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권 ‘외부세력’ 음모론

말 안 들으면 ‘종북’ 취급한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현 정권의 ‘외부세력 개입론’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국책사업에 반대하는 무리가 나오면 귀신같이 외부세력을 색출해낸다. 정부와 여당은 외부세력이 시위를 이념 갈등으로 끌고 간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 측에서는 정부의 불통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정부와 여당이 종북으로 몰아 해결하려고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달 15일, 경북 성주군서 열린 사드 반대집회를 둘러싼 ‘외부세력’에 대해 “성주군민 외에 타지에서 그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첩보와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외부세력’의 기준에 대해서는 “성주군민 아닌 사람이라고 정의한다”고 말했다. 강 청장은 성주 출생으로 초·중·고를 성주에서 나왔더라도 타지로 간 사람은 성주군민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반정부 투쟁
전문 시위꾼?

지난달 21일, 청와대서 열린 NSC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북한은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방어조치인 우리의 사드배치 결정을 적반하장격으로 왜곡·비난하고,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면서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불순세력이 (사드 반대 시위에)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경찰청에 따른 외부세력으로 지칭된 사람은 박철우 민중연합당 서울시당 공동위원장, 이상현 전 통진당원, 손솔 민중연합당 공동대표, 변홍철 밀양송전탑대책위원장, 김찬수 대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대표, 김두현 사드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등이다.

이들 중 박 공동위원장은 민중연합당 공동대표로 옛 통진당 산하 민주수호청년특위에서 활동했고 손 대표는 지난 3월 흙수저당, 비정규직철폐당, 농민당 등 3개 당이 연합해 조직한 민중연합당의 공동대표로 옛 통진당 산하 대학생기구 조직원으로 활동했다.


경찰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이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나 주민 선동, 경찰과 마찰 유도, 조직적 퇴로 차단 등 좌파의 전형적 집회방식을 답습해 배후 조종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성주 집회 현장서 포착된 이들 3명은 사실상 옛 통진당 세력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수사당국은 성주에서 활동한 것으로 파악된 민중연합당 관계자들이 정당해산 절차를 거친 과거 통진당이 수평 이동한 것으로 판단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달 18일 황교안 총리 방문 당시 성주군에서 벌어진 폭력행위와 관련해 “소위 직업적 전문 시위꾼들의 폭력행위는 엄단해야 한다”며 수사기관의 수사를 촉구했다.

정 원내대표는 “총리에게 계란과 물병을 던지면서 폭력행위를 벌였다”며 “4대강, 제주 해군기지, 한미FTA 등 국책사업마다 직업적으로 다니며 폭력을 일삼는 이들의 행태를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국책사업 반대하면…외부세력 프레임 씌우기
전문 시위꾼 있다? “배후조종 가능성 높아”

김현웅 법무부장관도 성주 지역 시위에 대해 “외부세력이 있는지 여부는 경찰에서 수사 중인 것으로 안다”며 “지역주민 사이에 스며들어 폭력시위를 주동하는 세력이 있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보수단체 토론회서는 국책사업 추진 과정에 외부세력이 개입하면서 이해당사자 간 갈등과 논란의 핵심이 이념대결로 변질되어 간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달 29일, 보수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의 박주희 사회실장은 “국책사업 반대 집회마다 나타나는 전문 시위부대는 겉으로는 환경보존과 노동자 인권 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반정부·반미를 선동하는 위장된 분열조장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0년 제주 해군기지, 2013 밀양 송전탑 공사현장 등을 꼽았다. 그는 “국책사업 지연에 따른 직접 피해비용은 물론 과도한 보상, 갈등 후유증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초래된다”면서 “국책사업이 정치화로 변질돼 직접비 비용이 매우 커지는데 제주 해군기지의 경우 정치화 이후 비용이 정치화 이전 비용보다 약 370배 많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인영 한림대 교수는 “전문적 직업 시위꾼 등 제3의 세력이 개입할 때 사회갈등은 증폭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갈등해소 방안은 당사자 해결을 원칙으로 하되, 제3자의 개입이 필요할 경우 갈등 해결 능력을 갖춘 세력에 한해 법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드 사태를 두고 바른사회는 “정부가 주민들을 상대로 설득하는 대화창구가 어김없이 외부세력들에 의해 차단돼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국책사업 지연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하며 “북한 핵 위협 앞에 국민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결정된 이번 사드배치에도 결국 단골 국책사업 훼방꾼들이 등장한 게 아니냐”고 우려를 표했다. 보수단체·정부·새누리당은 하나같이 국책사업을 반대하는 세력을 외부세력으로 규정했다. 

‘종북’으로 몰릴까
식별 코드 만들어

또한 정부와 여당의 계속되는 외부세력에 대한 비판이 있고 난 뒤 최근 성주에서는 외부세력과 성주 군민을 구분 짓는 코드가 생기기도 했다. 외부세력 프레임에 갇혀 의견개진에 어려움을 겪던 투쟁위는 지난달 21일 상경 집회 때 외부인 개입을 막기 위해 거주지와 이름이 적힌 목걸이 명찰과 함께 파란 리본을 활용했다.

