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조희팔, 끝나지 않은 이야기

살았어도 살면 안 되고 죽었어도 죽으면 안 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이 ‘단군 이래 최악의 사기꾼’ 조희팔의 사망 논란에 대해 “사망한 것이 맞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검찰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조씨가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라며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가 조희팔 사망 논란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조명해 봤다.

대구지방검찰청 김주원 1차장검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조희팔 사건’ 브리핑에서 “다각적인 수사 결과를 종합할 때 조희팔이 사망한 것으로 판단돼 공소권 없음 처분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번 브리핑을 끝으로 재수사 발표 이후 23개월간 이어진 조씨 관련 수사를 종결했다. 이번 발표를 통해 ‘조씨는 2011년 12월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재확인 해준 셈이다.

의혹 너무 많아
피해자 “못믿어”

검찰에 따르면 조씨 일당은 2006년 6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의료 건강보조기구 대여업 등으로 고수익을 낸다고 속여 투자자 7만여명에게서 약 5조원을 가로챘다. 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유사수신 사기 사건이다.

조씨는 사기 행각이 드러나자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해 도주한 뒤 조선족으로 신분을 세탁해 숨어 살았다. 그러다 2011년 12월18일 밤 10시쯤 중국 웨이하이의 한 호텔 객실에서 갑자기 구토를 하며 쓰러졌다. 조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다음날인 19일 0시15분 사망했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장례식 동영상 위조 의혹 ▲사망증명서에 직인이 없는 점 ▲조씨를 봤다는 목격담 등 근거를 들어 조씨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주장한다.


조씨의 유족들은 조씨가 사망한 직후 장례식을 치르면서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경찰도 동영상을 근거로 조씨가 사망했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동영상을 보면 관의 덮개가 유리로 돼 있어, 조씨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방송 당시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장)은 종합편성채널 JTBC 프로그램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에 출연해 “(조씨가) 죽었다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표 의원은 앞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조씨의 장례식 장면을 재연한 적이 있다. 피해자들은 촬영된 장례식 장면이 편집 등 위조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직인이 없어 진위 논란이 있는 사망증명서와 관련해서도 “사망증명서에 적힌 조영복(조씨가 중국에서 사용한 가명)이 진짜 조희팔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도 했다. 피해자들은 조씨의 사망증명서에 직인이 없는 것을 두고 위장 사망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대 다단계 사건…중국 도주로 흐지부지
검찰 23개월 재수사 핵심 없이 대충 종결

여기에 사망 이후에도 여기저기서 조씨를 봤다는 목겸담이 쏟아지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조희팔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중국 칭다오의 한 골프장에서 조씨의 가명인 조영복이라는 이름이 2011년 이후 2013년까지 총 11번이 등장하는 것을 확인했으며, 조씨가 자주 가던 것으로 알려진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 단골식당에도 2015년 초까지 그가 들렀다는 종업원의 제보가 있었다.

피해자들은 이 같은 의혹으로 검찰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씨 사건 피해자 모임인 ‘바른가정경제실천을위한시민연대’(이하 바실련)는 “검찰이 강태용 검거를 전후로 서둘러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검찰은 피해자들이 제기한 조씨 사망 의혹 관련 근거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조씨 사망 직후 가족이 보관 중이던 조씨의 머리카락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가족과의 유전자 일치 여부를 분석했다. 검찰은 유전자가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서 조씨의 사망을 목격했다는 측근과 관련해서는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2명 모두 진실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다. 또한 내연녀를 비롯 조씨의 장례식에 참여했던 지인들의 일관된 진술, 사망 직전 조씨를 치료한 의사의 거짓말탐지기 반응 등을 들어 조씨의 사망설에 힘을 실었다. 검찰은 중국인 의사가 사망한 환자를 보고 조희팔이라고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사망, 이번엔 진짜?
증거 없이 마무리

이어 조씨 장례식 동영상과 관련, 대검찰청 과학수사부가 감정한 결과 “편집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직인 여부 문제로 논란이 됐던 사망증명서와 관련해서는 “중국에서는 타살 혐의가 있는 경우에만 직인을 찍는다”고 설명했다. 조씨의 죽음이 타살이 아니기 때문에 직인이 없어도 사망증명서가 가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골프장 목격담, 농장 목격담 등에 대해서도 “모두 조희팔이 아니었다”며 못을 박았다.

