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 문재인 앞날은?

숨고르기 끝…대권플랜 시동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최근 더민주 최대주주인 문재인 전 대표의 움직임이 숨 가쁘다. 대권을 잡기 위한 전방위 행보에 들어갔기 때문. 네팔에서 정신무장을 하고 온 그는 귀국 후 본격 대권행보에 나설 예정이다. 반면 문 전 대표가 자리를 비운 사이 더민주는 전당대회 분위기로 어수선한 데다 대선주자들까지 쏟아지고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문재인의 대권 플랜을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약 한 달간의 히말라야 및 네팔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더민주 주류계파의 수장이자 최대주주인 그의 귀국 이후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 문 전 대표는 네팔로 떠나기 전 자신의 SNS를 통해 “특전사 공수부대서 군복무 때 했던 ‘천리행군’을 떠나는 심정‘이라며 ”많이 걸으면서 비우고 채워서 돌아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식
숨 고르기?

지난달 7일,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지진 피해를 입은 지역을 방문해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을 위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래 전부터 네팔의 학교를 지원해온 한국인 후원자들로부터 방문 요청을 받았지만 총선 등으로 시간을 내지 못하다 이번 기회에 방문하게 됐다”며 네팔행 명분을 밝혔다.

하지만 당시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전 대표의 네팔행을 두고 '숨 고르기'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문 전 대표는 총선 이후 광주, 경북 안동, 충북 청주 등을 방문하면서 대선주자로서 광폭 행보를 보였다. 당시 이를 두고 지난 4·13 총선서 호남 전패를 한 문 전 대표의 행보가 너무 과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당 관계자는 네팔행에 대해 “문 전 대표의 네팔행은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대권 행보에 대한 구상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정치권의 분분한 추측을 남기고 비공식 개인 일정으로 소수 인원과 함께 네팔로 떠났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 박범신 소설가, 탁재형 PD 등이 동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네팔에서 지진 피해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봉사했고 누왈코트 지역 아루카카 중급학교를 찾아 구호 활동을 나무심기 자원봉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더불어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단체 간부들을 만나 특별한 관심을 약속키도 했다. 문 전 대표의 행보는 현지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문 전 대표가 네팔에 머무르면서 숨고르기를 하는 동안 더민주 당내에서는 범 친문세력으로 불리는 추미애·송영길 의원은 당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비주류에서는 원혜영 의원이 당권 도전을 저울질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네팔 잠행 기간 동안 전당대회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의 발언이 전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친문패권주의를 의식하는 모양새다. 이미 당 주류를 차지한 상황에서 당대표, 원내대표, 대권주자 모두 친문계에서 대놓고 독식하는 모습은 문 전 대표에게 득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구호 활동 네팔 잠행 마치고 귀국
여의도와 거리 두면서 행보 구상

하지만 그는 네팔방문 와중에 SNS를 통해 현 정부에는 쓴소리를 냈다. 지난달 24일, 문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국방 정책을 비판하면서 전시작전권통제권 환수 문제를 꺼내들었다.

그는 “종전 후 60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 군이 외쳐온 목표는 한결같이 자주국방이었다”면서 “아직도 작전권을 미군에 맡겨 놓고, 미군에 의존해야만 하는 약한 군대, 방산 비리의 천국, 이것이 지금도 자주국방을 소리높여 외치는 박근혜정부의 안보 현주소”라고 말했다.

이어 “60여년 간 외쳐온 자주국방의 구호가 부끄러운 2016년의 6·25”라고 힐난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2014년 안보협의회에서 지난해 12월1일로 예정됐던 전작권 전환 시점을 2020년대 중반으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날을 세워 반박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달 27일, 문 전 대표의 전작권 관련 발언에 대해 “6·25 전쟁 66주년을 기리는 날에 우리 군에 대해서 격려와 위로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군을 비하하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언사”라며 “북한이 대남·대미 위협을 강화하는 엄중한 안보 현실 속에서 한 때 국군통수권자가 되겠다고 나섰던 분이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서는 한마디 비판도 없이 우리 국군을 비하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정준길 광진을 당협위원장은 지난달 28일 “마음 비우러 간 사람이 뜬금없이 SNS로 할 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더민주 권오중 뉴파티위원은 문 전 대표의 발언에 힘을 실어줬다.

