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천 성향'으로 본 별별 페티시 세계

은밀한 욕망, 누구나 다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박유천 성폭행 사건. 아직도 관련 루머들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돼 퍼져나가고 있다. 이 사건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키워드를 뽑아보자면 단연 ‘화장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박유천이라는 인기가수와 화장실이라는 공간의 ‘케미’에 사람들은 흥분했다. 과거 박유천의 화장실 발언을 모아 만든 게시물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져나가기까지 했다. 일각에선 그에게 ‘화장실 페티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특정 물건을 통해 성적 쾌감을 얻는다는 뜻의 페티시. 이번 박유천 사건을 통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룹 JYJ 멤버 박유천(30)이 지난달 4일, 서울 강남구 한 유흥주점 내 화장실에서 여성 A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달 10일 고소당했다. 이후 자신도 A씨와 같이 당했다는 여성들이 3명 늘어나 모두 4명의 여성으로부터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다.

그곳만 가면
‘찌릿찌릿’

피해자들은 각각 유흥주점 내 화장실과 박유천의 집 화장실, 가라오케 화장실 등에서 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박유천이 화장실에 대한 ‘페티시’(특정 물건을 통해 성적 쾌감을 얻는 것)라도 있는 것 아니냐며 각종 희롱과 농담이 쏟아져 나왔다. 방송에서도 박유천의 화장실 페티시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한 게스트는 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심리 분석가가 보는 박유천에 대한 분석’이라는 글을 예로 들며 화장실 페티시 가능성을 제기했다. 글에는 “박유천이 2008년 해외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 뷰티풀 단어에 연상되는 3가지 중 하나로 화장실을 꼽았다. 그리고 그림이 공개됐는데 그 그림에도 자기와 함께 변기가 꼭 그려져 있다”고 쓰여 있었다.

게스트는 “아름다운 '뷰티풀'이라는 단어를 듣고 어떻게 ‘대화’ ‘한숨’ ‘화장실’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냐”며 “그러니까 화장실이라는 것에 대해서 원래 평소부터 굉장히 집착하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게 왜 생기냐면 어렸을 때 우리가 처음에는 화장실을 아무도 못 가리잖냐. 그런데 화장실을 가리는 과정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너무 심하게 압박을 받아 트라우마가 남는 경우 화장실 변기를 보거나 만져야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비정상 애착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단순히 웃어넘길 일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아직 혐의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나 피해자가 저항하기 힘든 좁은 공간인 화장실에서 이뤄진 범행이라면 그 죄질이 더욱 나쁘다는 견해도 있었다.

성폭행 사건 모두 화장실 발생
특정 장소에 집착 가능성 제기

최근 강남역 인근 주점 건물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등 강력사건의 영향으로 여성들에게 화장실은 공포의 공간이 됐다. 하지만 강력사건은 화장실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박유천 사건을 지나치게 공간에 한정해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한 관계자는 “강력사건이 화장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며 “집에서도, 등산로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어디서든 여성이 안전한 세상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한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화장실은 남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이라는 점 외에 큰 의미가 없다”며 “화장실이 좁고 움직이기 어려운 장소라는 점은 말이 되지만 위험한 물건이 많은 좁은 공간은 그 외에도 많기 때문에 화장실이 여성을 제압하기 쉬운 공간이라는 점은 사후설명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 넘기면…
변태 취급

페티시는 흔히 대물성욕(對物性慾) 또는 배물애(拜物愛) 등으로 번역한다. 하지만 1980년 후반 마광수 교수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책을 통해 ‘여성의 빨갛고 긴 손톱’에 대한 열광을 고백한 이후 페티시라는 용어는 급속히 대중화돼 따로 번역되지 않고 그대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페티시는 총체적인 이성의 육체나 이미지가 아니라 신체의 특정 부분이나 특별한 물건을 통해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경향을 말한다. 페티시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성욕이 아닌 일종의 변태성욕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정도의 페티시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 정설이다. 우리나라보다 성적으로 개방된 서구의 일부 문화권에서는 페티시가 성기 성욕보다 오히려 탐미적이고 고급스러운 취향인 것처럼 대접받기도 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귀걸이 페티시, 하이힐 페티시, 스타킹 페티시, 스모킹 페티시 정도는 가벼운 취미생활처럼 여겨진다.

여성의 경우 손가락 페티시가 가장 흔하고, 남성의 경우에는 발(또는 발가락) 페티시가 가장 흔한 케이스다. 미국의 한 발 페티시 동호회에서는 샌들 사이로 내비치는 여성의 앙증맞은 발가락을 ‘친견’하고자 매년 여름 해안도로를 자전거로 순회하는 특별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발 페티시만 하더라도 그 세부 취향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여성의 발만 보면 무조건 흥분하는 형, 운동 후 땀에 젖은 여성의 발에만 열광하는 형, 진하게 매니큐어를 바른 발가락에만 집착하는 형, 섹스할 때만 발가락에 열중하는 형 등이다.

