송 전 주필의 출국을 금지 조치하고 의혹에 대한 전면 조사에 들어갔다. 검찰은 송 전 주필의 기사나 사설 등이 대우조선해양에 유리한 방향이었는지 여부와 송 전 주필이 남 전 사장의 연임 로비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다.

아울러 송 전 주필이 고재호 전 사장의 연임을 청탁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라 사건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조선일보는 일단 송 전 주필의 칼럼과 사설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에만 비합리적으로 우호적인 게 아니었다는 입장을 낸 상태이며, 지난달 31일자 신문 1면에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언론인의 일탈 행위로 실망감을 안겨드렸다”며 사과문을 냈다.


<#2> 개·돼지 발언

영화 속 오현수 회장은 이강희 논설주간의 칼럼 ‘미래자동차 비정규직 농성 확대에 관해’를 읽으며 혀를 찬다. 칼럼은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이 국가산업과 국민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오현수가 칼럼을 읽으며 인상을 찌푸리자 이강희는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뭐하러 개·돼지들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며 비위를 맞춘다.

언론·정재계 유착 수면 위로
성접대·기업인 자살 ‘판박이’
 

<내부자들>서 상류층이 대중을 보는 시선은 주로 이강희의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이강희는 SNS에 대해 “아무런 팩트도 없이 지껄여대는 키보드 워리어들! 걔들이 노는 데가 SNS 아닙니까? 미친개가 짖는다고 날뛰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확장판 말미에선 “어차피 그들(대중)이 원하는 건 술자리나 인터넷서 씹어댈 안주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개·돼지’ 대사는 대중들 사이서 유행어처럼 자리 잡았다. 간결한 데다 여러 의미가 함축돼있고, 현 사회 분위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폭발력을 가진 것은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이 대사를 실제로 사용하면서부터다.

지난 7월7일 나 전 기획관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서울 종로서 저녁을 함께 했다. 이 자리서 나 전 기획관은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대화내용이 담긴 녹취록에서 나 전 기획관은 “개·돼지 이야기는 영화 <내부자들>서 어떤 언론인이 이야기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기자들이 수차례 해명 기회를 줬지만 나 전 기획관은 처음 발언을 거두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 전 기획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대중들의 비판이 빗발쳤다. 대중들은 나 전 기획관을 파면해야 한다며 청원을 제기했고, 이틀 만에 1만명이 이에 동조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교육부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대응하며 지난 7월13일 나 전 기획관이 국가공무원법상 품위 유지 의무를 저버렸다며 중앙징계위원회에 파면을 요구했다. 이에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는 같은 달 19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나 전 기획관의 파면을 결정했다. 파면은 공무원에게 내릴 수 있는 징계 중 가장 수위가 높은 조치로 5년간 공무원 임용이 제한되고 퇴직금도 절반만 받을 수 있다.

나 전 기획관은 지난달 23일 인사혁신처의 파면 결정에 불복,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 청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청심사제도는 공무원이 징계처분에 불복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이를 심사해 구제 여부를 결정하는 일종의 행정심판제도다. 소청심사위원회는 60일 이내에 나 전 기획관에 대한 소청심사를 결정하게 된다.

<#3> 별장 성접대

영화 속에서 이강희 논설주간, 오현수 회장, 신정당 장필우(이경영) 의원은 오현수의 별장에서 은밀한 파티를 벌인다. 파티에는 나체의 여성들이 등장하고, 세 사람 역시 나체로 음담패설을 나누며 고급술을 들이킨다.


<내부자들>을 본 관객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에 하나로 꼽는 별장 성접대 신이다. 권력층의 가장 추악한 밑바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준 성접대 장면 역시 비슷한 실제 사례가 드러나 대중을 경악케 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다.

지난 2013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은 김학의 당시 대전고검장을 법무부 차관에 발탁한다. 하지만 다음날 강원도 원주의 한 별장서 고위급 인사가 성접대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후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별장에서의 상황이 담긴 영상을 입수했는데, 여기에 김 전 차관과 유사한 인물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건은 메가톤급으로 번졌다. 영상에는 속옷 차림의 남성이 노래를 부르다가 앞에 있는 여성을 뒤에서 껴안는 장면, 10여명의 남녀가 혼음하는 장면 등이 담겨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당시 김 전 차관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도 임명 6일 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검찰은 김 전 차관과 로비 제공 의혹을 받은 건설업자 윤중천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향응 수수 의혹을 받고 있던 김 전 차관의 무혐의 처분 사유로 관련자들이 진술을 번복하는 등 일관성이 없고,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는 점 등을 들었다.