정영길 투쟁위 공동위원장은 “전체 군민 4만5000명 중 800명 이상 삭발을 하게 되는데 머리카락 길이가 또 하나의 식별코드가 될 것으로 본다”며 “순수한 군민만 삭발식에 참가할 수 있는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동참하려는 군민의 수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성주군민들은 오는 광복절(8월15일)에 대규모 삭발식을 열고, 삭발식 자체를 기네스북에 등재하기로 했다. 도희재 투쟁위 총무재정분과 부단장은 “사드배치 철회를 염원하는 군민들의 결집 된 힘을 삭발식으로 보여주고, 기네스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며 “각 단체와 읍면동 별로 100여 명이 신청해 2주 뒤인 삭발식 당일 815명 이상이 참가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외부세력 주장에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비롯한 50여 인권단체들은 지난달 19일 성명을 발표했다. 수사기관이 황교안 국무총리를 향해 달걀과 생수병을 던진 성주 군민들을 사법처리 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공안과 종북몰이 정국으로 몰아 비판 여론을 차단하고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성주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드배치 철회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에 대한 논의는 고사하고 몇 시간 차량에서 스스로 군민관의 소통 대신 고립을 택한 황 총리의 무능력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지난 1일 “사드배치에 반대하기 때문에 외부세력이라고 규정하는 박근혜 정권은 외부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도 외부세력론에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외부세력으로 격하한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지난달 18일 성주사드배치저지투쟁위원회 김안수 공동 위원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재복 공동위원장의 외부인 개입 발언에 대해 부인했다. 이 위원장은 “이번 폭력 사태의 원인은 외부인에게 있다. 우리 군민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외부인이 선동을 해서 시위가 과격해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김 위원장은 “공동위원장이 여럿 있다 보니 그런 말이 나갔다”며 “나도 모르는 젊은 사람이 더러 있는데 계란과 물병이 날아와서 그런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말해 이 위원장의 발언이 전체 투쟁위의 입장이 아님을 밝혔다.

경찰이 대대적인 색출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말에 김 위원장은 “안타깝다. 우리가 쓰레기장이나 발전소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아주 최첨단 무기체계를 갖다놓기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를 폭도로 보면서 수사를 시작하고 또 강압적인 수사를 하려고 하는 것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자꾸 외부세력이 와서 조직적으로 했다고 비쳐지는데 우리는 순수한 농업인”이라고 말했다.


반대 하면
외부세력?

정부의 외부세력 개입론은 이번 성주 사드배치 문제가 처음은 아니다. 국책사업에 시민들이 저항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프레임이다. 지난 2013년 밀양 초고압 송전탑 사태에서 권력의 대응이 그랬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을 도우러 오는 연대자들을 외부세력이라고 칭했다.

지난 2013년 10월 밀양 송전탑 공사가 재개되자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시간도 없고 대안도 없다"며 공사 재개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대도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홍 지사는 “국회가 구성한 전문가 협의체도 지중화나 우회송전에 대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며 “반대 주민들을 지원하는 세력을 ‘외부세력’으로 규정하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외부세력은 당장 추방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지에도 있었고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현장, 한진중공업 사태 현장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도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에 ‘종북세력(외부세력)’이 가세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2013년 10월 당시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밀양 송전탑 공사가 재개 된 와중에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 종북세력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과 일부 시민단체 등 외부세력이 가세해서 공사현장의 갈등이 격해지고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투쟁위 대대적 색출작업 한다
세월호·제주기지 때와 똑같다


그는 홍 지사와 마찬가지로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는 세력은 제주 강정마을과 한진중공업 사태, 쌍용자동차 등의 문제 때만 되면 나타나서 개입해 왔고,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갈등 조장에 앞장서왔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를 두고 외부세력을 거론했다. 지난 2014년 10월 새누리당 김 전 대표는 “국가 경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방”이라며 “일부 외부세력의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제주도민들이 막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의 발언을 두고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측은 성명을 내 “김 대표가 외부세력을 운운하면서 갈등을 키우는 핵심 세력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대 측은 “김 대표는 안보 장사하듯 ‘색깔론’을 들고 나와 저열한 이념공세로 갈등을 확산시켜온 평화 파괴 외부세력에 불과하다”고 강도 높게 지적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외부세력을 운운키도 했다. 지난 2014년 9월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세월호 특별법도 순수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야하고, 희생자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외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을 통해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태를 외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보장사
언제까지?

지난달 20일 더민주 이재정 원내대변인은 국회정론관에서 “정부와 여당이 또 다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이른바 외부세력론”이라며 “정부와 여당, 그리고 일부 언론은 권력이 추진하는 사안에 대한 갈등이 있을 때마다 외부세력론을 내세웠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대 목소리를 내는 소수자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연대와 저항을 차단하고, 고립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외부세력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활용해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외부세력 중심은 민중연합당?

민중연합당은 지난 2월13일 민중정치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발족했다. 흙수저당·농민당·비정규직철폐당 등 3당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이들은 정치주체 교체와 진보세력 단결을 강조하고 기존 여야 정당이 1%의 기득권세력만 대변해 ‘헬조선’을 초래했다고 강조한다. 지난 2월27일에는 정식 창당 대회를 열고 4차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정치사에서 청년들이 앞장서서 만든 최초의 정당’임을 강조하면서 ‘알바 권리’ ‘청년 실업 해결’ ‘국정교과서 폐기’ ‘세월호 문제 해결’ 등을 주장한다. 창당 이후 옛 통합진보당 광주지역 기초의원 8명이 민중연합당에 입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19대 국회의원을 지내다 의원직을 상실한 김재연, 김선동, 이상규 전 의원이 입당했다. 이상규 전 의원은민중연합당에 입당하면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 야당이 집권하려면 당당하게 종북 몰이에 맞서서 북한과 손잡고 평화 통일, 대화를 통해 정의와 평화가 물결치는 정당이 필요하다"라고 말해 논란이 가중됐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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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