권 위원은 “상식적으로 맞는 말만 하신 거 아니냐”며 “내 집을 내가 지켜야지 남이 지킬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노태우정권 때부터 전시작전권, 평시작전권 환수 문제가 불거져서 94년도에 평시작전권은 환수했고, 전시작전권까지 2015년까지 환수하기로 했던 것을 지금 박 대통령이 들어와서 2020년까지 또 잠정 연기했다”며 이제 이 정도의 GNP 대비 국방비라든지 군사 수준으로 보면 우리도 이제 작전권 환수할 때가 됐다“고 꼬집었다.

밖에는 쓴소리
안에는 벙어리

앞서 문 전 대표는 구의역 사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문 전 대표는 네팔 출국 이틀 전인 지난달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누리당 정권이 추구하고 방치한 이윤 중심의 사회, 탐욕의 나라가 만든 사고인 점에서 지상(地上)의 세월호였다”고 주장했다. 또 “무책임한 무반성이 또 다시 구의역 사고를 낳았다”며 “공공성과 조화돼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잘못도 정부 여당의 잘못으로 호도하는 주장은 허무한 정치 공세”라고 반박했다. 새누리당 김현아 대변인은 “문 전 대표의 주장들은 하나같이 더민주 소속 박 시장이 외면해온 일들”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문 전 대표의 발언이 박 시장을 도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흠집을 낸 것이라는 평도 나온다. 구의역 사고의 1차적 책임이 박원순 시장에게로 쏠려있는 상황에서 구의역 사고를 세월호 사건에 빗댄 것 자체가 박 시장을 부담스럽게 했다는 것이다.

김 대변인은 “과연 자당 소속 서울시장을 보호하겠다는 것인지, 박 시장의 허점을 더 드러내겠다는 것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라며 날을 세웠다. 정치권에서는 구의역 사고를 부각시킴으로써 더민주 내 대권주자로 떠오르는 박 시장을 견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 전 대표는 전작권 및 구의역 사고와 같이 당 외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네팔에 머무르고 있을 때는 ‘신공항 백지화’ ‘보좌관 가족 채용’ ‘더민주 전대’ 등 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여기에 문 전 대표는 별다른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신공항 문제를 두고 문 전 대표는 부산서 더민주에 5석을 얻을 경우 가덕도 유치를 이끌겠다고 공헌한 바 있다. 5석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정이 났기 때문에 '가덕도 약속'을 지키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대선을 앞두고 ‘표의 확장성’ 면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귀국 후에는 신공항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가족채용 문제로 시끄러운 같은 당 서영교 의원 사태 관련해서도 자칫 당에 입김을 넣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책 발간·북 콘서트 예상
대권주자 견제…문재인식 해법은?

앞서 문 전 대표는 더민주 부산시당 당원·시민과 함께 나선 금정산 등산에서 “오는 8월 더민주 전당대회 전까지 중앙정치와 거리를 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전당대회 이후에는 정권 교체를 위한 어떠한 역할도 마다치 않겠다”고 밝혀 때가 되면 대권 행보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 전망이다.


해외서 온라인으로 정치적 발언을 쏟아낸 그가 귀국 후에는 오프라인을 통해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나설 전망이다. 가장 먼저 문 전 대표가 책 발간과 함께 북 콘서트를 발판 삼아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문 전 대표가 내년 대선 준비의 일환으로 이르면 8월 중으로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언론을 통해 밝혔다. 그는 지난 2013년 12월, 18대 대선 후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을 발표했다.

이 책은 대선 실패 이후 자기 성찰과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책을 통해 자신의 대선 패배의 이유 중 하나로 ‘평소의 준비 부족, 실력 부족’이라고 평했다. 이어 또 다른 패배의 원인으로 ‘우리 안의 근본주의’를 지적했다. 당시 북 콘서트에는 이번 네팔행에 함께했던 박범신 소설가도 참석했었다.

