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에 빠진 아이들 실상

무슨 돈으로…교복 입고 베팅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도박이 극성이다. 19세 이상만 가능했던 도박은 이미 그 경계선이 무너진 지 오래다. 청소년들의 도박은 절도, 사기, 폭행 등의 범죄로도 이어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도박을 하나의 ‘놀이’ 정도로 여기는 청소년들은 중독에 있어서도 위험 수위가 높다고 평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도박시장은 연간 100조 이상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도박시장이 큰 성장을 이루게 된 계기로 인터넷의 영향을 지적했다. 포커나 고스톱, 머신과 같은 유기구형 도박을 했던 과거와 다르게 현재는 인터넷의 발달로 불법 토토, 사다리 도박 등이 쉽게 행해지게 됐다. 누구나 도박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청소년 역시 쉽게 도박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인터넷·스마트폰
발달로 쉽게 접해

한국도박관리문제센터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중 70%는 돈을 걸고 내기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의 경우 중독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해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도박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놀이나 오락으로 치부한다. 특히 스마트폰의 발달은 청소년이 도박을 접하게 하는 매개체가 됐다. 검색 몇 번이면 쉽게 도박사이트에 접근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경우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가입이 승인돼 손쉽게 도박을 할 수 있다.

청소년 도박문제를 지적한 한 교수는 “청소년은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라며 “도박 역시 친구가 도박을 하면 따라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도박의 재미에 매료되기 시작한 청소년은 곧 중독으로 이어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청소년 사이에서 도박이 중독에서 멈추지 않고, 2차 범죄로 이어진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도박중독에 빠진 중학생 A군은 1000만원 이상의 도박 빚으로 힘들어하다 인터넷 사기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자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처음에는 용돈 용도의 소액으로 도박을 하다가 점차 늘어가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절도, 사기 등으로 도박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A군은 현재 도박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문제는 A군과 같은 처지에 빠진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다.


청소년들이 빠져있는 도박의 종류를 살펴보면 예전에 성행하던 판치기는 ‘애교’ 수준이다. 중학생 B(14)군은 ‘달팽이 경주’를 즐긴다. 달팽이 경주는 경마와 비슷하다. 경주마에 돈을 걸듯 달팽이에 돈을 걸고 배당금을 받는다. 달팽이가 실제로 경주를 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달리는 달팽이를 응원할 뿐이다.

사행성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
1000원으로 시작해 1000만원까지

B군은 수업시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책상 밑에 숨긴 채 ‘사다리 게임’을 한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승패가 결정된다. 스마트폰 화면을 한두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틈날 때마다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다른 중학생 C(15)군은 인터넷 ‘내기 방송’에 푹 빠져 있다. 한 판에 100만원이 오가는 윷놀이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BJ(방송 진행자)가 던진 윷가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C군은 “다른 사람이 돈을 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직접 내 돈을 건 게 아닌데도 짜릿함을 느낀다”며 “경마장을 찾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D(18)양은 하루에도 서너 번 희비가 엇갈리는 경험을 한다. 스마트폰 게임에 필요한 ‘확률형 아이템’ 때문이다. ‘뽑기’와 비슷한 확률형 아이템은 구입하기 전까지 내용물을 알 수 없다. 원하는 아이템이 한 번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심코 뽑다 보면 한 달 동안 모은 용돈이 통째로 사라지기도 한다. D양은 “아이템을 수십만원어치 사는 친구들도 있다”며 “어울려서 게임을 하려면 ‘현질’(현금 구매를 뜻하는 속어)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사실상 도박과 다를 바 없다는 지탄을 받아왔지만, 현재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지난해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 구성 비율, 획득 확률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절도 폭행 사기
2차 범죄 연결


스포츠 토토 또한 청소년 도박의 단골메뉴다. 고등학생 E(17)군은 1년 넘게 불법 스포츠 토토에 빠져 있다. 호기심에 5000원씩 몇 번 걸었는데 맞아떨어졌다. 요즘에는 한 판에 10만∼20만원을 ‘베팅’하기도 한다. 같이 판돈을 거는 친구도 생겼다. E군은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축구나 야구, 농구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도 한다.

고3 수험생 F(18)군은 불법 스포츠 토토로 인해 가출을 결심했다. 평범한 학생이던 그는 ‘토토’로 수십만원에 이르는 돈을 따는 친구가 내심 부러웠다. 그렇게 토토의 세계로 빠져든 F군은 용돈을 쪼개 1000원, 2000원을 걸었는데 재수가 좋았다고 한다. 갖고 싶던 신발을 가질 수 있었고, 친구들에게 ‘한턱’ 쏠 수도 있었다.