한편 검찰은 조희팔 사건으로 “피해자 입장에서 봤을 때 피해금액 규모는 8400억원대”라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 일당이 저지른 범죄 총매출액은 5조715억원에 달하고 이 중 투자자 수익금조로 4조8700억원을 지급해 수익금은 2900억원이다. 이어 범죄 수익금 추가 환수와 관련해서는 “범죄 수익 추적으로 720억원을 확보했고, 232억원에 대해 추징 보전 명령을 받아뒀다”고 밝혔다.

재산 분배 문제는 “피해자 수가 너무 많고 피해자들끼리 얽혀있는 것도 많아 관계가 복잡하다”면서 “민사 절차에서 정리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검찰이 여러 근거를 들어 조씨의 사망을 확정 발표했지만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맹탕 수사’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이 2012년 5월 조씨가 사망했다고 발표하면서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던 사건은 2014년 7월 ‘조희팔 고철사업 투자금이 은닉자금인지 여부를 다시 조사하라’는 대구고검의 지시에 따라 다시 떠올랐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조씨의 범죄 수익금을 숨기는 데 가담했거나 은닉 재산을 착복한 관계자 등 20여명을 기소했다. 이 가운데는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15억8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대구지검 서부지청 오모 전 서기관과 9억원을 받아 기소된 대구지방경찰청 권모 전 총경 등도 포함돼 있다.

오 전 서기관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9년을 선고 받았고,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권 전 총경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피해 보상금?
턱없이 부족해

검찰의 조희팔 사건 수사는 조씨 조직의 2인자로 알려진 강태용이 중국에서 검거되면서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됐다. 강씨는 조씨를 제외하고 조직의 실체를 가장 많이, 잘 알고 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랬기에 조씨의 사망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포함해 정관계 로비 의혹, 비호세력의 존재 등 그간 감춰졌던 부분이 드러날 것으로 봤다. 하지만 2년여간의 검찰의 재수사는 이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검찰은 강씨를 검거하고 기존 수사팀을 보강해 전담 수사팀까지 구성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대검에서 계좌 추적 전문수사관까지 지원받아 자금 흐름 추적에 나섰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여기에 강씨를 검거한 이후 추가로 40여명을 기소하긴 했지만 조씨의 아들, 내연녀 등 상당수는 1차 수사 때 이미 조사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조씨의 내연녀는 조씨가 2008년 중국으로 밀항하기 전 가방 한 개를 맡긴 인물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봤으나 역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가방 역시 실체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비호세력에 대한 수사도 지지부진하긴 마찬가지였다. 조씨 일당은 그간 도피 행각을 벌이면서 수사기관 내부 정보를 몰랐다면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대처를 보여왔다. 특히 밀항 당시에는 해경이 제보까지 받은 상태였음에도 조씨 일당을 체포하지 못하자 뒤에 비호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검찰이 조희팔 사건에 연루됐다고 파악한 전·현직 검찰·경찰 관계자는 8명이다. 피해자 수나 피해 금액에 비해 초라한 숫자다. 수사기관의 부실한 실적은 ‘꼬리자르기’ 의혹까지 더해져 수사의 신뢰도를 낮추고 있다. 사건에 깊숙이 개입돼 있는 관계자를 보호하기 위해 몇 명을 쳐내는 수준에서 사건을 급하게 마무리 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는 게 피해자 단체들의 시선이다.