과거의 북 콘서트 경험을 다시 한 번 살려 대선이 1년5개월여 남은 현 시점에 세몰이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문 전 대표 측근은 “예전부터 내부에서 책을 발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왔던 것은 사실”이라며 “네팔에 다녀온 내용을 책으로 써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2013년 때처럼 뭐라도 해야 한다는 다양한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책의 내용은 단순한 네팔 방문기를 담을지, 미래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내놓을지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복잡한 문재인
김종인 잡아라


문 전 대표가 이번 해외활동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장소는 부탄이다. 부탄은 2010년 유럽 신경제재단(NEF)이 조사한 세계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국가로, 국민소득은 높지 않지만 양극화 현상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국민소득은 높지만 양극화는 극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상황인 셈이다. 부탄행을 두고 국민이 행복한 나라, 양극화가 심화된 경제성장보다는 국민 대다수의 행복을 우선하는 나라를 찾아 나섰다는 게 문 전 대표 측의 설명이다.

문 전 대표의 귀국에 발맞춰 더민주 내 당권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진 모습이다. 더민주는 올 초 까지만 해도 뚜렷한 대권 주자가 보이지 않자 문 전 대표의 대세론이 득세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권후보가 결정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총선이 끝나자 대권에 도전장을 내민 이들이 대거 등장했다.

먼저 당권 도전이 점쳐졌던 김부겸 의원은 최근 당 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남은 것은 정권교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라며 “지금부터 그 역할을 진지하게 숙고하겠다”고 말해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화했다.

‘좌(안)희정 우(이)광재'의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나는 특정 후보의 대체재나 보완재가 아니다”라며 독자적으로 경쟁에 나설 뜻을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권 도전도 점쳐진다. 박 시장은 아직까지 ‘대권보다 시정이 먼저’라는 원론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5월 광주에서 했던 강연을 통해 “서울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며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더민주 대권 주자가 쏟아지는 상황은 문 전 대표에게는 '양날의 검'이다. 굵직한 대선 주자들 틈에서 경선을 승리해 대권주자로 결정된다면 더 큰 파급력을 기대할 수 있지만 자칫 경선에서 패배한다면 대선을 위한 5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더민주 김종인 대표와의 껄끄러운 관계도 대권 행보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문 전 대표는 백의종군의 뜻을 내비치면서 김 대표에게 전권을 쥐어줬다. 하지만 총선과정의 불협화음은 총선이 끝난 뒤 김 대표가 전대 이후 물러나는 수순을 밟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김 대표는 시한부 대표직을 유지하면서도 더민주 내 대권주자들이 쏟아지는 현 상황을 그렸다. 그는  줄곧 더민주 내에서 대선주자 간 경쟁의 판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부겸 의원, 박원순 시장, 안희정 지사 등을 만나 대선후보 경쟁에 나서줄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진다.

중요한 사실은 김 대표의 의중이 더민주 내 대권판도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김 대표와의 관계 재설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 대표가 전대 이후 본격적으로 킹메이커 역할을 맡게 되면 김 대표의 의중에 따라 대권 판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돌아와
대권 잡는다?

문 전 대표의 귀국 후 행보에 대해 측근은 “(문 전 대표가) 한국에 와서 얘기를 들어보고, 밖에서 고민한 내용을 들어봐야 한다”며 “항간에서 나오는 책 발간도, 귀국 후 행선지도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더민주 관계자 또한 “현재 드러난 건 문 전 대표가 네팔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부탄에서 국민행복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뿐”이라며 “부재 기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종합적으로 나중에 평가하지 않겠냐”고 밝혔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치인 토크콘서트 왜?

정치인들이 토크콘서트를 통해 인기몰이를 노리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토크콘서트를 통해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히 청년세대들과 거리감 없이 밀착하는 청춘콘서트는 기성 정치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안 전 대표의 토크콘서트 이후 정치인들은 활발히 정치콘서트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가 총선 패배 이후 과천서 청춘공감 토크콘서트에서 강연을 했다. 이 대표는 멘토로서 최근 취업난으로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제시하고 평소 궁금한 사항을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토크콘서트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모양새다.

토크콘서트를 두고 한 정치전문가는 “정치인이 정치콘서트니 토크콘서트니 하며 교육을 빙자해 돌아다니고 있다”며 “교육현장이 정치인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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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