돈을 따는 맛을 알아버리면서 F군은 점점 도박에 빠져들었다. PC방 컴퓨터 앞에 앉아 도박사이트를 기웃거리는 시간이 늘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잃는 돈이 커졌다. 용돈으로는 부족해 학원비를 몰래 쏟아부었다. 이마저도 모자라 어머니 통장에 손을 댔다. 몰래 인출한 300만원을 모두 잃고나자 더는 집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두 달 동안 PC방을 전전했다. 무전취식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고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약 3만명이 ‘문제군’으로 추정된다. 시급한 개입이 필요한 도박중독을 겪고 있는 집단이 문제군이다. 약 12만명은 도박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업시간에도…
안 하면 왕따

스마트폰은 도박판을 학생들의 손바닥 안으로 끌고 와 또래문화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초등학생조차 손쉽게 인터넷 불법도박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도박사이트 주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된다. 이런 사이트에선 미성년자라도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대부분 가입이 가능하다. 한 사이트가 문을 닫아도 금세 다른 사이트로 옮겨갈 수 있다.

별다른 죄의식도 없다. 아이들은 이런 문화를 마냥 외면하기 힘들다고 한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듯 삼삼오오 모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됐는데 혼자 빠지기 어색하다는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도박은 그저 돈내기가 아니라 친목다짐이 돼버렸다.

 

아이들은 ‘단톡방’(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비법을 나누기도 한다. 배당과 승률을 높일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나눈다. 한 발 더 나가 내기 주제를 정하고 돈을 걸기도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부터 국회의원 당선자 맞히기 등 일상의 모든 일이 돈을 걸 수 있는 도박이 된다. 친구 사이에 수만원에 이르는 ‘베팅’이 오간다. ‘외상값’ 혹은 ‘빌린 돈’을 기록한 회계장부까지 등장하곤 한다.

‘친구가 하니까 나도 한다’는 또래문화와 어디에서나 불법 도박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어린 타짜’를 양산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한 경찰학과 교수는 “친구를 따라서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죄의식 없이 도박에 빠지는 청소년이 많다”며 “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쉽게 도박의 유혹에 노출되다 보니 도박을 불법이 아닌 하나의 ‘놀이’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도박중독처럼 ‘진행성 문제행동’은 청소년기에 시작돼 치료 시기를 놓치고 성인이 되었을 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스포츠토토, 달팽이 경주 등 종류 다양
3만명 문제군…12만명 위험군으로 분류

정신과 전문의로 근무하는 한 교수는 예방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청소년들은 도박의 심각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예방교육이 필요하다”며 “도박중독 문제가 밖으로 드러난다면 이미 중독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므로 조기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도박으로 돈을 벌었을 때가 아닌 잃었던 기억을 계속 생각하게 하면서 부모는 청소년들의 여가에 대한 계획과 대안을 제공해 접근성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은 다른 범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부모 지갑이나 통장에 손을 대는 일은 다반사다. 절도나 인터넷 중고거래 사기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선 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관계자는 “도박 빚 때문에 경찰서로 오게 된 청소년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며 “장래 희망이 ‘토사장’(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 운영자를 일컫는 은어)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고등학생도 있었다”고 전했다.


청소년에게까지 도박이 물들게 된 원인에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한몫을 하고 있다. 국내 불법 도박 시장의 규모가 100조원대를 넘어선 점은 그만큼 도박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국가적인 예방 차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통계다. 하지만 현재 불법 도박뿐만 아니라 주식, 복권 등 사실상의 도박인 금융 베팅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기성세대들이 도박에 대한 정확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실제로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을 한 교육기관은 전국에서 1.7%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학교 보건교육기관에서는 인터넷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본 회의에 상정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전문가는 “청소년 도박 문제는 이제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사실상 도박예방에 대한 교육 시스템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라 전체가 도박으로 병들기 전에 학생, 교사, 부모에 대한 적절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도박중독은 완치가 어렵고 가족관계 와해 또는 신용불량, 재산 손실 등 다양한 문제를 안게 된다. 제대로 된 사고가 형성되기 전인 청소년에게는 더욱더 치명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청소년 중독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심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해결 방안도 등장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로 근무하는 한 교수는 예방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청소년들은 도박의 심각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예방교육이 필요하다”며 “도박중독 문제가 밖으로 드러난다면 이미 중독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므로 조기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도박으로 돈을 벌었을 때가 아닌 잃었던 기억을 계속 생각하게 하면서 부모는 청소년들의 여가에 대한 계획과 대안을 제공해 접근성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청소년 상담전문가는 “도박중독이 하나의 질병임을 인정하고 심리치료와 약물치료 등으로 도박 욕구 억제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사회적으로는 도박을 조장할 수 있는 분위기 경계, 사회 근본적 안전망과 감시망 구축, 도박에 대한 치료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청소년 도박문제에 대해 정부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도박 범죄와 관련해 "집행유예, 벌금형 등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고 재범률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라며 "해당 범죄는 마약 관련죄와 동등하게 사회적 법익 차원으로 상향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관심↑
정부 역할은?