여전한 사망 의문 생존 가능성
피해자 투자금 5조 다 어디로?
정관계 로비의혹도 이대로 묻혀


사건과 관련돼 구속된 인물의 면면을 보면, 조씨의 수족 노릇을 했던 전직 경찰도 있어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다. 대구지방경찰청 조희팔 사건 특별수사팀이 검거한 임 전 경사는 2007년 6월 경찰에서 파면된 뒤 조씨 일당의 업체에서 전무직을 맡아 월 500여만원의 판공비를 받으며 사기 행위를 방조한 혐의를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임 전 경사는 조씨 일당이 운영하던 업체가 경찰에 고소‧고발이 들어가면 인맥을 이용해 수사 진행상황을 파악해 대처하는 창구역할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임 전 경사는 조씨 일당에게 1억원의 뇌물을 받고 수사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구속됐던 정모 전 경사를 통해 강씨를 소개받은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강씨의 손길은 검찰에도 닿아있었다. 서울고검 김광준 전 검사는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강씨 측으로부터 2억7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아 7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김 전 검사는 강씨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강씨가 검거된 이후 그가 가진 로비리스트에 검경 관계자들이 떨고 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발표에서 조씨 사망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비호세력, 정관계 로비의혹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바실련 측은 지난달 29일 ‘검찰, 대국민 우롱 중단하고 특검 설치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검찰 수사 발표를 강력히 비판했다. 바실련은 성명서에서 “검찰이 성역없는 재수사를 펼치겠다고 했으면서 결국 실질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납득할만한 결과를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사명감을 갖고 어떤 외압도 없이 수사를 전개했다면 이 같은 졸속수사 발표가 가능했겠느냐”고 검찰 수사 결과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아울러 바실련은 “조희팔이 죽은 것으로 발표한 것은 조희팔에게 면죄부만 쥐어주는 꼴”이라면서 “생존의 근거가 없기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재수사 왜 했나
논란 계속될 듯

피해자 단체뿐만 아니란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조씨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검찰의 발표 이후 네티즌들은 “수사를 제대로 했는지 의심스럽다” “(조희팔이) 어딘가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것” 등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한 네티즌은 “(조희팔이) 죽은 걸로 돼야 살 사람 많을 것”이라며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해 비꼬기도 했다. 사회에 넓게 퍼진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지속되는 동안 조희팔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남자’로 계속 망령처럼 우리 곁을 떠돌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조희팔 사건일지
 
▲ 2008.10 = 경찰, 조희팔 일당 수배
▲ 2008.12.09 = 조희팔 충남 태안군 마검포항에서 중국으로 밀항
▲ 2012.05.21 = 경찰 ‘조희팔 2011년 12월 중국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 발표
▲ 2012.09.07 = 경찰 중국에서 조희팔 일당에게 골프 접대받은 정모 경사 구속 영장
▲ 2012.11.19 = 사건 수사 무마 청탁으로 2억7000만원 받은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 구속
▲ 2012.11.26 = 경찰 중국 공안에 조희팔 생존 여부 재확인 요청
▲ 2014.12·18 = 검찰 조희팔 1200억원대 은닉재산 확인
▲ 2015.01.26 = 사건 수사 무마 등 명목으로 10억원대 돈 받은 오모 서기관 구속기소
▲ 2015.09.16 = 검찰 조희팔 불법 자금 1억원 받은 김모 전 경위 구속기소
▲ 2015.10.02 = 검찰 조희팔에게 뇌물 받은 권모 전 총경 구속기소
▲ 2015.10·10 = 조직 2인자 강태용 도피 7년 만에 중국 현지 공안에 검거
▲ 2015.10.13 = 경찰 강태용 측 뇌물 1억 받은 정모 전 경사 중국 광저우서 검거
▲ 2015.10.31 = 조희팔 조직 임원으로 범행을 방조한 혐의로 전직 경찰 임모씨 구속
▲ 2015.11.25 = 검찰 범죄 수익금 은닉한 조씨 아들과 조씨 내연녀 김모씨 등 구속 기소
▲ 2015.12.16 = 강태용 국내 송환
▲ 2016.04.22 = 조희팔 조직 뒤를 봐준 명목으로 5000만원 받은 곽모 경위 구속 기소
▲ 2016.06.28 = 검찰 최종 수사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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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