이후 2014년 7월 피해여성 이모씨가 별장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라고 주장, 김 전 차관과 윤씨를 검찰에 고소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지난해 1월 검찰은 김 전 차관에게 또 다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의 무혐의 사유로 동영상 속 여성이 고소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일각에선 검찰이 김 전 차관에 대한 소환조사 한번 없이 무혐의 처분을 한 것을 두고 부실수사라는 지적이 있었다.

<#4> 검찰 조사와 자살


영화 속 한결은행 석명관(권혁풍) 전 은행장은 미래자동차에 3000억원을 불법대출해 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17시간이 넘는 조사 시간동안 석명관은 묵비권을 행사한다. 서울지검 우장훈(조승우) 검사는 미래자동차 비자금 파일을 거론하며 석명관을 흔든다.

석명관은 협조와 묵비권 행사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휴대폰으로 동영상 하나를 전송받는다. 동영상 속에는 성접대를 받고 있는 석명관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이를 확인한 석명관은 조사실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다. 이후 이강희는 칼럼을 통해 석명관의 죽음은 검찰의 무리한 조사 때문이라고 몰고 간다.

실제 검찰조사를 받던 기업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사를 받던 관련자의 자살은 검찰에겐 치명적이다. 관련자의 자살 뒤엔 검찰의 무리한 강압 수사가 원인이 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꼬리처럼 따라붙는다. 또한 관련자가 자살하면 검찰조사는 흐지부지되게 마련이다. 동력을 잃는 것이다. 게다가 기업인의 자살에 다른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대중의 의혹어린 시선도 부담스럽다.

최근 일어난 롯데그룹 2인자 이인원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 자살 사건도 그렇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오전 7시10분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산책로의 한 가로수에 넥타이 두 개로 줄을 만들어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부회장의 차 안에서 발견된 A4용지 1매 분량의 자필 유서에는 ‘롯데그룹에 비자금은 없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부회장은 40년이 넘게 롯데그룹에서 근무한 정통 롯데맨이다. 2011년 전문경영인 최초로 롯데 부회장에 올랐을 만큼 오너가인 신씨 일가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이 부회장의 빈소를 두 차례 찾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40여년간 그룹 내 핵심 요직을 다 거쳤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최근 진행 중인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밝힐 주요 인물로 이 부회장을 지목해왔다.

어두운 일면 폭로 형식으로 터져
주필 파문, 부적절 발언 등 유사
 

이 부회장의 자살 소식이 알려지자 검찰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안 그래도 난항을 겪고 있는 롯데 수사가 또 다시 혼선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무리한 수사가 있었는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검찰은 “강압적인 수사는 없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검찰은 지난 1일, 이 부회장의 장례가 끝난지 하루 만에 다시 롯데그룹 수사를 재개했다. 일본 롯데홀딩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수백억원대 횡령 혐의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는 등 본격적인 수사가 다시 시작됐다.

<#5> 현실의 결말은?

영화에선 내부자가 된 우장훈 검사의 폭로로 이강희 논설주간, 장필우 의원, 오현수 회장은 일순간에 치부를 드러내며 몰락한다. 이후 교도소서 출소한 조폭 안상구(이병헌)가 변호사로 전업한 우장훈을 찾아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내부자들>서 설계자 역할을 맡았던 이강희는 교도소에 들어가고, 대통령 후보로까지 선출됐던 장필우 역시 정치인생을 마감한다. 오현수 역시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된다. 그 과정이 줄 없고 ‘빽 없는’ 검사, 3류 조폭에 의해 진행됐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큰 쾌감을 느꼈다.

그렇다면 현실에선 어떨까. 검찰은 언론과 정재계 등의 비리, 부정 의혹을 조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검찰이 제 역할을 할수록 언론, 정치, 기업의 검은 커넥션은 느슨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검찰이 그 같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내부자들> 속 안상구의 표현처럼 ‘권력의 개’로 전락했다는 조롱 섞인 비판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미 그들에 대한 기대치가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실은 때론 영화보다 훨씬 더 어두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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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