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에 빠진 아이들 실상

무슨 돈으로…교복 입고 베팅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도박이 극성이다. 19세 이상만 가능했던 도박은 이미 그 경계선이 무너진 지 오래다. 청소년들의 도박은 절도, 사기, 폭행 등의 범죄로도 이어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도박을 하나의 ‘놀이’ 정도로 여기는 청소년들은 중독에 있어서도 위험 수위가 높다고 평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도박시장은 연간 100조 이상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도박시장이 큰 성장을 이루게 된 계기로 인터넷의 영향을 지적했다. 포커나 고스톱, 머신과 같은 유기구형 도박을 했던 과거와 다르게 현재는 인터넷의 발달로 불법 토토, 사다리 도박 등이 쉽게 행해지게 됐다. 누구나 도박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청소년 역시 쉽게 도박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인터넷·스마트폰
발달로 쉽게 접해

한국도박관리문제센터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중 70%는 돈을 걸고 내기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의 경우 중독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해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도박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놀이나 오락으로 치부한다. 특히 스마트폰의 발달은 청소년이 도박을 접하게 하는 매개체가 됐다. 검색 몇 번이면 쉽게 도박사이트에 접근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경우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가입이 승인돼 손쉽게 도박을 할 수 있다.

청소년 도박문제를 지적한 한 교수는 “청소년은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라며 “도박 역시 친구가 도박을 하면 따라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도박의 재미에 매료되기 시작한 청소년은 곧 중독으로 이어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청소년 사이에서 도박이 중독에서 멈추지 않고, 2차 범죄로 이어진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도박중독에 빠진 중학생 A군은 1000만원 이상의 도박 빚으로 힘들어하다 인터넷 사기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자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처음에는 용돈 용도의 소액으로 도박을 하다가 점차 늘어가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절도, 사기 등으로 도박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A군은 현재 도박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문제는 A군과 같은 처지에 빠진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다.


청소년들이 빠져있는 도박의 종류를 살펴보면 예전에 성행하던 판치기는 ‘애교’ 수준이다. 중학생 B(14)군은 ‘달팽이 경주’를 즐긴다. 달팽이 경주는 경마와 비슷하다. 경주마에 돈을 걸듯 달팽이에 돈을 걸고 배당금을 받는다. 달팽이가 실제로 경주를 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달리는 달팽이를 응원할 뿐이다.

사행성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
1000원으로 시작해 1000만원까지

B군은 수업시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책상 밑에 숨긴 채 ‘사다리 게임’을 한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승패가 결정된다. 스마트폰 화면을 한두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틈날 때마다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다른 중학생 C(15)군은 인터넷 ‘내기 방송’에 푹 빠져 있다. 한 판에 100만원이 오가는 윷놀이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BJ(방송 진행자)가 던진 윷가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C군은 “다른 사람이 돈을 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직접 내 돈을 건 게 아닌데도 짜릿함을 느낀다”며 “경마장을 찾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D(18)양은 하루에도 서너 번 희비가 엇갈리는 경험을 한다. 스마트폰 게임에 필요한 ‘확률형 아이템’ 때문이다. ‘뽑기’와 비슷한 확률형 아이템은 구입하기 전까지 내용물을 알 수 없다. 원하는 아이템이 한 번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심코 뽑다 보면 한 달 동안 모은 용돈이 통째로 사라지기도 한다. D양은 “아이템을 수십만원어치 사는 친구들도 있다”며 “어울려서 게임을 하려면 ‘현질’(현금 구매를 뜻하는 속어)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사실상 도박과 다를 바 없다는 지탄을 받아왔지만, 현재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지난해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 구성 비율, 획득 확률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절도 폭행 사기
2차 범죄 연결


스포츠 토토 또한 청소년 도박의 단골메뉴다. 고등학생 E(17)군은 1년 넘게 불법 스포츠 토토에 빠져 있다. 호기심에 5000원씩 몇 번 걸었는데 맞아떨어졌다. 요즘에는 한 판에 10만∼20만원을 ‘베팅’하기도 한다. 같이 판돈을 거는 친구도 생겼다. E군은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축구나 야구, 농구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도 한다.

고3 수험생 F(18)군은 불법 스포츠 토토로 인해 가출을 결심했다. 평범한 학생이던 그는 ‘토토’로 수십만원에 이르는 돈을 따는 친구가 내심 부러웠다. 그렇게 토토의 세계로 빠져든 F군은 용돈을 쪼개 1000원, 2000원을 걸었는데 재수가 좋았다고 한다. 갖고 싶던 신발을 가질 수 있었고, 친구들에게 ‘한턱’ 쏠 수도 있었다.

