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세태> 열대야가 바꾼 밤문화 천태만상

밤새 좀비들처럼 ‘흐느적~흐느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반갑지 않은 손님 열대야가 찾아왔다. 불볕더위와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밤 문화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때아닌 특수에 새벽 시간 영업을 하는 점포들이 늘어난 것. <일요시사>에서 특별하게 열대야에 맞서는 사람들을 취재했다.

계속되는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열대야는 전날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 유지되는 현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일 최저기온이 2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무덥고 짜증 나는 밤을 말한다. 이에 저마다 목적지를 정하고 집을 나선다.

아예 술먹고
뻗어버리자?

매년 여름 인기를 끌었던 호프집과 영화관, 찜질방 등이 북적이는 것은 물론이고 시원한 마트에서 장을 보며 더위를 식히는가 하면 대형 서점에서 책을 읽으며 더위를 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동굴과 산으로 떠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매년 불볕더위로 인해 가장 큰 특혜를 누리는 업종은 편의점 및 주점업계다. 날씨가 더울수록 갈증 해소를 위해 시원한 맥주나 음료수, 아이스크림 등 차가운 음식을 찾는 발길이 늘어나기 때문. 한밤중 기온이 올라갈수록 이들의 매출도 함께 상승한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친구들과 만나 식사나 음주를 즐기는 일도 많아졌다. 실내 더위를 참기 힘든 열대야인 만큼 가정에서 저녁을 먹기보다 밖으로 나가 외식을 하며 찌는 더위를 달래고자 한다. 이에 고깃집이나 치킨집 등지에서도 1인분 주문 시 1인분 추가 증정 이벤트를 여는 등 열대야 고객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다.


강남구 논현동 아파트 단지의 한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회사원 한준탁(30)씨는 “너무 더워 몸이 늘어지는 것 같았다”면서 “오랜만에 일찍 집에 들어와 맥주 한 잔을 함께 하니 가족들도 너무 좋아한다”며 웃었다.

호프집·극장 등 전통 피서지 북적
시원한 대관령 인근 캠핑족들 붐벼

영화관의 심야 관람객도 크게 증가했다. 늦은 시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가족들과 에어컨 바람도 쐬고 영화도 관람할 겸 극장을 찾는 것. 평일 심야는 평소 한가한 시간대지만, 무더위 시즌엔 낮 못지않게 붐빈다.

최근에는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 식당들의 심야영업이 확대되면서 한밤중 소비자들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부인과 영화관을 찾은 회사원 김지만(28)씨는 “시원하고 쾌적해서 더운 줄도 몰랐다”고 즐거워했다.

여의도 한강 공원에도 돗자리를 펴고 강바람을 쐬거나 가벼운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로 붐빈다.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김상윤(31)씨는 “날씨가 너무 더워 더위를 식히러 나왔다”면서 “집에는 못 있겠다. 강바람이라도 쐬어야 살만하다”고 말했다.
 

남편과 13개월된 아들과 함께 나온 회사원 배유미(30)씨는 “종일 일하고 공원에 나오는 게 피곤하긴 하지만 더운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무더위가 시작된 지난달 하순 이후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10∼20%가량 늘었다. 시원한 곳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이곳이 최고의 피서지로 느껴진다.


대형 서점에는 독서를 위해 마련된 작은 의자와 난간도 설치돼있다. 책으로 빽빽한 책장 아래 자리를 잡고 독서 중인 사람들이 많다. 영화관과 마트, 실내 쇼핑몰처럼 대형 서점도 매출이 20% 가까이 늘었다.

일산에 있는 한 대형 서점은 야간에도 문을 닫지 않는 심야 책방을 운영할 계획이다. 저자와의 만남, 번역가와의 북 토크, 그리고 영화 상영 등 재미있는 즐길 거리도 다양하게 마련된다. 심지어 서점 내에 텐트까지 마련돼 이색 캠핑을 즐길 수도 있다.

심야 마트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마감이 진행될 시간에도 고객이 빠지기는커녕 북적거린다. 한 마트 직원은 “날씨가 더워지니까 야간에 고객들이 많이 오는 것 같다. 맥주를 찾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고 말했다.

마트 인산인해
빈손 쇼핑 늘어

직원 말대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주류코너다. 맥주를 구매하기 위해 마트를 찾았다는 직장인 김기원(43)씨는 “집도 근처고 올림픽 경기도 밤새 볼 겸 겸사겸사 맥주와 안줏거리 사려고 찾았다. 시원하고 좋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현아(24) 씨도 “친구들이랑 한강 가서 맥주 마시려고 마트에 들렀다. 마트에 오니까 시원하고 좋다”고 말했다. 집 근처 대형할인점을 찾은 신경식(49)씨는 “떨이로 파는 물건도 싸게 사고 모처럼 아내와 데이트 기분도 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대관령으로 캠핑족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한여름에도 주요 내륙도시보다 낮은 기온과 불쾌지수를 기록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주요 시·군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어선 날에도 대관령면은 27도를 기록했다.

평창군의 브랜드는 ‘HAPPY700평창’으로 평창의 평균 고도는 사람의 생체리듬에 가장 적당해 살기 좋다고 알려진 해발 700m이다. 특히 대관령지역은 대부분이 해발 700m 이상이어서 여름철 한낮에도 뜨겁지 않고 밤에는 서늘해 주민들이 긴팔을 입고 생활하기도 한다.