침대 위에서 발을 사용하는 것을 특별히 ‘풋잡(Foot Jobs)’이라고 통칭한다. 발을 애무하는 것, 발을 이용해 애무하는 것이 모두 풋잡이다. 은밀한 공간에서의 풋잡은 파트너의 동의만 있다면 오히려 성생활에 활력을 주는 건강한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

노골적인 시선 때문에 인간관계가 왜곡된다거나 직장 여직원의 발을 갑자기 만진다거나 하는 식의 무례한 행동으로 발전하지만 않는다면 발 페티시 정도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이런 페티시 성향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라면 그때부터 문제가 된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집착과 반응의 정도가 강해진다면 그 변화 추이와 현재 상태 등을 스스로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몰카 공유 등
범죄로 이어져

이러한 페티시가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 단계로 발전할 소지도 없는 게 아니다. 집착 정도에 따라 페티시는 유미적이고 은밀한 성적 취향이 아니라 본인과 주변인들에게 매우 위험한 성적 취향이 될 수도 있다. 페티시적 성향을 자각하는 순간부터는 무조건 거부하거나 무조건 합리화하지 말고 스스로를 신중히 바라보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페티시 성향이 범죄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로 지난해 일어난 ‘페티시 카페’ 사건이 있다. 지난해 10월, 스타킹 신은 여성의 다리나 치마 속 등 여성의 신체를 몰래 찍어 인터넷에서 공유한 ‘페티시 카페’ 회원 수십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A 페티시 카페 운영자 박모(22)씨와 카페 회원 등 61명은 2014년 7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전국 각지에서 휴대전화 카메라 등을 이용해 찍은 여성의 신체 특정 부위 사진을 A 카페에 올려 공유·유포했다. 당시 A 카페에는 이성의 신체 일부나 옷가지 또는 소지품 따위에서 성적 만족을 얻는 페티시즘(fetishism)에 관심이 있는 23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 카페의 ‘직접 찍은 사진 게시판’ 등에는 페티시즘 관련 몰카 사진이 1만8000여장이나 올라와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단순히 페티시즘에 관심이 있는 것은 개인의 성적 취향으로 존중받아야겠지만, 타인의 신체를 성적 목적으로 몰래 촬영하는 행위는 범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성적 쾌감’ 종류만 수십가지
동호회서 ‘이벤트’ 열기도

카페 게시판에는 몰카 잘 찍는 법, 범행하다 걸렸을 때 대처법 등 글도 있었다. 조사 결과 이 카페 회원 안모(26)씨 등 2명은 공항과 클럽 등 여자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버려진 스타킹을 모아 카페 게시판에 올린 뒤 원하는 회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카페 운영자 박씨는 회원등급을 군 계급 체계를 따라 훈련병, 부사관, 위관, 영관, 장군, VIP 등으로 분류하고 등급이 높을수록 더 선정적인 사진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카페 회원들은 경찰조사에서 몰카가 잘못된 행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비공개 카페에서 공유하는 것이라 괜찮을 줄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전 어느 유명가수가 악성루머에 시달린 적이 있다. ‘교복 페티시’를 가지고 있는 그가 차에 여자 교복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입힌다는 내용의 루머였다. 그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이를 해명했다. 그는 “난 아내와 역할 게임을 자주 한다. 간혹 여고 교복을 입게도 하는데 어느 날 세탁소에 맡기기 위해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 두었다가 그게 사람들에게 발견된 이후 그런 소문이 났다”면서 “난 결백하다. 그 교복은 내 아내에게만 입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저서에서 “나는 새하얀 침대보만 있으면 변강쇠가 될 수 있다”라고 밝히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침실은 항상 흰색 침대보만을 고집한다는 어느 유명 심리학과 교수도 있고, 대부분의 남성들이 <스타워즈> 주인공인 레이아공주에 페티시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레이아공주의 헤어스타일로 침실에 들어섰던 어느 드라마의 여주인공도 있다.

이들 모두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자신의 아내 또는 애인과의 보다 나은 관계를 위해 들인 노력들을 아무도 손가락질할 수 없다. 물론 아주 명백히 비정상인 경우도 있다. “16살이라는 특정한 나이만 보면 참을 수가 없어서 단골 룸살롱에 마담이 슬쩍 알려주면 반드시 들른다”고 얘기하던 어느 대기업의 중역.


평소 성욕이 별로지만 지하철만 타면 성욕을 참을 수 없어 더듬지 않을 수 없다는 성추행범, 미성년자에게 페티시가 있다며 범죄는 저지를 수 없으니 아동 포르노 사진을 모은다는 아동성애자,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좋다며 상대를 합의 없이 구타하는 사디스트. 이건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며 정신병 혹은 범죄에 해당한다.

많이 개선됐으나 아직 페티시에 대한 인식이 좋은 것은 아니다. 페티시는 곧 변태로 통하던 시대보다는 우리나라가 그만큼 성적으로 많이 개방됐으며 성생활의 가치나 기쁨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성생활에 활력
이벤트 활용도

변태가 되지 않는 선에서 페티시즘을 즐기고 싶다면 항상 현대의 사회적 통념 속에서 기준을 세우면 된다. 한 심리학자는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고 아내 혹은 애인과 쌍방 합의된 조건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페티시를 찾는다면 더더욱 나은 성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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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