돈을 따는 맛을 알아버리면서 F군은 점점 도박에 빠져들었다. PC방 컴퓨터 앞에 앉아 도박사이트를 기웃거리는 시간이 늘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잃는 돈이 커졌다. 용돈으로는 부족해 학원비를 몰래 쏟아부었다. 이마저도 모자라 어머니 통장에 손을 댔다. 몰래 인출한 300만원을 모두 잃고나자 더는 집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두 달 동안 PC방을 전전했다. 무전취식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고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약 3만명이 ‘문제군’으로 추정된다. 시급한 개입이 필요한 도박중독을 겪고 있는 집단이 문제군이다. 약 12만명은 도박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업시간에도…
안 하면 왕따

스마트폰은 도박판을 학생들의 손바닥 안으로 끌고 와 또래문화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초등학생조차 손쉽게 인터넷 불법도박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도박사이트 주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된다. 이런 사이트에선 미성년자라도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대부분 가입이 가능하다. 한 사이트가 문을 닫아도 금세 다른 사이트로 옮겨갈 수 있다.

별다른 죄의식도 없다. 아이들은 이런 문화를 마냥 외면하기 힘들다고 한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듯 삼삼오오 모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됐는데 혼자 빠지기 어색하다는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도박은 그저 돈내기가 아니라 친목다짐이 돼버렸다.

 

아이들은 ‘단톡방’(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비법을 나누기도 한다. 배당과 승률을 높일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나눈다. 한 발 더 나가 내기 주제를 정하고 돈을 걸기도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부터 국회의원 당선자 맞히기 등 일상의 모든 일이 돈을 걸 수 있는 도박이 된다. 친구 사이에 수만원에 이르는 ‘베팅’이 오간다. ‘외상값’ 혹은 ‘빌린 돈’을 기록한 회계장부까지 등장하곤 한다.

‘친구가 하니까 나도 한다’는 또래문화와 어디에서나 불법 도박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어린 타짜’를 양산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한 경찰학과 교수는 “친구를 따라서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죄의식 없이 도박에 빠지는 청소년이 많다”며 “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쉽게 도박의 유혹에 노출되다 보니 도박을 불법이 아닌 하나의 ‘놀이’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도박중독처럼 ‘진행성 문제행동’은 청소년기에 시작돼 치료 시기를 놓치고 성인이 되었을 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스포츠토토, 달팽이 경주 등 종류 다양
3만명 문제군…12만명 위험군으로 분류

정신과 전문의로 근무하는 한 교수는 예방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청소년들은 도박의 심각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예방교육이 필요하다”며 “도박중독 문제가 밖으로 드러난다면 이미 중독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므로 조기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도박으로 돈을 벌었을 때가 아닌 잃었던 기억을 계속 생각하게 하면서 부모는 청소년들의 여가에 대한 계획과 대안을 제공해 접근성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은 다른 범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부모 지갑이나 통장에 손을 대는 일은 다반사다. 절도나 인터넷 중고거래 사기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선 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관계자는 “도박 빚 때문에 경찰서로 오게 된 청소년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며 “장래 희망이 ‘토사장’(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 운영자를 일컫는 은어)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고등학생도 있었다”고 전했다.


청소년에게까지 도박이 물들게 된 원인에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한몫을 하고 있다. 국내 불법 도박 시장의 규모가 100조원대를 넘어선 점은 그만큼 도박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국가적인 예방 차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통계다. 하지만 현재 불법 도박뿐만 아니라 주식, 복권 등 사실상의 도박인 금융 베팅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기성세대들이 도박에 대한 정확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실제로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을 한 교육기관은 전국에서 1.7%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학교 보건교육기관에서는 인터넷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본 회의에 상정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전문가는 “청소년 도박 문제는 이제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사실상 도박예방에 대한 교육 시스템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라 전체가 도박으로 병들기 전에 학생, 교사, 부모에 대한 적절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도박중독은 완치가 어렵고 가족관계 와해 또는 신용불량, 재산 손실 등 다양한 문제를 안게 된다. 제대로 된 사고가 형성되기 전인 청소년에게는 더욱더 치명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청소년 중독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심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해결 방안도 등장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로 근무하는 한 교수는 예방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청소년들은 도박의 심각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예방교육이 필요하다”며 “도박중독 문제가 밖으로 드러난다면 이미 중독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므로 조기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도박으로 돈을 벌었을 때가 아닌 잃었던 기억을 계속 생각하게 하면서 부모는 청소년들의 여가에 대한 계획과 대안을 제공해 접근성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청소년 상담전문가는 “도박중독이 하나의 질병임을 인정하고 심리치료와 약물치료 등으로 도박 욕구 억제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사회적으로는 도박을 조장할 수 있는 분위기 경계, 사회 근본적 안전망과 감시망 구축, 도박에 대한 치료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청소년 도박문제에 대해 정부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도박 범죄와 관련해 "집행유예, 벌금형 등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고 재범률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라며 "해당 범죄는 마약 관련죄와 동등하게 사회적 법익 차원으로 상향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관심↑
정부 역할은?

또한, 그는 불법도박 예방 캠페인 영상을 지속해서 노출하고 도박 근절 관련 기획기사를 연중 보도를 통해 국민의 경각심을 고취시켜 초기예방에 힘을 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현재 청소년 도박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청소년에게 도박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주며 올바른 인식을 키워주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게 각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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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