또한, 그는 불법도박 예방 캠페인 영상을 지속해서 노출하고 도박 근절 관련 기획기사를 연중 보도를 통해 국민의 경각심을 고취시켜 초기예방에 힘을 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현재 청소년 도박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청소년에게 도박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주며 올바른 인식을 키워주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게 각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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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정-조국 딸 스캔들 오버랩

심우정-조국 딸 스캔들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심우정 검찰총장이 ‘딸 특혜 채용 논란’에 휩싸였다. 자격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외교부에 최종 합격했다. 외교부가 오직 심 총장의 딸을 위해 전형까지 엎었다는 게 골자다. 외교부는 특혜가 아니라던 입장을 뒤집고, 심 총장 지녀 채용을 보류했다. 정치권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사안처럼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며 맹공을 펼치고 나섰다.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 심모씨는 ‘아빠 찬스’로 취업에 성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과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에 합격할 수 없었다. 지원 자격 자체가 미달 수준이었다. 일각에서는 입시 비리 혐의를 받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사안보다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수사기관이 심씨를 즉각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아빠 찬스? 수상한 합격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지난달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 질의서 심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했다. 이 문제는 지난해 9월 심 총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서 언급됐었다. 당시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은 심 총장의 장녀가 1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국립외교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는데, 심 후보자가 이와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당시 “후보자 장녀가 최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석사 과정을 이수했다”며 “후보자 자녀는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국립외교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다. (장녀가)서울대 국제대학원 1학년 때 박철희 교수에게 수업을 받았다”며 “박 교수는 현직 주일대사고, 후보자 본인 장녀가 입사할 당시 국립외교원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은 나카소네 야스히로상 수상자”라며 “제1회(수상자) 박철희 주일대사고, 윤석열정부서 ‘중요한 건 일본 마음’이라고 말한 김태효 차장이 제5회 장려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심 총장이 “문제가 없다”고 답변하자, 박 의원은 “그러면 채용 서류를 내라.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전부터 채용서류 전체를 내라고 하는 것”이라며 “의원실서 계속 요구하지만 후보자 동의가 없어서 (외교원이) 내질 않고 있다”고 따져 물었다. 외교부의 지난 1월 1차 공무직 연구원 채용 공고에는 ‘경제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가 응시 자격이었다. 그런데 한 달 뒤인 2차 공고는 갑자기 심씨가 전공한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됐다. 외교부는 응시 가능 대상을 확대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변경 전에 응시했던 이들은 2차 공고 때는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공정채용 가이드라인 등에 따르면, 채용공고를 변경할 때는 채용 관련 심의기구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외교부는 인사기획관실과 서면 협의만 거쳤다. 심의기구를 통한 공정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 채용 공고를 변경한 셈이다. 채용 경력을 두고도 외교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심씨에게 특혜를 줬다는 지적도 거세다. 채용 공고에는 해당 분야 실무 경력 2년 이상이 응시 자격이었다. 그러나 심씨의 경력은 국립외교원 연구원 8개월,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보조원 22개월, UN 경제사회국 인턴 6개월로 실제 경력은 8개월에 불과했다. 경력 1년도 안 되는데 스펙 과대 포장해 지원 외교부 전형까지 뒤집어…기존 면접자는 탈락 외교부는 학창 시절의 경험도 경력으로 인정한다고 해명했지만, 외교부 산하 기관서 2022년과 2023년에 낸 채용공고엔 인턴이나, 교육생, 학위 취득에 소요되는 행정조교 등은 경력서 제외한다고 적시돼있다. 심씨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산하 EU센터서 연구보조원으로 근무했다고 실무 경력에 적었다. 하지만 서울대 국제학연구소가 발간한 2023년 연례보고서에는 심씨가 연구 보조원이 아닌 EU센터 ‘석사 연구생’으로 적혀 있다. 민주당은 지난 2일 심씨의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진상조사단을 출범했다. 