대관령면의 한 관계자는 “1년 중 에어컨은 1주일 정도밖에 가동하지 않는다. 동해안 주민들도 여름철 열대야가 있는 밤에는 더위를 피해 대관령으로 올라온다”고 말했다. 실제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캠핑족들이 대관령면의 한 휴게소로 몰려 차량 옆에 텐트를 치고 피서를 즐기는 모습도 진풍경이 됐다.

친구와 함께 휴게소로 피서 온 김정기(36)씨는 “직장이 강릉인데 열대야가 심할 때는 일부러 대관령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바로 출근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한여름에도 추울 정도다”고 말했다.

한여름에도 내부 기온이 10도 안팎을 유지하는 동굴은 최고의 피서지로 손색없다. ‘국민 동굴’로 불리는 ‘삼척 환선굴’은 연일 북새통이다. 1997년 10월 개방 이후 지금까지 총관람객 수가 1040만명에 달한다. 관람 안내서에 ‘우리나라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은 동굴’로 소개된다.

환선굴은 총연장 6.2㎞로 개방 구간만 1.6㎞다. 폭 14m, 높이 20∼30m의 동굴 입구에서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폭이 최대 100m까지 넓어져 보기만 해도 시원한 내부가 펼쳐진다. 우리나라 석회암 동굴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동굴 내부 온도는 10∼14도로 일 년 내내 일정하다.


잠 못 자는 밤 떠나자 ‘롸잇나우’
천연 동굴과 폐광 냉풍욕장 인기

전국적으로 농촌체험마을은 수두룩하다. 필요한 맞춤형 체험을 찾는 수고만 더한다면 재미도 느끼고 더위도 식히는 일거양득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태백 용연동굴’은 국내 동굴 중 가장 높은 해발 920m에 자리 잡고 있다. 평균 내부 온도도 9∼12도로 서늘해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길이 843m, 폭 50m의 동굴 내부에는 대형광장과 리듬 분수, 석순, 동굴산호, 종유석 등 풍부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2005년부터 입구 등 동굴 주변에 조성한 야생화공원은 시원한 날씨와 더불어 피서객들에게 여름 추억을 선사한다.
 

강원도 정선군 ‘화암동굴’은 지난달 23일부터 귀신소굴로 변했다. 한여름에도 10도 안팎인 천연동굴에 공포체험까지 더해져 ‘색다른 피서지’로 첫손가락에 꼽힐 만하다. 조명이 완전히 꺼진 동굴 속으로 작은 손전등만 들고 들어가는 화암동굴 야간 공포체험은 매년 9000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

강원도 동해시 도심 한가운데 있는 ‘천곡동굴’도 오싹한 공포체험 장소로 그만이다. 2014년부터 운영한 야간 공포체험이 소문을 타 여름철 무더위를 식히려는 피서객이 몰려든다.

최근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 42호인 ‘붉은박쥐’(일명 황금박쥐)도 나타나 아이들 체험 학습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충북 단양 석회암 ‘고수동굴’과 ‘천동동굴’도 매일 2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아 더위 나기 명소로 거듭났다.


자연환경을 그대로 살린 냉풍욕장이나 농촌체험마을도 이색 피서지에 이름을 올렸다. 폐광을 활용해 만든 충남 보령 청라면 ‘냉풍욕장’은 여름이 되면 바깥 온도와 10∼15도 이상 차이가 나 싸늘할 정도다.

피하는 게 상책
바람 찾아 고고

무더위가 시작되는 6월부터 9월까지 관광객이 몰리는데 주중에는 하루평균 500∼800여명, 주말에는 2000여명이 찾는다. 폐광 갱도 입구서 100여m 넘게 연결된 산책로를 걸으며 냉풍욕장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냉풍욕장을 찾은 직장인 김용승(54)씨는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폐광이 나오는데, 매우 이색적인 체험”이라면서 “한여름에 하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워 다시 밖으로 나가기 싫다”고 즐거워했다.

충북 영동 ‘농촌체험마을’은 다양한 체험활동을 내세워 더위에 지친 도시민을 유혹한다. 부담 없는 가격에 머물면서 뗏목을 타고 다슬기를 잡거나 복숭아·포도·블루베리 등 농작물 수확 체험도 할 수 있다.

영동군에만 농촌 마을 8곳이 있다. 각각 두부 만들기(원촌마을), 국악기제작(금도끼 은도끼 마을), 산나물 채취(옥륵촌마을) 등 독특한 체험을 내세웠다. 지난해 피서철에만 4만여 명이 농촌체험마을을 찾아 무더위를 날렸다.

전국적으로 농촌체험마을은 수두룩하다. 필요한 맞춤형 체험을 찾는 수고만 더한다면 재미도 느끼고 더위도 식히는 일거양득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 최저기온은 4일 26.0도, 5일 26.5도, 6일 26.6도, 7일 27.0도, 8∼9일 26.4도, 10일 26.1도, 11일 26.4도였다. 올해 서울의 열대야는 16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발생한 해는 1994년(36일)이었다. 2013년이 23일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지난 8일 무인 기상장비로 측정한 경남 창녕의 낮 최고기온은 39.2도로 40도에 육박하기도 했다. 이는 다만 기상청의 공식적인 통계자료는 아니다. 따라서 공식적인 올해 낮 최고기온은 지난 10일의 경주 38.2도였다.

우리나라에서 역대 사상 최고기온은 1942년 8월1일 대구 40도였다. 서울의 역대 최고기온은 1943년 8월24일과 1939년 8월10일 38.2도였다.

8월 내내…
한동안 찜통

이처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으면서 고온다습한 공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있는 데다 강한 일사가 기온 상승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불볕더위는 일단 16일 다소 주춤하겠지만 20일까지 전국 대부분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더위는 20일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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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