조사단에는 한 의원을 포함해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영배·홍기원·이재강 의원,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기표·박희승 의원,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이용우 의원, 정무위원회 소속 강준현·이정문 의원,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성회 의원, 교육위원회 소속 고민정·백승아 의원 등 총 12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심 총장을 포함한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고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외교부는 지난 1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면접까지 통과해 현재 신원 조사 절차만 남겨둔 심씨의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 채용은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유보됐다. 공익감사는 감사 대상 기관이 자체 감사기구서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 등에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 윤재관 대변인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감사원은 검찰의 2중대 역할을 자처해 왔다.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감사원을 동원해 면죄부를 받으려는 시도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사단은 심 총장 자녀 관련 ‘권력형 비리’ 의혹과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규명하고 대응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심 총장 딸의 외교부 특혜 채용 비리 의혹 및 서민금융 대출 논란, 심 총장 아들의 장학금 수령 특혜 의혹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앞서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외교원 연구원 채용 공고상 자격 요건에 ‘해당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 또는 학사학위 소지자 중 2년 이상 관련 분야 근무 경험자’라고 돼있지만 심 총장 딸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특혜 채용 의혹을 주장한 바 있다. 급 바뀐 채용공고 심 총장은 입장문을 내고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검찰총장의 자녀는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청년들과 같이 본인의 노력으로 채용 절차에 임했다. 국회에 자료 제출을 위한 외교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도 동의했다”고 반박했다. 한 의원은 최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심씨 특혜 채용에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이라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은)윤석열정권 출범 직후 2022년 7월 정도에 대통령실 외교비서관실로 들어갔다가 2024년 1월에 외교부로 복귀해 5월 말, 한반도 평화교섭본부를 없애고 새롭게 신설한 외교전략정보본부 외교정보기획국장으로 보직받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한 의원에 따르면 2023년 외교부 연구직 채용 1차 공고 당시 직접 면접에 참여한 박 국장은 지원자 A씨를 “한국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하지만 A씨는 한국서 나고 자라 학위까지 받은 인물로 언어능력을 문제 삼을 만한 근거는 부족했다. A씨의 탈락 이후 외교부는 2차 공고를 내며 채용 자격을 경제 관련 석사학위 소지자에서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했다. 이때 국제협력 분야를 전공한 심씨가 합격하게 된 것이다. 한 의원은 박 국장의 대통령실 근무 경험이 심씨의 채용 과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채용 실무가 인사기획관실이 아닌 외교정보기획국 산하 외교정보1과서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는 “아무래도 용산에 파견 나가 있으면 조금 더 넓게 여러 부처와 관련된 사람들을 접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 과정서 어떤 방식이든지 어떤 접점이 이뤄지지 않았겠냐라고 하는 것은 있는데 그 부분은 저희가 조금 더 깊이 파봐야 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 먹잇감 심 총장과 갈등을 빚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심씨의 사건은 좋은 먹잇감이다. 지난 3일 공수처는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하 사세행)이 심 총장과 조태열 장관을 직권남용, 특정범죄가중법상 뇌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3부(부장검사 이대환)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수사3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석방을 지휘해 고발당한 심 총장 사건도 수사 중이다. 사세행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검찰의 수장인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을 뇌물성 채용한 행위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하면서 감사원이 공익감사 청구를 각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공익감사 청구는 6개월 이내 결과를 내놔야 하되 기한은 자체 판단으로 늘릴 수 있는데, 그전에 감사에 착수할지 여부부터 감사위원회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감사 청구를 각하하는 이유는 통상 이미 같은 사안에 대한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가 많다. 공수처 수사가 각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법상 감사원이 거부할 수 없는 국회 요구 감사의 경우에도 수사나 재판을 이유로 ‘사실상 각하’했던 최근 사례도 있다. 감사원은 지난달 25일 국회가 요구한 방송통신위원회 2인 구조 등 감사를 두고, 같은 사안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위법성 여부를 감사원이 결론 내리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매듭지은 보고서를 내놨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심씨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입시 비리 논란을 일으켰던 조 전 장관 부부가 받았던 수사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면 검찰의 이중적 잣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조 전 장관이 받았던 검찰 수사를 보면 입시 비리 혐의만으로도 압수수색 등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같은 혐의를 받는 심 총장 딸의 경우 멀쩡하게 살고 있다는 걸 국민 눈높이서 봤을 때 형평성 논란이 일 것”이라며 “이건 상식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조민은 집유 “강도 높게 수사해야” 용산 파견 키맨 박장호 국장 뒷배? 여당인 국민의힘도 조용하다. 지난달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간부 자녀 특혜 채용을 두고 “제2의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를 넘어 제2의 조국 사태”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공수처가 심 총장과 심씨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력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 고발 사건이 이어지면서 수사 지연은 불가피하다. 지난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인사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3명 등 4명의 검사 임명을 대통령실에 제청했지만 두 달이 넘도록 임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는 인사위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해 9월에도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2명 등 3명의 검사를 추천했지만 대통령실은 반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답이 없는 상태다. 윤 전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될 때까지 이들을 임명하지 않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송창진 수사2부장의 면직을 재가하면서도 신규 검사 임명은 하지 않았다. 한 총리의 뒤를 이은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찰청 등 부처 인사는 진행하면서도 공수처 검사는 임명하지 않았다. 신규 검사 임명이 늦어지면서 고질적인 공수처 인력난도 지속되고 있다. 공수처 검사 정원은 처장과 차장을 포함해 25명이지만 현재 검사 인원은 휴직자 1명을 포함해 14명에 불과하다. 정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신규 검사 7명을 임명해도 정원보다 4명이 부족하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과부하 상태라는 우려가 나온다. 12·3 비상계엄 수사와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비위 의혹 수사 등 기존 수사에 인력이 집중돼있어 타 수사를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는 토로도 상당하다. 수사? 미지수 공수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고발 사건이 이어지고 있지만 배당받은 사건을 전부 들여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통령실이 하루빨리 검사 임명을 해줘야 타 사건도 들여다볼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박에 반박 나선 외교부 외교부가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입장을 재반박하는 장문의 입장문을 내놨다. 외교부는 “관점에 따라 제도 운영 과정서 미흡했던 부분이 지적될 수는 있겠지만, 이를 특정 인물에 대한 특혜로 연결 짓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석사학위 소지자 또는 학사학위 소지 후 2년 이상 관련 분야 근무자’를 대상으로 채용 공고한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에 석사 취득 예정 상태였던 심씨가 채용된 것에 대해 심씨만 특별히 배려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학위 취득 예정서를 공식 증명서로 증빙하면 자격요건을 갖춘 것으로 인정했던 사례가 2021~2025년까지 총 8건 더 있었다”고 반박했다. 외교부는 올 초 외교부 정책조사 연구원 채용 과정서 이미 최종 면접까지 마친 응시자가 불합격 처리되고, 심씨를 위한 ‘맞춤형’으로 응시 자격을 바꿔 재공고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경제 관련 석사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1차 공고를 냈을 때 응시 인원이 6명에 불과했고, 그 중 유일하게 경제 관련 석사학위를 소지한 응시자 1명에 대해 외부 인사 2명과 내부 인사 1명으로 구성된 면접위원회가 최종 면접을 했으나 채용 부적격 판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1차 채용 공고문에 ‘응시자 중 적격자가 없을 경우 선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사전에 공지했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2차 공고에선 응시 가능 대상을 넓히기 위해 자격 요건을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했고, 그 결과 19명의 지원자가 응시해 심씨를 포함한 5명이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번처럼 1차 공고 후 적격자가 없어 전공·자격증 분야 등 응시 자격 요건을 변경해 재공고한 사례는 타 부처는 물론 외교부 내에서도 과거 전례가 있다면서 “(심씨가)유일하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앞서 외교부의 이 같은 설명에 대해 “응모한 사람이 적더라도 (같은) 채용 공고 사이트를 보면 재공고를 해서라도 기한을 연장해 해당 분야 사람을 찾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심씨가 또 다른 응시 요건인 ‘실무 경력 2년 이상’을 충족했는지도 논란이 큰 쟁점이다. 외교부는 심씨의 실무 경력을 국립외교원 경력 8개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보조원, 유엔 산하 기구 인턴 등을 포함해 총 35개월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인턴, 조교 등은 통상 실무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경험과 경력은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진>